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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식(1930)

마도로스 박에서 넘어옴
박노식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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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6회
(1969년)
제7회
(1970년)
제8회
(1971년)
신영균
(대원군)
박노식
(돌아온 팔도 사나이)
최무룡
(30년만의 대결)
제8회
(1971년)
제9회
(1972년)
제10회
(1973년)
최무룡
(30년만의 대결)
박노식
(소장수)
신영균
(삼일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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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5회
(1966년)
제6회
(1967년)
제7회
(1968년)
김진규
(태양은 다시 뜬다)
박노식
(고발)
신성일
(이상의 날개)
}}} ||
<colbgcolor=#000><colcolor=#fff> 박노식
朴魯植
파일:external/image.cine21.com/5216.jpg
출생 1930년 2월 4일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봉강리
(現 전라남도 여수시 봉강동)
사망 1995년 4월 3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가족 배우자 김용숙(1935년생)
슬하 1남 3녀, 아들 박준규
손자 박종찬, 박종혁
학력 여수서정심상소학교[1] (졸업)
여수공립수산중학교 (졸업)
순천사범학교 (체육학과 / 졸업)
조선대학교 (체육학과 / 학사)
데뷔 1956년 영화 《격퇴

1. 개요2. 생애3. 특징4. 저서5.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본관 밀양(密陽). 종교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배우시절 별명은 마도로스 박.

2. 생애

1930년 2월 4일, 일제강점기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봉강리(현 여수시 봉강동)에서 태어났으며[2], 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학교[3]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여수소라국민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이후 충남 대전의 유랑극단 노래자랑에 합격하여 악극단원으로서 '나그네 설움' 등을 시작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4], 1956년에 이강천 감독의 영화 <격퇴>에서 검사 역으로 은막에 모습을 드러냈다.

1961년 김묵 감독의 <현상금 붙은 사나이>를 비롯해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 이만희 감독)>, <도망자(1965, 이강원 감독)>, <0번 상해돌파(1967, 신경균 감독)> 등 온갖 액션 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맘껏 발산해 출연 영화마다 수많은 흥행기록 및 집객동원을 기록했으며, 1970년 설태호 감독 영화 <남대문 출신 용팔이>를 시초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의리파 주먹 '용팔이' 캐릭터를 창조해내 또 주목을 받았다.

그 외에 영화 <상해임시정부와 김구선생> 에서는 윤봉길 역으로 출연하여 막판에는 일본군에게 잡혀가는 씬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이후 영화 '한양건달' 에서는 10살 연하인 배우 최불암과 앙숙관계 역할로 열연했다.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를 시초로 몸소 메가폰을 잡기 시작해 1976년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1983년 <돌아온 용팔이> 등 총 14편을 연출했다. 특히 용팔이 시리즈에는 더 애정을 보였다. 1971~1979년 및 1981~1982년까지 두 차례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80년에 온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1987년 영구귀국 후 <가요무대>에 가끔 출연하거나 1993년에 아들 박준규와 KBS2 미스터리 드라마 <금요일의 여인: 홍리나의 위험한 선택>에 출연해보기도 했다. 1995년 4월 3일 오후, 서울 방학동 삼익아파트 자택에서 65세에 당뇨병 및 천식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서울 공항동 성당에서 영화협회장으로 거행한 뒤 방학동 천주교혜화동교회 추모공원에 유해가 안장됐다.

3. 특징

후배 윤정희의 말에 따르면, 남자 후배들에게는 엄격한 군기반장이었지만 여자 후배들에게는 매우 자상했다고 한다.

주사가 심한 편이라 선배장동휘에게도 대들다가 두들겨 맞은 적도 있고, 후배신성일도 폭행한 적이 있다.[5] KBS2 상상플러스박준규와 함께 출연한 주현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셔서 경찰서 유치장에 자주 들어가셨는데, 촬영있을때마다 후배들이 가서 모셔오고, 끝나면 다시 유치장으로 모시고 갔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6]

야인시대에서 쌍칼을 맡았던 배우 박준규가 아들이다. 박준규는 2011년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마도로스 박역으로 특별 출연한 바 있다.

다찌마와리 연기를 잘했다고 한다.

그가 타계했을 때 아들 박준규는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박노식이 “연기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기해야 한다”라고 아들에게 말을 해서 박준규는 부친의 와병 중에도 공연을 하였다.

박노식이 1995년 4월 3일에 타계했을 때 박준규는 부산에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공연하고 있었는데[7] 타계 소식을 뮤지컬에 함께 출연했던 독고영재가 부친 독고성으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다.[8] 그런데 박준규가 무대에서 공연 중이라서 전할 수 없었고,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박준규에게 부친의 타계 소식을 전하고 서울로 보냈으며 박준규가 맡았던 역할은 윤다훈이 대신 하였다.

이 후 독고영재가 관객들에게 사정을 전하고 양해를 구하자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4. 저서

  • 뻥까오리 백작: 박노식 은막 43년의 고백 - 씨와날. 1995.

5. 수상



[1] 현 여수서초등학교.[2] 그런데 정작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출신인 해태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순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3]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순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순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4] 참조.[5] 심지어 신성일은 박노식의 동생과는 친구사이였다.[6] 실제로 1968년에 폭력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7] 이일화, 이동준과 함께 출연, 박준규는 나싼 역.[8] 독고성은 당시 박노식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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