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1:54:10

추상표현주의

뜨거운 추상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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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여담

1. 개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1929년 비평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이,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표현주의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쓰인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폴 세잔과 칸딘스키, 마크 토비 등이 보여준 추상표현주의의 역사적 가능성은 1940년대 한스 호프만(Hans Hofmann),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에 의해 본격화 되었다. 1946년에 비평가 로버트 코츠는 전후추상의 맥락에서 이러한 양상을 ‘추상표현주의’로 포괄했다. 1950년대에는 그레이스 하티건(Grace Hartigan), 리 크래스너(Lee Krasner), 헬렌 프랑켄텔러(Helen Frankenthaler), 조운 미첼(Joan Mitchell) 등 여성 작가들이 2세대로서 그 유산을 계승하고 재창안했다.

2. 상세

대표적으로 전면균질 화면을 구축한 잭슨 폴록이나 두꺼운 물감을 감정적 필촉으로 운용한 윌리엄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등이 있다. 차가운 추상과는 달리 강렬하고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계보적으로는 유럽의 반구상적/비구상적 미학, 독일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 드로잉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사회적 리얼리즘 경향을 넘어선 추상표현주의는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는데, 그는 폴록의 회화가 평면성이라는 본질에 가장 순수하게 도달했다고 보면서,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등으로 이어지는 회화적 전통에서 정점에 올랐다고 비평했다.
파일:mural.jpg
잭슨 폴록 - 벽화

이는 한스 호프만과 잭슨 폴록 등이 예술가의 ‘행위성’을 가시화하여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가 사각 캔버스 표면 위에 페인트와 각종 매제를 이용해[1] 드리핑, 스패터링, 푸어링으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후 추상표현주의는 매체 특정성에 입각해 이미지와 비이미지(물질)의 경계를 초월함으로써, 이미지를 조형적으로 단순화 했던 1945년 이전의 추상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파일:로드코.jpg 파일:프랑켄텔러.png
마크 로스코, No. 3/No.13, 1949, 캔버스에 유채, 216.5 x 164.8cm. 헬렌 프랑켄텔러, Basque Beach, 1958, 캔버스에 유채, 148 x 176cm.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윌렘 드 쿠닝은 이미지와 비이미지의 경계를 시대착오적으로 유희하면서, ‘여인’ 연작 등을 통해 현대회화에서 제일 긴 전성기를 누렸다.[2] 그에 비해 잭슨 폴록은 개인사와 더불어 이미지와 비이미지의 접면에서 방황하면서 침체를 겪다가 사고사 하고 말았다. 잭슨 폴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헬렌 프랑켄탈러는, 생천에 유화를 적셔 스며들게 하는 어법을 구사함으로써, 두꺼운 물감을 거친 몸짓으로 운용한 폴록 및 드 쿠닝과 대조적으로, 엷고 묽은 물감을 섬세한 몸짓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재창안했다.

한편 이들은 매우 명확하고 심리적인 색상 사용으로 극적인 추상에 도달하고자 한 이른바 ‘색면추상’의 등장으로 ’액션 페인팅‘으로 세분화되었다.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Barnett Newman) 등의 색면추상은 액션 페인팅의 ’육체적 행위의 표면화‘와 다르게 크고 평평한 색상 영역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면성의 본질에 가장 순수하게 도달하고자 한 감각적이고 깊이 있는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에 추상표현주의의 일부로 여겨진다.

3. 여담

  • 구미 추상표현주의의 화답은 개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졌는데, 일본 구타이 미술과 신표현주의가 대표적이다. 무라카미 사부로(村上三郎), 시라가 카즈오(白髪一雄) 등은 화가의 신체성을 보다 극적인 행위로 가시화 했으며, 시마모토 쇼조(嶋本昭三)는 병에 담긴 물감을 투척하는 파괴적 행위로 추상화를 전개하면서, 원자폭탄 투하를 연상케 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한편, 아프리카계 미국인 샘 길리엄(Sam Gilllam)은 생천에 추상표현주의적 행위를 담고 건조되면 45도의 베벨 지지대에 고정시키는 ‘조각(Slice)‘ 회화로 하여금 색면 효과와 부조의 효과를 모두 잡아냈다. 이후에는 물감을 곁들인 생천을 벽과 천장에 매달거나 얹거나 매듭을 짓는 ‘휘장(Drape)‘ 회화를 선보였다. 드레이프 되는 추상회화는 예술가의 행위에 따라,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에 어울리게 가로지르게 되는 장소 특정성을 띈다.
  • 현대미술을 비판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그림들도 대부분 추상표현주의 작품으로 난해함과 성의없음의 대표 명사라며 욕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폴록식 드리핑이나 이우환의 사각점(단붓질)은 그렇다 쳐도, 윌렘 드 쿠닝 등이 구사한 회화적 필치와 그것을 통해 구축되는 조형적 화면은 쉽게 의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추상표현주의적 작가 자데이 파도주티미가 미대 졸업 4년만에 작품가 20억에 도달한 총아로 주목받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 굉장히 어이없어 보이지만 냉전 시기 CIA에서는 '자유로운 미국 예술'이자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항마로 추상표현주의를 밀어주고 후원했다고 한다. 인디펜던트지 한겨레

[1] 드 쿠닝은 유화의 건조 속도를 늦추고, 더 기름지게 만들기 위해 마요네즈를 섞거나, 텍스처를 주기 위해 물과 유화를 섞기도 했다.[2] 드 쿠닝은 ‘여인’ 연작을 계기로 ‘화가의 죽음’을 선언한 아서 단토로부터 ‘녹아내린 피카소‘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미지와 물질을 유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조각적 조각/행위적 조각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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