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3 02:32:54

동의단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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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단지회의 태극기[1]
1. 개요2. 단지동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3. 뮤지컬 <영웅>에서4. 관련문서

1. 개요

同義斷指會.

1909년 2월 7일 러시아 제국 연해주 그라스키노 근처 카리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에서 안중근 의사와 김기룡, 백규삼을 주축으로 12명으로[2] 결성된 암살결사대로, 단지동맹(斷指同盟)으로도 불린다.

또한 그 명칭대로 이들은 왼손 약지[3] 앞쪽을 끊어 그 피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글자를 썼고, 이 과정에서 안중근은 엄인섭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김기룡을 포함한 나머지는 이완용, 박제순, 송병준 등의 거물 친일파를 처단하기로 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열린 6회 공판에서 안중근의 진술에 따르면 핵심 조직원은 안중근(安重根), 백규삼(白圭三), 김기룡(金起龍), 강순기(姜舜璣), 조응순(趙應順), 황병길(黃炳吉), 강창두(姜昌斗), 갈화천(葛化天) 등 8명이며, 객원으로는 정원주(鄭元柱), 박봉석(朴鳳錫), 유치홍(柳致弘), 김백춘(金伯春) 등 4명이 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진술에선 엄인섭, 백원보, 한종호 등도 있는데 조사 과정에서 안중근이 순순히 불었을 리는 없기에 ​다소 불분명한 면도 있다.

단지동맹의 일원이었던 황병길 선생의 외손자인 박동일웅 씨가 2021년에 한 매체와의 인터뷰 '그 항아리에 단지동맹 증거가 잠들어 있다'에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외조부가 손가락을 잘라 전지만 한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썼다고 했지. 그 손 마디(단지)는 피가 묻지 않게 기름종이에 싸서 항아리에 넣었다고, 나이가 들어도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했어.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지금 ‘단지동맹’이라고 부르는 것의 증거가 됐어”, "항아리와 (손가락을 잘랐던) 도낏자루, 권총을 같이 묻었다는데 이북 땅에 있어 이젠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네”라고 전한 바 있다.

2. 단지동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안중근(독립운동가)
김기룡(독립운동가)
황병길(독립운동가)
백규삼(독립운동가)
강순기(독립운동가)
조응순(독립운동가)
강창두(독립운동가)
정원주(독립운동가)
박봉석(독립운동가)
유치홍(독립운동가)
김백춘(독립운동가)

이들은 손가락을 자르고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이라 썼으며 안중근이토를 나머지는 친일파를 처단하기로 맹세했으며 훗날 안중근은 이토를 처단하는데 성공한다.

3. 뮤지컬 <영웅>에서

영웅(뮤지컬)영웅(2022)는 넘버 '단지동맹'으로 시작한다. KBS 열린음악회 등에서도 들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2023년 3월에 에이콤여성들의 목소리로 단지동맹을 발표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지각하는 건 첫 넘버를 놓치는 것이다. <영웅>에서 지각하는 건, 이 웅장한 넘버를 놓치는 일이라 적지 않은 상실감을 유발할 수 있다.

4. 관련문서


[1] 당시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이 무명지를 잘라 피로 대한 독립이라고 적은 실제 태극기이다.[2] 안중근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 토마스)였고, 이 점에서 예수의 12사도에서 착안해 12명으로 결성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3]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왼손의 약지는 가장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 손가락을 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