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1 12:50:56

김석범(소설가)

제주 4·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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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範
1925년 10월 2일 ~ ([age(1925-10-02)]세)

1. 개요2. 생애3. 여담4. 작품5. 관련 문서

1. 개요

제주도 출신의 재일 한국인 소설가. 현기영과 더불어 제주 4.3 사건을 소설로 알린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본명은 신양근(愼洋根)으로, 본관은 거창(居昌)[1]이며, 김석범은 필명이다.

2. 생애

김석범은 1925년 10월 2일 일본 오사카시에서 아버지 신수련(愼洙連)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광복 이전까지 일본에 주로 거주하면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으며, 1943년에는 부모의 고향인 제주도에 1년여 간 머무르며 그곳의 청년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할 계획을 짜기도 했다.[2]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국학대학[3] 국문과를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결국 학비와 생활비 부족으로 인하여 48년경 밀항을 통해 오사카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가 오사카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제주도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을 통해서 제주 4.3 사건 당시 벌어진 참극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이때 받은 충격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그는 간사이대학 전문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51년 교토대학 문학부 미학 전공을 졸업한 이후 그는 조선인 청년·노동자를 위한 청년학교를 열어 한국사와 사회과학 등을 가르쳤으나, 연합국군총사령부(GHQ)가 민족학교 금지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그 해 9월로 폐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역사학자 강재언(姜在彦) 등과 함께 '조선평론' 이란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으나, 그 또한 얼마 못가고 이듬해인 1952년 고향 오사카를 떠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약칭 조총련) 관련 조직에 들어가 근무했다.

1967년 그는 재일문학예술가동맹에 관여하면서 '문학예술' 이란 한글잡지를 편집하고 있었고, 첫 작품인 《까마귀의 죽음》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즈음 조총련 조직 내부에서는 그를 '자유주의자'라며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는데, 이때 작품 발표 전에 검열을 받으라고 간섭을 하여 갈등을 빚었고, 김석범은 마침내 1968년 조총련과 결별하게 된다.#

그는 이후 계속해서 4.3 관련 소설들을 썼고, 1965년부터 1997년까지 대하소설 <화산도>를 집필하였다.[4] 이러한 문학적 성과로 그는 1984년 아사히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을, 1998년에는 마이니치 예술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한국에서도 2015년 제주4.3평화상, 2017년 제1회 이호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3. 여담

일본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때때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문학가로서 초청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라는 요구 조건을 거부하는 바람에 번번이 귀국이 무산되어 왔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 문학상 수상 등으로 인해 방한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입국을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

대한민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아닌 조선적을 지니고 있다.

50~60년대에서는 조선신보 기자를 하면서 조총련계에서 활동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후부터는 멀어졌다고 한다.

4.3평화상 수상 당시 그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수상 당시 "해방 전에는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 해방 후에는 반공세력으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민족반역자들이 틀어잡은 정권제주도를 젖먹이 갓난아기까지 빨갱이몰아붙인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표방했지만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 정부가 법통을 계승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이승만 정권을 강력히 규탄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 보수세력에서는 "북한에 대한 비난이 하나도 없다"라며 그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5년 이 문제에 대해 이뤄진 감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종결됐다. #

2018년 4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4.3문학 관련 행사에서 현기영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발전은 투쟁 없이 가만히 앉아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서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제주4.3민주주의의 첫 출발"이라고 발언하였다.

4. 작품

  • <까마귀의 죽음>(鴉の死)
  • <간수 박 서방>(看守朴書房)
  • <관덕정>(觀德亭)
  • <만덕유령기담>(万德幽靈奇譚)
  • <화산도>(火山島) -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는 대하소설. 집필에만 수십년이 걸렸다.
  • <1945년 여름>
  • <과거로부터의 행진>
  • <땅의 통증>[5]

5. 관련 문서


[1] 참의공파 30세손.[2] 하지만 이는 김석범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바람에 무산됐다.[3] 당시 국어학자 정인보가 세운 학교로 이후 이 학교가 우석대학교가 되어 고려대학교에 흡수된다.[4] 이 소설들은 전부 일본어로 써졌기에 한국에 정발될 때는 한국어번역되었다.[5] 일본의 월간지 '스바루' 5,6월 호에 걸쳐 발표한 작품이다. 무려 97세의 춘추에 발표한 신작 소설이다. 아직 번역판은 발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