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04:53:37

김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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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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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대장 (1953~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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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청 해양경비대장 (1955~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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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해양경찰대장 (1962~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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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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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양경찰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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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 차장 (199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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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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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대행·초대
이춘재
해양경찰청 차장 (2017~현재)
초대
이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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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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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金錫均 | Kim Seok-gyun
파일:김석균 해양.jpg
<colbgcolor=#0A154B><colcolor=#fff> 출생 1965년 4월 20일 ([age(1965-04-20)]세)
경상남도 하동군
학력 진주동명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박사)
본관 용궁 김씨[1]
가족 장인 정상혁[2], 아내 정한실, 슬하 1남 1녀
경력 제37회 행정고시 합격
법제처 사무관
해양경찰청 기획과장
완도해양경찰서장
해양경찰청 국제협력담당관
해양경찰청 전략사업과장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
해양경찰청 경비구난국장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
해양경찰청 차장
제13대 해양경찰청장 (박근혜 정부)

1. 개요2. 생애3. 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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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으로 역대 2번째 해경 출신 치안총감(해양경찰청장)이다.

2. 생애

196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진주동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에 합격하여 상경하였다.

한양대 재학 시절 계속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하였으나 탈락하였고 결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과정 재학 중이던 1993년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하였다.

행시에 합격하여 1994년 법제처 사무관으로 근무하였으나 특이하게도 1997년부터 일반적인 경찰공무원이 아닌 해양경찰으로 공직을 옮긴다.

이후 해양경찰청에서 근무하며 법무계장, 국제협력계장 등을 맡가다 총경으로 승진하여 기획과장, 국제과장, 완도해양경찰서장, 재정기획담당관, 국제협력담당관, 전략사업과장 등을 거친다.

2008년부터는 경무관으로 승진하여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 경비구난국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는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을 맡았다.

2012년에는 해양경찰에 딱 하나밖에 없는 치안정감 보직인 해양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 3월부터는 박근혜 정부가 해양경찰청장에 발탁하면서 치안총감으로 영전하였다. 권동옥 청장에 이은 역대 두 번째 내부승진으로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해경 출신 해경청장이 나오면서 해경 조직 내부의 사기또한 충만하게 되었다.

취임 후 전면에 내세운 정책이 '해양사고 30% 줄이기' 인데, 사고란 것이 줄이라고 하면 안일어나는 것인지, 그게 될거 같았으면 해양경찰 60년 역사동안 그걸 안한 선배들은 죄다 직무유기나 머저리였다는건지 알 수 없어 이게 실현 된다면 통계조작을 통한 '해양사고 30% 숨기기' 아니냐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무죄 확정된 후 《세월호 3488일의 기록》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3. 논란 및 사건사고

3.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하고 해경이 구조 상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해양경찰이 해체되게 되었고 해경청장이던 김 청장도 사표를 내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해체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고 하여 해경 내부에서 큰 반발을 샀다. 책임을 지는 자리인 지휘관이 정권 앞에 대거리 한마디 못하고 꼬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수사권 조정 등의 이슈에서 검찰 지휘부가 정권과 대결구도를 보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럽게 해체하는 모양새가 된 것에, 위험하고 열악한 함정생활을 견디며 평생을 해경에 바친 일선 중장년층 직원들의 자부심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해체되어 일반직 공무원이 되기 전에)경찰로서 퇴직하겠다"며 해경 내부에서 명예퇴직 신청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며, 이후 김석균 청장은 퇴임할 때까지 세월호 사고 구조 현장을 방문해도 의전은커녕 직원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퇴임 후에도 해경 내부에서는 비아냥을 담아 '겸허하신 분'이라고 불린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발조된 특위에서 사고 후 여러 조치상황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였으나 당시 여러 관련자들과 마찬가지로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 구속 후 다시 시작된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사건당시 팽목항에 방문하여 현장지휘 후 헬기를 이용하여 원청으로 복귀하였는데 이 헬기가 익수자 긴급이송을 위해 응급호출됐었던 응급구조헬기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발생했다.

세월호 희생자인 A 학생은 참사 당일 오후 5시 24분에 발견됐다. A 학생은 오후 5시 30분께 해경 3009함으로 올려졌으며, 35분 원격 의료시스템이 가동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해경 응급구조사는 A 학생을 '환자'로 호칭하며 응급처치를 했다. 바이탈사인 모니터에는 당시 A 학생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69%였으며 불규칙하지만 맥박도 잡혔다. A 학생의 모니터를 함께 지켜보던 응급센터 의사는 CPR(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면서 병원으로 응급 이송하라고 지시한다. 위원회 박병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국장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산소포화도가 69%라는 것은 긴급한 치료가 필요하며 100% 사망이라고 판정할 수 없는 상태"라며 "A학생은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A 학생이 3009함에 올라와 있던 오후 5시 40분께 해경의 B515헬기가 3009함에 내렸다. 그러나 이 헬기는 오후 5시 44분께 A 학생이 아닌 김수현 당시 서해청장을 태우고 돌아간다. 또 오후 6시 35분에도 B517헬기가 착함했지만, 오후 7시께 김석균 해경청장을 태우고 돌아간 박 국장은 "당시 영상을 보면 오후 6시 35분께 '익수자 P정으로 갑니다'는 방송이 나온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 P정은 시신을 옮겨오던 배"라고 설명했다. 결국 A 학생은 오후 6시40분 3009함에서 P22정으로 옮겨졌고 오후 7시 P112정으로, 오후 7시 30분 P39정으로 옮겨진 뒤 오후 8시 50분 서망항에 도달했고, 오후 10시 5분에야 병원에 도착했다. 헬기를 타고 병원에 갔다면 20여 분이면 걸렸을 것을 4시간 41분 만에 병원에 도착한 것이다. 박 국장은 "A 학생의 경우 원격 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로부터 이송조치를 지시받은 상태인 만큼 헬기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A 학생의 어머니는 세월호 6주기를 앞둔 현재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3.1.1. 재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재판 문서
번 문단을
김석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20년 2월 18일, 대검찰청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단장 임관혁)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검찰발표자료, 前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등 불구속 기소


[1] 축좌공파 26세손[2] 민선 5-7기 충청북도 보은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