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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이명 | 김금련(金錦蓮) |
출생 | 1911년 8월 16일 |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삼랑리 (現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2] | |
사망 | 2000년 11월 4일 |
전라북도 군산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400호 |
본관 | 김해 김씨 (金海 金氏) |
서훈 | 건국포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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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5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11년 8월 16일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現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투옥될 당시 전라북도 전주군 전주면 본정4정목(현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4가)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뒤에는 전라남도 목포부(현 목포시) 양동에 거주하기도 했다.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8년 11월 초, 장재성의 누이인 장매성이 독서회 중앙본부의 산하조직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자, 그녀는 9명의 학우들과 함께 회원으로 가입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유 쟁취,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이들과 함께 학교 내외에서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매월 한 차례의 연구회를 개최하고 소녀회원들과 함께 학생소비조합(學生消費組合)을 조직하여 30원을 출자하는 등 항일투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2학년 재학 중이던 1929년 10월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는데,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들과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의 충돌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이듬해인 1930년 1월 15일 소녀회원인 같은 학교 학우 이광춘이 일제의 식민교육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백지동맹(白紙同盟)[3]을 단행해야 한다고 연설한 것을 계기로 그녀 또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직후 1930년 2월 학교에서 퇴학당했으며,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이후 2000년 11월 4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별세하였다. 그녀의 유해는 2011년 6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