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김해 김씨 |
출생 | 1927년 11월 30일 |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삼랑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1] | |
사망 | 2002년 12월 7일 |
경상남도 마산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401호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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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김학득은 1927년 11월 30일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마산부 고정(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대창동)으로 이주했다.그는 마산공립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한글 연구로 인해 무기정학을 받았다. 또 1944년 4월 당시 마산공립중학교 2학년 재학에 중이던 박기병(朴基秉)·박후식(朴厚植)·감영재(甘泳才)·조이섭(曺二燮)·강정중(姜正中) 등의 후배들과 함께 비밀결사 마중독립단(馬中獨立團)을 조직하였다. 그는 이 단체를 통해 해외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하고 조선역사와 한글을 배우며, 학우 중에서 동지를 포섭하여 해외로 탈출한 뒤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했다.
그러던 그해 7월 학우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독립단 조직은 와해되었고, 그는 얼마 뒤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그리고 1년 1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아 곧 출옥하였다.
1980년 12월 민권당 창당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책을 선임할 때 마산-진해 지구 조직책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2002년 12월 7일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별세하였다.
200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11년 6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