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09:29:51

장매성




#
학창시절 장재성과 장매성 남매
성명 장매성(張梅性)
생몰 1911년 6월 22일 ~ 1993년 12월 14일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금동
사망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장매성은 1911년 6월 22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금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張載性)의 동생으로, 광주여고보에 재학중이던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경례, 박옥련(朴玉連), 남협협(南俠俠), 고순례(高順禮), 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했다. 그녀는 박계남(朴繼男), 박채희(朴采熙), 박현숙(朴賢淑), 김금연(金錦 ) 및 김귀선(金貴善) 등을 동지로 포섭하고 자신의 집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월례회를 개최했으며, 매월 1회 월례연구회를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소녀회는 1929년 6월에 걸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연락을 갖고 활동했다. 독서회중앙본부가 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활동 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는데 이때 광주여고보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했다.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장매성은 소녀회를 주도해 가두 시위를 벌이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고 식수를 공급했으며, 경찰의 진압에 맞서기 위한 돌멩이를 운반하는 등 남학생들의 시위를 도왔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그녀는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았고 학교로부터 퇴학당했다. 8.15 해방 후 서울 중구 필동2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93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장매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