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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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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에른스트 곰브리치
Sir Ernst Gombrich
OM CBE
파일:곰브리치.jpg
본명 에른스트 한스 요제프 곰브리치
Ernst Hans Josef Gombrich[1]
출생 1909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제국
사망 2001년 11월 3일 (향년 92세)
영국 런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빈 대학교
직업 미술사학자

1. 개요2. 특징3. 비판 : 미시사적 미술사학의 문제점
3.1. 곰브리치를 위한 변호
4. 저서5. 기타

[clearfix]

1. 개요

"나는 방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상식을 원할 뿐입니다. 내 유일한 방법이지요."[2]
에른스트 곰브리치영국미술사학자다. 1909년에 오스트리아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빈 대학교에서 예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였고 런던 대학교 미술사학 교수를 역임하였다.[3]

미술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에서 이제 막 전공 공부를 시작하는 미대 학부생, 그리고 대학원생까지 읽는 두꺼운 책을 만들어낸 장본인. 전 세계적으로 700만 부 이상 팔리며 2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 (1950년 출간)》의 저자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학자 중 한 사람이며 1966년 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은 데 이어, 1972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다. 그 뒤 1988년에는 1등급 훈장에 준하는 상위훈장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 OM)을 받았다.

2. 특징

곰브리치의 미술사 연구는 소위 '시대정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거대담론이나 형식들 속에 내재된 '통일성'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르네상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곰브리치는 그런 류의 서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4] 미술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던 엘빈 파노프스키와는 대조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고, 시대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양식이 있다고 믿었던 하인리히 뵐플린과 같은 이들과도 구별된다. 따라서 곰브리치는 파노프스키나 뵐플린과 같은 특정한 방법론의 선구자들과는 다른 방법론을 지향하게 된다.[5] 따라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개별 예술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혹은 재현)하고자 했느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론적인 배경을 매우 강조하는 학자들의 책에 비해서는 비교적 읽기 쉬운 편에 속한다.

사실 이런 특징들은 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에 뿌리를 둔 역사서술에 대한 반발이었다. 곰브리치는 독일계 학자였지만, 독일 학계에 널리 퍼져있는 이 같은 풍토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개별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예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전자가 거시사적인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본 것이라면, 곰브리치의 연구는 미시사에 가까운 것이다.

3. 비판 : 미시사적 미술사학의 문제점

정확히는 곰브리치보다는, 곰브리치적인 미시사적 미술사학의 태도를 가졌을 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다. 곰브리치에게 있어 미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미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같은 시각은 현대에 접어들어서 크게 비판 받는 부분인데, 곰브리치는 사회, 철학, 경제와 함께 미술이 변화한다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했고 곰브리치보다 한두세대 뒤에 태어난 학자들은 오히려 이 같은 부분들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세대 학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술이 다른 사회구성요소들과 동떨어져서 존재한다는 시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예술/비예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현대미술의 사례들을 놓고 보았을 때, 곰브리치의 주장은 지나치게 현실에서 동떨어진 면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또한 개별 화가들의 행적들을 통해서 점차 발전해나가는 역사를 보여주려는 곰브리치의 시도는 시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문제되지는 않지만, 미술사는 이런 서술방식에 지나치게 몰두해버리면 자칫 역사서술인지 경전인지 헷갈릴 지경으로 흘러 갈 수 있다. 즉, '영웅주의적' 서술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는 곰브리치랑 비슷한 방식으로 교양서들을 쓰는 문필가들이 주로 범하는 오류들이다.[6] 비판자들의 입장에서 이런 서술 방식들은 '명작'과 '거장', '남성'[7] 이라는 이른바 기득권자들의 미술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3.1. 곰브리치를 위한 변호

하지만 위와 같은 비판은 곰브리치 입장에선 심히 억울할수도 있는 부분이다. 곰브리치 본인 역시도 미술과 사회/경제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연구했던 바도 있고, 미술이 정말 모든 것과 별개인 상태에 놓여져 있는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저서인 《예술과 환영》을 읽다보면 그에 대한 편견이 다소 해소되는데, 예술가와 그의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재현하는 방식에는 예술가의 심리에 작용하는 심적인 틀(mental set)이 작용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가 책에 언급한 사례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이집트의 벽화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몸은 전면을 보는데 얼굴은 측면만 보는 이상한 자세로 표현되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면 이집트인들 역시 정면에서 본 인물상을 그릴 수 있었고, 실제로 정면에서 본 인물을 묘사한 벽화도 존재한다. 다만 그렇게 정면의 모습이 묘사된 인물들은 포로나 노예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정면 인물상을 그리지 않은 것에는 그 그림을 그리는 인물에게 제약을 가하는 이유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판 문단에서 나온 것처럼 곰브리치가 미술을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인식했다면, 이런 주장은 나올 수 없다.

4. 저서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곰브리치 세계사(a little history of the World)
예술과 환영(art and mind)

5. 기타

A Little History of the World라는 세계사 책도 저술하였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그의 외아들인 리처드 곰브리치(1937~)는 팔리어 경전 비평 등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사상과 불교의 형성과정을 연구한 종교학자로, 초기불교 연구의 권위자였고 옥스퍼드 대학교 보든 좌 산스크리트 석좌교수(The position of Boden Professor of Sanskrit)와 영국불교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5월, 36세에 영국 BBC 월드뉴스팀에서 근무할 당시 독일 국영방송 라디오에서 중요 발표 전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히틀러의 사망 발표일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곰브리치의 어머니가 브루크너에게 음악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고, 곰브리치는 어릴적부터 어머니에게 음악 소양을 배웠다고 한다.


[1]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1947년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언스트'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항목은 독일식 표기법인 '에른스트' 를 따랐다. '곰브리치'라는 이름의 경우 독일어로는 '곰브리히'[ˈɡɔmbʁɪç\](#), 영어로는 '곰브리치~감브리치'[ˈɡɒmbrɪtʃ~ˈɡɑːmbrɪtʃ\](#) 또는 '감브릭'[ˈɡɑmbɹɪk\](#)이라고 읽는다.[2] E. 곰브리치. D. 에리봉, 정진국 옮김,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곰브리치와의 대화》(민음사, 1997), p. 158.[3] 언스트 곰브리치 (네이버 지식백과)[4] 이런 그의 태도 때문에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클 박산달 (Michael Baxandall)은 박사 논문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물론 마이클 박산달이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곰브리치가 반대해서만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항목 참고.[5] 곰브리치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빠져나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만든 나치가 생각나서라고.[6] 사실 곰브리치의 저서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7] 예를 들자면, 현대 이전에 활동했던 여성 화가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옛날 여성 화가들은 수도 매우 적었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남성 화가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이며 이런 서술에서는 자연스럽게 배제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