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ёгкий танк Т-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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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26을 운용한 국가를 정리한 문서.T-26은 도합 12,001대라는 경이적인 수량이 생산되어, 세계 각국에서 노획, 구매, 공여 등으로 무장했다.
2. 유럽
2.1. 동유럽
2.1.1. 소련
파디코보 국립 군사사 박물관 소장 소련 육군 소속 T-26B |
비단 육군만이 아니라, 소련 해군에서도 레닌그라드 제174번 공장에서 생산된 23대의 T-26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된 53대의 T-26을 사용했다.
2.1.2. 러시아
2019 승리의 날 열병식 참가 러시아 육군 소속 T-26RT[1] |
2.2. 서유럽
2.2.1. 스페인
스페인 마드리드 엘 골로소 군사 박물관 소장 스페인 육군 소속 T-26B "531번차"[2] |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국민군은 2차대전 초반까지 1호 전차, L3/35와 같이 운용했으며 T-26을 경전차가 아니라 중형전차로 분류했는데, 공화군이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프랑스군에게 인도한 T-26들을 프랑스군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스페인국은 T-26을 계속 현역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1953년에 M47 패튼을 도입하자 T-26을 치장 장비로 변환하였으며, 1965년에 완전 퇴역시켰다.
2.2.2. 프랑스
MM 공원 소장 소련 육군 소속 T-26S |
프랑스군은 오를레앙 근처의 차량 보관소에 T-26B를 잠시 보관하여 사용하다가 다시 스페인국에 반환하였다.
이 외에도, 라도가 호수에 침수되어 있던 단차를 매입해 현재 MM 공원에 소장 중에 있다.
2.3. 중부유럽
2.3.1. 나치 독일
호주 기갑 & 포병 박물관 소장 독일 무장친위대 산하 제3 SS기갑사단 "토텐코프" 소속 Pz.Kpfw. T-26B 738(r) |
독일군 제식명 | 연식 및 용도 |
Pz.Kpfw. T-26A 737(r) | 1931년형, 치안유지용, 전투용 |
Pz.Kpfw. T-26A-5 737(r) | 1932년형, 치안유지용, 전투용 |
Pz.Kpfw. T-26B 738(r) | 1933년형 ~ 1937년형, 치안유지용, 전투용, 훈련용 |
Pz.Kpfw. T-26C 740(r) | 1937년형 ~ 1941년형, 치안유지용, 전투용, 훈련용 |
Flammwerfer-Pz.Kpfw. T-26B 739(r) | OT-130, 화염방사전차 |
Flammwerfer-Pz.Kpfw. T-26C 739(r) | OT-133, 화염방사전차 |
Brücken-Pz.Kpfw. T-26 741(r) | 가교전차 |
T-26T(r) | T-26T, 견인 트랙터 |
나치 독일과 핀란드는 노획한 T-26을 크게 3가지로 나누었으며,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노획한 T-26들 중 일부를 루마니아 왕국에게 공여하거나 독일과 프랑스로 가져와 후방부대의 보병지원용, 전차 조종 훈련용으로 사용했다.
이 중에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로, 프랑스 전역에서 미군과 영국군에게 노획된 개체도 존재하며 또한, 몇몇의 독일군 T-26은 연합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하였는데, 미군의 M4 셔먼에 격파되기도 했다.
독일군은 T-26 차체에 PaK 97/38(f) 대전차포를 장착시키거나 관통력이 약한 르노 R35의 차체에 T-26C의 포탑을 장착, 오스트리아제 Sd.Kfz. 254에 T-26A의 기관총 포탑을 올리는 등 다른 노획무기와 합치는 개조를 하기도 했다.
독일 국방군이 노획전차였던 T-26을 주력 경전차로 운용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데, 첫번째로,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기에 다른 소련제 노획차량과 달리 연료 공급이 매우 원활했으며,[4] 간편한 정비성 또한 갖추고 있었다. 이 두 요인 덕분에 가솔린 엔진 수리에 도가 튼 독일 국방군 정비창 인원들이 손쉽게 수리할 수 있었다.[5]
두번째로는 45mm 주포의 파괴력과 호환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선 45mm 포는 37mm PaK 36 대전차포와 대전차능력은 거의 동일하지만, 구경의 증가로 오는 파괴력은 37mm 포보다도 위력적이었으며, 이는 2호 전차의 20mm 기관포나, 38(t) 전차의 37mm 대전차포보다도 뛰어났다. 또한, 45mm 20-K 전차포는 전간기 다수의 유럽 국가에 판매되며 수많은 탄약이 존재했는데, 이 탄약들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나치 독일 괴뢰국이나 동맹국들에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수량이 있어서 노획 전차였음에도 탄약 부족 없이 전쟁 말기까지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세번째로는 역시 어마어마한 물량. 독소전 초기 소련군의 주력 전차였던데다, 진격하는 중에 고장이 나 유기된 차량들과, 적은 피탄만 입고 격파된 차량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전차가 부족해서 전전긍긍하던 독일군에겐 3호 전차와 동급의 화력을 지닌 전차가 하늘에서 그냥 막 뿌려진 셈과 다름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소련제 특성 중 하나인, 쉬운 운용법이었다. 인원은 고작 3명만 필요할 뿐이고, 크게 복잡한 부품도 없어서 전차병 훈련에 정말이지 안성맞춤인데다, 신병들도 쉽게 운용할 수 있었기에 독일군은 T-26을 나름대로 자기들 나름의 애착을 가지며 사용했다.[6]
독일 국방군이 운용한 T-26은 이후에도 전선에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나타났으며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것은 1944년 서부전선에 다른 노획전차들과 함께 나치 독일 최후의 발악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결국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고 나치 독일이 무너지며 원 소속국인 소련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격파되었다.
2.3.2. 헝가리 왕국
헝가리 왕립 육군 노획 T-26S "H-035번차" |
2.4. 남유럽
2.4.1.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의용군 노획 스페인 공화군 소속 T-26B |
T-26은 이 밖에도 이탈리아의 기갑사에 큰 영향을 남겼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 이탈리아 의용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차량은 고작해야 L3 탱켓과 같은 전차포가 아닌,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장착한 차량들이 다수였으며, 45mm 20-K 전차포를 주무장으로 사용하던 T-26B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랬기에 이탈리아 왕국 측에서는 기갑 전력의 증강을 매우 절실하게 느꼈으며, 최소한 T-26B나 T-26S와는 동급의 차량을 만들기 위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 시기, 이탈리아 군부에서는 공화군으로부터 노획한 T-26을 면밀히 분석하고, 차후 제작되는 자국 내 전차에 T-26에 적용된 기술적 사항을 카피하여 적용시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M11/39", "M13/40"이다.[7]
2.4.2. 루마니아 왕국
루마니아 왕립 기갑사단 노획 T-26S |
루마니아 왕국에서는 노획한 T-26들의 무장을 스코다제 37mm 전차포로 스왑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미 45mm 탄약이 정말 많은데다 이를 개조할 기술력도 없었기에 그대로 계획이 사장되었다.
2.5. 북유럽
2.5.1. 핀란드
파롤라 전차 박물관 소장 핀란드 방위군 소속 T-26B "Ps 163-33"[8] |
핀란드 방위군 제식명 | 연식 및 용도 |
T-26A | 1931년형, 전투용 |
T-26B | 1933년형 ~ 1935년형, 전투용 |
T-26C | 1938년형 ~ 1939년형, 전투용 |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을 치르면서 핀란드는 기갑차량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는데, 그 때문에 전시 중 다수의 소련군 차량을 노획하여 사용했으며 그 중에는 T-26도 있었다.
핀란드군 소속 T-26의 출처는 전시 중 화염병을 던져 불을 붙여 전차병들을 끌어낸 뒤 노획하거나, 독일군이 노획한 차량을 구매했던가, T-26의 화염방사전차 버전들을 노획 후 45 Psv.K/32 전차포[10]로 스왑시키거나, 혹은 돈좌되어 버려진 차량들을 재생시키는 등 아주 다양했다.
당장 전차가 없어 고전했던 핀란드군은 겨울전쟁과 계속전쟁 당시 T-26을 노획하여 사용하면서 역으로 원 주인인 소련군들을 대상으로 반격하기도 했으며, 성능적인 면에서는 높은 파괴력의 주포와, 한랭의 상황에서도 무리없이 작동하는 점에 대해 호평하였다.
이렇게 노획된 T-26은 이전까지 핀란드군이 운용하던 어떤 전차들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핀란드군에서는 같은 베이스를 사용하는 빅커스 Mk. E를 개조해 BT-42와 더불어 자국 최초의 전차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T-26E 문서 참조.
본가인 소련에서는 이미 도태장비였지만, 핀란드의 특수한 상황 덕분에 1930년대~40년대 사이 핀란드군의 주력전차로 이용되어 왔다. 이후 독일과 핀란드간의 동맹관계가 파탄나며 라플란드 전쟁이 발발하자 라플란드의 독일군들을 몰아내기 위해 투입시키기도 했는데, 이미 더 스펙이 출중한 차량들이 핀란드군에 있었음에도 독일군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전후, 핀란드 군부에서는 T-26을 훈련용으로 무려 1972년까지 운용했는데, 이 때문에 핀란드는 역대 운용국들 중 최장기로 운용한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핀란드 기갑사에서 T-26은 중요한 차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인정받아 다수의 차량들이 기갑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현재도 기동 가능한 차량들이 행사용으로 동원되고 있다.
특이사항으로, T-26의 접이식 라이트를 핀란드에서는 등화관제 능력이 뛰어나다 판단하여 타 노획전차들에 장착하기도 했다.
3. 아시아
3.1. 동아시아
3.1.1. 중화민국
중화민국 육군 소속 T-26RT[11] |
이 차량의 출처는 1937년 9월 14일 "양지에" 국민당군 부사령관이 중-소 불가침조약 채결 당시 모스크바에 가서 소련 포병 장교였던 "바테브"와 공군 출신인 "라닌"과 협의를 거쳐 전투용 82대, 지휘전차 및 탄약수송형, 구난전차를 포함하여 추가로 5대를 구입하기로 한 것이었다.[12]
국민당군에서는 T-26을 "아식 구돈반전차(俄式 九吨半战车)"라 불렀는데, 이름의 "아식"은 "아라사"에서 유래하여 즉슨 "러시아제"라는 말이었으며, "구돈반전차"는 말 그대로 T-26의 중량인 9.8t에서 따와 붙인 이름이었다.
또한 국민당이 사용한 T-26RT는 무전기가 증설되어있어서 전차 간 통신이 가능했던데다 추가로 서치라이트 2개가 달려있는 덕에 야간 등화관제 및 정찰에 더 유리하였다.
국민당군은 T-26의 화력에 대하여는 극찬하였으나, 공축기관총의 조준경 시야 방해 문제를 지적하였다.
아식 구돈반전차는 매우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통장치가 원활하며, 전투에 매우 유리하다. 그러나 공축기관총이 조준경의 시야를 방해하므로, 전투 시 기관총을 탈착하고 사용하고는 했기에, 기관총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국민당 제5기갑군단장 "후시안췬"이 평가한 T-26.
- 국민당 제5기갑군단장 "후시안췬"이 평가한 T-26.
이밖에도, 중화민국 국민정부에서는 홍보 및 인식개선을 위해 T-26RT의 모형 소수를 제작하기도 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전한 장제스 산하의 국민당은 국부천대를 실시하였으며, 크기가 크고 무게가 너무 나가 옮기기 힘들었던 셔먼이나 스튜어트와 달리 크기도 작고 고작 10톤 남짓만 나갔기에 많은 수량이 배로 하이난 섬까지 옮겨져 1950년대까지 대만을 지키는데 사용되었다.
국민혁명군 소속 쑨리런 지휘 차량 T-26RT "531번차" |
3.1.2. 중국
개국대전 참가 중국 인민해방육군 소속 노획 T-26RT[13] |
자세한 전과는 알 수 없지만, 중화민국 국장에다 홍군 식별표지를 덧대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부천대 이후 1949년 열린 개국대전 당시 2량이 참가하는 등, 최소 2량 이상을 홍군 측에서 노획한 것으로 보인다.
3.1.3. 일본 제국
한신 고시엔 구장 전시 일본 제국 육군 노획 국민혁명군 소속 T-26RT[14] |
이 밖에도 노획한 T-26RT를 운용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탄약 부족 등의 원인으로 장기간 운용이 되지 않았으며, 몇몇 개체의 경우에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군이 땅에다 묻어버리기도 했다.
이후 이렇게 버려진 T-26RT들은 다시 국민혁명군이 수거해 수리하여 사용했다.
3.2. 서아시아
3.2.1. 튀르키예
이스탄불 군사 박물관 소장 튀르키예 육군 소속 T-26B |
실전에서 사용하지는 않았고, 이후 1942년에 전량 치장물자로 변환되었다.
4. 아메리카
4.1. 북아메리카
4.1.1. 미국
미 육군 소속 노획 Pz.Kpfw. T-26B 738(r)[15] |
[1] 평시에는 피스마에 위치한 우랄 군사 영광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공교롭게도 중화민국에도 동일사양에다, 동일한 차량번호를 지닌 네임드 차량이 있다.[3] 다만 T-26A라 불리는 쌍포탑형은 독일군도 단포탑형과 다르게 이건 영 아니다 싶었는지 그냥 장갑차 정도로 분류했다.[4] 유기된 노획 소련제 전차들의 대표적인 사유가 바로 이 경유의 부족이었다. 가뜩이나 원유가 부족한데다, 가솔린과 경유 두가지를 동시에 배분할 여유가 도저히 되지 않았기에 얼마 되지 않는 기름으로 굴리다가 버려지기 일쑤였던 것.[5]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독일 전차들의 변속기 신뢰성은 영 시원찮아서 독소전 초기에 등장했던 정비를 받지 않은 T-26과 버금갈 정도로 야전에서의 고장이 심했다. 막상 고장으로 유기된 T-26들은 독일 국방군이 가져가 재생해서 사용할 정도의 신뢰성을 보여주었다.[6] 흔히 "T-26의 낮은 성능에 독일군도 학을 떼었다"라는 등의 말도 존재하는데, 어불성설이다. 만약 진짜로 그렇게까지 성능이 안좋았다면 당장 공식적으로 T-26을 제일 많이, 오랫동안 운용한 중화민국과 핀란드에서도 안좋은 말이 나왔을 것이고, 애초에 독일군도 이렇게까지 다수의 개체를 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T-26의 낮은 신뢰성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대숙청 그 자체에 있었다.[7] 다만 M11/39의 경우, T-26의 영향도 어느정도 있지만, 원본인 빅커스 Mk. E 전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8] 이 단차는 현재도 구동계 및 무장이 남아있어 기동과 사격이 모두 가능하다.[9] T-26의 원본인 빅커스 Mk. E에서 유래한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빅커스(Vickers) -> 비꾸(Viku).[10] 45mm 20-K 1932년형 전차포의 핀란드 방위군 제식명.[11] 1951년에 촬영된 사진이다.[12] 국민당군이 공여받은 T-26B는 T-26RT로, 전량 지휘전차 사양이었다.[13] 좌측 3번째 차량으로, T-26 기준 좌측 2량은 하고, 우측 2대는 치하이다.[14] 1939년 2월에 촬영된 사진으로, 푯말에 "T이륙경전차 (T二六輕戰車)"라고 구자체로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좌측에 전시되어 있는 전차들은 1호 전차고, 맨 우측에 전시되어 있는 단포신의 전차는 빅커스 Mk. E B형이다.[15] 훈련용 차량으로, 1944년 11월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노획한 차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