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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一式山砲 (よんいちしきさんぽう) / 連隊砲 (れんたいほう 聯隊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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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육군이 사용했던 산포. 1908년, 독일 제국의 크루프제 M08 산악포를 라이센스 생산한 제품이다. 1908년부터 1945년 종전 때까지 사용되었다.2.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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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확도
미 육군이 테스트한 결과, 3200야드[1]거리에서는 가로 18m, 세로 27m의 직사각형 범위 안에 75%의 포탄이 명중했다.4. 운용
연대급 포로 연대당 4문씩 배치되었다. 포 1문 당 13명이 인원이 조작했는데, 4명의 포수[2]와 1명의 장전수, 보조 2명,[3] 포탄 운반병 5명, 지휘관 1명으로 구성되었다. 포 운반에는 6마리의 말과 1마리의 포탄 운반용 말이 동원되었다.4.1. 중국군의 운용
중화민국에서는 돤치루이와 장쭤린 등의 친일 북양군벌들이 이 산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장제스의 국민혁명군 역시 전간기에 많은 수를 수입해 포병전력으로 활용했다. 심지어 자체 생산도 활발했다. 우한의 한양 병공창에서는 한양 10식 75산포, 산시성의 타이위안 병공창에서는 산시 13식 산포라는 이름으로 생산했다.중국 측에서는 이 산포를 아주 고평가하며 적극 사용했다. 우선 열악했던 중국의 상황에서도 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인력이나 축력으로도 쉽게 이동이 가능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때문에 중국의 41식 산포 포병대는 생존성이 높으면서도 다양한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독일 고문단이 지원해 준 15 cm sFH 18가 위력과 사거리는 절륜했어도 부품 수급이 사실상 불가한데다, 너무 무거워 1938년의 후퇴 과정에서 대부분 유기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중공군에 의해 대거 노획되었고, 6.25 전쟁에도 투입되었다.
5. 기타
이 포의 개량형이 94식 산포이다. 같은 이름의 기병포도 존재한다.(41식 기병포)[4]6. 미디어
6.1.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의 41식 산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