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9년 5월 23일에 박연차 게이트와 형 노건평의 친인척 비리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몇몇 시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표적 수사라는 정치 보복을 가해 노무현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여론이 터져나오면서 각 대학교에서 2009년 5월 23일을 계기로 시국 선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2009년 6월 10일에 6월 항쟁 기념일을 맞아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에서 6.10 범국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시위가 벌어졌다.당시 시위에 참가한 시민은 10만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장
2. 과정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직후와는 달리 비리에 연루되어 포토라인에 선 노무현은 언론의 십중 포화와 이른바 논두렁 시계 등으로 계속 비난을 당하고 있었다.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동안의 논란거리와 노무현의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와 홍만표가 검찰청에서 노무현 소환 당시 웃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자 상황이 180도 바뀌어 시민사회에서 검찰과 이명박 정부 및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져갔고 이를 기폭제로 전국의 대학교에서까지 시국선언이 일어나게 되었다. #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은 6.10 기일을 잡아 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열었고[1] 야당들의 대표였던 정세균, 노회찬, 강기갑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정치 보복을 가해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 #
3. 영향
당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언론통제 인해 아는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면서 친노 진영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계기로 부활했고 2017년에는 마침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더불어 당시 노무현 표적 수사로 논란이 되면서 비난을 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망한 지 8년 10개월 만에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