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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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구축함 계보 하츠하루급 구축함(初春型駆逐艦).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으로 일본 해군의 구축함 총합 톤수가 105,500 톤으로 제한되게 되자 기존의 특형 구축함을 경량화하면서도 화력을 유지한 신형 구축함을 계획, 건조한 함선을 하츠하루로 명명하게 된다.
2. 제원
하츠하루급 구축함 初春型駆逐艦 | ||
함 종 | 구축함 | |
이전함급 | 후부키급 구축함 | |
다음함급 | 시라츠유급 구축함 | |
배 치 | 6 척 (손실 5척 퇴역 1척) | |
건조기간 | 1931 년 - 1935 년 | |
운용기간 | 1933 년 - 1945 년 | |
배수량 | ||
기 준 | 개장 전 | 1, 400 t |
개장 후[1] | 1, 780 t | |
만 재 | 개장 전 | 1, 683 t |
개장 후 | 2, 255 t | |
크 기 | ||
전 장 | 갑 판 LOA | 109.5 m |
흘수선 LWL | 105.5 m | |
수선간장 LBP | 103.5 m | |
전 폭 | 갑 판 | 10 m |
흘수선 | 10 m | |
벌지 | (없 음) → 1 m → (제 거) | |
흘 수 | 개장 전 | 3.245 m |
개장 후 | 3.5 m | |
건 현[2] | 개장 전 | 2.5 m |
개장 후 | 3.25 m | |
동 력 | ||
방 식 | 함본식 터빈 2기 | |
기 관 | 로호함본식 보일러 3기 | |
추 진 | 프로펠러 (2 기) | |
연 료 | 개장 전 | 중유 458 t |
개장 후 | 482.3 t | |
기관부 출력 | 42, 000 shp | |
최대속력 | 개장 전 | 36.5 노트 |
개장 후 | 33.3 노트 | |
항속거리 | 4 000 해리 (14 노트 순항 시) | |
레이더 및 광학장비 | ||
통 합 | (없 음) | |
대함레이더 | 1944년 이전 | (없 음) |
1944년 이후 | 2호 2형 전파탐신의 | |
대공레이더 | 1944년 이전 | (없 음) |
1944년 이후 | 1호 3형 전파탐신의 | |
탐조등 | 96식 90 cm 탐조등 (1 기) ? | |
무 장 | ||
주함포 | 개장 전 | 3년식 127mm 50구경장 함포 B형 (2연장 2기 + 단장 1기 총 5문) |
개장 후 | (유 지) | |
최종 사양[A] | 단장 1기 제거 | |
대공포 | 개장 전 | 40 mm 단장기총 (2 정) |
개장 후 | 11식 경기관총 2정 추가 | |
최종 사양[A] | 40 mm 단장기총 및 단장 주포탑 제거 → 96식 25 mm 고각기총 (3연장, 연장, 단장)으로 대체 | |
어 뢰 | 개장 전 | 610 mm 90식 산소어뢰발사관 (3연장 3 기, 90식 어뢰[5] 12 발) |
개장 후 | 610 mm 2식 발사관 (3연장 2기, 90식 어뢰 12 발[6]) | |
폭 뢰 | 94식 폭뢰 투사기 1기, 3형 수압식[7] 폭뢰 투사기 2기, 수동식 1형 4기 (91식 1형 폭뢰 36 발 ) | |
기타사항 | ||
승조원 | 205 ~ 215 명 |
3. 특징
하츠하루급은 이전의 후부키급에 비해 경량의 함체를 가지면서도 동급의 전투력을 내도록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는 런던 군축 조약으로 인한 것으로, 워싱턴 군축 조약 때와는 달리 런던 군축 조약은 구축함에도 총합 배수량 제한을 걸었고 1,500톤 이상 함선은 전체 구축함 수의 16%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후부키급은 1,700톤을 넘었으므로 조약 하에서는 양산이 불가능했기에 조약에 제한받지 않는 구축함을 생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하츠하루급은 이전보다 포각이 높아지고 각 포신의 부앙각 조절이 별도로 가능하게 개선된 B형 주포탑을 설치하고 대공 전투를 위한 사격 통제 시스템을 개량했다. 또한 3연장 어뢰발사관[8]과 함께 개선된 차발 장전 장치[9] 를 탑재하고 조작부를 밀폐화하며[10] 예비 어뢰를 적재하여 뇌격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개장전의 하츠하루급. 함교 앞의 단장 포탑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
상기한 무장 강화에 탑 헤비 현상의 심화가 예상되었고 이에설계진들의 중량 감소 노력 또한 같이 병행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선체의 길이 최소화, 내부 골조의 경량화, 간격을 좁혀 대신 선체 외부 강판의 두께 감소, 전기용접의 적극적 도입 등이 있었다. 기관부도 후부키급에 버금가는 출력을 내면서도 용적과 중량을 절감시키는 쾌거를 이루었고, 최종적으로 하츠하루급은 후부키급에 비해 전장이 9 m 가량 짧아졌으며 만재 배수량이 400 톤 가량 감소했다.
이러한 무리한 축소화는 필연적으로 함체 전반에 무게 중심의 불균형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시험 운항에서 조향 도중 선체가 무려 38도까지 기울어지며 드러났다. 미봉책으로서 함체에 약 30 cm 폭의 벌지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이는 이미 건조가 끝난 하츠하루와 네노히는 물론 건조 중이던 와카바와 하츠시모에까지 적용되었다.
하지만 1933년, 토모즈루 사건이 발생하여 대본영은 기존의 군함들에 대해 안정성 조사를 실시하였다. 결과 하츠하루급은 새로운 안전 기준에 크게 미달됨이 증명됐고, 이에 대규모 개장을 통해 최대한 함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츠하루급 개장표# | ||
갑판 후방의 상부 구조물과 거측기가 제거되었다. | ||
함교 전방의 단장 주포탑이 후방으로 옮겨졌고 기존 탄약고 위치에는 연료 탱크가 설치되었다. | ||
3연장 어뢰 발사관 1기와 예비 어뢰 보관함이 제거되었다. | ||
함교가 1층 낮춰졌고 대 파편 장갑이 탈거되었다. | ||
연돌이 1~1.5 m 가량 낮아졌다. | ||
전방 어뢰 발사관의 마운트가 30 cm 낮춰졌고 대공기관총이 위치한 구조물이 1.5 m, 탐조등이 2 m 낮아졌다. | ||
선체 외곽 강판이 강화되었고 약 70 톤 용적의 밸러스트 탱크가 선체 하부에 추가되었다. | ||
연료 탱크가 비워진 만큼 해수를 채워 배수량 손실을 보상하는 장치가 설치되었다. 이는 물과 기름 간의 비중 차를 이용한다. |
이 개장은 이후 건조되는 하츠하루급 전체에 기본적으로 적용되게 되며, 이미 건조가 완료된 상태였던 하츠하루, 네노히 2척은 군적에서 일시 제거, 구레 해군 공창에서 다시 들어가 개장을 받게 된다. 건조 중이던, 또는 건조를 막 개시하던 4척은 이 개량 사항이 적용된 상태로 진수되었다.
자매함 중 아리아케와 유구레는 하츠하루의 시험 운항 중 발견된 안정성 문제를 임시로 해결하기 위해 바깥으로 18.5도가량 각진 균형키를 달았다. 이 키는 속도를 1 노트 가량 늦추는 문제점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상기한 개장 이후 제거된다.
1935년, 태풍에 의해 피해를 입은 후부키급의 사례를 근거로 모든 하츠하루급은 3개월간 선체 강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선체 중량을 54 톤, 밸러스트 중량을 64~84 톤으로 증가시켰다.
4. 함선 목록
하츠하루급 동형함표 | ||
하츠하루(初春, 초봄/이른 봄) | ||
1933년 9월 30일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건조. | ||
1944년 11월 13일 마닐라 만에서 미 항모 기동부대의 공습으로 격침 | 1945년 1월 10일 제적. | |
네노히(子日, 12지 중 첫번째인 쥐의 날) | ||
1933년 9월 30일 우라가 도크 컴퍼니에서 건조. | ||
1942년 7월 5일 알류산 열도 아가투 섬 인근에서 미 잠수함 SS-20 트라이톤의 뇌격으로 격침. | 1945년 7월 30일 제적. | |
와카바(若葉, 새잎/어린 잎) | ||
1934년 10월 31일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건조. | ||
1944년 10월 24일 파나이 섬 서쪽에서 미 항모 CV-13 프랭클린의 공습으로 침몰. | 1944년 12월 10일 제적. | |
하츠시모(初霜, 첫 서리) | ||
1934년 10월 31일 우라가 도크 컴퍼니에서 건조. | ||
1945년 7월 30일 교토 미야즈 만에서 대공전투 중 기뢰에 접촉했다. 대파된 하츠시모는 해안으로 옮겨져 착저, 전후 해체되었다. | 1945년 9월 30일 제적. | |
아리아케(有明, 동틀녘) | ||
1934년 10월 31일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 | ||
1943년 7월 27일 글로스터 곶에 구축함 미카즈키와 함께 좌초했다가 탈출에 성공, 다음날인 28일 미카즈키가 좌초한 곳으로 돌아왔다가 미 육군 B-25의 공습으로 침몰했다. | 1943년 10월 15일 제적. | |
유구레(夕暮, 해질녘) | ||
1934년 10월 31일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건조. | ||
1943년 7월 20일 슈아절 섬 앞바다에서 공습으로 침몰. | 1943년 10월 15일 제적. |
5. 실전
하츠하루급은 6척 전체가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5척이 침몰, 1척이 착저 되었다6. 매체에서의 등장
- 월드 오브 워쉽
일본 구축함 7티어 트리로 실장되었다. 이후 분기 트리가 신설되며 분기 트리의 6티어로 이동 되었다.
- 함대 컬렉션
하츠하루(함대 컬렉션) 항목 참조.
그 밖에도 네노히, 와카바, 하츠시모가 나왔다. 5번함부터 아리아케급으로 분류한다면 다 나온 셈.
- 하츠하루(벽람항로), 와카바, 하츠시모, 아리아케, 유구레가 함께 나온다.
2번함인 네노히 빼고는 다 나온다.
- 전함소녀에서는 하츠하루(전함소녀)가 등장한다.
[1] 제4호함대 사건, 토모즈루 사건 이후 함체 보강 및 무게중심 재조정 및 무장의 경량화[2] 흘수선에서 갑판 위 까지 높이[A] 1945년 이후 생존함의 경우[A] [5] 계획 당시 8년식 18발[6] 태평양 전쟁 개전 시기 전후로부터 93식 어뢰 탑재 가능.[7] 手圧式, 사람의 힘으로 작동한다는 뜻.[8] 4연장 2기 계획에서 3연장 3기로 선회하였다.[9] 적재함에서 어뢰를 꺼내 특정 각도에 고정시킨 어뢰 발사관에 바로 밀어넣어 장전한다. 이전의 아카츠키급에서는 어뢰 발사관에서 떨어져있는 적재함에서 옆의 크레인에 어뢰를 꺼내 매달고 고정시킨 어뢰 발사관에 앞부분부터 밀어넣어 장전했다.#[10] 어뢰 발사관의 3 mm 파편 방지 장갑판은 최초, 배수량 절감을 위해 두랄루민으로 제작되었으나, 두랄루민은 염분에 취약하여 수명이 짧았기에 소재를 니켈-크롬-몰리브데넘 합금으로 대체하여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