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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사네티/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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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

1.1. 초창기

어린 시절 벽돌공인 아버지를 도우며 학업과 축구를 병행했다. 19세 때 CA 타예레스에 입단했고, 이듬해 아르헨티나 2부 리그의 CA 반필드로 이적해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면서 점차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네티를 눈여겨 보던 인테르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의 적극적인 구애로 1995년 인테르에 입단한다.[1]

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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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의 주장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이적 초기만 해도 아직 재능 있는 젊은 선수 A 수준이었기에 입단 당시 잡음이 좀 있었지만, 사네티 자신이 이탈리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2] 그라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며 팬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된다.

이후 1995년부터 2014년 은퇴할 때까지 인테르에서 활약했다. 1999년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주세페 베르고미로부터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이래 외국인 선수인 그가 인테르에서 거친 감독은 주제 무리뉴가 15번째, 라파엘 베니테스가 16번째, 레오나르두가 17번째, 가스페리니가 18번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19번째,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가 20번째, 발테르 마차리가 21번째다. 무리뉴 이후로 싸이클이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998년에 UEFA컵 결승전에서 결승골로 팀에 우승컵을 가져다준 이후 한동안 인테르나 사네티나 상복이 없었다. 이른바 7공주 시대 때도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등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울어야 했고, 챔스에서는 밀란과 달리 번번히 초반 탈락했다. 7공주 시대는 피오렌티나, 파르마, 라치오, 로마가 재정난으로 몰락하며 막을 내렸지만 인테르는 유벤투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좋은 조건으로 여러번 구애를 보냈다고 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에 이적할 뻔하기도 했으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이후 2006년 칼초폴리로 인해 유벤투스 FC가 몰락하고 인테르가 리그에서 독주하며 우승의 한을 풀었고, 주제 무리뉴와 함께하며 그토록 바라던 빅이어도 들었으니 사네티와 인테르 모두에게 좋은 결정이었다. 거기에 빅이어를 든 시즌은 아예 세리에 A 클럽 사상 최초의 트레블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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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 인테르의 45년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끈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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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년배인 히바우두, 에드가 다비즈, 크리스티안 비에리, 로베르 피레스, 라이언 긱스같은 선수중에서 긱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노쇠화로 몰락하거나 하향세를 보인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라이언 긱스도 나이 들어 신체 능력이 떨어지며 준주전급 멤버로 돌아갔는데, 사네티는 그런 것조차 없어서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도 잘만 뛴다. 쉽게 말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회춘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 매시즌 거의 전경기에 거의 풀타임으로 출장하며 리그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는 것을 두고 회춘이라고 할수는 없잖은가?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도 그렇고 대부분은 사네티정도의 연배가 되면 피지컬적인 약점을 노련함으로 메꾸는데, 이 아저씨는 그런 것도 없다. 활동량, 순간속도, 주력 모두 전성기와 비교해서 큰 하락이 없다. 이쯤 되면 자기 관리도 자기 관리지만 엄청난 강골로 타고난 것. 사네티와 비슷한 연배로 육체적인 왕성함과 높은 클래스를 유지하는 선수는 브라질의 제 호베르투뿐이다.

12/13 시즌 들어서는 시즌 중반 후반 로스타임에 상대진영까지 전력질주 드리블로 돌파하는데에 30대 초반인 안토니오 카사노가 헉헉거리며 역습 스피드에 못 쫓아가는[4] 미친 노익장을 선보였다.

롤모델이 철인 로타어 마테우스인데 이 사람(?)이라면 마테우스처럼 40살까지 무난히 뛸수 있지않을까? 선수 본인은 인테르에서 두번째 별은 달고[5] 은퇴해야겠다고 말 했는데, 인테르는 최소 2년은 사주장과 함께할 것이고 주세페 베르고미의 최다 출전 기록도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네티는 40살때까지는 무조건 현역으로 축구선수를 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자기보다 10살 어린 젊은이보다 젊어보이는 동안에[6], 머리스타일까지 몇년동안 똑같아서 차두리도 그렇듯이(?) 이 사람이 로봇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강철체력과 더불어 이 점때문에 사주장을 슈퍼맨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2010년말 근래 들어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하니 탈모라고 한다.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A 57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파올로 말디니의 647경기, 잔루카 팔리우카의 592경기에 이은 역대 3위의 기록.

그리고 2012년 여름 3살 연하인 프리마베라 감독 안드레아 스트라마치오니가 성인 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감독이 선수보다 어리게 되었다. 그래서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의 사례를 보고 사람들이 사네티의 갑질로 인테르에 불화 생기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2013년 2월 8일 세리에A 592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하며 공동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시각으로 2013년 4월 28일, 인테르의 부상 병동 속에서도[7]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철인'은 팔레르모와의 리그 경기 중 아킬레스건 파열로 쓰러지며 6~9개월간 그라운드에 돌아올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이대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본인은 "I will be back"을 천명했고, 결국 그 해 11월 10일에 리보르노와의 경기에서 후반 82분에 교체 투입되면서 복귀전을 치렀다.

영원할 것만 같던 철인이 2013-14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이때가 만 40세였다.[8]

그간 이 선수가 인테르에서 남긴 기록들은 이렇다.
- 인테르 역사상 최다 출장(858경기)
- 인테르 역사상 최다 수상(16 트로피)
- 인테르 역사상 밀란 더비 최다 출장(47 경기)
- 인테르 역사상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출장(105경기)
- 인테르 역사상 세리에A와 코파 이탈리아, UEFA대회에 최다 출장
- 세리에A 인테르 선수로 최다 연속 출장(137 경기)
- 세리에A 외국인 최다 출장(615 경기)
- 세리에A 외국인 최고령 출장(vs 라치오(2014.5.10), 40세 274일)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경기 주장 역임(82경기)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143경기)[9]
- 클럽 월드컵 최고령 득점(37세 127일)
파일:external/images.performgroup.com/inter-lazio-zanetti-serie-a_ee7xqxpjm5fl1wya0lm088jrh.png
고마웠어요, 우리의 영원한 주장.
2014년 5월 11일 리그 37라운드, SS 라치오 전이 사네티의 마지막 경기 출전이 되었다.

사네티의 은퇴 경기가 진행되던 도중 경기 후반에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를 만나고자 경기장에 팬이 난입을 했었는데 경기의 흐름이 끊어지는것으로 인해 선수의 입장으로써 불쾌할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성팬을 위로해주면서 '자신이 직접' 경기장 바깥으로 에스코트해주었고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이 행동을 칭송했다.#
파일:external/imgnn.seoul.co.kr/SSI_20140511145919_V.jpg
ZANETTI 4 EVER
그의 은퇴를 기념해 특별 제작한 주장 완장. 깨알같이 작은 글자들 속에는 그동안 사네티와 인테르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 전원의 이름이 들어있다.

오직 인테르만을 위해 선수인생을 전부 바친 사네티만을 위한 것이다.

2. 국가대표 경력

파일:20210701_161814.jpg

1994년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이 지휘하던 시절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첫 발탁된 사네티는 11월 16일 칠레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첫 출전했다. 이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지만 조 본프레레가 이끄는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결승에서 패배하여 은메달에 그쳤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6강 잉글랜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8강에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를 만나 탈락. 그리고 마르셀로 비엘사 시절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파탄난 와중에 선수들이 사비를 들여 힘들게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게 되었다.

사네티는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 멕시코전에서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며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는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6년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호세 페케르만후안 파블로 소린을 밀어주기 위해 소린과 사이가 나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배척하느라 베론과 친한 사네티도 뽑지 않았던 것이며, 2010년엔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 시절 트레블의 주역이었던 에스테반 캄비아소도 함께 석연찮게 명단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마라도나가 SSC 나폴리 레전드라 일부러 발탁하지 않았단 설까지 나왔다. 어쨌건 2006년에는 박빙의 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고, 2010년의 경우는 전력 불균형과 부실한 수비진으로 결국 8강에서 독일에게 패했는데, 많은 팬들이 이때 사네티만 있었어도 라고 탄식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후임으로 아르헨티나의 감독이 된 세르히오 바티스타는 부임하자마자 사네티를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시켰다. 바티스타가 부임한 이후 사네티는 꾸준히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으며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8강 우루과이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면서 아르헨티나의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1] 모라티가 구단주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영입한 선수다.[2] Zanetti란 성씨가 이탈리아의 성씨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예를 들자면 인테르에서 같이 뛰었던 크리스티아노 자네티)가 있고,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브랜드 세가프레도(Segafredo Zanetti)도 있다. 사네티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이탈리아 여권을 인테르 입단시부터 보유하고 있었다. 사네티가 아니라 자네티라고 부를 수도 있다. 다만 사네티 본인은 '사네티'라고 불러 주길 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네티라고 부르는 팬들도 많지만 애칭으로도 '자주장'이 아닌 '사주장'으로 많이 불리니 사실 생각해보면 독일계 성씨를 가졌다고 해서 하인츠라라고 부르지 않고 스페인어 발음으로 에인세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네티는 이탈리아계이지 이탈리아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문 위키 백과의 발음 기호 역시 사네티에 가까운 쪽으로 표기하고 있다.[3] 해당 장면은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인트로에 삽입되었다.[4] 물론 카사노가 심장 수술로 인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 하는 체력임을 감안해야 한다.[5] 세리에에선 10회 우승당 1개의 별이 달린다. 인테르는 19번 우승으로 별 하나.[6] 인터밀란 시절 그의 얼굴 변화[7] 사미르 한다노비치후안 제수스, 안드레아 라노키아를 제외한 주전, 준주전 전원이 병상에 누워 있다.[8]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한국 나이로는 42살. 40이 넘은 나이에 빅클럽에서 노익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년 없이 그대로 은퇴한 걸로 매우 유명한 라이언 긱스, 파올로 말디니, 프란체스코 토티, 에드빈 판데르사르와 비슷한 나이때 은퇴한 것이다.[9] 다만 이 기록은 후에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경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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