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1:18:18

하라 케이이치

<colcolor=#ffffff> 하라 케이이치
[ruby(原, ruby=はら)] [ruby(恵一, ruby=けいいち)] | Keiichi Hara
파일:harakeiichi_art.jpg
<colbgcolor=#000000,#000000> 출생 1959년 7월 24일 ([age(1959-07-24)]세)
군마현 타테바야시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활동 1980년 ~ 현재
학력 도쿄디자이너학원 (졸업)
수훈 자수포장 (2018년 수훈)

1. 개요2. 생애3. 특징4. 인맥5. 기타6. 작품 목록
6.1. 감독6.2. 참여작

[clearfix]

1. 개요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2. 생애

사탕가게를 하는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서 원하던 미술대학도 못 가고 애니메이션 관련 전문학교로 진학했는데 정작 본인은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에 흥미가 많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보니깐 보긴 했는데 좋아하는 애니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사자에상이라 대답할 정도로 열광적인 오타쿠는 아니였다고 한다.[1]

어찌 보면 선배 오시이 마모루처럼 일반적인 오타쿠가 아니라 순수 영화덕후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타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하야오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을 접하고 주변에 그림에 능숙한 사람들에 영향을 받아 애니메이션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계로 들어가고자 애니메이션 회사에 견학을 다녔고 이때 만난 미쿠리야 쿄스케가 "콘티를 하나 그려서 제출해라." 라고 해서 그려서 제출했더니 하라의 재능을 알아보고 광고 회사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장편을 만들고 싶어져 신에이 동화 이직 후 초기에 주로 연출 일선에서 활약했는데 도라에몽에서 연출을 담당한 편도 평가가 좋은 편. 도라에몽은 잠시 참여했지만 이후 에스퍼 마미의 감독을 하며 호평을 받았다. 여기서 시바야마 츠토무의 콘티를 구해서 보고 분석하며 콘티 작법을 배웠다고 한다.

크레용 신짱 (짱구는 못말려)는 1992년 1기 1화부터 줄곧 연출과 콘티로 참여했다. 그러다 1996년에는 혼고 미츠루 감독의 하차로 크레용 신짱의 TV 시리즈 감독을 맡게 되었고 1997년부터 크레용 신짱 극장판 감독도 맡았는데 작품들의 평은 괜찮았음에도 흥행이 잘되지 않아 고전했다.[2] 다행히 8기 폭풍을 부르는 정글로 반등하며 이때 9, 10기 어른제국과 전국대합전을 최고의 역작으로 만들었다. 이후 감독직에는 물러났으나 극장판 시리즈는 13기까지 연출 부분에 참여했고 TV 시리즈는 2004년 7월까지 감독을 맡다가 하차했다.

극장판의 명성에 가려졌어도 신짱의 TV 애니메이션 또한 그가 감독을 맡는 동안 가족 애니메이션으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에 이쪽도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다. 원작 만화 초기와 혼고 미츠루 감독 시절의 짱구는 블랙 코미디를 중심으로 과격한 개그를 해서라도 웃기려고 하는 작품이었는데 하라는 그런 점을 줄이고 가족에 중점을 두며 훈훈하게 끝나는 에피소드를 담당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원작 만화에서 과격했던 에피소드도 좀 더 훈훈하게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각색은 원작 만화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3] 즉, 신짱을 탄생시킨 것은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이지만 애니화에 성공해 인지도를 오르게 한 것은 혼고 미츠루, 그리고 지금의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애니메이션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하라 케이이치의 공로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문에 신짱 팬덤에서는 한 작품만이라도 좋으니 은퇴전에 신짱 극장판을 다시 제작해달라는 목소리도 종종 나오는 편이다. 2005년 신에이 퇴사 이후로는 오리지날 극장 애니메이션을 감독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때문인지 2011년 35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장편영화 특별상 수상한 바 있다.

2013년엔 영화 《24개의 눈동자(二十四の瞳)》로 유명한 일본의 명감독인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삶을 다룬 '시작의 길(はじまりのみち)'예고편이라는 실사영화를 감독했다.

크레용 신짱 이후 TV애니메이션에서는 손을 뗐으나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애니판 콘티 작업에 다시 참여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작품의 작화를 담당해 줬던 이타즈 요시미 감독의 도움 요청에 참여한 것일 뿐 이후로는 아예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크레용 신짱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독 한국에서만 다른 작품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4] 일본에서는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와 함께 애니 연출계 신흥 거장으로 언급될 정도의 인물로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미야자키 하야오 이래 두 번째로 받은 인물로 높게 평가받고 있이다.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이사오 이후 처음으로 키네마 준보 선정 올해의 영화에 뽑힌 감독이기도 하다.[5] 다른 작품인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컬러풀도 일본에선 평가와 흥행에서 꽤 성공한 작품이다. 일본 외에서도 유럽에서도 꽤 쳐주는 감독으로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3번이나 수상한 바 있다.

타카하타 이사오와 큰 친분은 없었으나 타카하타 이사오는 생전부터 하라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갓파 쿠를 보고 "이런 작품이 히트해야 한다"라고 극찬했다고. 나중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실제로 아동문학을 추구하는 것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성향부터 매우 유사한 점은 있다. 이런 이유로 호소다나 신카이가 언론에서 포스트 미야자키로 거론되는 것과 다르게 하라 케이이치는 포스트 타카하타 이사오라 불리기도 한다.

2010년대에는 Production I.G로 활동을 옮겼는데, 2015년, 백일홍: 미스 호쿠사이의 흥행 실패[6]와 2019년, 버스데이 원더랜드[7]가 작품성에서 비판을 받아 슬럼프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2022년 A-1 Pictures에서 만든 거울 속 외딴 성이 호평받으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특징

각본은 신짱도 그렇고 어린이용 작품을 해도 어린이가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의 이야기를 넣거나, 슬픈 이야기를 넣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주 타켓인 저연령층뿐만 아니라, 그 연령층들과 같이 손잡고 보는 고연령층인 부모들에게도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는 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어른제국의 역습의 경우에는, 저연령층보다 고연령층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할 정도. 하지만 이건 고연령층이나 부모가 보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어릴 때 이런 작품을 보고 감명과 충격을 받아서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밝고 간단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은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을 위한 작품이며 때로는 어른보다 더 높은 이해력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상술한 사자에상 발언도 그렇고 애니메이션 감독치고는 애니보다는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편. 특히 키노시타 케이스케와 오즈 야스지로, 데이비드 린을 존경한다고 한다. 실사 쪽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음에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로는 사람의 손으로 그리는 맛이 좋아서라고 2010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영화 전부 통틀어서 상당히 '고전 영화'스럽게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8]

독립 이후로는 주역엔 전문 성우보다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있는데, 본인 말로는 애니메이션 목소리와 과장된 연기가 익숙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문 성우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이 일화에는 약간의 뒷얘기가 존재한다. 2004년 인터뷰에서 인랑마인드 게임 외에는 애니메이션에 재미를 못 느꼈다고 말한 뒤 '기분 나쁜 캐릭터와 그에 맞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성우와 연출가 등이 내뿜는 자의식적인 나르시시즘 같은 빌어먹을 것'이라고 상당히 강경하게 말한 바 있는데, 훗날 이 발언으로 전문 성우들을 싫어한다는 오해로 받았는지 해명하면서 '전문 성우는 대단한 존재'라 말하며, '정말로 싫어하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정정한 바 있다. 하라 본인이 한동안 연을 쌓았던 크레용 신짱에 출연하는 성우가 자주 출연하는데, 특히 야지마 아키코는 하라가 신에이 퇴사 이후 감독을 맡은 모든 작품에 출연중이다. 후지와라 케이지 역시 2020년에 고인이 되기 전까지 하라 케이이치의 작품에 개근했다.

신짱 이후로는 주로 만화와 라이트노벨만 애니화되는 현실을 보며 "이대로라면 일본의 훌륭한 아동 문학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짱구 이후의 작품은 대부분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한다.

하라 케이이치가 담당한 크레용 신짱의 TV판 에피소드나 극장판에선 노하라 히로시의 비중이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지금의 지구를 지키는 인간 병기 노하라 히로시의 이미지는 하라 케이이치가 만든 것이다. 또한 TV판은 시로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하라가 담당할 때가 많았다.

또한 작품들이 전부 원작이 있다.[9] 오리지널 감독 작품은 없다. 하지만 각본은 직접하며 내용은 원작과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자신은 각색력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로부터 이야기와 세계관을 만드는 창작력은 없는 것 같아서 원작을 빌려 작업한다고 한다. 신짱 이래로 만든 작품은 직접 여러 책을 읽고 그 중에서 좋은 작품을 선정해서 만든다고 한다. 다만 오리지널 기획 작품도 3개 정도 각본은 써놨다고 한다. 단지 스폰서가 안 붙는다고.

한국 한정으로 유독 하라 케이이치 작품은 작화가 안 좋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그림체만 봐서 나오는 반응이다. 하라는 작화로 묘사되는 연기력을 매우 중시해 실력이 없는 애니메이터와는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다. 신에이 동화 시절에도 스에요시 유이치로, 키가미 요시지신에이 동화 1군과 작업했으며 독립 이후에도 최고급 애니메이터를 기용한다. 그럼에도 하라의 작품의 작화가 수수해 보이는 건 하라가 상업 일본 애니메이션의 흔한 미소녀식 예쁜 그림을 좋아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시각 효과도 많이 안 넣어서 그렇다. 하라의 작품은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고 감정 표현을 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보는 것이 좋다. 하라의 작품을 보면 걷는 걸 확실하게 다 그리며, 문을 열거나 의자에 앉는 동작 같은 것도 실제에 맞춰서 리얼하게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사실 굉장히 그리기 어려운 거고 못 그리는 애니메이터가 굉장히 많아서 다른 애니에선 주로 생략하는 장면들이다. 이런 게 하라 작품에선 그대로 나온다.

이렇게 화려하지 않고 연기에 중심을 둔 담백한 연츨, 작화, 시각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는 "연어를 주고 요리를 하라고 하면 하라 케이이치는 소금구이를 만든다." 라고 비유하기도 했다.[10]

4. 인맥

애니메이션계에 친구는 별로 없다고 한다. 다만 신짱의 전임 감독이었던 혼고 미츠루와는 가장 친한 베프이며 히구치 신지라든가 유아사 마사아키 같은 신에이 시절 크레용 신짱 스태프들과 그나마 친한 사이인 듯. 성격도 게으른 편인지 업무 시간에 졸다가 혼난 적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중학교 시절부터 자전거 여행도 다녔고 지금도 자주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히구치 신지 말에 따르면 술에 강한 모양. 그외에는 크레용 신짱 애니메이션 작업하면서 원작 감수 작업을 도와주던 나카시마 카즈키[11]와 친하다고 한다.

호소다 마모루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 말로는 하라 케이이치, 호소다 마모루, 히구치 신지 셋이 모여서 H3이며 자주 같이 논다고 한다. 자신도 같이 놀고 싶어서 끼워달라 했는데 마루야마는 이니셜이 M이라서 안 넣어줬다고.

신에이 동화에서 나온 이후로는 스에요시 유이치로, 마츠모토 노리오, 이타즈 요시미, 마키하라 료타로, 츠지 시게히토(辻 繁人)와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디자이너 Ilya Kuvshinov도 좋아한다고 한다.

Ilya Kuvshinov 말로는 하라는 사람 자체가 인성이 좋고 착하다고 한다. 그래서 애니메이터도 많이 따르는 것이라고. #

미술 감독 나카무라 타카시(中村 隆)[12], 애니메이터 키가미 요시지, 성우 후지와라 케이지도 대단히 신뢰했다고 한다. 세 사람이 모두 단명해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성우 코바야시 아이∀건담리리 볼자노로 출연한 걸 보고, 신짱 스태프 중에 ∀건담에 참여한 이케하타 타카시를 통해 데모 테이프를 들은 뒤 챠코 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코바야시 아이는 크레용 신짱 극장판 중 최고 순위를 다투는 어른제국의 역습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두 편 모두 히로인 역을 맡게 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해서 전격! 돼지발굽 대작전 오이로케 역에 미츠이시 코토노를 기용하기도 했다. 캐릭터 디자인도 미사토를 의식하기도 했고, 미사토가 신지를 신짱이라 부르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미츠이시 코토노는 돼지발굽 대작전 이후 아게오 마스미 역에 캐스팅되면서 TV판 레귤러로 정착하게 된다.

블루 하츠의 팬. 에스퍼 마미 연출을 담당했을 때 블루 하츠 포스터를 등장시킨 적도 있고 삽입곡도 넣으려고 했으나 저작권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제자로는 히라카와 테츠오가 있다.

5. 기타

  • 인터뷰에서 휴대 전화나 컴퓨터, 팩스 같은 걸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더 이상 불필요한 건 배우고 싶지 않다'라는데, 이 때문에 연락하기 매우 어려운데다 대담 같은 데 지각하는 일이 잦은 듯. 다만 옛날 얘기이며 현재도 그러는지는 불명이다.

6. 작품 목록

파일:harakantoku_poster-s-1.jpg

6.1. 감독

6.2. 참여작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은 감독이 아닌 작품이라도 12기까지 높은 비중으로 연출에 참여했다. 거의 부감독이나 그 이상이라 봐도 좋다.


[1] 하라 케이이치 자체는 안노 히데아키로 대표되는 1세대 오타쿠들과 동년배이다.(나이는 하라 케이이치가 안노 히데아키보다 한 살 연상) 하지만 성향은 안노와 정반대라는 것이 차이점.[2] 다만 7기 온천 부글부글 대작전은 평가도 애매하고 흥행도 현재까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3] 사실 크레용 신짱은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가 애니 제작 측과 캐치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재에 돌입, 제작한 작품이다. 의외로 애니메이션에서 먼저 나오고 만화로 역수입된 설정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초코비가 있다.[4] 다만 대표작인 어른제국과 전국대합전도 일본 문화청 선정 일본 100대 애니메이션에 상위권에 선정된 작품이라 워낙 인지도가 높긴 하다.[5] 이 잡지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잘 취급하지 않는지라서 영화로 인정했다는 것은 상당한 영예가 있다. 당장 거장인 토미노 요시유키가 자기 작품은 영화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키네마 준보에서 안 뽑아주기 때문일 정도.[6] 작품성은 좋다고 평가받지만, 원작 자체가 인지도가 낮고, 소재가 다소 생소한 등 기타 문제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다.[7] 버스데이 원더랜드의 제작사 SIGNAL.MDProduction I.G의 자회사로, I.G 스태프들도 참여하는 곳이다.[8] 일본 영화계엔 오즈 야스지로나 키노시타 케이스케 사후 직접적으로 이런 스튜디오 고전주의 노선을 이어받은 감독이 의외로 별로 없다.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그래도 일본 대중 영화 쪽에서 폭넓게 자리 잡았지만, 오즈 야스지로는 생각보다 직계가 적은 편. 대체로 쇼치쿠 뉴웨이브나 소마이 신지 부류를 직접적으로 따르고 있다. (애니메이션 감독 중에서는 호소다 마모루가 소마이 신지 팬으로 알려져 있다.) 야마다 요지는 스튜디오 시절 말기에 경력을 시작한 케이스고,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원래는 다큐멘터리 출신으로, 성향 변화가 잦았다. 지금도 고레에다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력에 대해 물어보면 다소 거리를 두고, 나루세 미키오 언급을 자주 꺼낸다.[9] 실사 영화 시작의 거리는 원작이 없으나 영화 감독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헌정 작품이라 그의 영화에서 내용을 차용했다.[10] 반면 혼고 미츠루는 연어를 주면 크림 스튜를 만든다고. 혼고는 여러가지 화려한 연출을 섞는다는 소리다.[11] 짱구는 못말려가 연재 중인 잡지 편집자였다.[12] 항목이 있는 애니메이터 나카무라 타카시와 동명 이인이다.[13] 국내판 기준으로 4기~10기 중반부.[14] 1대는 혼고 미츠루, 3대는 무토 유지.[15] 혼고 말로는 하라가 당시 메카 액션 콘티, 연출을 못 해서 자신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라도 혼고에게 배우고 노력해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전격! 돼지발굽 대작전,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폭발! 온천 부글부글 대작전는 메카 액션 콘티도 하라가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