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4 10:29:08

페루-볼리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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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볼리비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2.2. 19세기2.3. 21세기
3. 문화 교류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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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루, 볼리비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미주기구,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라틴 연합, 아마존 협력조약기구, 안데스 공동체의 회원국들이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칠레 북부 일대와 페루, 볼리비아 일대는 잉카 문명의 일부였다. 특히 페루 일대는 잉카 문명의 중심지였고 여러 건축물들이 세워졌다.[1] 또한, 페루에는 마추픽추가 세워졌다. 케추아어는 잉카 문명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6세기에 스페인남미지역을 정복했다. 그리고 잉카 문명에 속한 지역들이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피사로 형제에 의한 학살까지 발생되었다. 스페인의 정복 이후, 페루와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페루 부왕령이 설치되었으며 천주교가 전파되고 스페인어가 널리 보급되었다.

페루 부왕령은 누에바에스파냐 혹은 포르투갈령 브라질과 다르게 흑인 인구 유입이 매우 적은 편이었다. 비교하자면 아메리카 대륙 동부 쿠바푸에르토 리코 일대의 원주민들은 백인 및 흑인과 혼혈되어 말라리아나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물려받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멸한 것으로 추정되는데[2] 가축을 별로 기르지 않았던 타이노족은 가축 특히 돼지나 소, 말이 옮기는 질병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3] 대조적으로 잉카인들의 경우 기니피그, 라마 등의 일부 가축을 사육했는데, 그 결과에서인지 과거 잉카 제국에 해당하는 지역은 따로 흑인 노예를 데려오지 않아도 포토시 은 광산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토가 겹치는 페루와 볼리비아는 혼혈이 아닌 원주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디오의 인구 비중이 제일 높은 지역이다.

스페인의 지배는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2.2. 19세기

19세기 초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중남미 일대에서 독립열기가 높아졌다. 스페인은 군대를 파견해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하지만 독립군과 스페인군간의 격렬한 전쟁 이 이어지면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페루, 볼리비아는 독립국이 되었다. 다만, 스페인은 이들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페인이 다시 영향력을 주기 위해 함대를 파견하자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연합을 결성해 스페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친차 제도 전쟁이 발생했다. 스페인은 친차 제도 전쟁을 통해 중남미에 영향력을 상실했다.

스페인의 재점령 시도를 격퇴한 칠레, 페루, 볼리비아 사이에서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전쟁 이후, 칠레가 영토를 획득하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었다.

1836년부터 1839년까지 양국은 페루-볼리비아 연방을 결성해 한 나라로 통합된 적도 있었다.

2.3. 21세기

양국은 종종 잉카 제국의 역사 귀속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다. 페루에서는 잉카 제국의 적장자가 오늘날의 페루라고 주장한다면 볼리비아는 칠레나 에콰도르 등[4]과 함께 잉카 제국의 역사는 과거 잉카 제국의 영토가 걸쳤던 국가들 모두의 역사에 해당한다는 주장으로 페루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상황이다. 또 칠레와 볼리비아 간의 태평양 접근권 분쟁에서도 페루는 볼리비아의 해양 진출 시도에 반대를 하며 과거 볼리비아령이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 합병된 안토파가스타주를 칠레령으로 인정하며 사실상 칠레의 편을 들어주는 등 갈등의 요소도 없지 않다.[5]

페루와 볼리비아 모두 백인보다는 원주민 인구 비중이 높으며 각각 좌파 성향의 정권이(페루에는 페드로 카스티요 정권, 볼리비아에는 에보 모랄레스 정권) 들어서면서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이 늘어나고 있다.

2022년 8월 13일, 멕시코,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정부가 공동성명에서 페루의 카스티요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와 페루가 페루 일로 항 공동개발 협력에 합의하기로 했다.#

3. 문화 교류

페루, 볼리비아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스페인 본토에서 쓰이는 스페인어와는 차이점이 많이 존재한다. 양국 모두 천주교가 널리 퍼져 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개신교신자가 늘어나고 있다.

양국 모두 흑인 인구 비중은 적고 원주민 인구 비중이 높으며, 국민 상당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메스티소 대신에 원주민으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4. 관련 문서



[1] 잉카 문명을 둘러싸고 잉카 문명권에 속한 국가들간에 역사 갈등이 존재한다.[2] 오늘날 쿠바에서 타이노족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일부 타이노 부족들도 카나리아 제도 출신 관체족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쿠바에 끌려갔던 관체족 일부가 정글 깊숙한 곳으로 탈주하여 타이노족에 동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 반면 스페인인들은 가축이 옮기는 질병에 서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내성이 강했다. 물론 다르게 말하자면 고대 이베리아인들 및 고대 서아프리카인들 중 각 질병에 내성이 없었던 이들은 해당 질병으로 먼 훗날의 아메리카 원주민들마냥 죄다 죽어나갔던 셈이다.[4] 물론 볼리비아는 잉카 제국의 역사 귀속 문제로 해당 국가들과도 다툼을 벌인다. 페루한테는 잉카 제국이 구 잉카 제국령 국가들 모두의 역사라고 하고, 다른 구 잉카 제국령 국가들(특히 안토파가스타주 문제로 사이가 매우 험악한 칠레)한테는 볼리비아가 잉카 제국의 적장자라고 하는 식이다.[5] 참고로 페루는 1883년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게 빼앗겼던 타크나 주의 영유권을 돌려받는 대신 과거 페루, 볼리비아령이었던 아리카와 이키케, 안토파가스타 등 칠레에 병합된 나머지 지역들을 칠레의 영토로 인정할 것을 골자로 하는 리마 평화 조약을 1929년에 체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