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特, ruby=とく)][ruby(二式, ruby=にしき)][ruby(内火艇, ruby=ないかてい)] カミ |
[Clearfix]
1. 개요
상륙시 |
지상 운용시 |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이 하고 경전차를 기반으로 개발한 해병대용 수륙양용전차. 1942년에 제식화했기에 2식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일본 해군은 카미를 차량이 아닌 선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내화정(内火艇)이라는 이름이 붙고, 척(隻)으로 숫자를 기록했다.
내화정(内火艇)은 무동력 단정과 구분하기 위해, 모터보트에 붙인 일본군의 용어이다.
2. 제원
1945년에 카미를 실험해보는 오스트레일리아군[1] | ||
항목 | 초기형 | 후기형 |
전체 전장 | 7.42m (플로트 포함) | |
본체 전장 | 4.80m (플로트 제외) | |
전폭 | 2.8m | |
전고 | 2.3m | |
중량 | 12.5t (플로트 포함), 9.15t (플로트 제외) | |
속도 | 37km/h (육상), 9.5km/h (해상) | |
항속거리 | 320km (육상), 140km (해상) | |
주포 | 94식 37mm 전차포 1문이나 98식 37mm 전차포 1문 | 1식 37mm 전차포 1문 (132발) |
기관총 | 97식 7.7mm 기관총 1정 (차체전면기관총) | 97식 7.7 기관총 2정 (차체전면기관총 1정, 주포공축기관총 1정) (3,500 - 3,900발) |
어뢰 | 45cm 어뢰 2발 (계획상으로만 존재) | |
장갑 | 6 -12mm | |
엔진 | 미쓰비시 A6120VDe 공랭식 인라인 6기통 디젤엔진 (110hp) | |
현가장치 | 벨 크랭크 | |
승무원 | 6명 (4 - 5명으로 조절 가능) | |
생산량 | 180대 |
3. 개발사
일본 제국에서 수륙양용전차를 개발한 역사는 의외로 길다. 우선 일본 제국 육군은 1928년부터 92식 중장갑차를 개조해서 수륙양용장갑차인 아이고(A-I-Go)를 개발해서 2대 만들었으나, 차량을 선회시킬 때 무한궤도가 끊어지고 현가장치에 무리가 가는 결함으로 인해 양산에 실패하였다. 1933년에는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SR 이호차, SR 로호차로 불리는 수륙양용 전차가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이시가와지마 자동차에서는 좀 더 완성도가 높은 SR-II, SR-III라고 하는 수륙양용 전차의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제 차량들은 3.6톤에서 7톤 수준의 중량을 가지고 전차 승무원은 2 - 3명이었으며 기관총으로 무장하여 당대 기준으로 실용적인 수준까지 근접할 정도로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에 불과하여 양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제국 육군이 수륙양용전차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진 못해서 굳이 제식채용할 생각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냥 시제품 수준에서 중단된다.한편, 일본 제국 해군은 해군 육전대가 사용할 기갑 차량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이 보유한 장비는 89식 중전차 치로나 95식 경전차 하고같은 물건으로 육상전투에서는 육군과 동일한 장비를 가지고 있기에 전투력에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육전대 특유의 작전인 상륙작전에 사용하기에는 쓸만하지 않았다. 비록 이 전차들이 가볍긴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려면 항구를 장악한 후에 수송선에서 크레인으로 하역하거나, 최소한 해안선을 장악한 다음에 대발동정 같은 상륙정을 써서 1 - 2대씩 해안선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러면 정작 가장 어렵고, 동시에 많은 손해를 입는 상륙전 초반의 격전에서는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 제국 해군은 일본 제국 육군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잠수함에 탑재한 후 자력으로 항행하여 태평양의 섬에 배치된 해군 근거지대에게 투입이 가능한 강력한 병기로서의 수륙양용전차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육군이 개발하던 수륙양용전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점감요격작전에 기반하여 남양 군도같은 일본 위임통지령 같은 곳에 설치된 해군 육상항공기지를 강화하고 확대할 계획이 필요했는데 해당 항공기지를 수비할 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제국 해군 독자적으로 개발하던 1940년의 수륙양용전차의 개발계획을 확대하여 특1식 내화정 미샤를 만들었고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인 1941년에 수륙양용전차의 개발 경험이 풍부한 육군 기술 본부에 신형 무한궤도식 차량의 개발을 의뢰했다. 그리고 육군에서도 굳이 자신들이 채용하지 않을 병기이기도 해서 해군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육군 기술 본부 제4 연구소의 선임자인 우에니시 기사가 개발 책임자가 되었다. 우에니시 기사는 해당 차량을 95식 경전차 하고를 기반으로 최대한 빠르게 개발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된 해군의 신형 수륙양용전차에는 카미(カミ)라는 은닉 명칭이 붙여졌다. 해당 명칭은 개발책임자인우에니시 기사의 성씨에서 따온 것이다. 개발은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담당했고 1941년 10월 하순경에는 하마나 호수의 북해안으로부터 남해안까지 운행 시험을 성공리에 마치게 된다. 시제 차량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1942년으로, 타케야마에서의 시험에도 합격해서 특2식 내화정 카미라는 이름이 붙고 즉시 제식화되었으며 양산에 돌입하였다.
4. 특징
4.1. 탈착식 부가 장비
카미의 탈착식 플로트 |
일반적인 수륙양용전차와 달리 어느정도의 원양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해상에서도 어느 정도의 항속거리 및 속도를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카미는 차체 전면과 후면에 각각 플로트를 장착해서 전체 형상을 소형 보트처럼 만들었다. 이런 구조는 개발하다가 패전으로 중단된 수륙양용전차 최종형인 특5식 내화정 토쿠까지 이어진다.
플로트는 3mm 두께의 일반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부력 확보를 위해 내부를 텅 비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면 플로트의 경우에는 적의 공격등으로 인해 침수가 일어나거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내부를 6구획으로 나누었으며 후방 플로트는 내부를 5구획으로 나누어서 격벽을 설치했다.
플로트는 전방 차체의 상부 1개, 하부 2개, 후방 차체의 하부 2개의 고정장치로 고정된다. 후기 생산분에서는 전방 차체의 고정장치가 2개로 간략화된다. 그리고 일단 상륙한 후에는 지상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 전차 내부에서 조작을 통해 플로트를 분리시키고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스크류 프로펠러는 후방 플로트에 직결된 형태였고 플로트 분리시 한꺼번에 분리되는 구조이며 한번 분리된 플로트는 방치되고 회수계획이 없다.
플로트로 인해 전체적인 중량이 증가하자 원판 하고에서는 공중에 떠있던 유동륜이 추가적인 보기륜 역할까지 하기 위해 지면에 닿았다. 기본적인 현가장치도 하고 전차의 것을 유용하긴 했으나 방수성능 향상을 위해 수평 코일 스프링과 링크 암으로 구성된 서스펜션 기구는 차체 내부에 수용되고 있다. 무한궤도는 95식 경전차에 비해 중량이 증가한 것에 대응해 97식 경장갑차와 비슷한 접지식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한쪽 편에 2개씩 붙어있는 상부 지지륜도 97식 중전차 치하와 동형의 것으로, 95식 경전차에 비하면 상당히 전방에 달려있다.
그리고 항해 중에 시야확보를 위해 포탑의 전차장용 해치 위에 탈착식 전망탑(큐폴라)을 설치했다. 원래 원본인 하고 전차에는 전차장용 전망탑이 기본으로 달려있었으나, 카미는 원본 포탑에 달려있던 전망탑을 제거한 뒤 별도의 탈착식 부품으로 만든 것에 대한 사유는 전망탑이 없는 케토의 포탑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엔진의 원활한 흡기와 배기를 위해 기본적으로 엔진의 흡배기는 차체 상부 방향으로 실시하며 후부 차체에 환기탑을 설치했다. 전망탑과 환기탑도 육지에 상륙하면 분리시킨 후 전투에 돌입하는 것으로 설계했으나, 실전에서는 종종 전망탑이나 환기탑을 붙인 채 전투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전망탑의 경우 시야 확보를 목적으로 상륙 후에도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4.2. 기동성
육상에서는 일반적인 전차처럼 무한궤도로 주행하고, 원본 자체가 일본군 전차 중엔 속도가 빠른 편인 95식 경전차 하고이므로 도로에서 45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카미의 엔진은 95식 경전차 하고와 같은 미츠비시 A6120 VDe 직렬 6기통 공냉식 디젤엔진으로 110마력의 출력을 내며 변속기도 동일하다. 그리고 수륙양용전차답게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을 무한궤도와 후방 플로트에 설치된 추진용 스크류 프로펠러로 전환하는 분배기를 갖추고 있다. 수상 항행시에는 무한궤도 방향으로 가는 동력을 차단하고 분배기로부터 엔진의 양측을 통과하는 2개의 축에 동력을 전달하여 2개의 스크류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분배기는 수상 항행시 차체 내부에 들어오는 물을 배수하는 벌지 펌프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엔진의 신속한 교환과 작동중 점검을 위해서 후방 차체에 있는 기관실 점검구는 크며 3개의 해치로 폐쇄되는 데 전방과 후방의 해치는 앞으로 열리고 중앙부 해치는 좌측으로 열려서 엔진 점검 및 교환시 편리하도록 점검구를 크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엔진실과 승무원실 간의 격벽이 없어서 내부의 승무원이 엔진을 전차 내부에서 수시로 점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엔진 동작시의 소음과 열기가 전차 승무원을 괴롭히는 현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해상에서는 엔진을 동력으로 차체 후부에 설치된 2개의 스크류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는데 최고 9.5km/h의 속력, 140km의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었고 전차장이 다루는 케이블에 의해 움직이는 한 쌍의 방향키로 기동이 가능했다. 후방 플로트를 분리하면 키와 스크류 프로펠러가 한꺼번에 분리되므로 그 후에는 수상항행이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기동성을 확보했으므로 일본군 기준으로는 기동력에서 불만은 별로 없었다. 특히 수상항행능력은 동시대의 수륙양용전차중에서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4.3. 방수처리
카미의 차체는 방탄 강판의 용접 구조로, 장갑 두께는 전면이 12mm, 측면과 후면이 10mm, 상면과 하면이 6mm였다. 사용된 철강은 해군이 강도가 높은 강판을 요구했으므로 개발사인 미츠비시도 거기에 대응했으나 표면경화장갑의 특성상 수압을 버티거나 방수성능을 올리기에는 힘든 성질인 장갑이 갈라지거나 깨지기 쉬운 특징이 발생한다.카미는 잠수함으로 운반 및 발진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수처리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차체와 포탑은 당시의 일본군 기갑차량이 자주 사용하던 리벳식 접합대신 용접으로 접합했으며, 출입구등 개구부에는 고무로 실링을 했다. 기본적으로 포탑링의 높이까지는 완전방수처리가 가능하다.
해치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잠수함 해치의 수밀구조를 적용했으며 전차 승무원은 포탑의 해치를 사용하는 전차장을 제외하면 포탑 좌우의 차체 상부에 있는 직사각형의 해치로 승하차를 한다. 해당 해치는 엔진에 필요한 냉각용 공기의 흡입구로도 사용되므로 이중 개폐식 구조를 가지며 1단계만 열면 공기 흡입용 그릴만 노출되므로 해치를 완전히 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단 공기 흡입이 가능하다. 전투시나 수상 항행시에는 해치를 완전히 닫고 4개의 고정장치를 사용해서 완전밀폐가 가능하다.
이런 조치를 통해 잠시동안이지만 차량을 밀폐한 후, 수중에 있는 잠수함으로부터 발진이 가능했다. 그리고 후속작인 특3식 내화정 카치는 방수처리를 더 철저하게 하고 내압구조까지 적용해서 최대 수심 100m에서 발진이 가능했다.
4.4. 무장강화
개발기반은 95식 경전차 하고지만, 하고의 단점중 하나인 좁아터진 1인용 포탑을 적용하지 않고, 후속작인 2식 경전차 케토가 사용하는 좀 더 넓은 포탑을 사용했다. 주포도 관통력과 위력이 향상된 1식 37mm 전차포를 사용했으며, 전방 플로트 때문에 사격이 불가능한 전방 차체기관총을 보완하기 위해 쓸모가 제한된 포탑 후방 기관총이 제거되고 97식 7.7mm 공축기관총이 장착되었다. 이를 통해 하고보다는 화력을 강화하면서 좀 더 화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내부공간도 부력의 확보를 위해서 차체의 폭을 높히고 차체 측면도 수직에 가깝게 만들었으므로 95식 경전차 하고에 비하면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전투효율성이 올라갔다. 비록 엔진을 수시로 내부에서 점검하기 위해서 엔진실과 승무원실간의 격벽이 없으며 기관수는 말 그대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공간만 확보되었으나 그걸 감안해도 95식 경전차 하고보다는 나았다.
전차 승무원 구성도 최대 6인까지 가능하며 전차장, 포수, 조종수는 각각 1명이 붙어야 하지만 통신수, 기관수, 탄약수는 상황이 안좋을 경우에는 1명이 겸임 가능해서 상황에 따라서 4명에서 5명으로 운용이 가능하므로 인원 부족에 따른 겸임 증가로 전투력 하락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계획상으로만 존재하지만 해군이 운용하는 45cm 경어뢰를 차체 양측에 1발씩 총 2발을 운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간이식이지만 어뢰정의 역할을 일부 수행할 수 있었다.
5. 한계점
카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적인 수륙양용전차의 운용과는 동떨어진 일본 제국 해군의 전투교리를 적용한데다가 실제로 만들어진 완성품은 해당 교리도 충족하지 못하므로 일부 성능은 매우 훌륭하지만 결과적으로 망작이 된 것이 큰 문제였다.5.1. 1회성 수륙양용기능
애초에 일반적인 수륙양용전차라는 전차 종류의 운용 교리 자체가 수륙양용기능을 쉽게 포기하면 안된다. 실제 전장에서는 강이나 하천, 슾지대를 1번만 건너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반복적으로 험준한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며 심지어 태평양의 섬을 공략하는 상륙전에서도 일단 상륙한 후에 내부의 습지를 통과하는 등 수륙양용기능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육상에서는 방해요소가 되는 선박식 차체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스크류 프로펠러같이 육상에서 중량만 차지하는 구조물을 그대로 달고 전투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륙장갑차를 살펴보고 타라와 전투와 펠렐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이 늪지대와 복잡한 해안선 및 바다로 우회해야 돌파가 가능한 장애물을 의지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것을 살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심지어 1회성으로 상륙만 하는 것을 감안해서 육상용 전차에 임시적인 수륙양용기능을 넣는 경우라고 해도 육상에 상륙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수밀용 실링같이 쉽게 다시 공급받을 수 있고 전투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제거하고 스크류 프로펠러나 부양장치등은 그대로 단 채 전투한다. 해상전과 상륙전에 능숙한 영국과 미국의 합작품인 DD(duplex drive) 전차는 말할 것도 없고 나치 독일이 바다사자 작전을 구상하면서 제작한 2호 전차를 부유 전차로 만든 Schwimmpanzer II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카미는 잠수함에 탑재하여 아군 기지에 1회성 증원용 상륙만 할 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수륙양용기능을 담당하는 전방과 후방 플로트 및 스크류 프로펠러를 쉽게 분리가 가능하게 했고 전망탑과 환기탑도 마찬가지로 쉽게 분리가 가능했으며 일단 분리한 플로트를 비롯한 장비들은 그냥 바다에 투기하는 식으로 일회용품처럼 사용하며 회수계획도 없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사진에서 수면 위에 버려진 채 떠돌아다니는 것이 플로트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군의 거점 방어 교리는 적극적인 역상륙과 반복적인 반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아군 기지에 상륙한 카미도 역상륙과 반격에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미 아군 기지에 상륙할 때 수륙양용설비를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렸으니 참여가 어려워진다. 설령 수송선에 탑재해서 아군 기지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수륙양용장치를 달고 투입된 카미라고 해도 역상륙을 1회 하면서 수륙양용설비를 바다에 버린 후에는 반격이 실패하면 다시 바다로 후퇴할 수도 없어서 말 그대로 값비싼 수륙양용전차를 버리거나 사석처럼 전장의 소모품으로 사용해야 한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미국도 이런 식으로 상륙장갑차나 수륙양용전차를 1회용 소모품으로 마구 쓰지는 않고 급하면 다시 바다로 후퇴하는 등의 유연한 조치를 취한다.
따라서 특2식 내화정 카미는 수륙양용전차중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항행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자신들의 교리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5.2. 매우 미흡한 개선노력
카미의 플로트 관련 문제점은 미국의 상륙장갑차나 자신들이 개발한 특 4식 내화정 카츠처럼 차체 자체를 선박의 형상으로 일체형으로 만들면 해결된다. 하지만 스스로 해결책까지 찾아놓고도 일본의 자체적인 개선노력이 매우 미흡하였으며 그나마 말단에서 임기응변으로 약간 해결했고 일본군 수뇌부나 상층부는 끝까지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했다.일본의 기술진중 일부도 카미의 수륙양용 분야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개발시에도 어느 정도는 심각하게 생각했고 플로트가 없어도 차체를 자체적으로 부유가 가능하도록 설계하였으며 카미의 후기형에서는 후부 플로트 분리시에 스크류 프로펠러는 분리되지 않도록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일본군이 생각한 내륙의 호수같은 매우 잔잔한 물에서도 플로트가 없으면 수면과 차체 상부간의 거리인 건현(乾舷)이 고작 50cm에 불과하여 침수나 전복의 위험성이 엄청나게 늘었다. 여기에 더해서 키가 없어서 수상항행시 방향전환을 2기의 스크류 프로펠러중 한쪽의 회전속도를 크게 줄이는 방식으로 조종해야 했으며 당연하게도 키가 있을 때에 비해서 카미의 선회성능이나 방향전환 성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잔잔한 물에서도 이 지경이니 실전에서 파도가 치는 일반적인 바다같은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현장이나 전선에서 생각이 있는 일부 전차 승무원들은 후부 플로트는 가급적 분리하지 않는 것으로 독자적으로 판단했으며 기술자들중 생각이 있는 부류들도 그렇게 전선에서 생각할 경우를 감안하여 후부 플로트 하부의 키도 육지에 상륙할 때는 위쪽으로 접어서 올리는 방식을 추가로 도입해서 육상전투시에도 일단 지장이 없도록 했다. 차체전면기관총 때문에 분리해야 하는 전면 플로트도 초기에는 일체형이지만 후기에는 좌우 분할식으로 제조하여 상대적으로 제조하기 쉽게 만들었으며 예정대로 포탑에 1식 37mm 전차포와 공축기관총을 도입해서 차체전면기관총을 사용하지 못해도 일단 기관총을 전투에 쓰지 못하는 사태는 방지해서 전면 플로트도 어지간하면 장착한 채 육상에서도 운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외에도 전망탑이나 환기탑등도 육상전투에서 그대로 장착하고 전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망탑은 육상전투시에도 유용했으며 환기탑도 주포를 정후방으로 사격하지 않는 한 전투에 지장을 주는 일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선안은 기본적으로는 부실한데다가 도입과 적용도 일본의 기술자 중 일부가 독자적으로 도입하고 전선의 전차 승무원중 일부가 스스로 알아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한 것이지 일본군 수뇌부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카미가 수송선으로 수송될 때 육상전투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전면 플로트와 후면 플로트, 전망탑이나 환기탑등의 수륙양용장비가 모조리 제거된 채 수송선에 탑재되고 나중에라도 수륙양용장비를 보충하거나 추가지급하려는 노력 자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전선에서 정비병이나 전차 승무원들이 카미를 다시 수륙양용전차로 재운용하거나 파손된 수륙양용장비를 교체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서 실전에서 이미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일본 제국 해군의 수륙양용전차 교리를 그대로 추구하는 바람에 특 3식 내화정 카치와 특5식 내화정 토쿠까지 분리식 플로트 적용과 잠수함에서의 발진 및 어뢰무장 장착등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개발이 진행되었다. 일본군의 수뇌부와 최고위 권력층 기술자들의 답정너적인 생각이 얼마나 해악을 가져왔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5.3. 빈약한 무장과 장갑
비록 개발토대인 95식 경전차 하고보다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향상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군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상대방인 미군 입장에서는 향상은 있었지만 거기서 거기였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애초에 하고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었는데, 그 물건보다 약간 나아졌다고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잡았다고 보는 것은 큰 무리다. 심지어 당대의 주적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의 상륙장갑차도 스튜어트 전차의 M3 37mm 대전차포 기반의 전차포를 장착한 포탑을 장착한 LVT(A)-1이나 M8 스콧의 75mm M2 곡사포를 장착한 포탑을 탑재한 LVT(A)-4가 존재하므로 화력에서 밀린다.그리고 초기형은 아직 1식 37mm 전차포가 준비가 안된 상태였으므로 기존의 하고나 다른 일본군의 전차가 사용하던 94식 37mm 전차포나 98식 37mm 전차포를 사용했는데, 이들 물건은 1식 37mm 전차포에 비해 관통력, 위력이 떨어지고, 공축기관총을 장비할 수 없으므로 플로트를 장착한 상태에서는 사용가능한 기관총이 없다는 엽기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초기형은 전투능력이 더 떨어진다.
플로트의 경우에도 고작 3mm 수준의 보일러용 일반 강판 정도로는 전혀 방어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당대의 제식 소총용 일반탄인 풀 메탈 재킷탄도 많이 맞을 경우에는 구멍이 너무 많이 뚫려서 플로트의 부력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말 그대로 쓸모없는 철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카미는 전투시에는 플로트를 바다에 던져서 버리고 전투에 돌입하므로 차체에 소구경탄의 피탄이 집중되기라도 하면 격파되지 않더라도 균열이 발생하여 방수성능을 상실해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더해서 해상에서 대포를 사용할 예정이면서도, 주포안정화장치 따위는 적용하지 않았다. 원래 해상에서는 배가 파도등의 이유로 인해 항상 조금씩 흔들리므로 육상용 조준기만 사용하면 근거리가 아닌 이상 목표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국은 LVT 상륙장갑차에 스튜어트 전차의 포탑을 이식한 화력강화형인 LVT-A를 개발할 때 해당 전차포탑에 함포가 사용하는 주포안정화장치를 적용했다. 따라서 해상에서 사격전이 벌어질 경우 카미는 자기가 쏘는 포탄은 상당수가 빗나가는데, 적 함정이나 상륙장갑차가 쏘는 포탄은 정확하게 날아온다는 엿같은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나마 공격력은 향상되었지만, 방어력은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 애초에 6 - 12mm라는 장갑은 표면경화장갑을 사용해도 실전에서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에게 벌집이 되기 딱 좋다. 플로트는 방탄능력이 없으므로 증가장갑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덕분에 역시 장갑이 빈약하며, 중기관총 정도만 무장으로 사용하는 병력수송용 상륙장갑차에게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현대에도 수륙양용으로 운용가능한 PT-76이나 2S25 스프루트-SD 등의 경전차와 BMP-3, K-21 보병전투차량등의 보병전투차도 장갑이 약한 것은 매한가지이다.[2] 도하를 위해 중량이 제한되는 것은 수륙양용으로 운용하는 모든 차량들의 숙명이고 따라서 장갑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개인화기에 관통될 정도의 장갑은 너무한 수준이다.
5.4. 불필요한 특수장비
계획상으로 끝났지만, 카미는 해군용 45cm 경어뢰 2발을 장착할 수 있다. 게다가 어뢰 무장은 비록 계속 계획상으로만 남았지만 최후의 형태인 특5식 내화정 토쿠까지 이어지게 된다.일단, 이론상으로는 어뢰 무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어뢰정과 잠수정 대용으로 어뢰를 탑재하고 적에게 접근해서 어뢰를 날리면 잘 하면 적의 수상함 1척 정도는 잡을 수 있으며, 설령 이 쪽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수륙양용전차 1대니 가성비면에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서류상에서만 그럴 듯할 뿐이다.
- 물 위를 고속으로 항진하는 어뢰정이나 잠수 상태에서 은밀하게 접근이 가능한 잠수정과는 달리 수상항해를 하면서도 9.5km/h라는 느린 속도로 항해하는 카미가 적에게 들키지 않고 어뢰의 유효사정거리까지 접근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실제로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들켜서 집중사격을 맞고 카미가 침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어뢰정이나 잠수정도 구축함같은 호위세력에게 심심치 않게 들켜서 공격을 받으며, 어뢰정은 속도로, 잠수정은 잠항능력으로 빠져나가려고 해도 그렇지 못하는 처지에 몰리는 경우가 많은데, 앞서 언급했듯이 느려터진 속도로 접근하는 카미가 이런 공격을 빠져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렇다고 대응사격으로 돌파하자니, 37mm 전차포라는 빈약한 화력으로는 어뢰정이나 잠수정조차도 쓰러뜨릴 수 없으므로 무리다.
- 그나마 어뢰정이나 잠수정도 빈약하나마 방어력이 있다. 그러나 카미는 제식 소총탄에 전면장갑이 관통될 수 있을 수준으로 장갑이 얇고, 수상항해도 파도가 조금만 거칠어져도 못할 정도로 불안하다. 이렇게 되면 굳이 대포나 폭뢰같은 것을 쓰지 않더라도 중기관총의 사격이라던가, 함재기에서 기총소사만 해도 카미는 순식간에 구멍투성이로 전락해서 바다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적의 정찰부대만 만나도 카미는 그냥 죽는다.
- 천운으로 목표를 어뢰의 유효사정거리에 놓더라도, 이번에는 어뢰를 발사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안그래도 작은 선체에는 과잉한 크기의 무장인 어뢰를 달았기 때문에 어뢰를 발사하는 순간 선체가 크게 흔들리고 부력에 큰 변동이 발생하므로 조준선이 흐트러지는 것은 기본이며, 심하면 침몰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뢰의 명중률 따위는 저 멀리로 사라진다. 따라서 어뢰를 제대로 날리려면 목표에 초근접해서 2발을 동시에 사격해야 하며, 성공적으로 어뢰를 날리더라도 카미가 발사 충격으로 뒤집어진다던지 할 수 있으며, 적의 대응사격을 코 앞에서 정확하게 맞기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다.
- 어뢰라는 무장 자체가 화약 + 연료 덩어리나 마찬가지며, 특히 일본의 산소어뢰는 순산소 + 화약 + 연료이므로 위험성이 더 높다. 이런 어뢰를 차체 측면에 어뢰 자체를 노출한 상태로 장착할 경우 유폭 위험성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재수없다면 소총탄 1발이 어뢰에 명중했다는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카미가 고철조각으로 분해될 정도의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어뢰라는 민감한 물건을 이렇게 불안정한 수상항해능력을 가진 물건에 노출식으로 장착할 경우 정작 어뢰를 사격할 위치까지 이동했는데 어뢰가 망가져서 발사버튼을 눌렀는데 불발, 지발, 유폭이 발생할 수 있다. 역시 이럴 경우에는 그냥 끝이라고 보면 된다.
덕분에 실제로 어뢰를 장착가능하지만 패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실전에서 일본군의 수륙양용전차가 어뢰를 탑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실전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쓸데없는 기능을 넣느라고 개발계획이 지연되고 양산에도 지장을 주는 행동은 앞서 말했듯이 최종형까지 이어진다.
5.5. 늦은 출시 시기 및 부족한 수량
카미가 양산되기 시작한 1942년은 이미 일본군에게 좋은 시절은 다 끝나가고 있던 시기였고, 해군육전대도 공격적인 상륙작전보다는 각지의 섬을 지키는 방어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이런 상황에서 생산된 카미는 그냥 육상전차로서 남양 군도나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의 방어용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런 임무에서는 수륙양용기능은 그냥 쓸모없고, 육상전투에서는 약한 장갑이라는 문제점이 더 드러나는 등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육상전차로 투입된 카미는 수륙양용설비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수송선으로 전선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중에 수륙양용기능이 필요해도 장비가 없어서 수륙양용전차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카미는 수륙양용기능을 가지고 있고, 내부 구조가 복잡한데다가 방수처리까지 하는데다가 잠수함에서 수중발진할 목적으로 타국의 수륙양용전차에 비해 과도하게 수압에 대응하는 내구력과 튼튼한 방수처리까지 요구하므로 양산공정이 완전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므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려웠다. 여기에 부품도 다른 전차와 호환되지 않는 특제가 필요하므로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는 부작용까지 겹치자, 가장 많이 기록된 생산수량이 겨우 184대였다.
여기서 184대 정도면 그럭저럭 많이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전차가 184대 생산되었다는 것은 시제품 재활용이나 특수용 차량으로 취급받기 딱 좋다. 당장 37mm 전차포탑으로 무장한 미국의 LVT(A)-1은 510대, 비슷한 기종인 LVT(A)-2는 450대, 75mm 곡사포탑으로 무장한 LVT(A)-4는 1,890대가 양산되었으며 이들은 상륙장갑차의 화력지원용 변종이라서 전체 생산수량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수량으로서는 원래 목적인 상륙작전용으로 사용하기에도 모자란다. 따라서 특수제작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 녀석이 수량도 한줌인데 정작 필요한 시기까지 놓쳤다.
6. 실전
6.1. 사이판 전투
순항중인 일본 제국 해군 소속 카미[3] |
상륙함에서 발진 대기중인 일본 제국 해군 소속 카미 소대[4] |
특2식 내화정 카미는 일본 제국 해군 육전대 소속으로 배치되었고 히로시마현 쿠레항에는 Q기지라고 하는 특형 내화정 전문의 훈련장도 건립되었다.
사이판 전투에서 10대가 배치된 것이 카미의 최초 전투로 기록된다. 이 때의 카미는 수륙양용성능을 발휘할 필요가 없으므로 플로트와 전망탑, 환기탑을 제거한 육상용 전차로 사용되었다. 보통 카미는 빈약한 장갑과 약한 화력으로 인해 땅 속에 반쯤 묻혀서 고정포대겸 토치카로 사용되었으면 다른 일본군 전차처럼 특별한 전과는 거두지 못하고 전투에서 파괴되었다.
6.2. 필리핀 탈환전
레이테 만 해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후에 필리핀 탈환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레이테 섬에 역상륙하는 다호작전 (多号作戦)중 1944년 12월 11일 야간에 발생한 제9차 수송선단이 2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으며 400명의 해군 육전대원과 10대의 카미 및 그 외의 보급품, 물자등을 적재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륙해안은 이미 미국 제55사단이 장악하고 있었고 일본군은 해당 해안이 미군에게 넘어간 사실을 몰라서 집중사격을 받으면서도 일본군의 오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상륙중에 병력은 흩어지고 카미 1대가 해상에서 격파당했다. 상륙병력은 일본 제국 육군 제26사단과 합류했으나 그 동안의 전투로 보유한 카미를 모두 상실하고 전차 승무원을 포함한 잔존병력은 일본 제국 육군과 합류해서 미군에게 저항하게 된다.랄프 줌브로 (Ralph Zumbro)가 쓴 책인 탱크 에이스 (Tank Aces)에서는 카미와 미국의 수륙양용장갑차인 LVT-1과의 교전이 발생해서 카미가 격파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전투는 수륙양용기갑차량끼리 벌인 유일한 실전사례다. 그리고 LVT-1는 카미처럼 장갑이 빈약한 물건이었다.
7. 생존차량
애국 공원 소장 카미 |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애국 공원에 카미 1대가 플로트 및 환기탑을 장착한 채 전시중인데, 이 차량은 쿠릴 열도에 배치된 일본군 수비대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과거 일본이 위임통치령으로 점령중이던 섬에 카미의 잔해가 남아있다고 한다.
자주대공포 카미의 잔해 |
특이하게도 96식 25mm 고각기총의 2연장 기관포좌를 후방 플로트 내부에 장비한 자주대공포형이 남아있다. 아마 전선에서 현지 개조했을 확률이 높다.
8. 후속 차량
카미의 뒤를 이어서 일본은 계속 수륙양용전차를 개발했다. 하지만 카미 이후에는 실전에 투입하지 못했으며, 어뢰무장같은 쓸데없는 무장을 고집하는데다가 프로토타입도 완성하지 못하거나 양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수준의 소량만 양산되었다.- 특 3식 내화정 카치
1식 중(中)전차 치헤를 기반으로 카미를 대형화한 차량. 47mm 전차포탑을 탑재하고, 방어력도 일부 구획은 50mm까지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플로트를 사용하는데다가 생산량이 19대에 불과해서 전력이 되지 못했다.
- 특 4식 내화정 카츠
카미와는 달리 병력수송용 수륙양용차량으로 개발되었다. 13mm 중기관총 2정의 무장에 전면만 10mm의 방어가 가능한 물건이지만, 플로트를 사용하지 않고 차체가 배 모양이므로 미국의 상륙장갑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18대만 생산되었으며, 가장 많은 수량을 기록한 문헌도 50량이 고작이라 전력이 되지 못했다. 특이하게도 잠수함에서 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예 상륙해서 지상전까지 하겠다고 98식 중박격포를 장착하려했다. 그러다가 전쟁 후기엔 450mm 어뢰 2기를 탑재할 수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서 잠수함에서 발진해서 적 함대를 공격한다는 말도 안되는 특공 작전이 기획되었다.
- 특5식 내화정 토쿠
특3식 내화정 카치를 개량해서 무장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한 차량. 선회포탑에는 25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차체에 47mm 주포를 탑재한 다포탑 전차같은 물건이다. 여전히 플로트를 사용하지만 차체전면주포를 사용하기 위해 전면 플로트의 높이가 낮아졌으므로 조종수의 시야가 개선되었다. 하지만 패전시까지 개발도 끝나지 않아서 프로토타입도 완성되지 못했다.
9. 평가
착상은 좋았으나 주인도 잘못 만난데다가 시기를 맞추지 못했고, 수량도 적었다.수륙양용전차를 다른 국가도 생각해보고 연구해서 만든 사례는 많다. 그러나 일본처럼 본격적으로 바다에서 사용할 용도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천, 늪지대, 호수등을 건널 용도로 만든 물건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착상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잠수함에 탑재하여 아군 기지에 1회성 증원용 상륙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일본 제국 해군의 특이한 교리를 반영해서 일반적인 수륙양용전차와는 전혀 동떨어지게 만들어진데다가 어뢰장착기능 등 쓸데없는 기능을 연구 및 적용했고, 개발시작시기도 늦은데다가 양산시기는 더 늦어서 막상 카미가 양산후 배치될 시점에서는 일본군이 더 이상 이런 종류의 물건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다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복잡한 내부구조와 특제 부품으로 인해 생산량도 제2차 세계 대전 기준에서는 한 줌도 안되는 180여량이라는 악재의 연속이 발생했다. 게다가 플로트등의 설계약점이 발생했으며, 화력과 장갑도 미국의 장갑차량보다 약한 관계로 인해 실전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데다가 미군의 상륙장갑차에게 격파당하기까지 하는 등 카미는 비운의 길을 걸었다.
이런 점은 전시설계(戰時設計)의 한계점이 많이 작용했으므로 조금 더 시간과 비용을 주었다면 개선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카미를 개발한 주인이 돈도없고 기술도 없고 야전에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신성한 덴노 헤이카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막아버리던 일본군이었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카미는 많은 가능성을 가진 물건이었으나 쓸쓸히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0. 미디어
10.1. 게임
10.1.1. 배틀필드 V
배틀필드 V의 카미 |
일본군 장비로 플로트를 달고 나온다.
10.1.2. 워 썬더
카미 지상형 |
플로트 및 부가 장비를 전부 탈거한 상태인 카미 지상형이 일본군 2랭크 경전차로 등장한다. 항행용 플로트가 탈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부력으로 물 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신기를 보여준다. 물론 수상 운용에 필요한 플로트가 없기 때문에 물위에서는 매우 느린속도를 보여준다.[5]
10.1.3. 전함소녀
특 4식 내화정이 어뢰로 등장한다.10.1.4. 함대 컬렉션
장비로 등장한다. 특수능력으로 일부 육상기지 형태의 적에게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함대 컬렉션 Arcade에서도 등장. 2식 내화정 상륙 컷씬
10.1.5. 인리스티드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 전차로 등장한다.위의 워 썬더처럼 플로트가 없는데도 잘만 떠다닌다.
기관총이 3개나 달려서, 대보병 화력은 쓸만하다.
10.2. 만화
10.2.1. 걸즈 앤 판처
걸즈 앤 판처의 카미 |
걸즈 앤 판처 최종장 제2화의 치하탄 학원과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 간의 대결에서, 치하탄 측이 위장풍선을 씌우고 밤에 오아라이 팀을 은밀 감시, 기습 공격할 때 썼다.
11. 모형
11.1. 프라모델
드래곤 모델 제품. 35 스케일은 일본 해군 사양(플로트 없음)과 육군 후기형(플로트 동봉판) 두 제품, 72 스케일은 해군 사양 둘(플로트 없는 버전과 플로트 있는 버전), 육군 후기형(플로트 있는 버전)으로 발매했다.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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