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7 19:11:11

치니

파일:시제중전차치니.jpg
製中戰車 "チニ"
1. 개요2. 제원
2.1. 개발2.2. 사장 이후
3. 미디어4. 둘러보기

1. 개요

오사카 육군 조병창이 전간기에 개발한 프로토타입 중형전차.

2. 제원

<colbgcolor=#ffffff> 시제 중전차(試製中戰車) "치니(チニ)"
제원
개발기관 오사카 육군 조병창
탑승 인원 3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전장 5.26m
전폭 2.21m
전고 2.32m
전비 중량 9.8t
장갑 8 ~ 25mm
주무장 97식 57mm 전차포 1문
부무장 7.7mm 97식 중기관총 1정
엔진 미쓰비시 A6120VDE I6 디젤 엔진
최고 출력 120hp
현가 장치 벨 크랭크 현가장치
최고 속도 30km/h
출력비 12.24hp/t
항속 거리 200km
생산 댓수 1 ~ 3 (시제차만 생산)

2.1. 개발

일본군치로의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치하" 외에도 오사카 육군 조병창에서 또 하나의 전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시제 중전차 치니"로, 일단 포는 97식 57mm 전차포로, 치하의 것과 같았다.

중량은 9.8톤이며, 전면 장갑은 20mm 수준이었다. 일본군의 주장에 따르면 94식 37mm 속사포의 37mm 포탄을 중거리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개발 당시로는 상대적으로 준수한 스펙이었다.

또한 가격이 97식 전차보다 저렴하며, 95식 경전차와 부품을 상당부분 공유하였다. 그리고 치하에는 없는 참호 횡단용 디칭 테일을 부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찮았는데, 우선 전차 승무원은 전차장, 조종수, 기관총수의 3명으로, 1인용 포탑을 채용했다. 혼자서 주변 관측과 포격과 재장전을 모두 해보면 이게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다.[1]

단점이 있었지만, 상술한 장점들 덕분에 일본 육군 수뇌부에서는 모자라는 질양으로 메울 수 있다며 치니의 양산을 지지했으나 일선 부대의 장교들은 치니보다 장갑이 두꺼운 치하의 양산을 지지하였으며, 결국 양측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 오사카 육군 조병창에서 치니 전차를 생산하기로 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치니보다 성능과 가성비가 좀 더 우수한 치하가 제식 중(中)전차로 생산하는 안이 통과되며 결국 사장되었다.

2.2. 사장 이후

비록 설계 자체가 사장되었지만, 개발자였던 하라 토미오 육군 중장과 몇몇 기술자들, 장성들은 이 시안을 경전차로 변환하여 생산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치니보다 뛰어난 치하태평양 전쟁에서 고전하는 것을 보고 당장 치하 한대가 아쉬운 상황에서 이보다 성능이 더 열세인 치니 따위에게 수뇌부에서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으며, 결국 재생산 계획도 취소되면서 실전 기록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나마 하고의 차체에 치하의 57mm 포탑을 얹은 "케루"가 등장하며 간신히 치니의 컨셉트는 빛을 보았다. 시기도 너무 늦고 대전차 능력은 형편없어서 있으나마나한 성능이었지만 말이다.

3. 미디어

시제형 차량이었던데다 인지도가 바닥이었기에 등장하는 매체가 매우 드물다.

3.1. 게임

3.1.1. 월드 오브 탱크

파일:external/wiki.gcdn.co/Type_97_Chi-Ni_scr_2.jpg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한 시제 중전차 치니
2단계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4.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대전기(1914~1945) 냉전기(1945~1991) 현대전(1991~)




[1] 대전 초 프랑스군이나, 소련군도 사실 이렇긴 했다. 전차장이 관측, 포격을 혼자 다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시의 경전차나 중형전차는 아예 조종수와 전차장 2명만 탑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화력과 중장갑으로 단점을 메꾼 프랑스군이나 포탑의 개량으로 이를 해결한 소련군과 달리 일본은 그럴 역량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