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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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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유진 워너
Kurtis Eugene Warner
출생 1971년 6월 22일 ([age(1971-06-22)]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아이오와 주 벌링턴
신체 188cm, 100kg
포지션 쿼터백
출신대학 노던 아이오와 대학교
프로입단 1998년 FA 계약 [1]
소속팀 아이오와 반스토머스(AFL)[2] (1995~1997)
암스테르담 어드미럴스(NFL 유럽) (1998)
세인트루이스 램스 (1999~2003)
뉴욕 자이언츠 (2004)
애리조나 카디널스 (2005~2009)
1999-00 NFL 정규시즌 MVP
터렐 데이비스(RB)
(덴버 브롱코스)
커트 워너(QB)
(세인트루이스 램스)
마셜 포크(RB)
(세인트루이스 램스)
2001-02 NFL 정규시즌 MVP
마셜 포크(RB)
(세인트루이스 램스)
커트 워너(QB)
(세인트루이스 램스)
리치 개넌(QB)
(오클랜드 레이더스)
2008-09 시즌 NFL 월터 페이튼 상
제이슨 테일러(DE)
(마이애미 돌핀스)
커트 워너(QB)
(애리조나 카디널스)
브라이언 워터스(OG)
(캔자스시티 칩스)
제 34회 슈퍼볼(1999-2000, XXXIV) MVP
존 엘웨이(QB)
(덴버 브롱코스)
커트 워너(QB)
(세인트루이스 램스)
스티브 맥네어 (QB)
(테네시 타이탄스)
레이 루이스(LB)
(볼티모어 레이븐스)

1. 개요2. 커리어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기록5. 여담

1. 개요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세인트루이스 램스뉴욕 자이언츠애리조나 카디널스.

2. 커리어

대학풋볼 무명교인 노던 아이오와 대학 출신으로 학교풋볼 명문이 아니고 본인도 철저한 무명이라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는 NFL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했다. 결국 슈퍼마켓에서 계산원 알바를 뛰면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약식 실내풋볼 리그인 아레나 풋볼 리그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FA세인트루이스 램스와 계약에 성공한다.

그러나 램스는 그를 야구의 윈터리그 비슷한 NFL의 오프시즌 리그인 NFL 유럽의 암스테르담 애드미럴스로 보냈다. NFL 유럽에서 1년을 보내고 1999년 램스의 백업 쿼터백으로 로스터에 들어가게 된다. 그 해 램스의 주전 쿼터백은 트렌트 그린이었으나 그린이 시즌 시작도 하기 전에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자 주전 쿼터백으로 신분이 급상승하였다. 지잡대 출신에다가 졸업할 때 NFL의 지명도 못 받은 실내풋볼리그(Arena Football League) 출신의 듣보잡 쿼터백이 이끄는 전통적인 약체 세인트루이스 램스라 당연히 시즌 시작 전에는 강력한 최하위 후보였다.

이후 아레나 풋볼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패스에 눈을 뜬 워너는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램스의 홈구장인 에드워드 존스 돔도 아레나 풋볼과 환경이 비슷한 돔구장이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고, 주변에 특급 와이드 리시버 토리 홀트와 아이작 브루스,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영입한 명예의 전당 러닝백 마셜 포크라는 삼각편대가 워너의 패스를 받았으며 NFL보다 공격템포가 빠른 아레나 풋볼리그의 특성을 살린 과감한 패싱으로 시즌 시작부터 승승장구하면서 NFL의 대표적인 약체 램스를 창단 이래 두 번째 슈퍼볼로 이끌었다. 그렇게 올라간 슈퍼볼 XXXIV(2000)에서는 스티브 맥네어가 이끄는 테네시 타이탄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슈퍼볼 우승과 슈퍼볼 MVP를 거머쥐었다.[3] 당시 경기는 'The Longest Yard'로 요약할 수 있는 경기였다.

슈퍼볼 우승 이후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쿼터백으로서 마셜 포크, 토리 홀트, 아이작 브루스 등의 동료와 함께 팀을 강팀으로 변모 시키며 2년 후인 36회 슈퍼볼(2002)에 다시 진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어 드래프트 6라운드 출신 톰 브래디가 이끄는 AFC 우승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게 4쿼터 중반까지 잡은 리드를 날리고 종료 막판 끝내기 필드골로 역전패. 이처럼 불과 2년 만에 눈물겨운 분투를 하는 듣보잡 쿼터백에서 강력한 슈퍼볼 우승 후보의 슈퍼스타 쿼터백으로 위치가 바뀌었다가 듣보잡 쿼터백의 대역전극 파란의 희생양이 되는 드라마를 쓰면서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압도적 우세라는 예상을 뒤엎은 역전패 이후로는 각종 부상에 시달리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백업 쿼터백인 마크 벌저가 갑툭튀하는 바람에 결국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면서 드래프트 논란 대상이던 일라이 매닝사수 역할을 하게 된다. 1년간 일라이 매닝의 사수 역할을 끝마친 뒤, 이제 쓸 일이 없어졌다고 여겨지고 자이언츠에서 방출된다.

자이언츠에서 방출되자 맘먹고 1라운드에서 뽑은 USC 출신 대학 MVP 쿼터백 맷 라이너트가 생각보다 성장이 더뎌서 고민 중이던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뉴욕 자이언츠와 마찬가지로 경험 풍부한 전직 슈퍼볼 우승 쿼터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수로서 데려가게 된다. 그러나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서서히 기량을 회복하더니 사수 역할을 맡을 말년병장 정도를 기대하던 팀의 예상을 뛰어넘고 맷 라이너트를 백업으로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다.[4] 25년간 (우승 한번도 아니고, 슈퍼볼 진출 한번도 아닌) 플레이오프 진출 경력이 딱 한번인 NFL의 대표적 최약체 팀을 창단 이래 최초의 슈퍼볼로 이끌면서 또 한번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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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를 맞은 애리조나 카디널스 시절

그렇게 진출한 43회 슈퍼볼(2009)에서는 하인스 워드가 있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격돌,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4쿼터 후반에 한때 역전에 성공했으나 4쿼터 막판 종료를 남겨두고 벤 로슬리스버거의 터치다운 패스로 재역전패. 아쉽게도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슈퍼볼 도전 실패의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해 또 다시 슈퍼볼 우승에 도전하지만, 슈퍼볼 준우승팀은 다음해에 몰락한다는 징크스마저 극복하고 애리조나 이전 후 최초로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으나 뉴올리언스 세인츠에게 디비저널 라운드에서 패배, 세인트루이스 시절부터 계속 괴롭혀 온 부상이 도져서 결국은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현재 명예의 전당 헌액과 관련해서 가장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선수 중 1명이다. 1999년 데뷔한 이래 부상 탓에 풀타임 주전으로 뛴 시즌이 데뷔 첫해 3년(1999~2001), 마지막 3년(2007~2009)밖에 되지 않지만 그동안 2개의 팀에서 3번의 슈퍼볼 진출(1999,2001,2008)을 이끌었고 우승 1회(1999), AP선정 정규시즌 MVP를 2번이나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슈퍼볼 우승 쿼터백의 가치가 아닌 쿼터백과 넘사벽인 NFL에서 슈퍼볼 3회 진출, 1회 우승, 정규시즌 MVP를 2번이나 수상한 선수를 명예의 전당에서 뺄 수 있을지.[5]

그러던 2017년 2월 4일, 명예의 전당에 드디어 헌액되었다! 누적 스탯이 다른 HOF 쿼터백에 비해 떨어지긴 하나, 짧은 기간 동안에 보여준 임팩트가 워낙 컸던 덕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으로 보인다.

3.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스타일은 일명 건슬링어. 마치 서부영화의 총잡이들이 빠르게 총을 뽑듯이 스냅받자마자 빠르게 퀵패스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일격 전법에 능했다. 뛰어난 와이드 리시버가 퍼스트 스텝으로 코너백을 제끼면 그를 놓치지 않고 찔러주는 패스가 일품.

4. 연도별 기록

시즌소속팀출장
경기
패싱러싱
시도성공성공률 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인터
셉트
색야드 레이트 시도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1998 STL 1 11 4 36.4 39 3.5 0 0 0 0 47.2 0 0 - 0
1999 16 499 325 65.1 4353 8.7 41 13 29 201 109.2 23 92 4 1
2000 11 347 235 67.7 3429 8.9 21 18 20 115 98.3 18 17 0.9 0
2001 16 546 375 68.7 4830 8.8 36 22 38 233 101.4 28 60 2.1 0
2002 7 220 144 65.5 1431 6.5 3 11 21 130 67.4 8 33 4.1 0
2003 2 65 38 58.5 365 5.6 1 1 6 38 72.9 1 0 0 0
시즌소속팀출장
경기
패싱러싱
시도성공성공률 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인터
셉트
색야드 레이트 시도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2004 NYG 10 277 174 62.8 2054 7.4 6 4 39 196 86.5 13 30 2.3 1
시즌소속팀출장
경기
패싱러싱
시도성공성공률 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인터
셉트
색야드 레이트 시도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2005 ARI 10 375 242 64.5 2713 7.2 11 9 23 158 85.8 13 28 2.2 0
2006 6 168 108 64.3 1377 8.2 6 5 14 104 89.3 13 3 0.2 0
2007 14 451 281 62.3 3417 7.6 27 17 20 140 89.8 17 15 0.9 1
2008 16 598 401 67.1 4583 7.7 30 14 26 182 96.9 18 -2 -0.1 0
2009 15 513 339 66.1 3753 7.3 26 14 24 172 93.2 21 10 0.5 0
NFL 통산
(12시즌)
124 4070 2666 65.5 32344 7.9 208 128 260 1669 93.7 173 286 1.7 3

5. 여담

  • 부인인 브렌다 미오니(Brenda Carney Meoni)와는 1997년 10월에 결혼했다. 부인은 미합중국 해병대에서 복무했으며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애가 두 명이 있는 이혼녀였다. 그 중 큰아이가 유아기 때 전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좌뇌를 다치고 시력을 잃어 브렌다가 결국 해병대 제대를 하게 만들었던 상황이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였으며 그 후 다섯 명의 자식을 더 얻었다. 브렌다의 부모님 집 지하실에 신접살림을 차리는 등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레나 풋볼에서 슈퍼마켓 알바까지 뛰면서 헌신적으로 돌본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려지면서 커트 워너는 일약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래서 별명도 Cinderella Boy.
  • 대학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엘리트들이 득실득실한 NFL에서 듣보잡 무명에서부터 시작해 정상급 스타의 자리까지 오르고 역경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가 팬들을 감동시킨 인간미를 느끼게 한 쿼터백이었다. 겸손한 성격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선수로서 동료들에게 덕망이 높았다. NFL의 현역선수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존경하는 현역 선수'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 아울러 독실한 침례회 신자이자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적인 사생활 및 가정생활을 보인 선수로도 유명한데, 현역 시절부터 현재까지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과 함께 매년 미국내 해비타트를 비롯한 수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범시민이기도 하다. 이것을 인정받아서 2008-09 시즌에는 NFL 월터 페이튼 상(Walter Payton NFL Man of the Year Award)[6]까지 받았을 정도.
  • 아들 케이드(Kade Warner)는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와이드리시버로 뛰다가 2021 시즌을 앞두고 캔자스 주립대학교로 전학하였다. 네브래스카 대학교의 주장이었던 주전 쿼터백 애드리언 마르티네스(Adrian Martinez)도 케이드와 같이 2021시즌을 마친 뒤 같은 학교로 전학하였다. 이후 케이드는 2023년 NFL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지명되지는 못했고 2023 프리시즌에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미지명선수(undrafted)로 입단하여 프로 데뷔를 했다.
  • 템플 대학교 주전 쿼터백인 E.J. 워너 또한 커트 워너의 아들이다. 6남매라는 대가족이다 보니 2003년생 막내 라인에 속하는 E.J.가 이제 막 2022-2023 시즌을 True Freshman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첫해부터 선발에 뽑힐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반응이다. 2024년 시즌 부터는 라이스 대학교로 편입해서 활약하게 되었다.

[1] 원래는 후술할 1994년 NFL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해서 그린베이 패커스의 훈련 캠프에 직접 찾아와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1년도 안 돼서 방출당했고 3년 정도를 알바와 아마추어 풋볼리그를 전전하다가 98년에 세인트루이스 램스와 FA 계약을 체결하고 프로에 데뷔했다.[2] AFC의 전신인 American Football League가 아니라 Arena Football League이다[3] 이 때 정규 시즌 MVP도 차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99-00 시즌 워너 이후 패트릭 마홈스슈퍼볼 LVII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무려 22년 간 정규 시즌 MVP가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없었다. 심지어 그 톰 브래디조차 이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4] 게다가 라이너트는 워너가 떠난 뒤에도 계속 부진하며, 카디널스의 흑역사로 남았다. 더한 흑역사 쿼터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5] 우승 기여도의 가치가 낮은 야구에서는 그런 경우가 몇몇 있다. 역시나 전성기는 찬란했지만 그것이 너무 짧았던 로저 매리스(1960, 1961 AL MVP)를 비롯해 데일 머피(1982, 1983 NL MVP)와 약쟁이 후안 곤잘레스(1996, 1998 AL MVP) 모두 기자단 투표에서 탈락한 상태. 투수로 따지면 사이 영 상을 두 번 받고도 첫 투표에서 바로 광탈한 요한 산타나도 있다.[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보면,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받은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