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5:50:45

카니예 웨스트/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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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첫 번째 협업2.2. 디자이너 입봉2.3. 스타일 변화와 도약2.4. 아디다스 이지 런칭과 성공2.5. 스트리트 패션 주류화의 선봉장2.6. Donda, 절정에 이르다2.7. 보이콧 이후 독립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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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니예 웨스트퍼렐 윌리엄스 등의 뒤를 이어 2010년대부터 미국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손 꼽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옷만 잘 입는 것 뿐만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로서도 스트리트 패션의 흐름을 가장 앞단에서부터 주도해왔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급팽창하기 시작한 스니커즈 리셀 열풍은 카니예의 AIR YEEZYAdidas Yeezy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퍼져 나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 산업 주류로 편입되기 이전인 2010년대 초중반부터 수 많은 디자이너들을 거느리며 그들의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준 리더이기도 하다.[1]

2. 역사

2.1. 첫 번째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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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즐겨 입던 베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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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과 2집으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에는 라코스테, 폴로 등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을 선호하며 프레피룩을 즐겨 입었다. 퍼렐 윌리엄스, 니고 등 동년배 패셔니스타들과 어울리며 베이프 유행에 편승했다.[2]

특히 2007년 1월에는 Bape Star Low FS-001이라는 신발을 내놓으며 본인의 첫 번째 협업도 베이프와 진행했다.[3]

2.2. 디자이너 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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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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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본인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브랜드인 루이 비통과 협업하여 FW09 컬렉션에서 세 가지 스타일의 스니커즈를 공개한다.[4][5] 또한 로트바일러 티셔츠를 유행시키는 등 리카르도 티시가 이끌던 지방시 제품을 자주 입고 다니면서 칸예의 영향력은 본격적으로 하이엔드까지 범위가 확장된다.

2009년 4월에는 나이키와 협업하며 AIR YEEZY 1을 출시하는데, 해당 협업은 스니커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리셀 열풍이 부는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6]

2006년부터 버질 아블로, 돈 씨, 킴 존스[7], KAWS[8], 베이프[9] 등과 함께 “Pastelle”이라는 본인의 브랜드를 기획 해왔으나 2009년 VMA 난입 사건으로 인해 최종 런칭하는 데에 실패하였고 사무실을 폐쇄 조치했다.[10] 이로 인해 미국 내 대표적인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낙인 찍혀서 욕은 욕대로 먹고, 파파라치가 역대 최고치로 들러 붙게 된다. 이 시기 카니예는 일본에서 한 달 좀 안되게 디자인을 하다 같은 해 가을, 로마에 위치한 펜디로 가서 동료 버질 아블로와 5개월 간 인턴으로 일하기도 하는 등 미디어로부터 잠시 멀어진다.[11]

2.3. 스타일 변화와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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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엘라 복면과 함께한 Yeezus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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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과 2012년 각각 12 S/S와 12 F/W 시즌으로 여성 라인을 쇼에 공개했으나 업계로부터 엄청난 혹평을 받은 뒤 공개한 AIR YEEZY시즌 2. 2012년 6월에 Solar Red와 Pure Platinum 컬러웨이가 공개되었다. 이후 계약 연장을 위해 카니예가 나이키에게 판매액 5%의 로열티와 더불어 더욱 독점적인 디렉팅 권한을 요구하였으나, 이미 업계 1인자였으며 비 운동선수와의 장기계약이라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던 나이키가 이를 거부하자 재계약이 불발되었으며 마지막 협업 작품인 레드 옥토버는 2014년 2월 나이키 임의로 출시된다.

한편 이 시기부터 패션 철학에 있어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Yeezus 작업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던 중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다 르 코르뷔지에미니멀리즘모더니즘 디자인에 빠지게 된다. 이후 정적이며 무채색 계열의 의류들이 그의 주류 아이템들이 되고 데님과 봄버자켓 등을 애용한다. 브랜드도 메종 마르지엘라, 보테가 베네타, 비즈빔, A.P.C와 같이 심심한 의류들을 즐겨 입었다.[12][13]

2.4. 아디다스 이지 런칭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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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정규 7집 리스닝 파티 및 이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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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3년 12월 그는 나이키의 1인자 자리를 넘보는 아디다스로 보란듯이 이적하며 거액의 계약금은 물론 높은 로열티와 강력한 디렉팅 권한까지 받으며 아디다스 이지를 런칭한다.[14] 이지부스트 350을 시작으로 에어 조던 1 이후 스니커즈 신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열풍을 일으킨다. 이후 350의 흥행 덕분에 2016년 6월 아디다스와 10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여 거액의 계약금과 더불어 10% 내외의 매출 로열티를 얻어내게 된다.

한편 2015년 2월에 진행된 칸예의 이지 시즌 첫 번째 풀 컬렉션에는 훗날 패션계를 휩쓸게 되는 거물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해당 연도를 기점으로 카니예는 스트리트 패션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등극한다. 대표적으로 뎀나 바잘리아, 제리 로렌조, 버질 아블로 등이 해당 컬렉션에 참여했다. 이 외에 2023년 까지 지방시를 이끌었던 매튜 윌리엄스도 비슷한 시기 칸예의 의상제작자로, 데님 티어스슈프림으로 2020년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트레메인 에모리는 창작 컨설턴트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 이들이 현재 패션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칸예의 엄청난 선견지명을 옅볼 수 있다. 이지부스트 외에도 정규 7집 The Life Of Pablo 활동 당시 만든 PABLO 머천다이스들은 디자인적으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아 이 또한 수 많은 리셀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15]

라프 시몬스 라이엇 봄버 자켓을 입은 사진이 퍼지면서, 봄버 자켓과 빈티지 아카이브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5. 스트리트 패션 주류화의 선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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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오밍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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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스트리트 패션 업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분기점으로 뽑힌다. 베트멍을 이끌던 뎀나 바살리아가 발렌시아가에 부임한 뒤 스피드 트레이너, 트리플 S를 공전의 히트시키고 구찌, 루이 비통, 디올, 아크네 등의 하이엔드 브랜드들도 이 기류에 편승하면서 순식간에 업계의 대세는 그간 천시받던 스트리트로 흐르게 된다. 비슷한 시기 그의 절친한 동료인 버질 아블로는 유색인종인 것과 더불어 비주류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 패션 비전공자라는 절대적 마이너리티를 극복하고 루이비통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로 부임한 뒤 다수의 컬래버 제품들을 출시하였고, 또 다른 칸예의 동료 제리 로렌조가 이끄는 피어 오브 갓 또한 Essentials 라인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면서 스트릿무드는 단순 하입이 아닌 일련의 거시적인 유행을 주도하게 된다.[16] 오랜 기간 서유럽의 전통적 하이엔드 브랜드 및 평론가로부터 저급하다며 끊임없이 비판 받아왔던 칸예와 그의 동료들이 마침내 1선에서 패션 업계 전반을 직접 주도하는 위치까지 도약하여 흐름을 반전시킨 것이다.

그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이지부스트도 마찬가지로 350 V2와 700, 500의 대성공으로 인하여 인기가 절정에 달했고 아직 물량이 풀리기 전이라 리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쏟았다. 여러 언론들은 이지부스트를 에어 조던 신화에 비교하기 시작했다.[17] 한편 이 시기 칸예는 공사판 노동자스러운 그런지룩, 모내기룩을 주로 선보이며 조거팬츠와 크루삭스, 어글리슈즈 조합의 에슬레저 패션을 유행시킨다.[18]

2.6. Donda, 절정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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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의 생전 마지막 컬렉션인 S/S22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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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에는 미국의 의류 브랜드 GAP과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아디다스 건과 마찬가지로 GAP은 칸예에게 매우 큰 디렉팅 권한을 주었다. Donda 리스닝 파티에 미발매 YEEZY x GAP 제품을 입고 나왔으며 첫 번째 제품으로 패딩[19]을, 후속으로 '퍼펙트 후디'를 발매했다.[20] 칸예와 같은 불안정한 사람과 무려 10년 계약을 한 것도 모자라 디렉팅 권한을 매우 많이 주어 갭이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으나, 이후 갭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기존의 아저씨들이나 입는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시킨 매우 성공한 계약이 되어 양측 모두에게 이득을 안겨 준 윈윈계약 사례가 된 줄 았았으나…

또 2022년에는 발렌시아가와 협업을 진행한 다크웨어 의류들[21]이 꽤나 인기를 끌게 되었고[22] 특히 2020년대 접어들어 스트리트 패션이 시들고 바지 기장이 전반적으로 넓어지는 뉴트로 트렌드가 급부상함이 따라 기존 이지부스트 라인들의 인기가 시들해지던 찰나 이지 슬라이드, 이지 폼 러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과거 본인이 주도했던 어글리 계열 신발들의 마지막 호흡기를 때버렸다. 명실상부한 제 2의 전성기로 이번에는 대부분의 하이엔드 브랜드들까지 세부적으로 신발 쉐입을 따라하고 폼을 적용시키는 등 패션 업계에서 보여주는 파급력 자체는 이지부스트 런칭 초기보다 오히려 큰 편이다.[23][24]

2.7. 보이콧 이후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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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 이후 새로운 아내 비앙카와 선보인 새로운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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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담


[1] 세인트 마이클 설립자 칼리 드윗, 오프화이트 설립자 겸 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ALYX 설립자 겸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 피어 오브 갓 설립자 제리 로렌조, 데님 티어스 설립자 겸 슈프림 수석 디자이너 트레메인 에모리, 저스트 돈의 설립자 돈 C, 헤론 프레스톤의 설립자 헤론 프레스톤, JJJ자운드 설립자 저스틴 손더스, 엔타이어 스튜디오의 설립자 딜런 리차즈와 세바스티안 헌트, 어 콜드 워 설립자 사무엘 로스, 모와롤라의 모와롤라 오군레시 등이 카니예의 밑에서 일했거나 그와의 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2] 셋 다 패션 비전공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각각 겐조, 루이 비통, 아디다스에서 큰 축을 담당하게 된다.[3] 국내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당대 최고 패셔니스타 퍼렐 윌리엄스를 필두로 흑인 뮤지션들이 애용하며 베이프는 2000년대부터 이미 흑인 문화에 깊게 스며들었다. 특히 당시 부틀렉 문화의 선봉장 격이었다.[4] Jasper/Don/Mr.Hudson의 종류. 7월에 출시했다. 당시에는 슬림핏을 유행시킨 에디 슬리먼의 영향으로 인해 하이탑 신발이 나름 인기가 있던 시절이라 Jasper가 단연 인기가 높았고 Mr.Hudson은 로우탑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필적하는 정도의 인기를 구사하기도 했다.[5] 당시 루이 비통을 이끌던 마크 제이콥스는 카니예와 당시 안면이 없었으나,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진정성과 창의성을 느끼고 협업을 충동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6] 나이키가 운동선수 외의 인물과 협업하는 첫 사례이다.[7] 컨설턴트[8] 로고 디자인[9] 유통[10] 파스텔은 훗날 이안 코너가 부활시켰다. 2023년 11월 컴플렉스콘을 통해 데뷔했다.[11] 펜디와 컨택하기 전에는 라프 시몬스와 먼저 컨택하기도 하였으나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12] 그와 아내 킴 카다시안 소유의 LA 맨션 리모델링에도 제임스 터렐, 클라우디오 실버스타인(Claudio Silverstein), 엑슬 버부트(Axel Vervoordt) 등의 미니멀리즘, 모더니즘 성향의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를 통해 이 시기 칸예가 추구하던 스타일을 확실히 옅볼 수 있다.[13] 미니멀과는 별도로 에어 조던 1 브래드와 로열블루 등의 색상을 상당히 즐겨 신으며 조던 레트로 유행에 기여했다.[14] 이 당시만 하더라도 카니예 본인의 역량보다는 나이키의 마케팅과 인지도 덕분에 에어이지가 흥행할 수 있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15] The Life Of Pablo 머천다이스의 디자이너 칼리 드윗(Cali Dewitt)은 2020년 세인트 마이클 브랜드를 전개하기 시작한 이래로 2023년에는 본니트 등이 크게 히트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16] 피어 오브 갓의 제리 로렌조 역시 나이키와 협업을 하여 에어 피어 오브 갓이라는 새로운 디자인의 슈즈를 내놓는 등 꽤 대우를 받았었지만 2020년 아디다스로 넘어왔다.[17] 모든 사람이 이지 제품을 신게 만들 거라는, 대놓고 예전보다 희소성은 조금 낮추려는 의도가 보이는 칸예의 말에 따라서 여러가지 컬러웨이로 색상만 바꾸어 꾸준히 재발매되면서 2020년대 들어서는 가격 거품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18] 이 때문에 50센트나 솔자 보이와 같은 래퍼들에게 '노숙자 옷'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적도 있을 정도.[19] 처음엔 패딩에 지퍼가 없고 무슨 까만 비닐에 공기를 가득채운것 같은 디자인으로 호불호가 갈렸으나 적당한 유광 및 시크한 색감과 부해보이면서도 안정적인 핏을 구현하며 인기가 많아졌다. 로에베가 FW22에 비슷한 봄버자켓을 출시하는 등 영향력이 있었다.[20] 무늬 하나 없는 후드티일 뿐이지만 매우 깊은 색채와 안정적인 핏이 구현됐으며 90 달러치고는 굉장히 높은 품질을 보여 주어 꽤나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스웻셔츠를 가장 먼저 상용화시킨 업체인 러셀 애슬래틱스의 더블레이어 제품을 복각 재해석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후드끈이 없으며, 보온성이 뛰어나고 옷의 각이 잡혀있는 실루엣을 띈다.[21] 앞선 퍼펙트 후디가 러셀 계열의 느낌을 풍기는 반면 발렌시아가 협업 스웻과 후디는 스웻셔츠계의 또 다른 양대산맥인 챔피온의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펑퍼짐한 실루엣, 드롭숄더, 그래픽, 얇은 두께 등이 특징이다.[22] 협업 뿐만 아니라 2022년 상반기에만 개인적으로도 무려 한화 52억 원 어치의 발렌시아가 제품을 개인적으로 구매했다고 밝히는 등 발렌시아가를 상당히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다.[23] 2000년대부터 릭오웬스라프 시몬스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시도들은 먼저 했으나 이들은 전성기 시절에도 카니예 정도의 메인스트림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카니예 웨스트만의 헤리티지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나 결국 이를 메인스트림 영역으로 끌고 올라온 장본인은 그인 것 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24] 2021년 이지 총 매출이 20억 달러 가량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디다스 전체 매출의 8% 가량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