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4 17:26:25

초위왕

초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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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초(楚)나라 20대 왕
위왕
威王
미(羋)
웅(熊)
상(商)
아버지 초선왕(楚宣王) 웅량부(熊良夫)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329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339년 ~ 기원전 329년

1. 개요2. 치세3. 대중매체에서
3.1. 중국 드라마 미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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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나라의 36대 군주, 20대 . 성은 미(羋), 씨는 웅(熊), 휘는 상(商). 초 선왕의 아들이며 초회왕의 아버지다. 월나라를 멸망시켜 절강성까지 세력을 넓힌다.

2. 치세

초 위왕 2년(기원전 338년), 진(秦) 효공이 죽고 아들 영사가 뒤를 이으니 그가 혜문왕이다. 이후 진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나 상앙이 사형을 당한다. 그러자 초나라는 한나라, 조나라, 진나라와 힘을 합쳐 위나라를 압박하고자 했다.

초 위왕 3년(기원전 337년), 한소후, 조숙후, 촉나라 왕과 함께 진 혜문왕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초 위왕 7년(기원전 333년), 전영(田嬰)이 초나라와 친선을 맺는 척 하면서 월나라를 부추겨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자, 초 위왕은 제나라를 공격해 서주(徐州)에서 제군을 격파하고 제왕에게 전영을 축출하도록 위협했다. 장축이 전영이 축출되어 전반자가 중용되면 불리할 것이라고 거짓으로 말하자 초 위왕은 전영을 축출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게 되었다.[1]

같은 해에 월나라를 공격하면서 월왕 무강(無彊)을 죽이고 오 지역을 손에 넣게 되자, 장강 남안에 석두성을 쌓았다.[2] 그의 치세 동안 초나라의 영역은 사수 유역에서 장강 중•하류까지 확대되었다.

왕은 장자(莊子)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자에게 많은 예물을 줘서 장자가 올 수 있도록 맞이해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거절당했으며, 위나라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소양에게 화씨벽을 하사했다.[3]

초 위왕 11년(기원전 329년), 위왕이 죽고, 그 아들 웅괴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초회왕이다.

3. 대중매체에서

3.1. 중국 드라마 미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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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월전의 등장 인물. 조문선 役

미월, 미주의 아버지로 초나라의 군주.

상앙이 처형된 소식을 전해듣던 밤 태사령 당매에게 6국을 발 아래에 둘 패성의 징조가 보이며 곧 패왕이 태어날 것이란 소식과 뒤이어 승은을 내린 향씨의 회임 소식을 듣게 되자 매우 기뻐하며 향씨에게 부인의 지위를 내린다. 그러나 태어난 것이 막상 딸이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해 예언을 했던 태사령을 불러 추궁하고[4] 벌을 내려 내쫒는다. 그리고 아기의 생사에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위후가 그 아이의 운명을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하자 동의했다. 그러나 연못에 흘러내려갔음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아이의 운에 감탄하며 "저 아이는 복을 받을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달이 밝으니 이름을 미월(芈月)이라 하자."며 이름을 하사한다.

그러나 이후 미월이 4살이 되도록 향씨는커녕 거희도 찾지 않았고, 그렇기에 어느날 편전에 갑자기 들어온 미월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5] 겨우 미월이 누군지 떠올리고 나니 이젠 미월을 낳은 게 누군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거 진짜 너무하시네 그래도 자신에게 겁먹지 않고 태연하게 다가와 노는 미월에게 부친으로서의 애정을 느끼고 슬쩍 몰래 들어올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려준다. 또한 그간 향씨가 느꼈을 외로움도 깨닫게 되어 그날 밤 위후와의 저녁 약속도 미루고 찾아간다. 이후 다시 총애를 되찾은 향씨와 미월을 자주 찾으면서 미월의 솔직담백하고 거침 없는 성격을 보며 사내아이였다면 좋을 것이라 아쉬워한다.

출정으로 장기간 궁을 떠나게 될 때 위후와 태자에게 궁의 업무를 맡기고 떠나기 직전 향씨에게서 아들 미융을 보았고, 미월을 한동안 못보는 것에 아쉬워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나 출정에서 돌아오고 뜻밖에도 향씨가 병사했다고 위후에게 전해듣고 가인박명이라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비밀 통로를 통해 찾아온 미월에 의해 향씨가 살아있으며, 위후에 의해 쫒겨난 것을 알게 되고 바로 향씨를 회궁시킨다. 그러나 향씨는 입궁하자마자 위후의 처소에서 독을 마시고 죽었고, 그 때 자리에 도달한 그에게 '위후의 짓이다.'라는 증언을 듣게 된다. 곧바로 위후를 처벌하려고 고심하나 출정을 장기간 다녀왔기 때문에 상당히 몸이 약해져 있었고 태자가 와서 모후를 용서해달라고 징징거리는 통에 배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급작스레 사망해서 위후를 처벌하지 못하고 말았다.


[1] 《사기》에서는 제선왕, 《죽서기년》에서는 제위왕 때의 일이다.[2] 훗날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도 건업의 방어성인 바로 그 석두성이다.[3] 훗날 소양은 화씨지벽이 없어지자 빈객 중 가장 가난한 장의를 의심해 매질하여 그가 진나라에 가는 원인을 만들었다.[4] 태사령 왈 그 애가 초나라에 흉할지 길할지 모르겠고 저는 성별은 이야기 안했잖아요.(...)라고 해서 더 빡쳤다.[5] 본인 왈 자식이 하도 많아서 모른다고. 나중에 공주들이 모여있는 거 보면 많기는 많다(...). 이에 미월은 흥!하며 삐진 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