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0px -10px" | <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f2023>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d4a1a1><colcolor=#FFD700> 이름 | 진 티어니 Gene Tierney | |
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1960년 2월 8일 | ||
위치 | 6125 Vine Street |
<colbgcolor=#262626><colcolor=#ffffff> 진 티어니 Gene Tierney | |
본명 | 진 일라이저 티어니 Gene Eliza Tierney |
출생 | 1920년 11월 19일 |
뉴욕주 브루클린 | |
사망 | 1991년 11월 1일 (향년 70세) |
텍사스주 휴스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
활동 | 1938 ~ 1980 |
신장 | 166.4cm |
배우자 | 올레크 카시니[1](1941년~1952년 이혼) W. 하워드 리(1960년~1981년 사별) |
자녀 | 장녀 다리어 커시니(1943. 10. 15 ~ 2010. 9. 11) 차녀 크리스티너 커시니(1948. 11. 19 ~ 2015. 3. 31) |
[clearfix]
1. 개요
2. 위상
국내에선 지명도가 낮지만 4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배우들 중 하나다. 그러나 연기보다는 강렬한 이미지와 미모 그리고 사생활에 얽힌 비극적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편.3. 생애 및 활동
티어니는 보험중개인인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2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익혔으며 스위스의 교양학교를 다니는 등, 그야말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상류층 아가씨였다.17살 때 가족여행 중 제작자로 일하는 어머니 사촌[2]을 만나기 위해 잠시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감독 아나톨 리트박[3]의 눈에 띄었다. 워너는 당장 계약하고 싶어했지만 급료가 너무 낮다며 부모님이 반대해 무산됐다.
티어니는 원래 자신의 세계로 돌아와 사교계에 데뷔했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연기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대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무대 연기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뉴욕에서 연기를 배운 후 1939년 "What a Life!"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했다. 여러 찬사를 받으며 주목을 끌던 티어니는 1940년 <돌아온 프랭크 제임스>로 할리우드에 데뷔한다.
경력 초기엔 관능적인 비영어권 외국 미녀 역으로 잘 나왔다. 이후엔 상류사회 귀부인 역으로 많이 나왔다.
대표작으로 <로라>(1944), <유령과 뮤어 부인>(1947) 등이 있다. <애수의 호수>(1945)를 통해 극찬을 받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후술할 비극으로 인해 양극성 장애가 심해지고 우울증에 깊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티어니는 한동안 활동 자체를 중단해야했다.
1962년, 티어니는 <워싱턴 정가>에 출연하며 영화계로 돌아왔지만 1964년 <The Pleasure Seekers>에 출연한 후 은퇴했다.
3.1. 외모 특징
당시에 추구하던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좀 있었다.열렬한 예찬자들을 거느리며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까지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광대뼈가 높고 눈 사이가 멀고 얼굴형이 각진 터라 영화계 진출 초반엔 제작자들이 이 특이한 미모를 다루는 데 난항을 겪어 인도인, 남미인, 이집트인, 남태평양 원주민 등 이국적인 역을 많이 맡겼다.
사진 속의 머리 모양은 아믈럿 폴드(Omelet Fold)라고 하는데, 티어니가 <돌아온 프랭크 제임스>(1940)로 스타가 되면서 유행 시켰다. 말 그대로 오믈렛을 만 것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회색기가 도는 청록색 눈을 갖고 있었다. 영상과 사진 속에선 광각과 광량에 따라 파란색과 녹색, 회색과 검은색 사이를 오간다.
3.2. 장녀 관련 비극
티어니의 정신병 원인인 풍진과 첫째 딸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 극적인 요소로 인해 널리 알려졌는데 자세한 사정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 남편 올레크 카시니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위로 복무하는 동안 임신 중이었던 티어니는 1943년 USO(미군 위문 협회) 투어에 참여했다가 풍진에 감염되었다. 풍진은 홍역과 비슷하게 발진과 미열이 나타나는 전염력 높은 감염성 질환으로 증세 자체는 가볍지만 임산부에게는 치명적인데, 태아에게 심한 기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4]
티어니의 딸 다리어 커시니는 1.42kg밖에 안 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백내장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눈이 멀고 청각에도 문제가 있는 농아였으며 정신지체아이기도 했다.
그런데 투어로부터 2년이 흐른 어느 날, 티어니에게 여성팬 한 명이 접근해 자신이 위문 투어중인 티어니를 만나려고 풍진에 걸린 채 격리소에서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국채를 구입한 이들의 볼에 키스를 해주는 이벤트를 했었는데 해당 팬도 그 이벤트를 받았던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티어니는 망연자실했다. 후에 티어니는 "그 여자와의 첫 번째 만남은 기억나지 않지만 두 번째 만남은 평생동안 기억할 것이다"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이 일로 티어니는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적도 있고 1957년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 소설같은 일화는 실제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깨어진 거울"에서 그대로 차용되었다.[5] 1980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티어니에 해당되는 역을 맡은 TV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부분은 2016년 9월 2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루었다.
다리어 커시니는 티어니의 지인인 하워드 휴즈의 지원으로 시설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았고, 2010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3. 사망
에바 가드너, 바버라 스탠윅 같은 여타 황금기 스타들처럼 골초였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화난 미니마우스'처럼 들려서 목소리를 낮게 만들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1991년, 지속적인 흡연이 원인으로 추측되는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향년 70세.
4. 주요 출연 작품
<rowcolor=#ffffff> 연도 | 작품 | 배역 |
1940 | 돌아온 프랭크 제임스 | 엘러노어 스토운 |
1941 | Tobacco Road | 엘리 메이 |
Belle Starr | 벨 셜리 스타 | |
상하이 제스처 | ||
썬다운 | ||
Hudson's Bay | ||
1942 | Rings on Her Fingers | 수전 밀러/린더 워딩턴 |
Son of Fury: The Story of Benjamin Blake | 이브 "이버" | |
Thunder Birds | 케이 손더스 | |
1943 | 천국은 기다려준다 | 마서 스트레이블 |
1944 | 로라 | 로러 헌트 |
1945 | 애수의 호수 | 엘런 베런트 할런드 |
A Bell for Adano | ||
1946 | 면도날 | 이저벨 브래들리 |
드래곤윅 | 미랜더 웰즈 | |
1947 | 유령과 뮤어 부인 | 루시 뮤어 |
1948 | The Iron Curtain | |
1950 | 골목길이 끝나는 곳 | |
Whirlpool | 앤 서튼 | |
밤 그리고 도시 | ||
1951 | Close to My Heart | |
교배 기간 | 매기 칼튼 맥널티 | |
헨리의 사랑찾기 | 릴리 두랜 | |
Close to My Heart | 미지 쉐리든 | |
탈옥자의 비밀 | 마셔 | |
1952 | 사선을 넘어서 | 도러시 브래드퍼드 |
1954 | Black Widow | 아이리스 덴버 |
1955 | The Left Hand of God | 앤 스캇 |
1962 | 워싱턴 정가 | 달리 해리슨 |
1964 | The Pleasure Seekers | 제인 바튼 |
5. 사생활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와 사겼다는 얘기와 휴즈가 접근했으나 차였다는 얘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티어니는 "나는 하워드가 모터가 달리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휴즈는 티어니의 장녀 다리어 커시니가 최상의 치료를 받게 해주고 치료비를 전부 자신이 지불했으며, 티어니는 휴즈의 친절을 평생 잊지 못했다.첫 번째 남편 패션 디자이너 남편 올레크 카시니와 별거 중이던 1946-7년에 존 F. 케네디와 일 년간의 만남 후 헤어졌다. 1952년 티어니와 이혼한 카시니는 그레이스 켈리와 진지하게 교제했으나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캐서린 헵번과 몇 년 째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유부남 스펜서 트레이시와도 <사선을 넘어서(Plymouth Adventure)>(1952)를 찍으며 관계를 가졌다.
1952년 리타 헤이워스와 이혼 과정에 있던 알리 칸 왕자와 사귀기 시작해 1년 간 약혼 상태를 유지했으나 알리 칸의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티어니는 알리 칸과 헤어져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헤디 러마의 다섯 번째 남편 W. 하워드 리와 불륜으로 만나 리가 러마와 이혼하자마자 결혼했다.
6. 여담
- 1986년 산 세바스찬 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 듀나가 진 티어니의 팬이다. 듀나가 쓴 티어니에 대한 에세이가 듀나 홈페이지에 하나 있고, 2005년에 쓴 연재식 칼럼을 긁어온 곳은 여기 있으니 티어니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추천.
일러스트레이터 멜 오돔이 할리우드의 황금기(1930-50년대)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진 마셜'이라는 패션 인형과 꽤 닮았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애쉬턴드레이크 사[6]에서 생산되었으며 애쉬턴드레이크 사 최고 인기 품목이었다. 2005년부터는 Integrity Toys로 옮겨져 2010년까지 생산되었다.
[1] Олег Кассини. 1913 - 2006. 영어권에선 올레그 커시니(Oleg Cassini).[2] Gordon Hollingshead.[3] Анато́ль Литва́к. 클로뎃 콜베어와 샤를 부아예 주연의 코미디 <Tovarich>(1937), 에드워드 G. 로빈슨,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The Amazing Dr. Clitterhouse>(1938), 베티 데이비스와 에롤 플린 주연의 <The Sisters>(1938) 등을 연출했다.[4] 임신 초기에 산모가 처음 풍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태아의 90%가 선천성 풍진 증후군(congenital rubella syndrome)에 걸리게 되지만, 임신 16주에 감염되면 0-20%에서만 발생하고, 임신 20주 이후에는 드물다. 자궁 내 사망이나 유산(의학), 또는 저체중아의 출산, 심장 기형, 뇌성마비, 청력 장애, 백내장, 소안증, 녹내장, 뇌수막염, 지능 저하, 간비종대 등이 주요한 증상이다.[5] 스포일러 해당 작품에서는 노려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 버렸다.[6] Ashton-Drake Gall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