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00:24:27

지기스문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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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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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스문트 2세
Sigismund II · ジギスムント2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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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A
인물 정보
<colbgcolor=#eee,#222>신체 정보남성, ???cm, ?형
생몰년?
재위SE 453. 5. 1. ~ SE 469(16년)[1]
가족 관계율리우스(증조부) 프란츠 오토(할아버지)
(사촌동생), 오토프리트 2세(아들)
국적 및 소속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위은하제국 황제
별칭치우제,痴愚帝,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없음
1. 개요2. 생애
2.1. 즉위2.2. 폭정2.3. 폐위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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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oldenbaum-Dynasty.png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파일:Goldenbaum-Dynasty.png
율리우스지기스문트 2세오토프리트 2세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제7대 황제다. 본명은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 제위기간은 제국력 144년 ~ 160년.

바보 황제(痴愚帝, 치우제)라는 멸칭이 붙을 만큼 은하제국의 암군으로 평가받는 황제다.

2. 생애

2.1. 즉위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 후작은 6대 황제 율리우스를 대신해 제국을 사실상 통치했던, 프란츠 오토 황태자의 차남의 아들이었다. 또한 황태증손 대공의 사촌형이기도 했다. 황족이었던 만큼 브로네 후작에게도 제위계승권이 있었으나, 프란츠 오토 대공의 죽음 이후 제국은 차기 제위계승자로 칼 대공을 선택해 황태증손에 책봉한 뒤였다. 따라서 브로네 후작이 제위에 오를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칼 대공이 율리우스 황제를 시해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황제가 건강하게 장수한다면 자신은 제위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 끝에 칼 대공은 후궁들을 매수하여 황제를 독살했고, 그 뒤 입막음을 위해 매수한 후궁들에게 자살을 명령했다. 그러나 후궁 중 하나가 죽기 전에 사건의 진상을 근위사단 장교로 일하던 오빠에게 전달했다. 그 장교는 복수를 위해 칼 대공 다음가는 제위계승자였던 브로네 후작을 찾아왔고, 이로 인해 브로네 후작은 칼 대공을 몰아낼 명분을 얻었다. 브로네 후작은 이 사건의 진상을 공표하는 대신, 궁정 내에 공작을 벌여 칼 대공이 제위계승권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제국력 144년 5월 1일, 브로네 후작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은하제국 7대 황제 지기스문트 2세로 즉위했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던 민중과 중신들은 당연히 칼 대공이 즉위할 줄 알았으나, 브로네 후작이 제관을 쓰는 모습에 경악했다고 한다.

2.2. 폭정

지기스문트 황제는 즉위 과정에서 보이듯 지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기스문트에게 '바보 황제'라는 멸칭이 붙은 결정적 이유는, 재위기간 동안 은하제국의 국고와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그의 사치행각과 국정농단 때문이다.

지기스문트 2세는 배금주의적이고 탐욕이 많은 황제였다. 그는 국고는 오직 자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사치에 쓰일 재물을 마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징세권을 부유한 상인이나 대귀족에게 팔아치우고, 형사범의 죄를 돈으로 갚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미녀를 후궁으로 들일 때 막대한 지참금을 요구하고, 후궁을 신하에게 하사할 때도 엄청난 예물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수영장 바닥에 에메랄드를 깔고, 진주식초에 녹여 마시며, 백금다이아몬드로 자신의 관을 짜고 사후세계에서도 후궁을 가지려고 순금 미녀상 600개를 주조하게 하는 등 어마어마한 세금낭비를 자행했다.

황제가 이렇게 막대한 사치를 일삼으니 국정 또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지기스문트 2세는 조부 프란츠 오토 대공을 보좌했던 국무상서 한 백작, 재무상서 베링 제국기사, 군무상서 케텔러 원수 같은 걸출한 명신들을 해임했고, 국무상서 바르텐베르크 후작, 재무상서 루겐 백작, 군무상서 나우가르트 자작 등 자신의 심복들을 공작으로 승격시켜 그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이들은 전임자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나우가르트는 제국원수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고작 500명 정도를 지휘한 경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 세 신하들은 황제의 끝없는 금전욕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열과 성을 다했을뿐더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선대 황제 율리우스도 지기스문트 2세 못지않게 재위기간 내내 놀고 먹기에 바빴던 황제였다. 그럼에도 그의 재위기간 동안 제국의 국고는 오히려 안정됐는데, 그는 사실상 황제 노릇을 하던 프란츠 오토 대공이 정한 선 내에서 사치를 했고 또 프란츠 오토가 아버지가 쓰는 것 이상으로 국고를 채워넣었기 때문이다.[2] 그러나 그런 유능한 인물이 곁에 없던 지기스문트 2세는 국고를 대책 없이 펑펑 써댈 수밖에 없었다. 끝내 그는 역사상 최악의 금치산자라는 불명예와 함께 제국을 파산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은하제국은 황제 곁에 붙어 이익을 얻은 극소수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로 나뉘어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민심은 서서히 제국을 떠나갔다.

2.3. 폐위

그러나 지기스문트 2세는 제국이 무너져가는데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금전에 대한 집착이 날로 심해지던 그는 무고한 거상 300명과 그 일족들을 처형한 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려 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황태자 오토프리트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 지기스문트 2세를 폐위하면서 그의 폭정도 막을 내렸다. 폐위된 지기스문트 2세는 장원에 연금됐고, 제위는 오토프리트 2세에게 넘어갔다.

오토프리트 2세는 증조부 프란츠 오토 대공이 통치하던 시절로 제국을 돌려놓기 위해 대대적인 복고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아버지를 보좌하던 세 대신들을 처형하고 그들의 재산까지 몰수했다. 그렇게 오토프리트 2세의 결단 덕에 제국은 멸망의 위기를 넘겼고, 멀어져가던 민심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제국을 너무나도 망쳐놓았던 탓에 그는 즉위 6년 만에 과로사했지만, 그 뒤를 이은 9대 황제 아우구스트 1세가 이를 잘 이어받으며[3] 제국은 한동안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장원에 연금된 지기스문트 2세가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소설에서 더 이상 언급이 없다. 물론 편한 여생을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지기스문트 2세가 즉위 전에 숙청해 정신병동에 가둬버린 사촌 칼 대공처럼, 똑같이 정신병동에 갇혀 평생을 유배된 신세로 살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3. 여담

  • 율리우스 황제의 독살과 지기스문트 2세의 궁정공작은 골덴바움 왕조 내내 은폐되었다가, 로엔그람 왕조 건국 이후 학자들이 골덴바움 왕조사를 편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 은하제국 역사상 최초로 폐위당한 황제로 이름을 남겼다. 참고로 처음으로 퇴위한 황제는 5대 황제 카스퍼이고, 처음으로 암살당한 황제는 6대 황제 율리우스이다.
  • 지기스문트라는 같은 왕호를 쓰고 있음에도, 선조인 지기스문트 1세와는 행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기스문트 1세는 선제의 뒤를 이어 제국의 기초를 다졌지만[4], 이쪽은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도 모자라 제국의 기초까지 갉아먹었다. 원작에서 나온 평가에 의하면 지기스문트 1세와 달리 지기스문트 2세는 정신의 균형을 잃었고, 이것이 지기스문트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가정적으로 괴짜에 폭군이지만, 정치적으로 명군으로 호평을 받은 아우구스트 1세와 대조적으로 아우구스트 2세는 폭군 살인마 황제로 악명을 떨치며 지기스문트와 아우구스트는 1세는 명군으로서 길이 남았던 반면, 2세는 암군과 폭군으로 반대로 악명으로 길이 남았다.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도 잘 알고 있다. 신하인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가 결혼하여 후계자를 얻으시라고 간청하자 지기스문트 2세나 아우구스트 2세같은 암군이나 폭군같은 황제가 내 후손으로 나올지 누가 아느냐며 탐탁지 않아했을 정도이다. 슈트라이트는 골덴바움 왕조에 그런 무능한 군주도 있었지만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같은 명군도 있었다고 재차 간청하는데 이번에는 라인하르트가 반론하지 못했다.

[1] 외전 2권 210페이지에는 16년으로, 212페이지에서는 15년으로 나온다.[2] 그리고 애초에 율리우스는 황제로서의 의무감 같은게 없는 사람으로 그런 율리우스가 황제가 된것은 순전히 아들인 프란츠 오토 덕분으로 프란츠 오토는 능력은 충분했으나 전임 황제의 갑작스런 퇴임으로 누가 황제가 되든 정통성 논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신들이 프란츠 오토가 아니라 그 아버지인 율리우스를 황제로 세우고 그가 죽은 뒤 프란츠 오토가 즉위하게 하여 부계계승이라는 정통성을 세워주고자 일부러 통치자로서의 자각도 능력도 없는 율리우스를 옹립한 것이다. 처음에야 율리우스가 무려 76세나 되는 노인이니 몇년 내로 죽을게 분명해서 그랬지만 예상을 깨고 20년이나 살면서 프란츠 오토가 먼저 죽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저정도에 이르자 중신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여겼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3] 비록 긴머리 페티시즘이라는 특이한 취향 때문에 이런저런 말이 많았고 자기를 속인 후궁을 물에 던져 죽일 정도로 엽기적인 면도 있었지만 국사에서만큼은 명군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유능했다.[4] 즉위 초기를 제외하곤 폭정을 일삼은 루돌프와는 달리,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선정을 펼쳤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은 루돌프 못지않게 잡아죽였지만, 그것도 재위 초기에 국한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