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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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Maximilian Josef Goldenbaum II マクシミリアン・ヨーゼフ2世 | |
| 인물 정보 | |
|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 남성, ???cm, ?형 |
| 생몰년 | ? ~ SE 666? |
| 재위 | SE 646 ~ SE 666?[1] (20여년) |
| 가족 관계 | 프리드리히 3세(아버지), 구스타프(형) 헤르베르트(동생), 리하르트(동생) 지클린테(배우자), 코르넬리우스(육촌동생, 양자) |
| 국적 및 소속 |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
| 최종 직위 | 은하제국 황제 |
| 별칭 | 청안제(晴眼帝)[2] |
| | ||||
| 구스타프 | → |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 → | 코르넬리우스 1세 |
1. 개요
Kaiser Maximilian Josef Goldenbaum IIThe Seer, The Rebuilder(혜안의 황제, 재건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청안제(晴眼帝)'로 번역되었다.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23대 황제이자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왕조 중흥을 이룩한 군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2. 생애
2.1. 즉위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은하제국 20대 황제 '패군제'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었다. 재능과 건강 모두 수준 이상이었지만 어머니가 하급귀족에 서자인 터라 문벌귀족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지방 영주에 만족해하며, 정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제위 계승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았다. 덕분에 헤르베르트(바로 아래 동생) 대공은 다곤 성역 회전 당시 '큰형은 어차피 오래 못 살 테니 살아있을 때 잘 모셔드리고, 작은형은 제 분수를 알고 있으니까 적당히 예우를 갖추면 되고, 동생 놈은 감히 내게 대항했으니 내가 즉위하면 반드시 손봐주겠다.'[3]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다곤 성역 회전에서 참패하면서 저 계획을 실현시키긴커녕, 헤르베르트 본인도 패배의 책임으로 계승권을 박탈당하고 별궁에 유폐되었다. 허나 그 오만방자한 헤르베르트로부터 전혀 경계를 사지 않았음은 물론, 적당한 예우까지 갖춰줘야겠다고 한 걸 보면 처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한 모양.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에 다곤 성역 회전의 패배로 헤르베르트가 몰락한 이후에도, 숙부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와 큰형 구스타프에 밀려 제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우주력 646년에 큰형 구스타프는 헤르베르트에 의해 독살당했고, 죽기 직전 차기 황제로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지명하며 손수 제관을 씌워주었다. 이렇게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골덴바움 왕조 제 23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황제의 즉위에는 행운도 따라주었다. 당시에는 황위 계승을 두고 황족, 귀족, 근위대 등 여러 세력이 얽혀 살육과 암투가 끊이지 않던 '검붉은 6년'으로 불리는 혼란기였는데, 황권이 약하고 귀족들의 권력이 강한 시대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귀족들이 이를 저지할 수 있었겠지만, 이 혼란기에 많이 지쳐있었는지 이 난장판을 끝낼 수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승인 혹은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2.2. 재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가 즉위할 때 쯤 은하제국은 후세에 '검붉은 6년'이라고 칭할 정도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유력한 제위 계승자였던 헤르베르트 대공이 몰락하면서 제위 계승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고, 그에 따라 음모, 테러, 비리, 암살, 미제사건 등등이 창궐하며 사망자 및 망명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구스타프의 예처럼 황제조차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으며 근위대를 믿지 못해 근위대를 견제하는 부대를 따로 창설할 정도였다.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즉위하자마자 군 수뇌부에 찍혀 변경으로 유배당한 오스발트 폰 뮌처 제국군 예비역 중장을 제도로 불러, 그를 사법상서로 임명하여 제국에 기승을 부리는 수많은 범죄와 음모를 일소토록 했다. 뮌처는 황제의 기대에 부응하여 제국의 음모와 비리 및 무고죄를 일소하여 '검붉은 6년'을 끝내는데 일조했다.
또한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재위 20여년 동안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동맹은 정복할 생각은 있었던지 침공계획을 세워두었으나 뮌처가 '거리의 폭거'를[4] 주장하자, 이를 받아들여 침공계획을 파기하고 단 한차례의 동맹령 원정도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검붉은 6년' 도중 근위대를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북원 용기병여단과 서원 보병여단을 폐지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인해 제위계승에서 멀어진 황족들과 부대가 폐지되면서 지위를 잃은 자들이 합심하여 황제 타도를 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황후 지클린데가 총을 휴대하며 황제를 곁에서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독을 먹고 시력이 크게 손상되어 반맹,半盲,이 되었다. 그러나 황제는 좌절하지 않고 황후 지클린데의 헌신적인 보좌와 사법상서 뮌처의 도움으로 제국을 개혁해 나갔다. 두 사람의 도움이 컸던지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좌절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서술될 정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제위기간 내내 수많은 업적을 세웠는데, 그중에서도 후대에게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히는 건 바로 열악 유전자 배제법의 사문화였다.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본인부터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여서 제국 내 장애인들의 불행한 처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열악 유전자 배제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은 물론 루돌프 대제가 남긴 다른 법들도 사문화시키면서 사실상 폐지시켰다. 다만 왕조의 창건자인 루돌프가 제정한 법률이었던터라 당대의 황제라 할지라도, 법 자체를 완전히 폐지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끝내 공식적으로 폐지시키지는 못했다.
이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20여년 동안 옥좌를 지키며 제국을 다스리다가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사람은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육촌동생이자 양자로 입적된 코르넬리우스였다.
3. 평가
은하영웅전설 8권에서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수석비서관인 슈트라이트가 '황후를 맞이하여 후계자를 얻으셔 대를 이어 제국을 유지하옵소서'라고 간청하자, 이에 "짐은 그런 마음이 없네, 그렇게 무능해도 자기 핏줄이라며 재위하던 못난 골덴바움 왕조 황제들을 따라하는 말인가?"라며 지기스문트 2세나 아우구스트2세같이 골덴바움 왕조에서 암군과 폭군으로 알아주는 둘을 거론하며 골덴바움 왕조에는 막돼먹은 황제들만 있다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슈트라이트는 재차 간청하길 '그 막돼먹은 골덴바움 왕조에서조차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나 오토프리트 2세 같은 명군도 있었사옵니다.'라고 말했고, 라인하르트도 이 말에 반론하지 못했을 정도니 그 업적은 골덴바움 왕조 역사상 으뜸가는 성군으로 추앙받을만했던 듯.[5] 골덴바움 왕조를 지독히도 증오했던 라인하르트가 뭐라고 반론하지도 못하고 입 다물 정도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군이라는 얘기가 된다.[6]그림멜스하우젠 자작이 평하기를 "역대 황제 중에서 몇 안 되게 사생아 논란이 없었던 깨끗하신 분."[7] 이를 보아 후궁이나 애첩은 일체 들이지 않고, 황후 지클린데에게만 충실하며 깨끗한 가정 생활을 영위한 듯하다.
원작자 서술에서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가 이룩한 업적은 훌륭했지만 반대로 그로 인하여, 그 골덴바움 왕조는 더더욱 수명을 연장했기에 골덴바움 왕조의 폭압이 이어진 역사에 그도 기여하고 말았다는 투로 나온다.[8] 어쩌면 작중에서 성군이라 해도 결국 전제군주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4. 기타
황후 지클린데는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시녀 출신에서 황후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여성의 활동이 제한적으로 묘사되는 제국에서 무장한 채 황제를 호위할 정도면 상당히 능동적이고 당찬 여성이었으며 황제의 신뢰가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 국왕 페드루 1세의 정부로 유명한 이녜스 데 카스트로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그녀에 대한 언급은 소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에 수록된 <다곤 성역 회전기>에서 헤르베르트 대공이 자신을 유혹하자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묘사된다. 당시 헤르베르트는 상당히 오만하며 이기적인 인물로 성장기에 고난을 겪은 적이 없는 그에게 있어 이 퇴짜는 '그나마 힘든 일'을 겪은 사건으로 남았다. 헤르베르트는 이것이 불쾌한 경험으로 남았는지 다곤 성역 회전을 앞두고 벌써부터 자신의 대승을 전제로 "감히 차기 황위 계승자를 무시한 죗값을 치루게 해주겠다"며 지클린데를 벌할 계획을 세우지만 졸전으로 비참하게 몰락하면서 다행히 그녀가 봉변을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 늦어도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이 벌어진 우주력 668년 이전에 사망했다.[2] 그 외에 청소제(淸掃帝), 재건제(再建帝)라는 별명도 있다.[3]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인 구스타프는 장남이기에 황태자로 책봉되었지만 황제, 황태자, 황자는 커녕 일개 개인으로서의 생활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허약해서 처음엔 황태자로 삼았던 프리드리히 3세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황태자를 교체할 생각을 했고(그래서 낙점된 게 헤르베르트) 둘째인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앞에서 나온 대로 어머니의 신분이 낮았다는 큰 결격사유가 있었고 넷째인 리하르트는 헤르베르트에 비해 계승권 순위가 낮기는 했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었던 데다가 막시밀리안 요제프와는 달리 어머니의 신분도 높았기 때문에 헤르베르트와의 경쟁에 나설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던 것.[4] 뮌처는 제국령과 반란세력권을 합쳐 은하계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확장된 인류사회를 무력으로 통일하고 지배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리의 폭거'를 주장했다.[5] 물론 라인하르트 말대로 골덴바움 왕조에서 막돼먹은 황제들이 많기는 했지만 지기스문트 1세, 오토프리트 2세, 아우구스트 1세, 코르넬리우스 1세 등, 정치를 잘하고 나라도 잘 다스린 황제도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만프레트 2세처럼 기대를 많이 받은 황제, 에리히 2세처럼 선황제가 초막장이던 탓에 비교우위로 성군 소리를 들은 황제도 있다. 애초에 골덴바움 왕조가 라인하르트 말대로 덜떨어진 황제들만 있었다면,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왕조가 유지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골덴바움 왕조는 희대의 폭군이나 암군이 나온 뒤에는 꼭 명군이 즉위하면서, 그 명군들이 선제의 폭정을 수습해서 왕조의 명줄이 계속 이어진 바 있다.[6]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가 열악 유전자 배제법이라는 악법을 사문화라도 시킨 걸 높이 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라인하르트는 작중 초반부터 유전자에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하찮은 이유로, 뛰어난 인재의 등용 자체를 막는 걸 넘어서 죽게까지 하는 열악 유전자 배제법을 매우 혐오했다.[7] 정확하게는 역대 황제들 중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제외하더라도 아주 드물다. 사실 만프레트 2세 같이 초 극단적으로 재위기간이 짧은 황제도 있었으니 사생활이 깨끗한 황제가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대부분은 사생활이 지저분했고 이 때문에 뤼네부르크가 황족 후손이라는 설에 이걸 예시로 들며 그럴 수도 아닐수도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8] 시기가 보면 딱 절묘한게 자유행성동맹과의 전쟁의 초반부 무렵이다. 즉 이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 중흥에 실패했다면 골덴바움 왕조는 더 빨리 몰락했을 것이고 자연스레 제국-동맹 전쟁도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