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22:34:22

장루이 트랭티냥

장-루이 트린티냥에서 넘어옴
장루이 트랭티냥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남우주연상
제21회
(1968년)
제22회
(1969년)
제23회
(1970년)
수상자 없음 장루이 트랭티냥
(제트)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질투의 드라마)

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로고.svg
은곰상 - 남자연기자상
제12회
(1967년)
제13회
(1968년)
제14회
(1969년)
미켈 시몬
(우리 둘)
장루이 트랭티냥
(거짓말을 하는 남자)
수상자 없음

역대 세자르 영화제
파일:cesarawards.png
남우주연상
제37회
(2012년)
제38회
(2013년)
제39회
(2014년)
오마르 시
(언터처블: 1%의 우정)
장루이 트랭티냥
(아무르)
기욤 갈리엔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

}}} ||
<colbgcolor=#000><colcolor=#fff> 장루이 트랭티냥
Jean-Louis Trintignant
파일:jean-louistrintignant.jpg
본명 장루이 그자비에 트랭티냥 (Jean-Louis Xavier Trintignant)
출생 1930년 12월 11일
프랑스 제3공화국 보클뤼즈 피올롱
사망 2022년 6월 17일 (향년 91세)
프랑스 옥시타니 가르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장 172cm
학력 폴 세잔 대학교
직업 배우
영화 데뷔 1955년, '이프 올 더 가이즈 인 더 월드'[1]
활동 기간 1951년 ~ 2019년
배우자 스테판 오드랑 (1954 결혼~1956 이혼)
나딘 트랭티냥 (1960 결혼~1976 이혼)
마리안 회프너 (2000 결혼)
자녀 마리 트랭티냥(1962~2003)
딸 폴린 트랭티냥(1969~1969)
아들 뱅상 트랭티냥(1973~)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장 피에르 레오, 장 폴 벨몽도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배우. 1960-70년대가 전성기였다.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업적이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남과 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 '위대한 침묵' 등이 있다.

2. 생애

집안이 금수저 집안이었고, 친척들이 레이서였다고 한다. 본인도 아마추어 레이서로 활동했다. 남과 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진보적 성향으로 생방송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당신의 영화에서 여성은 오브제의 역할에 지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무정부주의를 지향한다.

사생활에 있어서는 불행했는데, 차녀가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하고 2003년 리투아니아에서 프랑스 록밴드 누아르 데지르의 리더 베르트랑 캉타가 딸 마리 트랭티냥[2] 폭행하다가 죽게 만든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베르트랑은 출소 후 둘째 부인도 정신적으로 학대하다가 자살하게 만드는 등 반성 없는 인간 쓰레기의 극치를 보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데이트 폭력 사건 중 유명한 사건으로 한국에서 보도되는 등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형을 사는 둥 마는 둥 해서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3] 얼마나 유명했냐면, 마리의 양부였던[4] 영화감독 알랭 코르노가 타계했을 때 인연이 있었던 임상수가 부고에서 언급했을 정도.[5] 심지어 아직도 활동하고 있어서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예술가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프랑스의 적폐 사례로 언급될 정도.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로는 거의 은퇴상태였고 [6], 아무르로 간만에 돌아왔지만 침통한 심정을 밝혀 안타깝게 했다. 이조차 미카엘 하네케가 트랭티냥 팬이라서 간곡한 부탁으로 한시적으로 복귀한 것에 가까웠고, 결국 2018년 하네케의 해피엔드로 완전히 은퇴하기로 했다.[7] 그러나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에 출연하면서 2019년으로 연기되었다. 클로드 를루슈 쪽에서는 여전히 미련이 있는지 트랭티냥에게 2022년 1월 개봉할 신작 L'amour c'est mieux que la vie를 제안했지만 최종적으로 출연하지 않았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으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다가오는 것들에 위페르의 제자로 출연한 배우 로만 콜린카가 장루이 트랭티냥의 손자이다.[8] 마스크와 연기력이 괜찮은 편인데 배우 활동은 거의 부업에 가깝다. 조감독 경력도 있을 정도. 그나마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미아 한센뢰베 커플이 배우업을 제안했는지 이 두 감독 영화 위주로 조금씩 연기 활동 영역을 늘리고 있다.

2022년 6월 17일 사망했다. # 사망 직전 미셀 하자나비시우스의 2024년 애니메이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화물 나레이션을 녹음해뒀기에 이게 유작이 되었다.


[1] 장 가방 주연 영화이다.[2] 배우와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주연급 입지가 있었다. 마리에겐 당시 남편이 있었지만, 별거 상태였다고 한다.[3] 다만 잘 나가던 누아르 데지르는 이 사건으로 거의 활동 중지 상태에 빠졌다가 위 자살 사건이 터진 뒤 해체했다. 공식적으로는 '좋게 해체했다'곤 하지만, 다른 멤버는 인간적, 음악적으로 너무 달라서 탈퇴했다고 밝힌 걸 보면 과연 좋게 해체했을지는 의문.[4] 마리의 어머니인 나딘 트랭티냥은 1976년 장루이랑 이혼했다.[5] 어떤 미국인이 바람난 가족에서 등장하는 가정 폭력에 대해 "너네 나라는 아직도 남편들이 마누라를 이렇게 패냐?"는 비아냥 섞인 질문에 이 사례로 대답했다고 한다. 정작 코르노가 양부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고. 링크.[6] 그 이전에도 세 가지 색: 레드를 기점으로 영화보다 무대 쪽에 집중했다고 한다. 2007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거동이 편치 않았던 것도 있었다.[7] 당시 말기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2021년 11월엔 시력 감퇴도 있다고 밝혀졌다.[8] 위에 언급된 마리의 아들이다. 드러머 리차드 콜린카랑 얻은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