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8:27:55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잉리드 왕비에서 넘어옴
<colbgcolor=#FAE6FA><colcolor=#000000>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왕비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Prinsessan Ingrid av Sver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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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잉리드 빅토리아 소피아 루이세 마르가레타
(Ingrid Victoria Sofia Louise Margareta)
출생 1910년 3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 왕궁
사망 2000년 11월 7일 (향년 90세)
덴마크 프레덴스보르 프레덴스보르 궁전
장례식 2000년 11월 14일
덴마크 로스킬레 로스킬레 대성당
배우자 프레데리크 9세 (1935년 결혼 / 1972년 사망)
자녀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테, 아네마리
아버지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
형제 구스타프 아돌프[1], 시그바르드, 베르틸, 칼 요한
종교 루터교회
서명 파일:IngridOfSwedenSignature.svg.png
1. 개요2. 작위3. 일생
3.1. 어린 시절3.2. 왕세자비3.3. 왕비3.4. 왕대비
4. 평가5. 여담6. 가족관계
6.1. 조상6.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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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리드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코넛의 마거릿 공녀 사이의 자녀로,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아내이자 전 덴마크 국왕인 마르그레테 2세의 어머니이며, 현 스웨덴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의 고모이다. 가족 내의 애칭은 Prinsessan의 줄임말인 San.

2.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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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문장 모노그램

3. 일생

3.1.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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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8일 오전 3시경 스톡홀름에서 왕세자였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왕세자비 코넛의 마거릿 공녀 사이에서 셋째이자 고명딸로 태어났다.[2] 이름은 망누스 미니스키욀드의 아내 잉리드 일바[3]에게서 따왔다. 5월 5일 스톡홀름 왕궁의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대부모는 구스타프 5세, 빅토리아 왕비, 소피아 왕대비,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코넛 공작부인, 바덴 대공대비, 바덴 대공비, 달라르나 공작대부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애슬론 백작부인, 아달베르트 폰 프로이센, 웨일스 공이다. 스웨덴 왕실에서 1851년 이후 처음으로 태어난 직계 공주여서 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어머니인 마거릿 왕세자비와의 사이는 매우 각별했다. 각별한 모녀관계는 잉리드가 이후 의붓어머니가 되는 루이즈와 친해지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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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E6FA><rowcolor=#000>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와 잉리드
잉리드가 10살이 되던 해(1920년)에 그녀에게 큰 슬픔이 찾아왔다. 바로 어머니 마거릿 왕세자비가 잉리드 자신에게는 3번째 동생을 임신하던 중에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성인이 된 뒤 남은 눈물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절대로요.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내가 너무 빨리 어린 시절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하루가 다르게요. 아니요, 나는 다시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 마거릿이 사망한 3년 뒤, 아버지 아돌프 왕세자가 루이즈에게 청혼을 했다. 공교롭게도 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였기 때문에 마거릿은 물론 잉리드와도 친척 지간이었다.[4] 문제는 아돌프가 자녀들에게 재혼에 대해 언질을 주지 않았고, 이에 어머니와 유달리 각별했던 잉리드는 큰 충격을 받아 루이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을 위해 외가인 영국으로 떠나게 되어 루이즈와의 사이는 계속 어색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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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E6FA><rowcolor=#000> 외할아버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와 잉리드
잉리드는 후에 덴마크에 시집을 가서도 자신이 낳은 딸들에게 '외할머니는 마거릿 공주'라고 누누이 강조를 했다. 다행히 새어머니 루이즈에게는 잉리드 아래의 남동생들은 당시 나이가 어려서 새어머니를 잘 따랐다고 한다.

3.2. 왕세자비

잉리드는 영국에서 교육받으며 야외 스포츠를 즐겨 했는데 특히 승마스케이트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후에 자라면서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자[5]와 혼담이 오갔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6]

1935년 3월 15일 덴마크의 왕자인 프레데릭과의 약혼이 발표되었다.[7] 둘은 17년 전 여름 거주지였던 소피에로 성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프레데리크는 19세의 생도였고 잉리드는 8세였다. 프레데리크의 할머니는 스웨덴 출신의 공주(스웨덴의 로비사 공주)였기에 가까운 세대에서 혼맥으로 얽혀 있었고,[8] 이는 범 스칸디나비아적 동맹을 강화하는 좋은 계기였다. 1935년 5월 24일, 25살의 잉리드는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프레데릭과 결혼식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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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E6FA><rowcolor=#000> 결혼 사진
잉리드는 사이가 좋지 않던 남편과 시아버지 간의 부자 갈등을 완화하며 왕실을 안정시켰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테 공주, 아네마리 공주를 낳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영향으로 진지하고 딱딱했던 잉리드는 후일 덴마크가 웃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회고했다.

3.3.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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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시아버지인 크리스티안 10세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덴마크 국왕이 되면서 잉리드도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되고 나서 그녀는 왕실의 가정적인 분위기를 꾸리는 데 노력한다. 원래는 세 딸에게 왕위계승권이 없었으나 1953년 개헌으로 계승권이 부여되었고, 장녀 마르그레테가 왕세녀가 된다. 그리고 성년이 되고 심정적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잉리드는 새어머니인 루이즈와 점차 화해하게 되고, 생전에 교류도 하며 루이즈의 임종도 지켰다.

1968년에 장녀 마르그레테가 프레데리크를, 이듬해에 요아킴 왕자를 낳으면서 잉리드도 할머니가 되었다. [9]

3.4. 왕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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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E6FA><rowcolor=#000> 세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10]
1972년에 남편 프레데릭 9세가 세상을 떠나자 큰딸인 마르그레테 2세가 덴마크 여왕으로 즉위한다. 왕대비가 된 잉리드는 덴마크 의회에서 섭정 지위를 받는다. 큰딸 부부가 공무를 하러 가게 되면 외손자들의 양육을 직접 하며 덴마크 왕실의 가정적인 분위기와 안정적인 공무 수행,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힘썼다. 잉리드는 증손자 니콜라이 왕자(1999년생)의 출생까지 지켜보고[11] 1년 후 2000년 11월 7일에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4. 평가

잉리드 왕비는 덴마크에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12], 그녀가 인기를 많이 얻은 이유는 가정적인 왕실의 이미지를 각인 시켰기 때문이었다. 덴마크 왕실은 상당히 가부장적이었고 시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가 아내 알렉산드리네 왕비와 아들 프레데릭 왕세자에게 고압적으로 대했다. 잉리드는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를 중재하며 가족간의 갈등을 줄였다.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반 나치 행보였다. 1940년대의 덴마크는 나치의 점령[13]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녀는 저항의 의미로 마르그레테 공주의 방 문에 덴마크, 스웨덴, 영국의 국기를 달았다고 한다. 덴마크가 폭격을 당할 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장녀를 유모차에 실어 거리를 활보한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가 손녀를 매우 걱정하였으나 잉리드는 의연했고, 이러한 행보는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왕실에 대한 지지도를 높였다.

5. 여담

  • 잉리드의 사위들은 기이하게도 서열이 뒤로 갈수록 신분이 점점 높아진다. 첫째 사위 헨리크는 일반 귀족, 둘째 사위 리하르트는 슈탄데스헤어 가문 출신, 셋째 사위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의 왕이었다.
  • 난독증이 있었다.
  • 평생 아침마다 스웨덴 신문을 읽었다.

6. 가족관계

6.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Princess Ingrid of Sweden)
<colbgcolor=#FFF3E4,#331c00> 구스타프 6세 아돌프
(Gustaf VI Adolf)
<colbgcolor=#FFFFE4,#323300> 구스타프 5세
(Gustaf V)
<colbgcolor=#E4FFEC,#00330f> 오스카르 2세
(Oscar II)
나사우의 조피아 공녀
(Princess Sophia of Nassau)
바덴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Baden)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
(Frederick I, Grand Duke of Baden)[15]
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
(Princess Louise of Prussia)[16]
코넛의 공녀 마거릿
(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
(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프로이센의 루이제 마르가레테 공주
(Princess Louise Margaret of Prussia)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카를 왕자
(Prince Friedrich Karl of Prussia)[17]
안할트데사우의 마리아 안나 공녀
(Princess Maria Anna of Anhalt-Dessau)

6.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배우자 / 자녀
1녀 마르그레테 2세
(Margrethe II)
1940년 4월 16일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슬하 2남[18]
2녀 베를레부르크 공비 베네딕테
(Benedikte, Princess of Berleburg)
1944년 4월 29일 제6대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 공 리하르트
슬하 1남 2녀
3녀 그리스 왕비 아나마리아
(Anne-Marie, Queen of the Hellenes)
1946년 8월 30일 콘스탄티노스 2세
슬하 3남 2녀[19]


[1] 현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의 아버지[2] 오빠 2명과 남동생 2명을 두었다.[3] 발데마르와 망누스 3세의 할머니[4] 마거릿하고는 5촌, 잉리드 남매들하고는 6촌관계였다. 잉리드 입장에서는 6촌 큰 언니가 느닷없이 새어머니가 된 셈.[5] 조지 5세의 4남, 1902~1942. 훗날 그리스 왕국마리나 공주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지만 항공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6] 후에 조지 왕자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한다.[7] 청혼을 두 번 받았는데 처음에는 어리다고 거절했다.[8]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1세 기준으로 하면 8촌이다. 또한 바덴 대공 레오폴트 기준으로도 8촌이며, 파벨 1세의 기준으로 하면 11촌 관계가 되기도 한다.[9] 단, 첫 손주는 그리스 왕국으로 시집간 막내딸 아나마리아의 장녀(첫째)인 알렉시아 공주(1965년생)이다. 그리고 1967년에 태어난 아나마리아의 장남(둘째) 파블로스 왕세자도 있다.[10] 가운데 있는 여성이 잉리드 왕대비다. 잉리드 왕비 위쪽에 있는 여성은 장녀 마르그레테 2세이다. 왼쪽에 있는 여성은 차녀 베네딕테 공주이고,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삼녀이자 그리스의 마지막 왕비 아네마리이다.[11] 잉리드 왕비가 생전에 본 증손주는 니콜라이 왕자 외에도 막내딸 아나마리아그리스 왕비의 장남(둘째)인 파블로스 전 왕세자의 장녀(고명딸) 마리아올림피아 공주(1996년생), 장남 콘스탄틴-알렉시오스 왕자(1998년생), 차남 아킬레스안드레아스 왕자(2000년생, 타계 약 세 달 전인 8월 12일 출생), 둘째딸 베네딕테 공주의 장녀(둘째)인 알렉산드라 공주와 독일 옛 귀족(백작) 가문의 첫 남편(1998년 결혼, 2017년 이혼. 이후 알렉산드라 공주는 2019년에 다른 남자와 재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리처드(1999년생)가 있다.[12] 당시 왕실 지지도가 무려 90%였다.[13] 덴마크 보호령 항목 참고[14] 잉리드의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와 루이즈의 어머니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가 사촌지간이였다.[15] 구스타브 4세 아돌프의 외손자이다.[16]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1세의 외동딸이다.[17]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이다.[18] 프레데리크 10세, 요아킴 왕자[19] 그리스의 왕세자 파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