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2 09:42:16

일본 제국 육군성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나라별 육군부에 대한 내용은 육군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육군성
陸軍省 | Army Ministry
파일:일본 제국 육군기.svg
<colbgcolor=#b0313f><colcolor=#fff> 설립 <colbgcolor=#fff,#1f2023>1872년 2월 27일
폐지 1945년 12월 1일
후신 제1복원성, 복원청 제1복원국
내부부국
[ 펼치기 · 접기 ]
대신관방 (大臣官房)
군무국 (軍務局)
병무국 (兵務局)
법무국 (法務局)
의무국 (医務局)
경리국 (経理局)
인사국 (人事局)
정비국 (整備局)
병기국 (兵器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Japanese_Army_HQ_Ichigaya.jpg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쓰였던 도쿄 이치가야의 육군성 청사. 이전에는 육군사관학교 건물로 쓰였고, 지금은 이 자리에 방위성이 들어섰다.

1. 개요2. 역사3. 조직4. 관련 문서5. 역대 육군대신

[clearfix]

1. 개요

육군성([ruby(陸軍省, ruby=りくぐんしょう)])은 일본 제국 육군의 군정 부서였다.

2. 역사

1872년 병부성(兵部省)에서 해군성과 분리되었다. 해군성과 경쟁이 심해져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을 낳기도 했다. 초기에는 프랑스 육군을 모방했지만 곧이어 프로이센 방식으로 전환했다. 육군성의 수장은 육군대신이었는데 혼자 육군의 으뜸이 아니라 참모총장, 교육총감과 3인의 과두체제였다. 이를 육군 3장관이라 불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연합군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육군성은 폐지되었고 현역 군인들의 동원을 해제하면서 민간인의식주로 복귀하는 기능만을 남겨놓았다.[1] 제1복원성으로 개칭하였다가 후생성 내의 제1복원국이 되었다. 그렇게 사라질 뻔했는데 중화민국타이베이로 천도하고, 소비에트 연방과 외교관계가 점점 나쁘게 돌아가고,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고려하기 시작한 연합군 총사령부가 육상전력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했으며, 1952년에는 보안청을 설립했다. 다만 일본 제국 시기과 달리 일본국에서는 육군성과 해군성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방위성에 모두 귀속했다.

3. 조직

  • 간부
  • 역대 내부부국(内部部局)
    • 대신관방(????.??.??~????.??.??)
    • 군마국(1874.03.31~1886.03.01): 기병국 제3과로 계승.
      • 제1마굿간
      • 제2마굿간
    • 군무국(1890.03.??~1945.11.30): 종전 후, 제1복원성 총무국으로 승계.
      • 군사과: 제1군사과를 군사과로 개칭.
      • 보병과: 제2군사과를 보병과로 개칭.
      • 기병과: 마정과를 기병과로 개칭. 이후 병무국으로 이전.
      • 수의과
      • 포병과: 포병사무과에서 개칭.
      • 공병과: 공병국을 공병사무과로, 공병사무과를 다시 공병과로 개칭.
      • 병무과: 병무국으로 이전.
      • 방비과: 병무국으로 이전.
      • 병비과: 병무국으로 이전.
      • 징집과: 인사국으로 이전.
      • 정비과: 정비국에서 이전.
      • 항공과
    • 인사국(1900.05.20~1945.11.30): 제1복원성 업무국[4]으로 승계.
      • 공적조사부
      • 보임과
      • 은상과
      • 징집과: 병무국으로 이전.
    • 병기국(1908.12.21~1942.10.15): 외국(外局)인 병기행정본부로 개편.
      • 공정과
      • 기계과
      • 기재과
      • 총포과
    • 정비국(1926.10.01~1942.04.28): 폐지 후 군무국과 병무국, 연료본부로 업무 이전.
      • 작전자재정비회의
      • 공정과: 정비과에서 승계.
      • 동원과: 정비과에서 승계.
      • 교통과
      • 연료과: 정비과에서 자원과로, 자원과에서 연료과로 개칭.
    • 병무국(1936.08.01~1945.11.30): 종전으로 인해 폐지.
      • 병무과
      • 방비과
      • 방위과
      • 수의과
      • 규율과
      • 마정과
    • 경리국(1872.02.27~1945.11.30): 제1복원성 경리국으로 승계.[5]
      • 주계
      • 건축과
      • 의량과: 기존 피복과, 양말과에서 승계.
      • 조사과
    • 의무국(1871.07.05~1945.11.30): 병부성 군의료[6]에서 육군성 군의료, 육군성 군의부[7]를 거쳐 육군 군의본부로 개칭. 이후 의무국으로 재개칭되어 종전 이후 폐지.
    • 법무국(1888.11.??~1945.11.30): 육군성 판사부가 전신으로 1900년 5월, 법무국으로 개칭[8]. 종전 후 제1복원성 법무국, 복원청 제1복원국 법무조사부로 승계.
  • 역대 외국(外局)
    • 육군 축성부(1897.09.15~1945.04.29): 군 편제 개편으로 해산. 장관은 본부장이라 칭했다.
    • 육군 병기창(1897.09.??~1942.10.??): 육군 병기행정본부로 승계. 장관은 육군병기본창장이라 칭했다.
    • 육군 운수부(1904.04.??~1945.11.15): 종전 후 폐지. 장관은 운수부장이라 칭했다.
    • 육군 항공본부(1919.04.??~1945.11.??): 본래 육군 항공부로 설치되었으나, 1925년 육군 항공본부로 승격. 이후 육군 폐지와 함께 폐지. 장관은 본부장이라 칭했다.[9]
    • 육군 기술본부(1876.04.26~1942.10.??): 본래 육군성 포병회의, 공병회의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두 회의를 합병해 육군 기술심사부로 개편했다. 이후 기술본부로 승격했다.[10] 1942년에 육군 병기본부와 통합해, 육군 병기행정본부로 승계.
    • 육군 병기본부(1940.04.01~1942.10.15): 육군 기술본부와 통합해 육군 병기행정본부로 승계.
    • 육군 기갑본부(1941.??.??~1945.11.30): 종전으로 인해 폐지.
    • 육군 연료본부(1???.??.??~1???.??.??): 육군 연료를 담당.
    • 육군 휼병부(1???.??.??~1945.??.??): 육군 위문을 담당. 한국도 창군 초기 이를 본따 육군본부 내에 휼병감실이 존재했다. 장관은 휼병감이라고 칭한다. 종전으로 폐지.

4. 관련 문서

5. 역대 육군대신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육군경 (1873년~1885년)
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3대
사이고 주도
4대
오야마 이와오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rowcolor=#fff> 육군대신 (1885년~1945년)
1-4·6-7대
오야마 이와오
5·8대
다카시마 도모노스케
1-4·6-7대
오야마 이와오
5·8대
다카시마 도모노스케
9-12대
가쓰라 다로
9-12대
가쓰라 다로
13-14대
고다마 겐타로
15-17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15-17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18대
이시모토 신로쿠
19대
우에하라 유사쿠
20-21대
기고시 야스쓰나
22대
구스노세 유키히코
23대
오카 이치노스케
24-25대
오시마 겐이치
26·30대
다나카 기이치
27-29대
야마나시 한조
27-29대
야마나시 한조
26·30대
다나카 기이치
31-33·35대
우가키 가즈시게
34대
시라카와 요시노리
31-33·35대
우가키 가즈시게
36대
미나미 지로
37-38대
아라키 사다오
39-40대
하야시 센주로
41대
가와시마 요시유키
42대
데라우치 히사이치
43대
나카무라 고타로
44-45·53대
스기야마 하지메
46-47대
이타가키 세이시로
48-49대
하타 슌로쿠
50-52대
도조 히데키
폐지
44-45·53대
스기야마 하지메
54대
아나미 고레치카
56-57대
시모무라 사다무
}}}}}}}}}


[1] 이것을 일본어로는 복원(復員)이라고 한다. 한국어 사전에도 있긴 한데 한국에서 복원이란 단어는 무언가를 원상복귀한다는 복원(復原)의 용례가 강해서 잘 쓰이지 않는다.[2] 한국도 창군 시기, 육군교육사령관을 교육총감이라고 칭했다.[3] 육군만 담당했다.[4] 후에 제1복원국 업무부로 격하[5] 창설 당시는 회계국이었고 육군성 제5국으로 개편되었다가 회계국으로 환원된다. 이후 경리국으로 개칭되어 종전 이후에도 제1복원성 경리국으로 이어진다.[6] 장관은 병부성 군의두.[7] 장관은 군의총감[8] 고등군법회의, 사단군법회의 등을 관장하던 부서로 인력은 육군성 군속을 비롯해 20명 내외였다.[9] 욱군 항공부 시절에도 동일하게 칭했다. 당시 육군항공부 조직이 본부와 그보다 격이 낮은 보급부밖에 없어서 장관은 본부장으로 칭했다.[10] 장관은 기술심사부 시절엔 부장, 기술본부 시절엔 본부장이라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