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8 21:26:32

이하늘 베이비복스 비하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전개
2.1. 7집 Ride West 발매 전2.2. 이하늘의 비난2.3. DR뮤직의 법적 대응
3. 사건 이후4. 평가5. 둘러보기

1. 개요

2004년에 진행된 베이비복스의 소속사인 DR뮤직이하늘과의 법적공방.

2. 전개

아래에서 언급된 여러 입장 표명의 원문은 베이비복스의 역사를 다룬 포스팅의 '7집 활동기: RIDE WEST' 부분부터 참고하면 된다. @

2.1. 7집 Ride West 발매 전

2Pac, 스눕 독, 닥터 드레 등의 곡들에 대해 음원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레이블 벙갈로 뮤직은 2003년 조사 결과 아시아권 차트에서 베이비복스가 강세임을 눈여겨보고 베이비복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즉 미국의 힙합 및 R&B를 베이비복스와 함께 활동시켜 아시아권에 진출시키거나 반대로 베이비복스에게 미국에 진출시키는 프로모션을 제의하기 위해 접근해왔다.

이에 베이비복스의 소속사였던 DR뮤직은 이를 수락했고 베이비복스 7집 'Ride West'에 2Pac의 미발표 음원을 샘플링한 'Xcstasy', 제니퍼 로페즈가 참여한 Play Remix 등이 실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닥터 드레 사단의 플로스 피가 프로듀싱 및 랩 피처링을 맡게 되었다.

이렇게 발매된 베이비복스 7집 타이틀곡인 'Xcstasy'는 당시 힙합계에서 신적으로 추앙받던 2Pac이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았던 미공개곡을 샘플링했으며, 김이지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국내의 힙합 팬덤에서는 댄스 그룹인 베이비복스가 미국 힙합의 전설 2Pac의 곡을 이용한 것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또한 2Pac의 어머니가 설립한 아마루 레코드사에서 베이비복스의 저작권 침해를 의심하는 뜻을 표명했지만, 2Pac의 곡들은 어느 한 회사에 저작권이 귀속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문제의 곡 또한 벙갈로 뮤직에서 정당한 저작권을 행사한 것이기에 그냥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2.2. 이하늘의 비난

베이비복스가 'Xcstasy'로 약 1개월간의 짧은 활동을 끝내고[1] 더블 타이틀곡인 'Play Remix'로 활동하고 있던 2004년 6월 1일 엠넷에서 진행하는 '힙합 더 바이브'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Q&A 코너를 진행하던 이하늘이 "친구들이 2Pac이 누군지 모른다. 자세하게 알려달라."는 시청자의 질문에 2Pac의 생애와 대표곡들을 소개하면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2]"라며 비난했다.

6월 4일, 자신의 매니저를 통해 기사화된 이하늘의 발언 소식을 접한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의 랩을 빌려쓰는 정도에 불과한데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해 아니라고 비판하는 건 공인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하였다.

6월 7일, '힙합 더 바이브'를 보던 한 팬은 "플로스 피가 DJ DOC의 음악에 대해 거론했는데 이에 대해 반론해달라"는 질문글을 힙합 더 바이브의 게시판에 올렸고, 다음 날인 8일 이하늘은 답변글에서 문제의 미아리복스[3], SEX 가수, 썅년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이어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신인때랑 다르게 인기를 얻고 변했다"며 인성에 관해서도 말도 안 되는 루머를 언급, 기사화되면서 베이비복스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실추시켰다.

이하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져가는 와중에도 이하늘은 매니저를 통해 "애초에 방송에서 발언한 것은 점잖게 타이르는 내용이었는데 제 3자인 플로스 피를 끌어들여 우리를 비난한 것에 화났다, 해당 글을 삭제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2.3. DR뮤직의 법적 대응

6월 11일, 이하늘은 비공개 힙합 커뮤니티인 디씨트라이브에 글을 올려 "내가 말한게 자꾸 왜곡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마치 (DJ) DOC와 미아리 복스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것 같아서 쪽팔리지만 이건 DOC가 아닌 나 vs. 미아리복스가 아닌 회사(DR뮤직)의 대결구도다."라 선을 그었고, "DR뮤직에서 사과를 한다, 고소를 당한다, 건달을 보낼테니 알아서 한다의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다"고 주장했다.

DR뮤직 측은 "이하늘의 글이 단순한 의견 수준을 넘어 인신공격적인 내용이 많아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19일까지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리지 않으면 명예훼손 및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6월 12일, DR뮤직 측의 변호사는 앞선 최후통첩대로 19일까지의 유예기간에 더해 "건달 협박설도 사실과 다르며, 19일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이 내용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하늘은 DR뮤직측의 소송에 정면으로 대하겠다고 밝혔고, 6월 12일 방송된 연예가중계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힙합 더 바이브에서의 발언에 대해 "2Pac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게 화가 났다. 그 발언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소송을 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김진표도 이하늘의 편을 들면서 사태는 국내 힙합계와 베이비복스의 대립 구도로 변질되었다.

6월 14일, DR뮤직의 대표 윤등룡과 심은진의 글이 올라온다. 윤등룡은 "베이비복스는 가요계 선배인 이하늘과 법적인 문제까지 가는걸 원하지 않지만, 베이비복스에 대한 욕과 시비가 몇 년 전부터 반복되어왔던 일이기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다."며 배경을 밝혔고, 심은진은 팬들에게 "이하늘과 김진표를 욕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6월 18일, 윤등룡은 다시 DR뮤직 홈페이지를 통해 이하늘에게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라."는 요지의 글을 남겼고, 금일 저녁 이하늘은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미아리복스라는 단어는 너무 솔직했다. 베이비복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해당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DR뮤직을 향해서는 "당신들이 당한 명예훼손과 당신들이 실추시킨 2Pac의 명예 중 후자쪽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2Pac의 상업적 이용에 대한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또한 앞서 DCT에 썼던 글처럼 '이하늘 개인과 DR뮤직간의 싸움'임을 다시금 강조했고, "처음부터 숲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자꾸 나무만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아 다시 숲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연예계 기자들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발언도 했다.

이하늘의 기자회견 후 DR뮤직은 "이하늘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불미스러운 일은 개인적으로 만나 잘 해결하겠다."며 사태가 진정되는가 싶었지만 이하늘은 알고 지내는 기자들에게 기자회견이 모두 연기였다고 말하는가 하면 6월 20일 DCT에 다시금 글을 올려 "이번 사태는 나를 이용하여 다음 앨범을 홍보하려는 것이다"라며 다시금 DR뮤직을 비난했다.

결국 이하늘은 패소했지만 기레기들의 2차 가해를 우려해 공론화되지 않았다. '미아리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다시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한편 DR뮤직과 이하늘과의 법적공방이 질질 늘어지는 동안 확대 생산되는 표절 트집은 소속사가 아니라 심은진이 직접 기자들과 연락하여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샘플링임을 해명해야 했으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레기들의 행각이 끊이지 않자 지쳤다며 베이비복스를 탈퇴했고, 이후 윤은혜도 계약 만료로 탈퇴하면서 이는 베이비복스의 와해로 이어졌다.

3. 사건 이후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2Pac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2번 죽였다'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 몇 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 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 걸 그랬다'며 뒤끝을 보였다.

2022년 윤등룡은 한 유튜브 채널의 인터뷰에 출연해 "이하늘의 발언은 베이비복스가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하늘이 아주 천박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죽이고 싶었다. 애들이 매일 울면서 들어왔다. 방송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상처를 되게 많이 받았다."라고 분노했다. #

4. 평가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으로, 당시 소속사인 DR뮤직의 미흡한 대응도 있었지만 후술했듯 그의 미아리복스 발언이 해체의 결정타였다.

2Pac이 힙합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말아야 할 성역이 될 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 본토에서 저작권자에 의해 사후 앨범도 제법 나왔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2Pac의 사후 앨범이 발매되었고 아주 잘 상업적으로 활용되었는데, 이하늘이 이에 대해 비판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즉, 힙합 더 바이브에서 비교적 얌전하게 내뱉었다던 그 발언도 지나친 힙부심에 불과하며 결국 걸그룹이 힙합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그 자체가 못마땅해서 했던 발언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문제가 된 곡인 'Xcstasy'는 합법적으로 샘플링한 곡일 뿐이고, 그 계약도 회사 측에서 한 거지 멤버들은 2Pac 노래구나 혹은 심지어 2Pac이 누군지나 알긴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것.[4] 이외에도 스포츠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이 활개친 것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이때 베이비복스가 사실상 해체를 결심한 이면엔 일각의 부정적인 여론도 한몫했다. 실제 이 사건 당시 인터넷에선 이하늘을 까는 여론 못지 않게 지지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여성 아이돌에 대한 각종 성적 비하, 모욕, 무시나 각 음악 장르 매니아들의 허세 섞인 부심, 스노비즘도 더 컸던 시절이기도 하다.[5] 지금이야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지만, 당시까지는 철없는 마초적 동경심에 빠져 이하늘을 돌직구 날리는 멋진 형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다만 이하늘의 언행이 해체로 직결되었다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걸그룹이 정규 7집에 스페셜까지 8개 앨범을 냈으면 꽤 오래 존속했다는 인식이 있었고 베이비복스는 이 사건 이전인 2003년을 기점으로 이미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물론 많은 베이비복스 팬들은 그때까지 괜찮았으며, 7집도 잘 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핑클, S.E.S.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내려온 것을 보면 베이비복스도 전성기 시절의 저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던 건 맞다. 특히 베이비복스는 이 중에서도 앨범도 가장 많이 내고 2004년 이 사건으로 사실상 활동 중단이 되긴 했지만[6] 1세대 걸그룹 중에선 명목상으로나마 2006년까지 활동하며 당시 기준으론 할 만한 컨셉은 다 했던 상황이었다.[7] 그렇다고 그의 발언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발언 중 딱 하나 적중한 게 있다면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라는 부분이다. 눈치 안 보고 질러대는 이하늘에게 DR뮤직이 눈치 없이 대응하는 동안, 사이에 낀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과도한 섹시 컨셉을 요구하거나, 미성년자 멤버가 있음에도 나이트클럽 행사에 보내거나, 멤버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는 등[8] 등 쌓이고 쌓여왔던 DR뮤직의 부실한 매니지먼트와 악성 시너지를 이루어 베이비복스의 해체로 이어진 것이다.[9]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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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이비복스가 활동하는 내내 한국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플로스 피의 사정상 불과 한 달 정도 밖에 활동할 수 없었다.[2] 빠따 좀 맞자는 표현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이하늘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반대로 뭔가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국밥 한 그릇 드시고'라는 표현을 썼다.[3] 미아리는 원래 마을 이름인데, 한때 전국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 악명을 떨치게 되면서 불법 성매매 업소의 대명사가 되었다.[4] 게다가 이하늘 자신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은 그렇게 높으면서 한 예능에서 그룹 백두산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이 있는 앞에서 '락 음악의 최고봉은 문희준이다'라며 다른 장르는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건 당시 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희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은 힙부심이라고 부리고 싶었는지 후배 가수에게 악플과는 비교가 안 될 더한 짓을 해놓고 이중적 행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5] 아이돌 음악 때문에 한국 음악계가 망한다는 둥, TV에서 들을 음악이 안 나온다는 둥 하는 레퍼토리가 흔하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6] 그해 심은진이 이 여파 때문인지 계약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팀이 해체된다.[7] 다만 걸그룹 수명이 대폭 연장된 2세대 이후 기준에서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베이비복스도 이런 배경 때문인지 아예 힙합처럼 컨셉 자체를 바꾸는 시도도 한 것이었다.[8] 보컬 트레이닝을 심은진간미연만 받았는데, 이마저도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심은진은 자비로, 간미연은 독학으로 해결하고 있었다.[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이하늘의 편을 들어주던 김진표는 라디오 방송에서 만난 베이비복스 한 멤버와 대화를 나누고는 '문제는 멤버가 아니라 회사구나'라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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