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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하크 라빈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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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3. 범인4. 사건 이후

1. 개요

1995년이스라엘의 제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암살당한 사건.

2. 전개

파일:external/www.yigalamir.com/yitzhak_rabin_murder_newspaper.jpg

제2차 오슬로 협약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텔아비브에서 열린 중동 평화회담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한 후 관용차에 탑승하던 중 하레디 청년 이갈 아미르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유대교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강경파가 암살을 목적으로 테러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나와) 같은 유대인들을 믿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시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던 언론인 조갑제 편집장이 라빈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를 마친 뒤 34시간 후에 암살당했다. 뜻하지 않게 이 인터뷰는 라빈의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되고 말았으며, 해당 기록은 월간조선 1995년 12월호에 수록되었다. 관련 자료

3. 범인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유대인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극우 청년으로 밝혀졌다. 암살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아미르는 정부수반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 및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는 "(총리를 암살한)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나를 독방에 가둔 처분은 너무 가혹하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도 이렇게 생활하지는 않는다"는 적반하장궤변망언[1]을 공공연히 일삼았다. # # 게다가 아미르는 같은 종파인 하레디가 넣어주는 사식도 꼬박꼬박 받아먹고, 독방 수감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생활상의 불편함도 크게 없으며, 감옥 바깥에서는 "배신자를 죽인 애국자"라는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사건 이후 "그와 결혼하겠다"는 신청이 쇄도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 그는 법적으로 혼인 관계인 여성과 면회를 통해 감옥 내에서 성관계를 맺는 정신 못 차린 행보를 보였다.

아미르의 이토록 뻔뻔한 태도와 옥중 기행에 당시 정치권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으며, 라빈의 정치적 반대파인 보수우파 인사들조차 "한 나라의 정부 수반을 죽여놓고 저렇게 당당하게 애국자라며 떠들고 다니니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형국인가" 하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치권은 자신들과 대립 관계인 이웃나라 이집트에서 무함마드 안와르 엘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 암살당하자 "자기네 나라 대통령을 암살하다니 말이나 되는가" 하며 비웃은 바 있다. 정확히 14년 만에 그 비웃음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고 어이없게 한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버젓이 살아있으며, 여전히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다트를 쏴죽인 이슬람불리는 재판받고 교수형당한 거랑 대조적이라 이집트에서는 이후로도 "자기네 나라 대통령을 암살하고도 암살범을 살려두다니 더한 나라가 있다!"라며 지금까지도 비웃고 있다.

4. 사건 이후

라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정부는 동월 5~6일을 국민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각 관공서들은 조기를 내걸고, 유흥업소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으며 각급 학교들도 임시 휴교했다. 라빈의 시신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에 안치되어 100만여 명이 이곳에 조문을 위해 다녀갔다. 한국에서 라빈의 무덤을 참배하던 히잡을 쓴 팔레스타인 여성이 슬피 울며 안타까워하는 사진이 보도된 바 있는데, 이 배경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팔레스타인/역사 문서에도 서술된 것처럼 오슬로 협정이 전쟁보다는 낫지만 그렇게까지 팔레스타인에게 괜찮은 협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일:rabinotap9511060940.jpg

라빈의 장례식은 예루살렘 헤르츨 국립묘지에서 유가족과 시몬 페레스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 영국 총리,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찰스 3세, 헬무트 콜 독일 총리,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장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 이홍구 대한민국 국무총리,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폴 키팅 호주 총리,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UN 사무총장,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후세인 1세 요르단 국왕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엄수되었다. 그와 함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노벨 평화상도 공동으로 수상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의장은 이스라엘 극우파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안팎의 우려에 끝내 불참했다. 손녀 노아 벤아르치는 자신을 극진히 아낀 할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한편,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복수심마저 자리잡지 못했다"며 눈물의 연설을 해 주목을 받았다. 하관식 때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이 라빈의 관에 형 JFK와 로버트의 묘역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당시 부산일보 기사, 조선일보 기사)

사건 이후 이스라엘 은행[2]에서는 인플레를 대비한 고액권 발행 겸 그의 추모를 위해 500셰켈 지폐를 발행하면서 여기에 라빈의 초상화를 넣으려고 했으나 예상외로 물가가 너무 안정되어 필요성이 줄어들자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3]

이 사건이 일어난 날은 현재 이츠하크 라빈 추모일(Yom Hazikaron leYitzhak Rabin/יום הזיכרון ליצחק רבין)로 지정되어 있다.[4]

이 사건은 2015년 아모스 기타이가 영화화해 개봉됐다.

현 시점에서 현직 신분의 선진국 국가수반이 암살된 가장 최근의 사건이기도 하다.[5]

[1]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시민으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온갖 고문과 탄압, 차별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실태를 왜곡함과 동시에 그저 자신이 독방 생활하는 게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다.[2] Bank Of Israel. 이스라엘의 중앙은행이다.[3] 500셰켈은 2017년 기준으로 한화 약 15만 6000원 정도의 금액이다.[4] 다만 공휴일은 아니다.[5] 라빈 총리의 피살 이후 일어난 선진국 국가수반 암살 사건은 2022년 발생한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정도밖에 없고, 그것도 아베 신조가 전직 국가수반이었을 때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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