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2-02 09:12:22

이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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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만
李斗萬|Lee Du Man
파일:이두만.jpg
본명 이현옥(李鉉玉) → 이두열(李斗烈) → 이두만(李斗萬)[1]
출생 1921년 12월 8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
사망 1991년 5월 13일[음력] (향년 69세)
묘소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 277-12번지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3]
가족[4] 아버지 이만리(1887 ~ 1926)[5]
어머니 청도 김씨(1895 ~ 1977?)
배우자 진소임(1926 ~ 2018)[6][7]
장녀 이연순(1941년생)
3남 이낙연
3녀 이금순(1955년생)
4남 이하연(1957년생)
5남 이계연(1959년생)
4녀 이인순(1962년생)
6남 이상진(1969년생)

1. 개요2. 생애
2.1. 사후
3. 가계
3.1. 미망인 진소임(陳小姙) 여사3.2. 자녀들 중 삼남 이낙연(洛淵)
4. 참고 항목

1. 개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인물이자 대한민국 제45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李洛淵)의 부친.

2. 생애

1921년 12월 8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에서 태어났으며, 전라남도 영광군 토박이 출신이다.

1939년 겨울에 5살 연하의 배우자 진소임(陳小姙)[8]과 결혼해 슬하 6남 4녀를 두었으며 1952년 12월 20일(음력 11월 4일)에 셋째 아들 이낙연을 보았다.

2024년 3월 30일 어느 생방송에서 이낙연이 회고하길, 이낙연이 초3이었을 때 아버지 이두만이 학교를 나오지 못한 바람에 지역 연고로써 충분히 법성면의 면조합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학력을 적지 못해 한탄을 머금으며 거절했고 배추밭에 누워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이낙연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한다.

1980년 4월 8일에 동아일보 기자였던 셋째 아들 이낙연과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였던 셋째 며느리 김숙희(金淑姬)[9]의 결혼을 지켜보았으며 그로부터 2년 후 1982년 3월 15일에 아들 이낙연과 자부 김숙희와의 사이에 장손 이동한(李東翰)을 보았고, 셋째아들 이낙연 내외의 무녀독남 외동아들인 장손 이동한은 조부가 죽은 훗날인 32세였던 2013년 이동한 자신의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한소정[10])과 결혼했으며, 1남 1녀(친증손녀 이솔[11], 친증손자 이조헌[12])를 두었다.

청년기부터 4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여섯 민주당[13]의 지역 권리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낙연의 주장에 의하면 중앙 정치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고 한다.

이두만은 신민당을 탈당하고 난 잠시 무당적 시절이던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 시기 호남 쪽 기반이 취약했던 민주정의당으로부터 입당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고사했다고 한다.

셋째 아들 이낙연이 동아일보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 중인 1991년 5월 13일 향년 69세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전라남도 영광군에 마련되었다.

2.1. 사후

2020년 8월, 이두만의 묘소가 '매장 신고 미이행'에 저촉되어 셋째 아들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받았으며, 이 사실을 확인한 이낙연은 부친의 묘소를 서둘러 이장하겠다고 밝혔다.

3. 가계

  • 이두만 (1921 ~ 1991) / 진소임 (1926 ~ 2018)
    • 장녀 이연순 (1941년생)
    • 3남 이낙연 (1952년생) / 김숙희 (1955년생)
      • 장손 이동한 (1982년생) / 한소정 (1983년생)
        • 증손녀 이솔 (2015년생)
        • 증손자 이조헌 (2017년생)
    • 3녀 이금순 (1955년생)
    • 4남 이하연 (1957년생)
    • 5남 이계연 (1959년생) - 전직 삼부토건 사장 역임.
    • 4녀 이인순 (1962년생)
    • 6남 이상진 (1969년생)

3.1. 미망인 진소임(陳小姙) 여사

이두만이 죽은 지도 27년여가 지난 이후 진소임 여사는 아들 이낙연이 제45대 국무총리로 재직 중이던 2018년 3월 25일에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2. 자녀들 중 삼남 이낙연(洛淵)

셋째 아들 이낙연(李洛淵, 1952년 12월 20일생)은 대한민국의 신문 기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5선 국회의원, 제37대 전라남도지사, 제45대 국무총리, 제4대 더민주 당대표, 초대 새미래 공동대표 등을 지냈으며, 호는 조강(祖江)이고,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제16·17·18·19·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37대 전라남도지사였으며, 문재인 정부 당시 제45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지냈다.

4. 참고 항목


[1] 이두만(李斗萬)은 해방 후 1946년에 개명한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이현옥(李鉉玉)이었으며, 1944년에 이두열(李斗烈)로 첫 개명에 이어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이두만(李斗萬)으로 마지막 개명하였다.[음력] 3월 29일[3] 양도공파 19대손, 완풍대군파 20대손, 시조 42세손 현○(鉉○) 항렬이다.(족보(1)족보(2))[4] 슬하 6남 4녀(10남매) 가운데 1943년생 장남과 1947년생 차남, 1954년생 차녀는 각각 어릴 때 질병으로 인해 요절하고, 장성할 때까지 7남매(4남 3녀)만 남았다.[5] 1887년 출생 당시의 이름은 이쌍로 이후 1908년(22세 당시)에 개명(改名)하여 이만리[6] 陳小姙, 1926년 12월 11일 ~ 2018년 3월 25일 (향년 91세)[7] 여양 진씨이다.[8] 1939년 부군 이두만(당시 이름 이현옥)과 결혼 당시 14세.[9] 1955년 12월 6일생. 이화여대 서양화과 학사 및 동 교육대학원 석사 출신이자, 전직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 출신.[10] 빠른 생일 적용자로, 1983년 2월 4일생. 1989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 동창이자 부군 이동한과는 차라리 동갑내기다.[11] 친장손 이동한과 장손부 한소정의 맏딸. 2015년생.[12] 친장손 이동한과 장손부 한소정의 막내아들. 2017년생.[13] 한국민주당(1948~1949, 당명 변경 때까지도 잔류.), 민주국민당(1949~1955, 당명 변경 때까지도 잔류.), 민주당(1955~1961, 정당 해산 때까지도 잔류.), 민정당(1963~1964, 탈당.), 신민당(1968~1978, 탈당.), 평화민주당(1987~1988,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