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5 22:00:10

유로니무스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유로니무스
Euronymous
파일:euronymous.webp
본명 외위스타인 오르셰트
Øystein Aarseth[1]
출생 1968년 3월 22일
노르웨이 수르나달
사망 1993년 8월 10일 (향년 25세)
노르웨이 오슬로 퇴위엔 거리 40B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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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메이헴(1987~1993)
활동 시기 1984년 ~ 1993년
장르 블랙 메탈
신체 168cm

1. 개요2. 생애3. 사망4. 매체5. 여담6. 유로니무스를 둘러싼 루머들과 해명
6.1. 유로니무스와 데드는 원수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6.2. 유로니무스가 데드의 자살을 부추겼다?6.3. 유로니무스의 막장 행각 때문에 네크로버처가 밴드를 나갔다?6.4. 유로니무스는 동성애자였다?

1. 개요

노르웨이블랙 메탈 밴드 메이헴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블랙 메탈이란 장르를 창시하고 노르웨이 블랙 메탈 씬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인물이지만 동시에 여러 악행과 막장 인성으로 악명을 떨쳤던 자이기도 했다.

2. 생애

파일:euronymous2.jpg

1968년 3월 22일, 노르웨이의 유명한 변호사인 Helge Aarseth의 아들로 태어났다.

주변 사람들이 증언하기를 유로니무스는 학창시절 화학이나 언어[2][3] 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984년, 유로니무스는 베이시스트 네크로버처, 드러머 멘하임과 함께 메이헴을 결성했다. 결성 당시에는 멘하임과 포지션을 서로 바꿔서(즉, 멘하임이 기타, 유로니무스가 드럼)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듀요 L.E.G.O. 활동도 병행했다. 활동 초기에는 Destructor이라는 예명을 사용 하였으나, 그 이후 Euronymous로 변경했다.

1986년 여름에 유로니무스, 네크로버처, 메탈리온은 함께 독일스래쉬 메탈 밴드 Assassin을 찾아가 Checker Patrol 이라는 이름으로 Metalion in the Park라는 데모를 녹음했다.[4]

1988년 스웨덴데스 메탈 밴드 모비드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던 데드[5]와 노르웨이 전역에서 세션 드러머로 활동 중이던 헬해머[6]가 메이헴의 새 멤버로 가입하였다. 밴드는 1990년까지 몇 몇 라이브를 통해 악명을 떨쳤다.

1991년 4월 8일. 메이헴의 보컬이었던 데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1년 5월에서 6월 사이 유로니무스는 Helvete라는 레코드 샵을 개장하고 본인이 운영하는 레코드 레이블인 Deathlike Silence를 만들었다.[7] 당시 유로니무스는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다른 메탈 밴드들을 몹시 혐오했다. 다 똑같은 조깅바지를 입고 메탈을 트렌드로 만들려는 Poser들이라며 항상 불만을 드러냈었다고 한다. 데드의 자살을 이용해 블랙 메탈을 홍보 했을때도 유로니무스는 공개적으로 "데드는 저런 메탈헤드들에 지쳐서 자살을 했다"고 이야기를 만들어 얘기하고 다녔었다.

유로니무스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으로 수많은 어린 뮤지션들이 유로니무스와 그의 신념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러 데스 메탈 밴드들이 블랙 메탈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유로니무스는 Helvete 레코드 샵과 레코드 레이블인 Deathlike Silence를 통하여 여러 밴드들이 데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8] 이후 Helvete 레코드 샵은 노르웨이의 블랙 메탈 뮤지션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고 바르그 비케르네스도 그중 한 명이였다.

바르그가 회고한 유로니무스와의 실제 첫 만남은 1990년 어느 날 Immortal의 Harald와 함께 오슬로를 가기로 했을 때였다. Ski에 도착하고 나니 유로니무스와 연락하던 Harald가 유로니무스의 주소지를 모른 상태로 온걸 깨닫고 지나 가던 중년의 여성들에게[9] 유로니무스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다. 다행히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차로 따라오라고 하여 10분 정도 이동해서 그 당시 메이헴의 연습실이던 그 집을 손으로 가리키고 고맙다는 말도 할 틈도 없이 그 여성들은 자리에서 떠났다.

문을 두드리자 유로니무스가 나왔는데 착하고 친근 했다고 하며 며칠동안 그들이 머무를 수 있게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머무르는 동안 알게 된 것은 유로니무스가 밴드 멤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헬해머는 멤버들이랑 같이 머무를 생각을 않고 오슬로 펍에 가서 유흥을 즐기기만 했으며, 네크로버처는 맨날 대마초를 피고 자신의 여자친구랑만 있으려 한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10] 또한 바르그는 "데드는 당시 우울증이 심각해서 방에만 틀여박혀 있었다. 유로니무스가 메이헴의 연습실을 처음 견학시켜 주었을 때 식사를 하러 잠시 방에서 나온 데드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낸 것이 내가 데드와 유일하게 나눈 대화였다."라고 회상했다.

그 다음 날 당시에 데스 메탈을 하던 밴드 Darkthrone의 보컬리스트인 Nocturno Culto가 방문을 했는데 유로니무스가 경멸하던 딱 전형적인 그 당시 데스 메탈의 패션과 조깅 바지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메탈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보이면 안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Nocturno Culto는 집으로 돌아갔고, 바르그는 이상한 경험이였다고 회고했다.[11]

1992년, 유로니무스의 후원으로 바르그 비케르네스의 원맨 밴드 버줌(Burzum)의 앨범들이 녹음되었다. (버줌 1집에 수록된 <War>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유로니무스의 연주이다.)

1992년 6월, 유로니무스는 바르그메이헴의 베이시스트로 초대하여 De Mysteriis Dom Sathanas를 녹음했다.

그러나 유로니무스는 자본 관리 등 레코드 점의 경영에는 소질을 보이지 못했다. 바르그가 회고하기를 "새로 매장에 팔 앨범들이 우채국에 도착하면 레드코점으로 가지고 가야 했는데 유로니무스는 차가 없어서 바르그가 자동차를 갖고 있는 것을 안 후부터 바르그가 500km나 딸어진 곳에서 방문 할때마다 매번 바르그의 차를 얻어타고 우채국으로 갔다."고 한다. 어째서인지 유로니무스는 걷거나 버스를 타서 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바르그는 "본인이 운영하던 원맨 밴드인 버줌의 앨범들을 발매하기 위해 유로니무스에게 돈을 주었지만 결국 앨범을 찍어낼 돈이 부족해서 앨범이 제대로 발매되지 못하자 유로니무스에게서 독립하여 본인의 레이블을 차렸는데 버줌은 그 당시 Helvete와 유로니무스의 레이블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티스트였으며 사실상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새로 레이블을 차려 앨범을 내자 유로니무스는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다."고 주장한다.

이 둘의 사이가 더 안 좋아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3년 초, 바르그가 기자와 인터뷰를 한 후 체포 되었을 때 였다. 바르그는 블랙 메탈을 홍보하고 유로니무스를 돕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했으나 아들을 향한 세간의 관심이 불편했던 유로니무스 부모님의 압박으로 유로니무스가 잠시 Helvete를 닫아 버린 것. 바르그는 래코드점의 폐점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바르그는 "내가 감옥에 수감되자 기자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유로니무스가 아닌 나에게로 옮겨졌고 이에 유로니무스가 심한 질투심을 느꼈으며 나에게 본격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는 바르그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12]

3. 사망

1993년 8월 10일 새벽 3시 경. 유로니무스는 바르그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4. 매체

5. 여담

  • 노르웨이어보크몰 화자였으며 영어를 할때 노르웨이어 억양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웨덴인데드가 그와 가끔 영어로 대화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13] (북유럽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유로니무스와 데드도 영어가 유창했다.[14])
  • 데드가 메이헴의 연습실에 거처를 마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드의 아버지는 데드를 보려고 노르웨이에 방문하였으며 그 곳에서 데드가 새 친구들도 사귀면서 잘 있는 모습을 보고 밴드 멤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가지고 있던 오래된 자동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로니무스가 자동차를 노르웨이에 가지고 가려고 스웨덴에 방문 한 것이 데드의 동생인 앤더스가 유로니무스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였다고 한다.
  • 공산주의에 관심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공산주의를 신봉했다기 보다는 공산권 독재자들이 "악마적"이여서 따랐다. 인터뷰에서도 "공산주의가 가장 좋은 시스템이 될수는 있으나 난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갖기를 원치 않는다. 차우셰스쿠는 대단했다. 우리는 그와 스탈린, 폴 포트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라고 했다.
    • 바르그가 회고하기를, 모비드 앤젤오슬로에 공연을 하러 왔을때 노르웨이 전국에 있는 그 당시 블랙메탈 씬에 소속되어있는 멤버들 포함해서 극우 메탈헤드들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로니무스 혼자 공산주의 뱃지를 달고 왔고 핼해머는 "White Power"라는 문구를 달고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공연 후에 파티에서는 바르그 포함 다른 사람들이 다 핼해머 편에 있었다고 한다.
  • 운전 면허 사진이 있다
    파일:4y1jzy34g3bc1.jpg

6. 유로니무스를 둘러싼 루머들과 해명

6.1. 유로니무스와 데드는 원수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증언했던 인터뷰와는 다르게 데드와 유로니무스는 생각보다 가까웠다고 하며, 밴드 생활 초기에는 절친으로 지냈다. 애초에 두 사람의 사이가 안좋았으면 데드는 유로니무스가 리더로 있는 메이헴에 가입하기 위해 타국인 노르웨이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같이 지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없었을리는 없지만.

1988년 12월 31일에 새해를 맞이하여 메탈리온의 집에서 파티를 했을때 메탈리온의 부모님의 방에서 옆에 한 친구랑 메탈리온 엄마의 샴페인을 마시고 칼로 자해[15] 하며 둘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데드가 돌변하여 "너랑 나는 오늘 트란실바니아에 갈거야"[16] 라고 하며 밖으로 나와 칼을 들고 거실에 있는 맥주병이 가득 올려져있던 책상을 엎고 앞에 있는 창문을 깨려고 하자 유로니무스와 다른 친구들은 데드를 제압하여 수갑을 채웠다고 한다. 이후 잠시 잠잠하던 데드가 또 갑자기 머리에 못을 박으려 해서[17] 그날 밤에 데드가 혹시라도 뭔 짓을 할지 모른다며 유로니무스는 일부러 같은 방에서 데드와 잤다.[18] 다음 날 아침 데드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고 유로니무스도 데드가 차고 있던 수갑 열쇠를 잃어버려 근처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수갑을 풀어야 했다.

6.2. 유로니무스가 데드의 자살을 부추겼다?

유로니무스가 데드의 자살을 부추겼다기보다는 데드가 앓았던 조울증과 그 외 정신병들에 대해서 이해도가 낮았다. 처음엔 유로니무스도 데드를 도와주려 했으나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 효과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을 몰랐고, 데드의 계속되는 비관적인 말들이나 행동[19]에 인내심이 바닥나 갈수록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유로니무스가 악마적인 이미지를 위해 죽어있던 데드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고 인터뷰로 데드의 죽음을 자기 밴드 및 블랙 메탈을 홍보하는데 사용한건 맞지만[20], 데드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건 사실이랑 거리가 멀다.

생전 데드는 남들을 놀래키는 걸 좋아했으며 죽음이라는 개념과 그에 관련된 컨셉에 집착했다. 관객들 앞에서 자해를 하거나 관객들에게 돼지 머리를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데드의 정신질환도 어느 정도는 컨셉질이라고 생각해 안일한 태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고, 데드의 시체를 봤을 때도 데드라면 실제 사람 시체 사진을 밴드 홍보에 사용하는거에 동의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데드의 자살을 기점으로 유로니무스는 밴드메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본 트라우마와 자신이 그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더 사악하고 악마스럽게 만드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기꺼이 저지르며 현실과 멀어지려 했다. 만약 데드가 자살을 안 했더라면 사타닉 서클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6.3. 유로니무스의 막장 행각 때문에 네크로버처가 밴드를 나갔다?

네크로버처는 데드의 죽음 이후 보인 유로니무스의 행동에 화가 나서 밴드를 나간 것이 아니다. 데드가 자살하기 이전부터 이미 밴드에 소홀했으며 사실상 이미 밴드에서 탈퇴한 상태였다.

그러나 막상 유로니무스가 죽고 난 후 밴드가 인기를 얻으니 네크로버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로니무스 및 데드와 끝까지 친했다는 듯이 증언을 하고 De Mysteriis Dom Sathanas의 녹음도 유로니무스가 본인도 모르게 몰래 진행한 것이며 이것 때문에 유로니무스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다른 인터뷰에선 이와는 반대로 바르그가 자신의 베이스 앰프를 빌리러 온 것을 언급했고 앨범 녹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 네크로버처는 인터뷰애서 유로니무스와 데드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으나 정작 이와 모순되게 유로니무스를 죽인 바르그를 옹호하는 "Free Varg"라는 티셔츠를 입고있는 모습을[21]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증언이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네크로버처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다 보기 힘들다.

6.4. 유로니무스는 동성애자였다?

또 다른 루머로는 우로니무스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바르그가 하는 주장인데[22] 신빙성이 낮다는 의견이 중론. 주변인들도 인터뷰에서 아니라고 몇번씩이나 말을 하였고 바르그는 인터뷰에서 유로니무스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려는 발언들이나, 사실과는 다른 그저 자기 중심적인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므로 그가 하는 증언들은 신뢰성이 낮다.
[1] 실제 노르웨이어 발음은 '외위스태인 오셔트 /ˈœ̀ʏstæɪn ˈɔ̀ʂət/'에 가깝다.[2] 실제 메이헴 활동할 당시에 보낸 편지들을 보면 유창한 수준은 아니여도 독일어나 다른 언어들의 몇몇 기본 회화 같은 것들을 적곤 했다. 다만, 유로니무스는 생전 인터뷰에서 "영어로는 내 감정을 도무지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바르그 비케르네스의 의하면 일본어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당시에 펜팔을 하던 일본블랙 메탈 밴드 Sigh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유로니무스를 못까서 안달인 바르그는 유로니무스가 일본어를 배운 것은 어디까지나 메이헴의 앨범 De Mysteriis Dom Sathanas에 세션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아틸라의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한 두번 깨작 거린거 뿐이라고 깠다.[3] 파일:IMG_3911.jpg[4] 메탈리온은 Metalion in the Park라는 곡에 보컬로 참여했다.[5] 본명 페르 윙베 올린(Per Yngve Ohlin)[6] 본명 얀 악셀 브롬베르그(Jan Axel Blomberg)[7] 그 당시 블랙 메탈 씬의 일원이였던 Occultus에 의하면 Helvete가 위치해 있던 건물은 너무 크고 렌트비도 너무 비쌌다고 한다. 게다가 그 큰 건물의 작은 일부분만 매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항상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8] 특히 Burzum, Emperor, Enslaved[9] "머리 길고 메탈 좋아하는 Øystein Aarseth라는 사람"[10] 불만이 있던건 데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네크로버처의 여자친구의 개입 때문에 데드의 고국인 스웨덴에서 할 예정인 투어도 취소 해야 했고 데드와 유로니무스는 밴드를 위해 어느정도 돈을 쓰는데도 네크로버처는 여자친구 때문에 밴드에게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하며 밴드 활동에 소홀했다고 한다[11]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IdfvtjD1qSw&t[12]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IdfvtjD1qSw&t[13] 노르웨이어 화자와 스웨덴어 화자는 각자 자기 모어를 사용해도 꽤나 말이 통한다. 메이헴의 리허설 동영상에서도 친구들은 데드에게 노르웨이어로 말하고 데드는 스웨덴어로 답하는 걸 들을 수 있다.[14] 유로니무스가 노르웨이어로 답변한 인터뷰들은 녹음되어 현재까지도 유튜브에 찾아볼 수 있지만, 영어로 했던 인터뷰들은 어째서인지 하나도 녹음 되어있지 않다.[15] 피가 묻었던 그 이불들은 다 버려야 했다고 한다.[16] 생전 데드는 트란실바니아의 건축물, 특히 성을 좋아했다. 자살할 당시 데드가 입고 있는 옷에도 I ❤ transylvania 라고 적혀 있었다.[17] 그 당시의 사진이다파일:euronymous3.webp[18] 데드와 같이 있던 그 친구는 겁이나 메탈리온의 방에서 숨어있어야 했다.[19] 메이헴의 드러머였던 멘하임은 데드에 대해서 "데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마빈처럼 매사를 항상 우울한 쪽으로 결론내리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있었다."라고 회상했다.[20] 그러나 그 사진을 앨범 커버로 만들어 발매를 하는 건 유로니무스의 아이디어가 아닌 Bull Metal의 아이디어였다.[21] 파일:necrobutcher.jpg[22] 또 바르그는 유로니무스의 방에서 딜도가 나왔었다는 증언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계속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게 좋다. 심지어 이것도 바르그가 직접 본 것도 아닌 본인의 친구 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