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4 21:34:19

역대제왕도권

歷代帝王圖卷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an_Liben._Thirteen_Emperors._Boston,_Museum_of_the_Fine_Arts.jpg

1. 개요2. 그림의 주인공들

1. 개요

당나라 초기의 재상이자 유명한 화가인 염입본(閻立本)[1]의 작품으로 길이 531cm, 폭 51.3cm에 달하는 대작.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 13명의 초상화를 두루마리 형식으로 그렸다. 여기에 선정된 모델들은 명군이나 암군 또는 폭군으로, 이들의 모습을 보고 후세가 본을 받거나 타산지석 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작품 속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남조 진나라, 북주, 수나라 황제들의 모습을 보고 실제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 나라가 망한 때가 염입본이 활동한 시대로부터 채 백 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그림의 주인공들

역대제왕도권에 등장하는 황제들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순서 제호 어진
01 전한 8대 황제
소황제 유불릉
(昭帝 劉弗陵)[2]
파일:external/www.woaihuahua.com/10-15031020055E17.jpg
02 후한 초대 황제
세조 광무제 유수
(光武帝 劉秀)
파일:Han_Guangwu_Di.jpg
03 (조위) 초대 황제
고조/세조 문제 조비
(魏文帝 曹丕)
파일:external/www.woaihuahua.com/10-150310200F4938.jpg
04 주(동오 초대 황제
대제) 손권
(吳主 孫權)
파일:Sun_Quan_Tang.jpg
05 주(촉한 초대 황제
소열제) 유비
(蜀主 劉備)
파일:Liu_Bei_Tang.jpg
06 진(서진) 초대 황제
세조 무제 사마염
(晉武帝 司馬炎)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6px-Jin_Wu_Di.jpg
07 (남진) 4대 황제
선제 진욱
(陳宣帝 陳頊)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en_Xuandi_Tang.jpg
08 진 2대 황제
세조 문제 진천
(陳文帝陳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84px-Chen_Wendi_Tang.jpg
09 진 3대 황제
폐제(임해왕) 진백종
(陳廢帝 陳伯宗)
파일:external/l.paipaitxt.com/88_8596186_d222f31ab1151ca.jpg
10 진 말대 황제
후주 진숙보
(陳後主 陳叔寶)
파일:external/lh3.ggpht.com/%E9%99%B3%E5%BE%8C%E4%B8%BB-%E6%AD%B7%E4%BB%A3%E5%B8%9D%E7%8E%8B%E5%9C%96-10-%E5%94%90%E9%96%BB%E7%AB%8B%E6%9C%AC.jpg&filename=IMG_0695.jpg
11 주나라(북주) 3대 황제
고조 무제 우문옹
(後周武帝 宇文邕)
파일:external/www.woaihuahua.com/10-15031020112L44.jpg
12 수나라 초대 황제
고조 문제 양견
(隋文帝 楊堅)
파일:external/lh5.ggpht.com/%E9%9A%8B%E6%96%87%E5%B8%9D-%E6%AD%B7%E4%BB%A3%E5%B8%9D%E7%8E%8B%E5%9C%96-12-%E5%94%90%E9%96%BB%E7%AB%8B%E6%9C%AC.jpg&filename=IMG_0695.jpg
13 수 2대 황제
세조 명제[3]
양광
(隋煬帝 楊廣)
파일:external/lh5.ggpht.com/%E9%9A%8B%E7%85%AC%E5%B8%9D-%E6%AD%B7%E4%BB%A3%E5%B8%9D%E7%8E%8B%E5%9C%96-13-%E5%94%90%E9%96%BB%E7%AB%8B%E6%9C%AC.jpg&filename=IMG_0695.jpg


[1] 참고로 삼국시대 장로의 공조였던 염포의 11대손이다.[2] 후한 광무제가 전한 한경제 이후 황제들의 묘호를 없앴다. 왜냐하면 광무제가 경제의 후손이기 때문이라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무제 이후의 황제들의 정통성을 없애기 위해 묘호를 삭제했다. 하지만 물론 원래부터 묘호가 없는 황제들도 있었는데 그중 소제도 원래부터 묘호가 없었다.[3] 이게 정식 시호지만 방탕하고 음란하다는 뜻의 양제로 훨씬 많이 알려져 있다. 왜냐면은 수를 무너뜨린 당나라가 어떻게든 정통성을 위해 까야했기 때문이었을수도 있지만 이 사람 치세가 당시 인구를 반정도로 줄여놓을 정도로 개막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태종과 측천무후가 수습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