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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도를레앙

<colbgcolor=#DABBCA><colcolor=#000000> 아오스타 공작부인
엘렌 도를레앙
Hélène d'Orléans
파일:Princess Hélène of Orléans.jpg
이름 프랑스어 엘렌 루이즈 앙리에트
(Hélène Louise Henriette)
이탈리아어 엘레나 루이사 엔리케타
(Elena Luisa Enrichetta)
출생 1871년 6월 13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트위크넘
사망 1951년 1월 21일 (향년 79세)
이탈리아 카스텔라마레 디 스타비아
배우자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1895년 결혼 / 1931년 사망)
오토 캄피니 대령 (1936년 결혼)
자녀 아메데오, 아이모네
아버지 파리 백작 필리프
어머니 마리 이자벨 도를레앙
형제 아멜리, 필리프, 샤를, 이자벨, 자크, 루이즈, 페르디낭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결혼2.3. 말년
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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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리 백작 루이 필리프[1]의 차녀.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와 결혼했다.

프랑스 왕국 루이필리프 1세의 증손녀이자 몽팡시에 공작부인 루이사 페르난다의 외손녀이다. 언니 아멜리 도를레앙포르투갈 왕국의 국왕 카를루스 1세의 왕비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파일:Hélène_d'Orléans.jpg
어린 시절의 엘렌

1871년 6월 13일, 프랑스 2월 혁명으로 오를레앙 왕조가 무너지면서 왕가가 망명하고 있던 영국에서 태어났다. 같은 해에 왕가가 프랑스로 소환되어 한 달도 채 안 된 갓난아기일 때 프랑스 땅을 밟았다. 그러나 1876년에 다시 추방되면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엘렌은 매우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엘렌의 부모님은 그녀가 왕위 계승자와 결혼하길 기대했다. 망명 왕족임에도 이런 기대를 한 것은 엘렌의 형제들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렌의 언니 아멜리포르투갈의 왕세자 카를루스와 결혼했으며, 오빠 필리프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도로테아 여대공[2]과 결혼했다. 엘렌의 부모님은 아름다운 엘렌이 그보다 좋은 혼사를 맺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러시아 제국니콜라이 2세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혼담이 오갔다.둘 중 누구라도 됐으면 곱게 못 죽었다[3]

1890년에 영국의 왕세손 앨버트 왕자와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다. 깊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엘렌은 가톨릭 신자였고 영국의 왕위 계승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4]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에 엘렌은 개신교로 개종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앨버트 왕자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뜻[5]을 굳혔다. 그러나 교황 레오 13세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으며 엘렌의 아버지 파리 백작 필리프도 딸의 개종을 반대하면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져야 했다. 이후 앨버트 왕자는 1892년 죽을 때까지 엘렌을 잊지 못했다.[6]

2.2. 결혼

파일:Hélène_of_Orléans_-_Duchess_of_Aosta.jpg
아오스타 공작부인 엘렌
파일:Emanuele_Filiberto_with_his_family.jpg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일가
왼쪽부터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장남 아메데오, 엘렌, 차남 아이모네

1895년 6월 25일, 영국의 성 라파엘 성당에서 제2대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와 결혼했다. 그는 한때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아마데오 1세의 아들이자 이탈리아 왕국 움베르토 1세의 조카였다. 당시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이탈리아 왕국 왕위 계승 서열 2위로, 엘렌의 부모님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어도 꽤 좋은 신랑감이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결혼 생활은 신혼 때는 행복했지만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가 정부를 두면서 불행해졌다.

엘렌은 불행한 결혼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주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했다. 콩고, 이집트 등을 방문했으며,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다. 엘렌은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여행기를 적어 책으로 출판했다.

2.3. 말년

1931년 7월 4일, 남편 아오스타 공작이 사망했다. 엘렌은 아들이 공작위를 물려받은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그후 5년 뒤 오토 캄피니 대령과 재혼했다.

1942년 장남을 잃었고, 1948년에는 차남을 잃는 참척을 겪었다. 거기다 1946년에는 시댁인 이탈리아 왕실이 폐지되는 운명을 겪었으나 당시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그 남계 후손 + 그 배우자들만 추방되었기 때문에 아오스타 분가 소속인 엘렌에겐 해당되지 않았다.[7]

1951년 1월 21일에 이탈리아 카스텔라마레 디 스타비아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9세.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오를레앙의 엘렌
(Hélène of Orléans)
<colbgcolor=#fff3e4,#331c00> 파리 백작 필리프
(Philippe, Count of Paris)
<colbgcolor=#ffffe4,#323300> 오를레앙 공작 페르디낭 필리프
(Ferdinand Philippe, Duke of Orléans)
루이필리프
(Louis Philippe I)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A]
(Maria Amalia of Naples and Sicily)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헬레네
(Helene of Mecklenburg-Schwerin)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Frederick Louis of Mecklenburg-Schwerin)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카롤리네 루이제
(Caroline Louise of Saxe-Weimar-Eisenach)
오를레앙의 마리 이자벨
(Marie Isabelle of Orléans)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
(Antoine, Duke of Montpensier)
루이필리프
(Louis Philippe I)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A]
(Maria Amalia of Naples and Sicily)
스페인의 루이사 페르난다
(Luisa Fernanda of Spain)
페르난도 7세
(Fernando VII)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10]
(Maria Christina of the Two Sicilies)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아오스타 공작 아메데오
(Prince Amedeo, Duke of Aosta)
1898년 10월 21일 1942년 3월 3일 안 도를레앙[11]
슬하 2녀
2남 토미슬라브 2세
(Tomislav II)
1900년 3월 9일 1948년 1월 29일 그리스와 덴마크의 이리니[12]
슬하 1남

4. 여담

  • 전쟁 중 파시즘에 깊게 빠져 파시스트 정당에 가입했다. 친정인 오를레앙 가에서는 충격을 받고 엘렌과 연을 끊었다.


[1] 오를레앙 공작 페르디낭 필리프의 장남으로 루이필리프 1세의 장손이다.[2] 레오폴트 2세의 증손녀다.[3] 엘렌에겐 다행으로, 둘 다 중매가 아닌 연애결혼으로 상대를 만났기에 엘렌과는 혼담만 있었을 뿐 어떠한 진척도 없었다.[4] 영국 왕실은 살리카법이 없어서 여성도 군주가 될 수 있고 귀천상혼의 개념도 다른 유럽의 왕실보다 약해서 평민과도 결혼할 수 있었지만,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 본인과 그 후손의 왕위계승권까지 박탈될 정도로 엄격하게 개신교 신자와의 결혼만 허용했다. 종교 제한이 해제되어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도 왕위계승권을 잃지 않게 된 건 2011년 평민 출신인 캐서린 미들턴윌리엄 왕세자와 결혼하고도 4년이 지난 2015년에 웨일스의 샬럿 공녀가 태어나고 난 뒤였다.[5] 물론 오를레앙 가문과 (나폴레옹 사후) 보나파르트 가문에 우호적이었던 영국은 엘렌이 개신교로 개종만 한다면 결혼을 인정하겠다고 했으니 앨버트까지 왕위 계승권을 잃을 일은 없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다는 점에서 앨버트는 살아생전 만난 적 없는 조카 에드워드 8세와 닮은 면이 있다.[6] 후에 왕실에서 정해 준 테크의 메리와 약혼하긴 했지만 친구인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에 보낸 편지에서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아니다"라고 한 걸 보면 죽을 때까지 엘렌을 잊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앨버트의 사후 약혼자인 메리까지 물려받은 동생 조지 5세는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메리와 금슬이 좋았고 아내를 아끼며 본부인으로서 존중해 주었다. 조지 5세도 형처럼 에든버러의 마리를 사랑했다가 양측 모친의 반대로 헤어지긴 했지만, 테크의 메리와 결혼한 후에는 마리를 깔끔하게 잊었다.[7] 이로 인해 손자 아마데오(1943 ~ 2021)는 추방되지 않고 이탈리아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이탈리아 민중들에 신뢰도를 쌓았다.[A] 페르디난도 1세의 5녀이자 프란츠 1세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손녀이다.[A] [10] 프란체스코 1세의 3녀이자 카를로스 4세의 외손녀이다.[11] 루이필리프의 고손녀로, 루이필리프의 차손 로베르의 손녀다. 어머니인 이자벨이 엘렌의 여동생이므로 아메데오와는 어머니 쪽으로는 사촌(이종사촌), 아버지 쪽으로는 6촌이 된다.[12]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프로이센의 조피의 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