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덴마크 국왕. 덴마크 역사상 최악의 암군으로 그의 치세를 '부패의 시대'로 부른다.2. 생애
에리크 5세와 브란덴부르크의 아그네스의 맏아들로 1286년 부왕이 암살당하자 즉위했다. 치세 초반부터 불안정했는데 부왕을 살해한 귀족 스티그 안데르센 흐비데(Stig Andersen Hvide ?~1293)는 노르웨이 국왕 에이리크 2세와 손을 잡아 덴마크 해안 지대를 약탈하고 다녔고 이는 40년 넘게 덴마크의 국경에 불안정을 야기하였다.새로이 룬드 대주교가 된 옌스 그란(Jens Grand 1260~1327)은 바로 충성 맹세를 어기고 에리크 6세에게 반기를 들었고, 1294년 에리크 6세의 동생 크리스토페르 왕자에게 사로잡힌 그란은 1296년 탈출해 로마 교황청으로 망명하였다. 교황에게 파문당한 에리크 6세는 1302년 결국 고개를 숙였다.
마상창시합을 좋아한 에리크 6세는 오락을 즐기는데 국고를 흥청망청 써버렸으며 농민들과 귀족들을 착취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세금을 만들어냈다. 덴마크인을 쥐어짜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아예 국토 일부분을 북독일 영방제후들에게 저당잡히는 대가로 돈을 빌려 유흥에 탕진했다. 그렇게 국고를 쥐어짜면서도 국외 원정을 다니며 한자동맹의 몇몇 도시들의 주군으로 군림하기도 했고 스웨덴,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과 싸우기도 했다.
1312년, 흉년이 들었음에도 전과 같은 수준의 세금을 요구하자 셸란섬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진압하여 코펜하겐 외곽에서 수 백명의 농민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등 가혹한 방식으로 대응하자 이듬해 비보르 의회에서 농민들과 귀족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에리크 6세는 독일 용병을 고용해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농민들에게는 요새 건설 노동을, 귀족들은 추방하거나 교수형에 처했다. 1315~1317년 덴마크는 또다시 기근에 시달렸으며 더이상 세금을 부과할 수 없게되자 아예 홀슈타인 백작들에게 퓐섬을 저당잡혔다.
1319년 그가 사망할 무렵 덴마크는 아예 파산한 상태였다. 유해는 링스테드의 베네딕트 교회에 안장되었으며 자녀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위는 동생 크리스토페르가 크리스토페르 2세로 즉위하여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