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26 13:57:58

야학

파일:야학 풍경.jpg


Night School[1]

1. 개요2. 문화에서의 야학

1. 개요

야간수업을 하는 비정규의 학교 또는 강습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의 정의 #
야학에 대한 정의를 단순히 '야간'이라는 시간적 구분에 따르는 것은 무의미하다. 야학을 일반 대중이 '배우는 곳'이라는 공간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규정한 개념이다. 그래서 야학을 야간에 진행하는 대중교육'이라는 시간에 따른 단편적인 정의보다는 '일반 대중이 주, 야간 시간의 구분 없이 필요한 교육을 받는 곳'이라는 정의가 합당하다.
「한국야학운동사」에서의 정의

야학은 개화기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적인 대중교육기관이다. 수업이 주로 밤에 진행되는지라 '밤 야()' 자를 써서 '야학'이라고 주로 불려졌다. 정규교육과는 다르게 야학은 농민, 노동자 등 학교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또 제도권과는 분리된 교육기관이었기에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의 비제도권 교육이 시행되었다. 이 때문에 야학은 정규교육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과 결합하여 활동가들이 민중을 가르치거나 계몽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2]

야학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3]

첫째, 대안적 대중교육기관이다. 지금이야 의무교육이나 고등학교대학교에 대한 높은 진학률, 등록금을 받춰줄 수 있는 경제력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제도교육을 받고 있지만, 민주화 이전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특히 노동자, 농민) 제도교육으로부터 비켜서 있었다. 이들은 고학은 커녕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기 힘들었다. 이들의 교육을 위해 야학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둘째, 비제도권 민중교육기관이었다. 야학은 제도교육과는 분명 달랐다. 정식으로 인가를 받지 않은 교육기관들이 민중을 교육하였다. 야학은 공교육과도 달랐고, 사교육과도 차이가 있는 존재였다.[4] 야학은 자유롭게 교육을 진행했고, 제도교육에 소외된 자라면 누구든지 받아들여 교육시켰다. 그리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의 고학이나 검정고시 합격을 통해 민중의 지식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야학은 개화기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서도 못 배운 사람들을 계몽시키는데 앞장섰다. 민주화 이후 21세기로 넘어오면서는 경제발전과 이내 찾아온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국민 전반에 걸쳐 교육열이 대폭발하며 공교육은 기본에 사교육도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는 세상이 되며 야학의 존재의 목적이 희미해졌지만, 노들장애인야학 등 장애인들이나 노년계층, 또는 다문화가정 결혼이민자 등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된채 성인이 되어버린 이들을 위한 야학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즉, 제도권 학교 밖의 청소년 및 저학력 성인들의 교육을 도모한다는 야학의 사명을 21세기에는 대안학교와 사교육이 적절히 분담하는 형태로 발전적 계승이 이뤄진 셈.

야학의 영향으로 지금도 일부 대학들은 입학 정원의 일부를 야간과정으로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주로 수강하는 특수대학원들도 마찬가지.

2. 문화에서의 야학

심훈의 <상록수>가 야학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다. 최용신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이 소설은 1930년대 브나로드 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학교를 세우고 농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분명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옳은 번역이지만 후술할 내용에 따르면 야학은 하고만 연관시켜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그 번역을 'Popular Education(민중교육)', 'Education for grass roots(민초교육)'으로 하기도 한다. 한편 야학 연구가 천성호는 한국에서의 야학이 'Yahak'이라는 고유명사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본다.[2] 대표적인 사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민주화운동가 윤상원 열사인데 그도 광주지역의 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의 강사였다. 아울러 서울이나 각 지역 거점도시의 명문대를 나온 운동권 계열 학생들이 공장에 위장취업한 뒤 생계 빈곤 등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여공 등 공장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심재철, 유시민, 심상정, 남인순 등처럼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 참여를 거쳐 정치권으로 뛰어든 이들이 적지 않다.[3] 야학 연구가 천성호는 야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① 일반 대중을 위한 대중교육기관
② 학력 인정이 되지 않는 비제도권 교육기관
③ 민중의 정치 의식화를 위한 민중교육기관
④ 제도 교육에 대안적인 대안교육기관
⑤ 모든 이를 위한 교육기관
[4] 야학은 국가의 정식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또 그 교육체계도 공교육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교과목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같은 존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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