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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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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자
안양대군
安陽大君
봉호 안양대군(安陽大君)
본관 전주(全州)
이름 규(邽)
부왕 국왕 이형(李㷩)
모후 왕비 민자영(閔玆暎)
부인 창녕부부인(昌寧府夫人) 조별단
자녀 1남 1녀
생몰년 1875년 4월 5일 ~ 현재
1. 개요2. 상세3. 행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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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체역사물 고종, 군밤의 왕의 등장인물.

2. 상세

원 역사에서 봉군되기 전에 요절한 고종과 명성황후의 3남이다.[1] 본작에서는 내의원이 일찍 개편된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이척과는 연년생으로 아빠보다 엄마 자영을 더 많이 닮아 영특하지만 은근히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귀남을 대단히 존경한다. 육십만 대군을 말 한 마디로 끌어와 북양군을 거꾸러뜨리며, 역시 말 한 마디로 천하를 저들 것으로 여기는 구미의 사람들을 한양으로 불러모으는 아버지라면 개국 이래 그 공적이 최고이며 이는 종묘의 그 어떤 선왕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분이 낮은 별단에게 청혼할 정도로 개방적인 성품이지만, 법의식이 대명률 시절에 멈춰있는 등 고루한 구석도 있다.

3. 행적

어느 날 마포로 미복잠행을 나갔다가 조별단이라는 아이와 만나 연을 맺어 1년 동안 인연을 이어가다 끝내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별단이 천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가의 자제도 아니라서 형 이척의 옆구리를 찔러 귀남의 반응을 살폈고 나쁘지 않자 자신이 대군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대원군에게 이 사실이 딱 걸려서 별단을 만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아무리 형이라도 감히 세자를 그렇게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다. 일부 종친들이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귀남과 김옥균의 도움으로 1895년, 끝내 조별단과 결혼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김옥균을 잘 따르게 됐다.

이후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져 귀남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운전을 취미로 삼았다. 운전에 너무 빠진 나머지 눈이 다 녹지 않았으니 운전을 삼가라는 귀남의 하유도 무시하고 운전을 하다가 그만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노면전차를 박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이후 기무회의를 박차고 달려온 귀남에게 뺨을 맞았고 이 일은 국법대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법의식이 대명률에서 멈춘 탓에 다른 사람들처럼 귀남이 뒤에서 수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정말로 국법대로 법정에 출석하게 생기자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옥균에게 조언을 구하였고, 법정에서 진솔하게 사죄하고 보상하겠다는 뜻을 밝혀 배상하고 벌금 무는 선에서 사태가 수습되었다.

그렇게 재판이 끝난 후 귀남의 명을 받고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스핏헤드 관함식에서 찰스 파슨스의 터빈 선을 보고 감탄하여 안 그래도 해외에 나온 김에 공 하나 세우고자 조선에 부족한 과학자들을 영입할 계획을 세웠던 터라 그를 영입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파슨스는 이미 영국의 주목을 받고 계약까지 체결해버려 한 발 늦은 꼴이 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않고 새 인물을 물색하였고 진령군에게 퀴리 부부와 치올코프스키에 대한 정보를 들어 김홍집에게 부탁해 우선 피에르 퀴리와 접촉하고자 한다. 그리고 만삭의 마리 퀴리와 접촉해 결국 퀴리 부부를 초빙하는 데 성공하고, 치올코프스키가 역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해줄 것을 요청하게 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에 귀남은 명석하여 공부를 좋아할 듯한 아들이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줄 알고 공조에 이야기해서 그때그때 중구난방으로 옮겼기에 어지럽던 과학, 공학 낱말들의 표준용어를 정하는 일을 맡게 됐다. 이에 따라 사실상 종친들 중에서 유일하게 실무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운산 광독 사건으로 슬슬 환경 정책을 추진할 때가 왔다고 느낀 귀남이 신문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사하는 일을 맡기자 동생의 조언을 듣고 인재들을 모아 자기 일을 대신 해줄 녹화회를 꾸렸다. 공조 일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군에 입대[2]하여 형처럼 편한 군생활을 누리려고 하였으나,[3] 형을 본받아 군대를 가는 줄로 착각한 귀남이 군에서도 저 좋아하는 기술 일을 하라고 비행기 관련 업무를 맡겨버렸다. 그래도 그 동안 공조 일에 정을 붙이며 사명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고, 일재주도 늘어서 나름 성과도 내고 있는 모양. 가끔 아내인 조별단과 함께 와서 비행기를 타며 데이트를 즐긴다고.

1910년에 터져버린 대전쟁에 인도적 지원을 결심해 만백성을 설득하고자 하는 아버지 귀남을 위해 종묘 이래 첫 옥음방송의 스태프로 참여한다. 생방송에 익숙지 않은 귀남이 시작부터 방송사고를 내자 다급히 사관의 만년필로 종이에 '시(是)' 자를 써서 방송시작을 알려주고, 대본없이 즉흥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점점 표정이 굳다가 임금 자리를 버려서라도 직접 가겠다고 희대의 폭탄발언을 던지는 것을 목도하며 기겁한다.

4. 기타

  • 봉호는 강원도 춘천의 옛 지명인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에서 유래했다. 성종의 3남이자 서차남인 안양군과 봉호가 겹친다.

[1] 첫째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였기에 사실상의 둘째 아들이다.[2] 정확하게는 1901년 아들이 태어남에 따라 세자의 전례에 따라 군에 가야 했었다.[3] 그가 제대할 때쯤 되면 공조의 자기 자리가 없어졌을 테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공조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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