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9월, 노농적군에 입대하려다 우크라이나 인민군에 발각돼 구속됐다. 2주 후 아버지의 보석금으로 석방됐으며 11월부터 제1우크라이나반란사단 타라시찬스키 연대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이후 제7블라디미르보병사단 제60보병연대 하급 부사관으로 복무하며 우크라이나군, 폴란드군을 상대했다.
1941년 11월, 서부전선 제31전차여단장으로 임명돼 모스크바 공방전에 참전했다. 이후 1942년 6월부터 보로네시-보로실로브그라드 방어전을 치른 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1942년 9월 18일부터 재정비를 마친 뒤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한 독일 육군 제6군을 포위해 천왕성 작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43년 2월 7일, 국방인민위원회 법령에 따라 크라브첸코의 제4전차군단은 제5근위전차군단으로 개칭됐으며 벨고로드, 하르코프, 키예프에서 부대를 지휘했다. 1944년 1월 10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법령에 따라 레닌훈장,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제2차 야시-키시네프 공세, 부다페스트 공방전을 끝낸 뒤 크라브첸코는 종전을 맞이했다.
※ 문서가 있는 인물만 종전 당시 계급으로 서술 ※ 병과원수랑 병과상원수는 대장과 동급이나 의전서열상 대장과 원수 사이에 있었다 ※ 포병·기갑·통신·공병·공군 장교는 상장→대장이 아닌 상장→병과원수로 진급 ※ 윗 첨자 † : 전사 1. 반공 및 지시불이행 혐의로 총살당했으나 전후 1957년 7월 31일 무죄로 판결나면서 복권 2. 1944년 4월 20일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 전후 1953년 8월 3일 대장 계급 복권 3. 1942년 3월 17일 원수→소장으로 4계급 강등 및 1945년 7월 19일 중장→소장으로 강등 4. 1942년 7월 12일 독일군에게 생포당한 이후 나치 독일에 전향, 종전 후 체포되어 나치 부역 혐의로 사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