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4:48:54

요르요스 아베로프

아베노프(순양함)에서 넘어옴
파일:Averof_Today2.jpg
Θ/Κ Γεώργιος Αβέρωφ
1. 개요2. 제원3. 특징
3.1. 함체3.2. 무장3.3. 장갑3.4. 동력
4. 역사
4.1. 구입4.2. 활약4.3. 제1차 세계 대전과 전간기4.4. 제2차 세계대전4.5. 전후
5. 평가

1. 개요

요르요스 아베로프(Θ/Κ Γεώργιος Αβέρωφ)는 그리스 해군장갑순양함으로 함명은 이 함을 구입할 당시 대금의 3분의 1을 기부한 그리스의 대부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 함은 1911년 취역부터 현재까지 남아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장갑순양함이자 상당히 드물게 남은 1차 세계대전 참전함이기도 하다.

2. 제원

파일:Giorgios_Averoff_cruiser_diagrams_Brasseys_1923.jpg
성능제원
구분 취역
(1911년)
개장
(1927년)
최종
(1945년)
전장 140.5m
전폭 22.2m
전고 7.18m
기준배수량 10,116t
만재배수량 10,400t
보일러 벨빌식 석탄중유혼소식 수관보일러 22기
주기관 직립형 4기통 3단 팽창식 증기 피스톤 기관 2기
최대출력 20,000마력 19,000마력
최대속력 23kt (43.5km/h)
항속력 12kt (22.23km/h)로
2,672해리 (4,949km)
17.5kt (32.4km/h)로
2,480해리 (4,590km)
연료탑재량 석탄 1,560톤, 중유 70톤
승무원 684명 670명 1,200명
(최대수용가능인원)
주포 9.2인치 (234mm) 47구경장 Mark X
2연장 주포탑 2기 (총 4문)
부포 7.5인치 (191mm) 45구경장 Model 1908
2연장 부포탑 4기 (총 8문)
속사포 3인치 (76.2mm) 40구경장 암스트롱 1916
단장 속사포좌 16문 (총 16문)
3인치 (76.2mm) 40구경장 암스트롱 1916
단장 속사포좌 8문 (총 8문)
대공포 없음 3인치 (76.2mm) 45구경장 20cwt QF HA Marks III
단장 대공포좌 4문 (총 4문)
기관포 1.85인치 (47mm) 40구경장 호치키스 3파운더
단장 기관포좌 2문 (총 2문)
폼폼 포 4문
(총 4문)
오리콘 20mm 기관포 6문
(총 6문)
어뢰 430mm 수중 어뢰발사관 3기 제거 없음
장갑 현측 주장갑 200mm, 현측 선수부와 선미부 80mm
갑판장갑 51mm
주포탑 정면 200mm, 측면과 후면 140mm
부포탑 정면 175mm
주포탑 바벳 190mm, 장갑함교 180mm

3. 특징

이탈리아 왕국이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개발한 피사급 장갑순양함의 준(準)동형함이다. 동형함이 아니라 준동형함인 이유는 주포와 주포탑이 이탈리아제가 아닌 영국제이기 때문이다.

피사급 장갑순양함은 동시기의 이탈리아 왕국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레지나 엘레나급 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주포와 주포탑 및 관련설비를 소형화하고 장갑도 얇게 한 대신 동력기관을 강화해서 속력을 2노트 정도 증가시킨 군함이며 설계사관인 주세페 올란드가 장갑순양함에 걸맞게 함형을 제대로 뽑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요르요스 아베로프가 피사급 장갑순양함과 다른 점은 피사급 장갑순양함의 주포인 10인치 (254mm) 45구경장 Model 1908 대신 영국제 9.2인치 (234mm) 47구경장 Mark X 2연장 주포탑 2기를 채용한 것이 다르다. 그래서 주포와 주포탑이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3.1. 함체

함체는 전형적인 평갑판형 선체로 만들어졌다. 함수부터 개략적인 배치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함수의 수면 아래에는 충각이 있는데 함포의 발달로 충각공격이 사라진 후에도 흔적기관처럼 설계가 답습되던 흔적이다. 함수로부터 함수갑판이 시작되며 전방부 주포탑이 위치한다. 그 뒤에는 장갑함교와 항해함교가 있고 바로 뒤에 삼각 마스트가 존재한다.

선체 중앙부에는 같은 간격으로 연통 3개가 선체 중심선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 양쪽 측면에는 각각 191mm 2연장 부포탑이 한쪽 측면당 2기씩 총 4기가 배치되어 있다. 부포탑 사이에는 76mm 속사포가 포곽형태로 배치된다. 연통 주변은 보트를 배치하는 용도로 사용되는데 2번 연통 양쪽에 부착된 보트용 크레인 2기와 삼각 마스트 후방에 위치한 1기의 보트용 윈치로 이동 가능하다.

선체 후방부에는 후방 마스트와 감시소가 있으며 그 뒤에는 후방부 주포탑이 위치한다. 선미 상부에는 범선처럼 제독, 함장 및 고급장교용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최후기형 장갑순양함답게 주포와 대구경 부포 및 속사포로 무장했으며 주요 무장과 시설을 균형있게 배치를 한 것이 특징이다.

3.2. 무장

주포는 피사급 장갑순양함의 10인치 주포가 아니라 동시기에 영국 해군에서 많이 사용하던 9.2인치 (234mm) 47구경장 Mark X 2연장 주포탑 2기를 사용해서 총 4문의 주포를 운용한 것이 특징이다.

해당 주포는 당대의 영국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중간포나 장갑순양함의 주포로 사용되는 물건으로 172.4kg의 중량을 가지는 포탄을 최대 앙각 15도로 14,170m까지 날릴 수 있었다. 관통력의 경우에는 4,160m의 거리에서 당대의 강철 장갑 234mm를 관통하며 5,480m 거리에서도 KC강 강철장갑 196mm를 관통할 수 있었다.

주포탑도 영국제 2연장 주포탑을 채용했다. 원통형 벙커같이 생긴 주포탑의 선회 각도는 선체 중심선 방향을 0도로 하여 좌우 142도의 넓은 선회 각도를 가진다. 포신의 부앙 능력은 앙각 15도, 부각 5도이다. 주포신의 부앙, 주포탑의 선회, 주포탄의 양탄 및장전은 주로 전기동력으로 가동하며 보조에 인력을 필요로 했다. 연사 속도는 분당 3 ~ 4발이다.

부포는 파괴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서 피사급 장갑순양함에 탑재된 이탈리아제 7.5인치 (191mm) 45구경장 Model 1908 2연장 부포탑 4기를 채용해서 총 8문을 운용했다.

해당 부포는 이탈리아제지만 영국의 암스트롱사의 제품이 기반이 된 것으로 영국이 운용하는 동급 구경인 7.5인치 (191mm) 비커스의 함포와 어느 정도의 호환성이 있다. 성능의 경우에는 90.9kg의 중량을 가지는 포탄을 최대 앙각 25도에서 사격할 경우 22,000m까지 포탄이 도달할 수 있으므로 주포의 사정거리를 능가하고 있다. 포신의 부앙 능력은 앙각 25도, 부각 5도다. 부포탑의 선회 각도는 선체 중심선 방향을 0도로 할 경우 160도의 넓은 선회 각도를 가진다. 부포신의 부앙, 부포탑의 선회, 부포탄의 양탄 및 장전은 주로 전기동력으로 가동하며 보조에 인력을 필요로 했다. 연사 속도는 분당 2.6발이다.

속사포의 경우에는 어뢰정 퇴치용으로 3인치 (76.2mm) 40구경장 암스트롱 1916 단장 속사포좌를 상부구조물에 포곽 형식으로 한쪽 측면당 8문씩 배치하여 총 16문을 운용했으며 기관포로는 1.85인치 (47mm) 40구경장 호치키스 3파운더 단장 기관포좌를 2문 운용했다. 해당 기관포는 대공능력은 없는 대수상용 기관포다. 그 외에도 430mm 수중 어뢰발사관 3기를 운용했는데 함수에 1기가 있고 양 측면에 1기씩 배치했다.

취역시 기준으로는 평범한 장갑순양함의 무장 그 자체로 대공화력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항공기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취역한 후인 1910년대에 대공포로 암스트롱사의 3인치 (76.2mm) 40구경장 대공포가 1문 장착되었으나 기존의 속사포를 대공포로 개조 및 전환한 것이라 성능이 낮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5년부터 1927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근대화 개장을 실시하였다. 이 때 기존의 기관포를 모두 제거하고 속사포도 8문으로 절반으로 줄이며 어뢰발사관을 모두 철거하는 대신 3인치 (76.2mm) 45구경장 20cwt QF HA Marks III 단장 대공포좌를 4문 장착하고 폼폼 포도 단장으로 4문을 장착하여 대공화력을 증강한다. 폼폼 포는 1930년대에 1문이 더 증설된다.

제2차 세계 대전중에는 폼폼 포가 모두 철거된다. 그 이유는 폼폼 포가 구식 QF 2파운더 Mk.II 이기 때문에 대공화력으로 써먹기에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 자리에는 오리콘 20mm 기관포 6문을 설치한다.

기본적으로 무장이 영국제며 타국제의 경우에도 영국제와 호환가능한 화기들이다. 그래서 그리스 침공으로 그리스 왕국의 본토가 점령당한 상황에서도 무장, 탄약, 부품을 수월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9.2인치 (234mm) 주포는 퇴역한 함포지만 아직 해안포, 열차포등으로 사용중이었고 7.5인치 (191mm) 부포도 호킨스급 중순양함의 주포 등으로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둘 다 포신, 포탄, 부품을 쉽게 영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속사포, 대공포, 기관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영국에서 조달이 가능했다.

3.3. 장갑

집중방어 개념이 나오기 전의 군함이지만 장갑순양함치고는 장갑이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 방어력이 좋다.

현측 장갑의 경우에는 주장갑은 최대 200mm 두께로 높이도 3.5m에 도달하며 주장갑이 아닌 부분도 장갑 두께가 80mm로 줄어들지만 선수부에서 선미부까지 장착된다. 그래서 선체 중앙부의 현측 장갑은 두께와 방어력이 좋아서 범위는 부포탑의 뿌리까지 덮어주고 두께도 175mm ~ 180mm에 도달해서 매우 튼튼하다.

갑판장갑의 경우에도 주갑판은 51mm로 구성되며 그 외의 경우에도 40mm 정도는 확보하고 있다. 주포탑의 경우에는 전면부가 200mm, 측면부와 후면부는 140mm 두께의 장갑으로 방어되고 있다. 부포탑도 전면부가 175mm에 도달할 정도로 튼튼하며 주포탑 바벳과 장갑함교도 최대 180mm의 장갑을 보유한다.

동시기의 장갑순양함에 비해 적은 배수량인 1만톤대에서는 엄청난 중장갑을 자랑한다. 당대 동급의 영국의 장갑순양함은 현측장갑이 152mm 수준이며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도 170mm ~ 180mm 수준이다. 이보다 방어력이 더 높은 장갑순양함은 배수량이 더 커서 1만5천톤에서 2만톤에 육박하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어뢰에 대응할 벌지같은 것은 없다시피 하다. 기본적으로 석탄 저장고와 격벽을 활용한 기본적인 내부방어만 있는 형태로 1차대전 시기의 어뢰에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3.4. 동력

동력용 보일러는 당대의 보편적 제품이며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각국에 채용된 벨빌식 석탄중유혼소식 수관보일러 22기를 채용했고 주기관으로는 직립형 4기통 3단 팽창식 증기 왕복피스톤 기관 2기를 조합하여 2축 추진으로 최대출력 20,000마력를 낼 수 있다. 그래서 건조 후 속도측정에서 23.9노트 (44.3km/h)를 기록했다. 물론 속도 측정시에는 전투시 배수량보다 약간 가볍게 하고 기관에 과부하를 걸어서 측정하므로 실제로 낼 수 있는 최대속도는 23노트 (43.5km/h)이며 항속거리는 12노트 (22.23km/h)로 2,672해리 (4,949km)다.

하지만 건조 당시 증기 터빈이 보편화되지 않고 아직 영국이나 독일 같은 강대국에서 비밀로 운용중이던 상황인지라 구식인 증기 왕복피스톤 기관을 사용하므로 지속적으로 고속을 내는 것이 증기 터빈에 비해 좀 어려웠다. 그래서 실용적으로 지속적인 속도를 내는 한계는 20노트(37km/h)가 한계라고 한다.

동력기관 문제는 처음부터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대개장을 받으면서 현대식 대공무장, 새로운 삼각 전면 마스트 및 장갑함교, 개선된 사격통제장치를 설치 및 교체하고 보일러와 주기관 및 연소실도 오버홀 및 정밀 검사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항속거리가 증대하여 17.5노트 (32.4km/h)로 2,480해리 (4,590km)를 달성했다.

그러나 동력기관을 현대적인 중유전소보일러와 증기터빈으로 교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되는데다가 이미 노후화된 군함으로 취급받는 상황인지라 성공률도 약간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와서 동력기관의 교체나 증설은 없었다. 그래서 최고출력이 19,000마력으로 하강하고 최고속도도 22노트 (40.75km/h)로 줄어든다. 여기에 더해서 대개장 이후에는 그리스 왕국의 경제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비를 못받아서 2차대전이 터질 쯤 해서는 최고속도가 12노트 (22.23km/h) 까지 하강하며 인도양에서 호송선단 호위를 할 때는 종종 기관고장이 발생하면서 속도가 9노트 (16.7km/h) 까지 떨어져서 임무수행이 곤란해졌고 긴급수리를 자주 받았으며 잔고장도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애초부터 순양함 답지 않게 항속거리가 상당히 짧았다. 이러한 증상은 이탈리아 왕국의 잘못된 해군 독트린에서 비롯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군함이 지중해에서만 행동할 것을 생각하고 설계했기 때문에 항속거리가 짧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본진수비용으로만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멍청한 발상은 후에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같은 거대한 식민지가 이탈리아 해군의 도움을 못받고 쉽게 고립당해서 20만의 대군과 함께 손쉽게 영국군에게 붕괴되며 미리 배치한 구축함도 항속거리가 짧아서 현지에서 탈출도 못하고 자침하는 것과 함께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탈리아반도 주변에 가두어지는 참상을 불러오게 된다.

그리스 해군도 지중해의 동쪽인 에게해에서 주로 활동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나치 독일에게 점령된 본국을 탈출해서 연합군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인도양에서 호송선단 호위를 할 때도 성능이 모자라서 수에즈 운하 경비함이나 그리스 망명 정부의 기함 같은 붙박이 업무용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만다.

4. 역사

4.1. 구입

1829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개입에 의해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그리스 왕국에게해를 끼고 동쪽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과 긴장관계가 계속되었다.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오스만 제국이 약해졌다 해도 소국 그리스 왕국에겐 여전히 강적이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1896 ~ 1897년 크레타 전쟁에서 그리스 해군에게 완패할 정도로 몰락할대로 몰락한 상태였던 자국의 해군 재건에 나섰다. 영국으로부터 군사 고문단을 초빙해 해군 장교와 수병을 양성하고 영국과 독일 등으로부터 장갑함과 프리깃, 잠수함 등을 대거 사들였는데, 여기에 당시 그리스 해군 전력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배수량 1만톤 급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브란덴부르크급 전함 2척을 구매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에 대항해 그리스 해군은 배수량 1만톤급의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1907년에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자국 조선사인 오를란도사에 발주를 넣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발주가 취소되어 건조가 중단된 피사급 장갑순양함 3번함 가칭 <X>이 있었는데,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오를란도사는 때마침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하길 원하던 그리스 정부에게 구매 대금을 원 가격의 3분의 1인 30만 파운드로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금액도 약소국 그리스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었는데, 운 좋게도 몇 년 전 당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해상왕(海商王)이며 대부호였던 요르요스 아베로프(Γεώργιος Αβέρωφ, 1815~1899)가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군함 구입에 쓰라고 그리스 해군에 30만 파운드라는 대금을 기탁했었고, 아베로프가 기탁한 이 대금으로 그리스 해군은 무사히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후 그리스 해군이 구매한 피사급 장갑순양함 3번함은 1910년 3월 12일 진수식을 거쳐 1911년 5월 16일에 완성 후 그리스로 인도되었고, 그리스 해군은 함선 구매에 도움을 준 아베로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함선에 그의 이름을 붙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취역한 장갑순양함이 되었다.

취역직후 탄약 및 부품 확보와 1911년에 영국의 스핏헤드에서 벌어진 관함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항해해서 도착했고 영국에서 활동중에 좌초되어 드라이도크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1911년 9월 1일에 그리스 왕국의 수도인 아테네 근처의 피레아스 항구까지 도착해서 그리스 해군에 합류한다.

4.2. 활약

취역직후 그리스 해군의 기함으로 해군의 핵심 전력이 된 아베로프은 1912년 10월 17일에 발생한 제1차 발칸 전쟁에서 해방전함 이드라급 3척과 구축함 14척을 거느리고 오스만 제국 해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8일부터 20일에 걸쳐 다르다넬스 해협 봉쇄를 노린 렘노스 섬 작전을 성공하자 1912년 12월 16일에 오스만 제국해군은 그리스에 반격을 개시했다.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발바롯사 하이레딘급의 튈구드 루이스와 발바롯사 하이레딘 2척과 장갑함 아사르 테부픽, 방호순양함 메지디에와 구축함 4척으로 돌격해 온 오스만 제국해군에 대해 그리스 함대는 기함 아베로프와 이드라급 해방전함 3척과 구축함 4척으로 반격을 실시했다.

오스만 제국함대는 해안에서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90도로 선회했다. 이에 아베로프의 콘드리오티스 소장은 속도가 빠른 함선들을 거느리고 20노트를 하명한 후 나머지 함에겐 자유행동을 지시했다. 아베로프를 기함으로 한 고속함대는 횡렬진, 장갑함 3척은 횡렬진을 따라 전진했다.

오스만 제국함대는 9,000m에서 사격을 개시했는데 중장갑의 프랑스제 해방전함을 방패로 한 아베로프는 서로 포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리스 해군의 맹렬한 기세에 놀란 오스만 제국함대는 다다넬즈로 철수하려 했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오스만 함대는 서로 먼저 나아가려고 하다 함렬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리스의 압승으로 끝난 이 해전은 엘리 해전으로 전사에 남았는데 이 이름은 1914년에 중국을 경유하여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경순양함 엘리에 그 이름이 부여되었다. 1913년에 다시 오스만 함대가 주력함 4척과 구축함 14척을 거느리고 다시 다르다넬스 해협을 넘어왔다.

그러나 다시 그리스 함대가 출동해 아베로프가 그 위용을 자랑하자 여기에 놀란 오스만 함대는 다시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콘드리오티스 소장은 이를 추격해 장거리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 약 2시간만에 5,000m까지 접근해 명중탄을 먹였다.

포격을 당한 발바롯사 하이레딘과 튈구드 루이스는 격렬한 화재가 발생했지만 전노급전함답게 다르다넬스 해협해안포 요새의 사격범위 안으로 도망쳤다. 허나 발바롯사 하이레딘의 2번 주포탑은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고 튈구드 루이스도 포탑 1기가 파괴되었으며 장갑함 아사르 테부픽은 대파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리스 해군의 피해는 운이 나쁜 수병 1명의 중상에 그쳤다. 그리스 함대는 건재했던 반면 오스만 제국함대는 전함 2척이 중파되고 장갑함 1척이 대파되면서 31명의 사망자와 82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번에도 그리스 해군의 승리로 끝난 이 해전은 레므노스해전으로 전사에 남아 이 이름은 미국으로부터 인도받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시시피급 전함 2척 중 2번함인 레므노스에 영광스런 이름이 부여되었다.

4.3. 제1차 세계 대전과 전간기

제1차 세계 대전시 우여곡절 끝에 협상국 측에 참가한 그리스는 함대를 프랑스로 보냈다. 프랑스 해군과 함께 선단호위에 종사한 아베로프는 1차대전이 끝난 후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 참전하여 그리스 왕국군을 지원하고 동부 트라키아와 튀르키예의 흑해 연안을 포격했으며 그리스 왕국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리스계 주민들의 피난을 도왔다.

전간기인 1925년부터 1927년까지 프랑스에서 근대화 개장을 행했다. 노후화된 엔진을 오버홀하고 부품을 교체한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그 후에는 쿠테타 시도에서 정부의 중요 인원을 대피시키기도 하고 1937년 5월 20일에는 영국의 스핏헤드에서 벌어진 관함식에 참석했다. 그 때 조지 6세 영국 국왕은 이전의 관함식인 1911년 관함식에 참석한 150척의 군함중 유일하게 모두 참석한 군함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4.4. 제2차 세계대전

전간기 동안의 국제정세 변화로 중립국이 된 튀르키예는 몰트케급 순양전함 2번함 괴벤 (Goeben)을 야부즈 술탄 셀림 (Yavuz Sultan Selim)이라는 이름으로 운용중이었으나 1918년부터 1923년까지 협상국에게 억류된 후 되돌려받긴 했으나 그냥 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을 지키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위험성은 적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특히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하면서 계속 그리스 왕국을 위협하는 중이었으며 이미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경순양함 엘리가 이탈리아 잠수함 델피노에게 격침당했는데 이탈리아는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결국 그리스 침공이 발생한 후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추축국에게 포획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침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승무원들이 스스로 군함을 움직여서 출항하고 지휘관이 합류하는 식으로 출항하여 나치 독일 공군의 공습을 피해가면서 크레타를 거쳐서 1941년 4월 23일에 이집트 왕국에 도착한다.

요르요스 아베로프가 대개장을 받긴 했지만 일반적인 순양함보다 속도가 느리고 대공화기가 빈약하여 나치 독일군이 날뛰는 지중해에서의 사용이 적합하지 않는다고 영국군은 판단했다. 그래서 독일의 가장순양함이 활동하는 해역을 호송선단으로 돌파할 때 요르요스 아베로프가 일반적인 중순양함보다 더 우월한 화력과 중장갑을 가졌으므로 독일의 가장순양함을 쫒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연합군은 요르요스 아베로프를 인도양 호송선단 호위함으로 보낸다.

그러나 대개장 이후 제대로 된 정비를 못받은 관계로 동력기관에 자꾸만 잔고장이 발생하고 속도가 크게 줄어드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여 호송선단을 따라가기 곤란해진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단독으로 항로를 순찰하는 순찰함이 되었다가 1942년 11월에 수에즈 운하 경비함이 되었다가 1944년 10월 17일에 그리스 망명정부의 기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4.5. 전후

전후 1952년 8월 1일에 퇴역함이 된 아베로프는 1956년부터 1983년까지 살라미스 만에 있는 포로스란 작은 항구에 계속 정박해 있었다.

1984년부터 팰리온 만으로 옮겨진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1986년까지 개조작업을 한 후 현재 그리스를 대표하는 전쟁기념 박물관함으로 개장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2017년에 Palaio Faliro에 있는 박물관용 부두에서 조선소로 견인된 일이 있었다. 이는 군함의 전체적인 점검 및 동력기관의 수리를 통해 자력항해가 가능하도록 할 목적이었다. 2017년 10월 5일에 2개월간의 과정을 마친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테살로니키 항구를 항해하여 방문하였다. 비록 완전한 수리는 아니라서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자력항해를 하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2017년 12월 13일에 Palaio Faliro에 있는 박물관용 부두로 돌아왔다.

박물관함이 되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아직 현역으로 운용중이며 승무원이 탑승하고 그리스 국기를 계양한다. 영국의 HMS 빅토리나 미국의 컨스티튜션함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5. 평가

순양전함이 등장한 후 마지막으로 취역한 장갑순양함이라서 있는지 없는 지 잘 모를 정도로 전공도 없는 잊혀진 군함 1호가 될 뻔 했으나 태생을 극복하고 그리스 왕국의 영웅이 된 군함이다.

도입 당시의 성과와 전공은 매우 높았으며 그 후에도 그럭저럭 쓸만한 전력을 유지해서 양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고 살아남아 유일한 장갑순양함 생존 군함이 된 것 자체가 위대한 위업을 세운 것이다.

다만 이탈리아 왕국이 건조하여 항속거리가 짧았고 비용 문제로 동력기관을 증기 터빈같은 고출력에 신뢰성 높은 것으로 교체하지 못했으며 그리스 왕국의 재정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비를 못받아서 2차대전에서는 전력으로 제대로 활동하지는 못했다는 옥의 티는 있다.

그러나 이미 취역시부터 큰 공적을 세운 뒤이고 비슷한 시기에 도입한 미시시피급 전함같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은 그냥 폐함과 부유포대로 전락해서 나치 독일 공군에게 허망하게 격침당했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요르요스 아베로프는 위대한 위업을 세운 군함으로서 역사의 기념비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