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Waléran III de Luxembourg-Ligny.jpg | ||
이름 | 발레랑 3세 드 뤽상부르리니 Waléran III de Luxembourg-Ligny | |
출생 | 1355년 | |
프랑스 왕국 생폴쉬르테르누아즈 | ||
사망 | 1415년 4월 10일 (향년 59~60세) | |
부르고뉴 공국 이보이 | ||
아버지 | 기 드 뤽상부르리니 | |
어머니 | 마호트 드 샤티옹생폴 | |
형제 | 피에르, 마르그리트, 장, 앙드레, 마리, 잔 | |
아내 | 모드 홀랜드[1] (1380년 결혼/1392년 사망) | |
본 드 바르[2] (1392년 결혼/1400년 사망) | ||
자녀 | 잔 드 뤽상부르생폴, 장 드 뤽상부르(사생아) | |
직위 | 생폴 백작, 리니 백작 |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생폴 백작, 리니 백작. 백년전쟁 시기 부르고뉴파의 진영에서 활동했다.2. 생애
1355년경 프랑스 왕국 생폴쉬르테르누아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생폴 백작이자 리니 백작 기 드 뤽상부르리니이고, 어머니는 생폴 백작 장 드 샤티옹생폴의 딸이자 생폴 백작 기 5세 드 샤티옹생폴의 누이인 마호트 드 샤티옹생폴이다. 형제로 피에르[3], 마르그리트[4], 장[5], 앙드레[6], 마리[7], 잔이 있었다.1371년 아버지 기 드 뤽상부르리니가 바일스와일러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뒤 16살의 나이에 작위와 영지를 계승했다. 당시 그 역시 아버지와 동행했다가 포로 신세로 전락했지만,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의 중재로 풀려났다. 1374년 아르드레 전선에서 프랑스군에 소속되어 잉글랜드군과 교전했다가 생포되어 윈저로 보내졌다. 잉글랜드 측은 그를 부흐의 카피탈이자 흑태자 에드워드의 최측근인 장 3세 드 그레일리와 교환하려 했지만, 프랑스 국왕 샤를 5세가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1380년, 포로로 있던 발레랑 3세는 초대 켄트 백작 토머스 홀랜도와 켄트의 조앤의 딸인 모드 홀랜드와 결혼했다. 이후 프랑스 내 영지에 대해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에게 경의를 표했고, 그 덕분에 몸값을 협상한 뒤 곧 석방되었다. 이후 루이 1세, 장 드 베리, 호담공 필리프의 부추김에 따라 프랑스 시종관을 맡았던 뷔로 드라리비에르를 잉글랜드군과 공모한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프랑스 무관장 올리비에 5세 드 클리송 등이 뷔로를 옹호했고,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뷔로의 직위와 재산을 복원하도록 했다.
1386년, 알랑송 공국의 시종인 장 드 카루주와 종자인 자크 르 그리가 서로 분쟁을 벌인 끝에 결투 재판을 벌였다.[8] 그는 장 드 카루주의 증인을 맡았고, 외 백작 필리프 다르투아는 자크 르 그리의 증인을 맡았다. 결투 재판 결과, 장 드 카루주가 자크 르 그리를 처단했다. 1396년 런던 평화 협상을 담당했고, 1396년 12월 30일 제노바의 첫번째 총독으로 임명되어 1397년 3월 18일까지 역임했다. 1401년 7월 31일, 샤를 7세의 딸이자 리처드 2세의 전 왕비였던 이자벨이 프랑스로 귀환할 때 토머스 퍼시로부터 그녀를 인계받았다.
1402년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으로부터 물과 숲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받았고, 왕실에 와인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은 부테이러 칭호를 수여받았다. 1403년 11월 9일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에게 잉글랜드를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신의 친척인 리처드 2세를 폐위하고 살해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 표명했다. 1403년 칼레를 봉쇄하고 잉글랜드 상인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도시로의 모든 육로 상업을 중단하게 했다. 1405년 2,000 병력을 이끌고 칼레 인근의 소규모 요새인 마크를 포위했다. 그러나 초대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에게 요격당해 프랑스 지휘관 몇 명이 사살되고 60~80명의 기사가 생포되는 피해를 봤다.
이후 파리에 민병대를 창설했고, 노르망디에서 아르마냑파를 여러 차례 격파했으며, 1411년 3월 5일 프랑스 무관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1413년 부르고뉴파와 함께 파리를 떠나야 했고, 1414년 뇌프빌 쉬르뫼즈를 포위했지만 공략에 실패했다. 1415년 4월 10일 이브이에서 사망해 그곳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모드 홀래드(1359 ~ 1392): 초대 켄트 백작 토머스 홀랜드와 켄트의 조앤의 딸. 그와 결혼하기 전에 기사 휴 코트니와 결혼했다.
- 잔 드 뤽상부르생폴(? ~ 1407): 브라반트 공작 앙투안 드 브라반트의 부인.
- 본 드 바르(? ~ 1400): 바르 공작 로베르 1세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딸인 마리의 딸.
- 사생아
- 장 드 뤽상부르(1400 ~ 1466): 하부르댕과 아일리의 영주. 부르고뉴국의 장성으로서 활약했다.
[1] 토머스 홀랜드와 켄트의 조앤의 차녀.[2] 바르 공작 로베르 1세의 딸이자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외손녀.[3] 1369 ~ 1387, 메츠 주교, 추기경. 1527년에 시복되었다.[4] 레체 백작 피에르 데잉겐과 초혼, 1384년 남편과 사별한 뒤 에노 백국 출신의 기사이자 시인으로서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고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전사한 장 드 베르친과 1398년에 재혼했다.[5] 1370 ~1397, 보부아르 영주. 생폴 백작 피에르 드 뤽상부르와 리니 백작 장 2세 드 뤽상부르의 아버지.[6] ? ~ 1396, 캉브레 주교[7] 장 드 콩데와 초혼했고, 장 드 콩데가 1391년에 사망한 후 사임 백작 시몽과 재혼했다.[8] 두 사람의 분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피에르 2세 달랑송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