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18:55:04

마르크 판보멀

반 봄멜에서 넘어옴

마르크 판보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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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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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2008~2010)
마르크 판보멀
(2011~2012)
로빈 반 페르시
(2012~2014)

FC 바이에른 뮌헨 주장
올리버 칸
(2002~2008)
마르크 판보멀
(2008~2011)
필립 람
(2011~2017)

케빈 스트로트만
(2011~2012)
마르크 판보멀
(2012~2013)
조르지니오 바이날둠
(20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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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판보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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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파일:Mark van Bommel.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마르크 판보멀
Mark van Bommel
본명 마르크 페터르 헤르튀다 안드레아스 판보멀
Mark Peter Gertuda Andreas van Bommel
출생 1977년 4월 22일 ([age(1977-04-22)]세)
네덜란드 림뷔르흐주 마스고프시 마스브라흐트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체중 85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포르튀나 시타르트 (1992~1999)
PSV 에인트호번 (1999~2005)
FC 바르셀로나 (2005~2006)
FC 바이에른 뮌헨 (2006~2011)
AC 밀란 (2011~2012)
PSV 에인트호번 (2012~2013)
감독 네덜란드 U-17 대표팀 (2014~2015 / 코치)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2015~2017 / 코치)
PSV U-19 (2017~2018)
호주 대표팀 (2018 / 코치)
PSV 에인트호번 (2018~2019)[2]
VfL 볼프스부르크 (2021)[3]
로열 앤트워프 FC (2022~2024)
국가대표 79경기 10골 (네덜란드 / 2000~2012)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7. 여담8.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축구 선수 출신 감독. 한국에서는 '반 봄멜'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대 PSV의 중흥에 일조하고, 2010년대 바이에른 뮌헨에 최초 외국인 주장으로서 다시 유럽의 강팀으로 만들고, 조국 네덜란드2010 월드컵 준우승에 일조한 미드필더. 네덜란드에서도 손꼽히는 자원이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최초 외국인 주장이었다. 커리어 내내 하나같이 쟁쟁한 클럽들에서 활약했다는 점[4],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나 출장했다는 점[5]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대 손꼽히는 홀딩 미드필더로 진가를 발휘했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고향 팀인 RKVV 마스브라흐트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한 판보멀은 훗날 장인이 되는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지휘하던 포르투나 시타르트에 입단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리고 PSV에 입단해서 박지성과 함께 리그를 깨부순 후 아르연 로번, 마테야 케즈만 등과 함께 팀을 떠난다.[6]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린 저력으로 FC 바르셀로나에 합류한다.

2.1. FC 바르셀로나

파일:vanbommelbarca.jpg

하지만 FC 바르셀로나에서 판보멀은 거친 성격 때문에 차비 에르난데스, 에드미우송 등에게 밀려 있었고[7] 결국 한 시즌만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8][9] 바르셀로나 시절 주로 후보로 출장하긴 했지만 리그에서 24경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9경기에 출장했다.

2.2. FC 바이에른 뮌헨

파일:200422_vanbommel.jpg

2006년 독일의 거함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바이언에서는 다시 주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은퇴한 올리버 칸에 이어 팀의 주장을 맡으며 바이언 최초 외국인 주장이 되었다. 그러나 판보멀이 주장이 된 2008-09 시즌은 감독 클린스만의 삽질로 인해 성적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2009-10 시즌에는 아나톨리 티모슈크가 영입되었지만 여전히 주전으로 중용되었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화를 가져간 후로도 그의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팀의 분데스리가와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서서히 주전 자리를 잃어갔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루이스 구스타보까지 오면서 주전의 기회가 거의 없게 되었다.

2.3. AC 밀란

파일:mark-van-bommel-milan.jpg

2010-11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밀란에서 판보멀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당시 팀은 피를로를 이적시키고 가투소와 세도르프는 나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외 플라미니 등은 할 말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밀란의 중원을 이끈 것이 판보멀이었다.

밀란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 뒤, 에인트호번에 리턴하고 그 곳에서 은퇴한다.[10]

3. 국가대표 경력

파일:vanbommel.jpg

2000년 10월 7일, 키프로스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를 치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유로 2004 직전 자신의 부상 등으로 인해 두 대회 출전이 좌절된 바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16강에서 뉘른베르크의 전투라 불린 혈투끝에 포르투갈에게 패하고만다. 이후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의 스텝이 총 사퇴하지 않는 한, 대표팀에서 뛰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유로 2008 이후 첫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장인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에 의해 중용되었고, 나이젤 데 용과 함께 중원을 책임지면서 팀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이후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가 은퇴한 후 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2년 뒤 유로 2012에서는 노쇠화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조별리그 탈락에 일조하였으며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대표팀을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젠나로 가투소클로드 마켈렐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처럼 빼어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마크 능력을 갖췄던 수비형 미드필더. 단, 상기한 세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하던 강건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강점 덕분에 중원 장악 능력이 뛰어났다. 뛰어난 피지컬과 높은 활동량과 강인한 체력의 삼위일체를 갖춘 홀딩 미드필더였고,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상대 중원을 담그는 동시에 수비 라인을 보호하고 공을 빼앗아 피치의 중원을 장악하는 게 판보멀식 플레이의 정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인한 득점력도 가지고 있었으나, 네덜란드 리그 이후로는 그리 발휘해 볼 기회가 없었다.

단, 선수생활 말년에는 원래 평범했던 속도가 느려지고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과 기동력 면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냈었다. 말년에 활약했던 바이언에서는 주전에서 밀려났었고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었다.

단점으로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이라 불필요한 카드를 받거나 팀 동료나 감독간의 불화가 잦았던 편. 판보멀은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마르코 반 바스텐이 임명된 후 갈등을 빚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바 있다. 장인인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선임된 이후 복귀했지만.

이런 성격이 단점으로도 작용하지만 피치 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주고, 필드 안팎으로도 적극적으로 의견 교환을 하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알면 바로바로 인정하는 편이기 때문에 주장 역할에 어울리며 오랫동안 주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바이언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으로 주장이 되었고,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당시 감독인 판 마르베이크가 장인이긴 했지만 부주장을 맡고 이후 주장까지 맡을 정도였다. 애초에 판보멀이 뛰어난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수많은 유명 선수들이 있는 빅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과 유럽 최상위 국가대표팀인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주장 혹은 부주장을 맡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런 플레이로 욕을 먹던 판보멀이 월드컵 결승전까지 팀을 캐리하면서 레드카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플레이가 원숙하지 못했던 바르셀로나 시절 이런것 때문에 에드미우송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이적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지만 사실 옐로카드는 무수히 수집해서 다음 경기에 못 나오는 일은 잦았어도 레드카드는 거의 받은 적이 없다. 어느 정도 통제하고는 있었다는 말.

5. 지도자 경력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 감독[11] 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U-17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장인어른인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코치를 지냈으며 2017-18 시즌에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PSV U-19 감독을 지냈다. 2018년 다시 장인을 따라 호주 대표팀 코치를 지냈다.

5.1. PSV 에인트호번

2018년 PSV 1군 감독에 부임했다. 2018-19 시즌에는 준우승을 했으나 2019-20시즌 PSV의 순위가 4위로 추락하면서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그렇게 무직으로 있다가 2021년 올리버 글라스너 감독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여 감독 자리에 공석이 생긴 VfL 볼프스부르크의 감독자리와 계속해서 연결되고 있다.

5.2. VfL 볼프스부르크

2021년 6월 2일 올리버 글라스너의 후임으로 분데스리가VfL 볼프스부르크 감독직에 부임했다.

프리시즌동안 치러진 친선경기 FC 한자 로스토크, 홀슈타인 킬, 올랭피크 리옹, AS 모나코 FC전에서 4연패를 거두며 우려를 사고 있다.

DFL 포칼 1라운드 뮌스터와의 경기에 연장전 끝에 3대1로 승리했으나 교체카드 초과로 인하여 교체카드 규정을 어긴 이유로 몰수패 처리되었다.[12] 이에 볼푸스부르크는 항소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리그에서는 우려와 달리 4연승을 거두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후 3연패를 달리는중...

프라이부르크와의 경기에서 2대0으로 패배하며 챔피언스리그 릴 전 이후로 8전 3무 5패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볼프스부르크 이사회는 판보멀을 신뢰하며 현재로서는 경질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13] 판보멀에게는 이후의 경기들이 중요해졌으며 반등의 기미가 안보일 경우 경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사회 선언 직후인 한국시간 10월 25일자로 경질당했다.

5.3. 로열 앤트워프 FC

2022년 5월 26일, 로열 앤트워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4년까지 계약.

벨기에 컵 대회에서 팀에게 3년 만의 컵 대회 트로피를 안겨줬다. 특히 8강과 4강에서 각각 KRC 헹크로얄 위니옹 생질루아즈라는 강팀들을 꺾고 이룬 성과라 더 값진 우승이었다.

리그에서 정규시즌 22승 6무 6패, 3위로 팀의 챔피언십 라운드 진출을 이끌었고 챔피언십 라운드에서도 KRC 헹크로얄 위니옹 생질루아즈를 제치고 무려 66년 만에 팀에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다! 앞서 PSV와 볼프스부르크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부임 첫 시즌부터 2관왕을 달성하여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케 했다.

2023-24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벨기에 슈퍼컵에서도 지난 시즌 컵 대회 준우승팀인 KV 메헬렌을 꺾고 슈퍼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부임 이후 3번째 우승컵이다.

그리고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진출한 2023-24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AEK 아테네 FC를 합계 스코어 3:1로 꺾고 팀의 창단 첫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2023년 9월 1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5년 6월 30일까지.#

2023-24 시즌이 끝나고 로열 앤트워프를 떠났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7. 여담

  • 2001년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딸 안드라와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축구를 시킨다. 장남 2002년생 토마스 판보멀는 축구선수로 MVV 마스트리흐트에 소속되어 있고 2004년생인 루번 판보멀 역시 AZ 알크마르에 소속되어 있다.
  • 한국인 팬들에게는 박지성과의 관계가 알려져 있다. 박지성이 네덜란드에 있을 시절에 만났는데, 박지성이 적응하지 못하던 시절에 어떻게 저런 애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줬지만 박지성이 부진을 탈출하자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고 사과했으며 그 반동으로 많은 지지를 보냈다. 자신이 꼽는 베스트 11에 꼬박꼬박 박지성을 집어넣을 정도.
  • 국가대표 시절 에드가 다비즈와의 다툼이 유명하다. 2003년 오스트리아와 경기 후 보멀이 다비즈에게 "왜 작전대로 하지 않느냐. 측면을 커버해야 하는데 네가 자꾸 중앙으로 오니까 네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했다." 고 지적했지만 다비즈는 "너는 고작 PSV에서 뛰는 선수고 나는 유벤투스의 선수이다. 네가 지적할 급이 되나?" 라고 윽박질렀다.[14] 당시만 하더라도 보멀이 다비즈에게 밀리는 건 팩트였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은퇴한 현재는 보멀은 3군데의 빅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하고, 바르샤에서도 챔스 우승을 경험하고, 국가대표에서도 월드컵 준우승까지 경험하는 등 더 나은 기록을 남기면서 커리어가 역전된다.
  • 네덜란드 국적의 축구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탓이기도 한 듯. 영어 인터뷰도 수준급으로 소화해낸다.

8. 같이 보기

1 스테켈렌뷔르흐 · 2 판 데 르빌 · 3 헤이팅아 · 4 마테이선 · 5 V. 브롱크호르스트 · 6 판 보멀 · 7 카윗 · 8 더 용 · 9 V. 페르시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불라루즈 · 13 오이여르 · 14 더 제이우 · 15 브라프하이트 · 16 포름 · 17 엘리아
18 샤르스 · 19 바벌 · 20 아펠라이 · 21 휜텔라르 · 22 보스커르 · 23 판 데르 파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2] 시즌 도중 경질[3] 시즌 도중 경질[4] 지금의 PSV만 기억한다면 놀랄 일이지만 판보멀이 활약하던 당시 PSV는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어낸 팀이다. 당장 박지성부터가 PSV시절의 활약과 챔스 4강때의 인상적인 모습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영입된 것만 봐도 당대 PSV의 입지를 알 수 있다.[5] 판보멀의 출장경기수인 79경기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1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6] 케즈만과 로벤은 04-05 시즌에 첼시로 이적했다. 판보멀은 그 다음 시즌에 이적[7] 나머지 한 자리는 데쿠가 차지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니에스타마저 성장하며 교체선수에서도 우선순위가 밀렸었다.[8] 이 때의 앙금이 남아 있었는지, 후에 201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미드필더로 차비와 이니에스타를 만났을 때 이전 팀 동료였음에도 판보멀이 시종일관 고함을 지르며 위협했다고 한다.[9] 재미있는 사실로 정작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판보멀이 차비, 이니에스타를 제치고 선발 출전했다. 이후 후반 61분경 헨릭 라르손과 교체되었다.[10] 여담으로, 은퇴 경기에서 퇴장당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에 임대를 다녀온 뒤, 은퇴를 하게 된다.[11] 1972년생 암스테르담 출신 축구인으로 1982년생 동명이인과는 달리 무명선수였다.[12] 원래 5명까지 가능하나 볼프스부르크 관계자들이 부심에게 교체해도 되냐고 물었으나 부심이 제대로 답변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라고 한다.[13] 그를 선임했던 단장인 슈마트케는 프라이부르크전에서 얼굴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4] 어쨌든 작전대로 하지 않은 것은 맞기 때문에 당시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는 다비즈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다비즈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