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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평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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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제적 실패3. 외교적 실패4. 공약 파기와 말 바꾸기
4.1. 기초연금4.2. 반값 등록금4.3. 창조경제4.4. 증세 없는 복지4.5. 누리과정4.6. 고교 무상교육4.7. 영남권 신공항4.8. 군복무 기간 단축
5. 노동개혁
5.1. 입법서명 주도
6.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7.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8. 독도 예산 삭감9. 지지부진한 행정구역 개편10. 관련 문서

1. 개요

세월호 참사메르스 대유행을 겪으며 사회가 흉흉해졌고 취임 직후부터 이어진 인사파동, 사회 분열, 양극화 심화 등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능하다는 평가가 증폭되었다.

2. 경제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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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교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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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약 파기와 말 바꾸기



파일:external/s32.postimg.org/28d7a8bc7ba04aeed0afd72dfc0ec008.jpg파일:external/s31.postimg.org/4fd0cd2a1f4d2663584bab302d02e559.jpg파일:external/s31.postimg.org/b7675f50261fbcc32c4e73d3cbf1ef85.jpg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첫째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하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는 정치를 지금까지도 해왔지만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국민질문> 답변
박 대통령은 정치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취임 이후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공약을 어기거나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과거 발언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사기꾼이란 비난을 받았다. 즉, 선심성 공약(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며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말이 바뀐다는 지적이다. SBS 비디오머그에서 대기획으로 대통령의 수사학 - 과거와의 전쟁이란 영상을 제작했을 정도다. 또,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하겠다고 공언하였으나, 박근혜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에게서 "이미 파기된 공약이 60개 넘는다. 곧 100개를 돌파할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파기된 공약 중에서 대표적으로는 기초연금 공약과 무상보육 공약이 있다.

최근 "윤서인의 적은 윤서인"이란 말의 줄임말인 윤적윤을 패러디한 박적박이란 유행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의 말바꾸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적박은 "박근혜의 적은 박근혜"란 뜻인데 매우 다양한 어록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3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미숙한 정부대처로 재난관리체계가 마비되고 박근혜 본인의 행적이 규명되지 않은 점, 2015년 6월 메르스 대유행으로 30여 명이 사망했다. 이런 점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박근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김선일 피랍사태에 대해 말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노무현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발언이 유명하며, 그 외에 담뱃값 인상,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안과 관련한 언행이 있다.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2년 전의 발언과 비교하는 영상이 나왔는데 태도가 완전히 극과 극이다.

파일:external/img.hani.co.kr/144608144311_20151029.jpg
2012년 대선 발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포함된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과 파견법 유연화 방안과 반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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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의중대로(이른바 배신의 정치, 진실된 사람 발언) 비박계 의원들에 대해서 '친박 내리꽂기'식 '보복 공천'을 실시하였는데, 과거 박근혜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사당화, 즉 공천에 사심이 개입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2008년 1월 10일)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특정 계파) 입맛에 맞춰 (공천)해서는 안된다. 국민도 납득할 수 없다." (2008년 1월 31일)
"기준도 없는 표적 공천에 희생당한 여러분을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진다." (2008년 3월 14일)
''결국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권력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 (2008년 3월 23일)

4.1. 기초연금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 MBC에서 주최한 2차 대선 토론회에서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취임 1년차인 2013년에 상위 30%을 제외한 7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기로 해서 당초 약속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일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진영 의원은 '원조 친박'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이걸 어떻게 국민들과 야당한테 설명을 하라는 얘기냐. 이건 양심의 문제다"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대통령 친박계와는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후에 20대 총선 시즌이 왔을 때 새누리당의 공천 작업을 사실상 총괄했던 친박계는 진영 전 장관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구에 여성 후보를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해 진영 전 장관을 쫓아냈다.

이에 진영 전 장관은 "국민의 편에 섰다가 쓰라린 보복을 당했다"는 말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였고, 김종인 대표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42.8%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더민주 지지자들은 조경태를 내보내고 진영을 데려온 것은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니라면서 만족스러워하는 듯하다

4.2. 반값 등록금

파일:external/www.redian.org/%EB%93%B1%EB%A1%9D%EA%B8%88.jpg 파일:external/file2.instiz.net/40fc291389546e46d6f1318d3b998902.jpg
파일:external/newstapa.org/2016020501_02.jpg 파일:external/newstapa.org/witness42-preview02.jpg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 반값등록금을 실현하여 가정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낮추겠다고 말했으나, 2017년 현재 일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그 지원액수도 턱없이 부족한 국가장학금 제도란 비판에 직면했다.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학생들은 학부모의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국가 장학금을 지급받는데, 장학금 지급은 한해 70여만 원에서 최대 480만 원까지로, 모든 학생들이 조건없이 ‘반값 등록금’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학등록금은 세계적으로 비싼 편에 속하며, 임금수준을 고려하지 않아도 국내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평균 등록금 액수는 733만 원가량으로,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높다. # #2#3

4.3.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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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증세 없는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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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누리과정

박근혜는 대선 토론회에서 만 5세까지 국가에서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하였으나, 2015년 말에 지자체의 예산 부족으로 보육대란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도 누리과정 예산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기는 행동을 보여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고교 무상교육 정책을 위해 예산을 책정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게 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여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감사원에서 실시한 "시도교육청에 대한 누리과정을 편성할 예산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유무의 감사 결과"에서 교육청들은 누리과정을 충분히 편성할 예산이 있다고 감사결과를 밝혔다. 야권은 정치감사라고 비판하였으나, 자기들도 충분히 정치적 의도에 누리과정을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으로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는 정치적 성향에 갈리는, 즉 객관적으로 정확히 판단이 불가능하다.

4.6. 고교 무상교육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 고등학교 등록금 걱정을 국가가 나서 덜어주겠다고 확언하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4년차인 2016년에도 요원해 공약 실행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실행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2016년 9월에 이 공약은 공식적으로 폐지가 되었다.

4.7. 영남권 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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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 부산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 공사하겠다며 백지화시켰다. 박수치던 할머니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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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군복무 기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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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핵심 공약 중 하나로 군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할 것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 공약 역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아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1]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군 감축이 간단한 일은 '결코' 아니다. 인구가 주는 와중에 복무기간을 줄이면 이전 수준의 병력 유지를 위해서 몸에 불편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이들을 더 무리하게 징병해야 하거나 대대적인 군 감축을 강행해야한다. 당장 인구가 부족하다고 (하겠단 군 감축은 전혀 안 한) 국방부가 무작정 대체복무를 폐지할 계획을 내 놓은 것도 표면적으론 인구문제 때문이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애당초 국가 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은 대통령을 따르게 되어있다.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데 주변 상황 안보고 대체복무를 폐지하겠단 계획을 발표한 국방부를 보면 군 복무기간 단축 및 (사실상 필수적인) 군 감축에 대한 의견 등을 국방부로 전하긴 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5. 노동개혁

당초부터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 정규직 일반해고 완화 등 대한민국의 노동여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되어 양대노총과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였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박근혜의 말과 비교되어 더욱 지탄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공공기관 개혁을 부르짖는 박근혜정부의 낙하산인사 비율이 전임 MB정부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높다는 사실이고 심지어 20대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한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 그야말로 속과 겉이 다른 위선적인 모습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60조이르는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안처럼 2013년 저성과자 퇴출제도를 도입한 KT의 경우 자그마치 8,304명에 달하는 인원이 퇴출되고, 노조의 유명무실화가 일어나는 등 대규모 퇴출은 있되 고용은 없어 정부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5.1. 입법서명 주도

여야의 입장차와 노동계의 반발로 노동개혁안이 좌초 위기에 처하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개혁안 자체가 '노동개악'이라 불릴 만큼 문제점이 많은 점과, 당사자 입장에 있는 일반 국민과 노동계를 찾지도 않고, 금융권과 재계의 인사들, 정부 각료를 대동, 동원하여 서명을 받았단 점 때문에 독재정권 시절의 관제서명이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정부가 각 기업의 서명건수를 감독하는 것으로 알려져 큰 반발이 예상된다.

6.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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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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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독도 예산 삭감

일본의 우경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독도 관련 예산을 증액한 MB정부와 비교해 예산 규모를 큰 폭으로 깎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근혜정부는 "독도예산을 삭감한 것은 경제살리기를 위한 것"이란 비상식적인 해명을 내놨다. # #2 #3 그러나 외교평가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외교 도발에 "유감", "분노", "통탄"과 같은 논평밖에 내놓지 못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국민의 실망을 샀다.

9. 지지부진한 행정구역 개편

박근혜 정부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도 행정 구역 개편 문제에 대해 훨씬 소극적이었던 편으로, 박근혜 정부가 펼쳤던 행정구역 개편 정책으로는 책임읍면동제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 폐지 개편 등 전면적인 행정 구역 개편을 바라는 측에서는 답답해 보일 만하다. 참고로 청주시-청원군 통합 개편은 이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자율 통합된 경우라서 별도의 서술은 다루지 않는다.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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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데 사실, 이 공약은 당선되고 겨우 10개월만에 완전히 파기되었다. 이렇게 공약을 빨리 파기시킨 걸로 보아 애초에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