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과거 유럽인들이 상상했던 가상의 대륙. 대항해시대 이전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지구상의 대륙이 적도 이북 북반구에 몰려있었다. 이에 적도 이남 남반구에도 비슷하게 큰 땅덩이가 있어야 균형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 세계 지도 아랫쪽에다 거대한 대륙을 하나 떡 하니 그려놓고 미지의 남방대륙이라고 써놓았다. 그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이건 아예 서구 문명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이를 라틴어로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라 했는데, 여기에서 '아우스트랄리스'라는 말이 훗날 호주(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의 어원이 되었다.
57초부터 보이는 보라색 땅덩이.[1]
그러니까 이런 거. 이미지를 원본 사이즈로 확대해 보면, Terra Australis Incognita와 같은 의미인 Terra Australis Nondum Cognita라고 쓰여 있다. 한반도는 아직 그려져 있지 않다.[2]
문서 말미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미지의 남방대륙'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고,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져 동양 고지도상에도 묘사된다. 위는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로, 중국에 선교사로 체류했던 알레니(Aleni)의 《직방외기》(職方外紀)(1623)에 수록된 〈만국전도〉를 베이스로 18세기에 조선에서 그려진 지도이다. 역시 남방대륙이 보인다. 이미지를 원본 사이즈로 보면 '묵와랍니가'(墨瓦臘泥加)'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마젤란의 땅'이라는 뜻의 'Magellanica(Magallanica)'에서 나온 말로, 마젤란이 세계 일주 중 발견한 오세아니아 일부 지역을 남방대륙의 부분으로 여긴 것이다.
2. 역사적 의의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으로 추정되며, 유럽인들은 톨레미 지도로부터 거의 1,300년 이상 미지의 남방대륙과 아프리카가 맞닿아있다고 믿었다. 이는 다시 말해 인도양이 아프리카와 미지의 남방대륙, 아시아에 둘러싸인 내해라는 의미로,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빙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유럽의 고지도를 보면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기 직전까지도 아프리카가 남방대륙과 이어져있는 지도가 유행했다. 다만 1459년 베네치아의 프라 마우로가 포르투갈의 의뢰로 제작한 지도에서도 아프리카의 남쪽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프라 마우로는 이에 대해 그 근처를 항해하던 선원들로부터 들은 소문에 근거해 그린 지도라고 설명했다. 당장 1402년 조선에서 그려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조차 아프리카가 실제에 매우 가까운 형태[3]로 그려진 것을 보면 의외로 아프리카와 이어진 남방대륙이란 인식은 중세 유럽인만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미지의 남방대륙이 유럽 근대사에서 차지한 비중을 외면할 수 없는 건, 이를 목표로 감행된 숱한 항해 탐사활동이 호기심을 충족하려던 일부 호사가들의 취미가 아니라, 무역로 개척과 식민지 확장을 기도한 나라들에 의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남•북 아메리카의 존재가 알려진 다음에도 세계 지도의 아래쪽 - 남반구의 공백은 여전했고, 이는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좇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대륙을 향한 욕망을 부채질하였다.
흔히 남태평양 탐험의 주인공으로 영국의 쿡 선장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영국의 해양진출이 남다른 면이 있었지만, 17~18세기의 남태평양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도 적극적인 탐사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예컨대 호주와 뉴질랜드는 훗날 영국령이 되었으나 그 존재를 먼저 탐사한건 네덜란드인이었다. 네덜란드와 관련된 지명을 들자면, 태즈메이니아데블의 고향이기도 한 호주 남쪽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은 네덜란드 탐험가 타스만(Tasman)의 이름에서 비롯되었고, 뉴질랜드는 그 이름 자체가 '새로운(New) 질랜드[4] 주'를 의미하며,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바다는 '태즈먼 해', 심지어 뉴질랜드 남섬의 한 빙하는 '태즈먼 빙하'다. 아예 호주 대륙 자체가 처음엔 뉴홀랜드(New Holland)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유럽인들이 상상했던 대륙의 규모는 남반구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으니, 탐사선이 한번이라도 스쳐 지나가지 않은 곳이라면 죄다 육지가 있을 거라고 간주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탐사를 거듭할수록 육지 발견보다 망망대해를 그냥 지나치는 일이 더 많았다. 육지라고는 대개 자잘한 섬들이었고, 그나마 좀 넓다는 것도 '뉴홀랜드'라든지 뉴기니, 뉴질랜드, 남극 대륙 정도였다. 호주나 남극도 대륙이니까 크다면 크긴 한데 그래봤자 러시아 1개국보다도 작은 대륙이라 원래 상상했던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는 전혀 아니었다. 결국 남•북반구의 균형을 예상한 유럽인들의 상상과 달리 남반구는 북반구에 비해 땅이 실제로 훨씬 적었다.
'뉴홀랜드'가 훗날 '오스트레일리아'로 명명된 것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온 남방대륙이라는 뜻의 라틴어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지만, 막상 실측 자료를 토대로 지도에 그려놓고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거대한 땅덩이는 아니었다. 해양탐사 정보가 축적되어 가면서 지도상의 남방대륙 가장자리는 갈수록 깎여져 나갈 뿐이었고, 그 덕분에 태평양만 몸집을 불려가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호주 대륙과 남극, 뉴질랜드, 뉴기니를 비롯한 남태평양의 섬들이 발견된 것과 대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도 의의가 대단했다. 오세아니아 일대가 아메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발견되었으며, 뒤이어 남극대륙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탐험가와 지리학자들이 밝혀낸건 초거대 대륙이 아니라, 지구 표면의 3분의 1, 전체 해양 중 절반, 전세계 육지면적을 다 합친 것보다도 넓은 초거대 대양 태평양의 실체와 자그만한 남극이었다. 천동설이 지배하던 우주관이 지동설로 대체되었듯이, 상상속의 남방대륙이 현실 세계의 오세아니아(Oceania)로 탈바꿈한 건 지리학계로서는 일대 혁명적인 변화였다. 실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게 아니라 관념상의 변화일 뿐이지만 문자 그대로 육지가 바다로 바뀌었다는 뜻의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대륙의 이미지를 무참히 깎아내 버린 건 다름아닌 대륙의 발견을 꿈꾸던 탐험가들이 이루어낸 역설적 공로였다.
3. 기타 이모저모
묘하게도 예전의 지도에 그려진 남방대륙은 남극점을 중심으로 뻥튀기한 땅덩이였으니, 가장자리를 좀 도려내기만 하면 현실 세계의 남극대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면적으로는 1400만㎢로 호주대륙의 곱절이나 되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못 된다는 걸 제외한다면 남극이야말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른다며 막연히 동경해오던 남쪽 거대한 땅이라는 관념에 더 부합할 수도 있겠다.물론 실제 남반구는 육지보다 바다의 비율이 더 많고, 호주와 남극대륙을 다 합쳐도 이 또한 옛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에 미치진 못한다. 다만 왕성한 탐구 정신이 이어졌다는 측면에서 남극을 향한 열정은 과거 선배 탐험가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며, 아직도 남극 대부분이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미지의 남방대륙이라는 존재와 신비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할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육지의 비중이 적어서 아쉬워했지만 지구과학이 발전한 지금은 바다의 비율이 높은 것이 지구상의 생명체로서는 무척이나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지구의 온도는 적당히 유지되어 좀 더 생명체의 생명활동에 적합할 수 있었다. 또한 잘 알려져있다시피 생명이 최초로 기원한 곳도 바다이다.
4. 여담
- 사실 'Terra Australis Incognita'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도 이러한 대륙이 설정되기도 했다. '마겔라니카'라는 대륙이 바로 그것인데[5],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서양 선교사들과 접촉한 명나라 말기의 세계지도 등에 '묵와랍니가'(墨瓦臘泥加)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에도 전해진 <곤여만국전도>. 화한삼재도회 1권에서도 "사람과 말이 지나갈 수 없는 지역이라는데, 땅이 낮아서 그렇다나 보다"[6] 정도의 의뭉스러운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 초고대문명설의 배경으로 한때 대서양에 존재했다던 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 못지않게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던 상상의 대륙이 태평양에도 설정되었다. 그 이름은 무 대륙(무 제국의 본거지). 그 이미지는 다름아닌 미지의 남방대륙을 되살려놓은 것이며 천재지변으로 가라앉았다는 설정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스터 섬의 거석상 모아이를 비롯한 태평양의 불가사의한 유적들은 무 대륙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주목을 받았거니와, 서구인들에게 잠재된 남방대륙의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일대 선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또한 서브컬처계 작가들에게 적잖은 모티브를 제공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주도한 처치워드의 저작물은 사기(또는 낚시)행각이라는 설이 대세.
- 남극대륙이 발견된 것은 1820년인데 그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에도 남극쪽에 이런게 떡하니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증거로 초고대문명설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1500년대 초중반에 만들어졌다는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에 그려진 '남극처럼 보이는 것'도 그냥 이 상상 속의 대륙일 가능성이 높다.[7] 곤여만국전도도 1600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이다.
-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세계일주 항해를 나갔을 때, 처음 영국 정부에서 세운 계획은 이 남방대륙 탐사였다. 다만 출발 직전에 해적질로 계획이 바뀌었고,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서 드레이크 해협의 존재를 확인[8]하자마자 드레이크는 남쪽 바다를 쓱 한번 보고는 "남방 대륙 따위는 없어!"를 한 번 외쳐 주신 후 쿨하게 배를 북으로 돌렸다. 사실 이거야 애초 목적이 해적질에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에서는 사후 세계를 탐방하면서 사후 세계를 '테라 인코그니타'라고 명명한다. 본 문서의 표현에서 '남쪽'을 뜻하는 '아우스트랄리스'만 빠진 표현으로, 해석하면 "미지의 대륙"이 된다.
- 판타지 계열에서도 가끔 미지의 남방대륙에서 따온듯한 대륙들이 나오는데 당시의 인식은 물론이고 대항해시대에서도 늦게 발견된 것 때문에 알려진게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예: 레젠다리움의 검은땅, 얼음과 불의 노래의 울토스, Warhammer의 남부 카오스 황무지)
[1] 여담으로 극지방에서는 빙하가 계속 녹기 때문인지 자잘한 섬이 여전히 새로 발견되고는 한다. #[2] 본 지도는 1570년대의 것이고, 한반도는 1590년대 들어서야 '섬'의 형태로 서구권의 지도상에 차츰 등장하기 시작한다. 단, 12세기 알 아드리시의 지도와 같은 중세 아랍권 지도에서는 이미 신라가 섬으로 등장하고는 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거의 연결시켜 생각한 결과 섬으로 인식된 것이다. 반도로 묘사된 것은 또 한참 후의 이야기이다.[3] 크기는 틀렸다. 아프리카가 조선보다 작게 그려져 있다.(...) 물론 1402년에 조선에서 직접 아프리카까지 선단을 보내 실측했을 리 없고, 해외에서 간접적으로 입수한 자료만으로 이 정도까지 정확한 지도를 그렸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것이다.[4] Zealand, 네덜란드의 제일란트(Zeeland)[5] Magellanica. 마젤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6] 논지는 이러하다. 땅과 하늘이 36도 정도 비틀려있어서 땅이 높은 곳에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일어나고, 땅이 낮은 곳은 (백야가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갈 수 없다는 식이다. 1700년대 초에 나온 이 서적에는 아직 지동설이 반영되어 있지 않으므로 극야/백야에 대한 설명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7] 혹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일부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스탄불을 기준으로 사방을 바라보는 형태로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8] 이로써 남방대륙은 지도에서 또 한 뭉텅이가 잘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