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마테이 요니치
1. 개요
마테이 요니치의 선수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2. 선수 경력
2.1. 유소년 시절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1]에서 태어나 2002년부터 지역의 명문 팀인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스플리트의 유스로 활동하면서 크로아티아 청소년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상당한 기대를 모으던 선수였다.2.2.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2.2.1. NK 자다르 임대 1기
2009-10 시즌을 앞두고 크로아티아 1부리그 팀인 NK 자다르로 임대를 떠나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자다르에 입단한 후 2라운드에 친정팀 하이두크 스플리트를 상대로 선발로 출전하여 데뷔전을 치렀다. 강팀인 스플리트를 상대로 자다르가 1:0 승리를 거뒀고, 요니치 역시 성공적인 데뷔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반년간 리그 13경기에 나선 요니치는 리그 내에서 돋보이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2.2.2. 2009-10 시즌
요니치의 활약이 이어지자 원 소속 구단인 스플리트는 그를 임대 복귀시켰다. 복귀한 뒤 19라운드 인테르 자프레시치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며 스플리트 소속 첫 경기를 치렀고, 이어서 HNK 리예카를 상대로도 출전하며 차츰 입지를 다져가는 듯 싶었다.그러나 그 이후로는 상위권 팀인 스플리트에서 종종 교체명단에 올랐을 뿐, 좀처럼 출전 기회가 오지 않았다. 결국 임대 복귀 이후로는 단 두 경기 출전에 그쳤다.
2.2.3. 2010-11 시즌
프로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시즌에도 스플리트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UEFA 유로파 리그 예선 2차전에 우니레아 우르지체니를 상대로 교체 투입되면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고, 리그에서는 종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다가 18라운드 시베니크와의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후 유로파리그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RSC 안데를레흐트전에 선발로 출전하며 유로파리그 본선에도 데뷔했다.하지만 새 시즌에도 요니치의 입지는 여전히 좁았다. 후반기 들어서는 명단에 더 자주 오르고, 기회도 늘어났지만 끝내 리그 4경기를 포함하여 시즌 내내 6경기 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2.2.4. NK 자다르 임대 2기
출전 시간이 필요했던 요니치는 프로 데뷔전을 치렀던 자다르로 다시 임대를 떠나게 됐다. 자다르에 합류한 후 개막전부터 곧바로 선발로 출전했고, 굳건하게 입지를 다지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리그 30경기 중 26경기에 출전하면서 처음으로 한 시즌을 팀의 주전으로 나섰다.2.2.5. 2012-13 시즌
자다르에서 한 시즌을 주전으로 보낸 뒤 스플리트로 복귀했다. 성장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유로파리그 예선 경기를 통해 일찍 출전 기회를 얻었고, 이때 빅클럽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상대하기도 했다.[2]리그에서도 개막전을 풀타임으로 소화했고, 그 후에도 꾸준히 명단에 오르면서 달라진 위상을 선보였다. 그러나 주전으로 오르지는 못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서 보냈다. 후반기 첫 경기인 20라운드 슬라벤 벨루포 원정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뜨렸으나 그 경기에서 광대뼈 부상을 입었고, 그 여파로 한동안 결장하게 됐다. 그래도 복귀 후 시즌 최후반부 일정은 주전으로 소화하면서 마침내 팀에 자리를 잡는 듯 했다.
여담으로 이 당시 당했던 부상으로 인해 잠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마스크를 구할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팀 코치를 통해 독일 뮌헨의 마스크 제작자를 소개받고, 함께 안면 부상을 당한 팀 동료 고란 밀로비치[3]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뮌헨에 가서 마스크를 공수했다. 뮌헨에 간 뒤에는 당시 TSV 1860 뮌헨에서 뛰던 마린 토마소프[4]의 도움으로 마스크를 끼고 실험삼아 1860 뮌헨의 훈련에 참여했다.
최종적으로 리그 11경기 1득점, 전체 15경기 1득점을 기록했다.
2.2.6. 2013-14 시즌
상승세를 타는 듯 싶었으나, 2013-14 시즌에는 도로 입지가 줄어들었다. 전반기 내내 리그 3경기, 컵대회 2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요니치는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2.2.7. NK 오시예크 임대
전반기가 종료된 후 요니치는 같은 리그의 NK 오시예크로 임대를 떠났다. 합류 후 첫 경기에서 친정팀 자다르를 상대했고, 오시예크 소속 데뷔골을 터뜨리며 인상적인 경기를 치렀다. 그 후로도 주전 멤버로 경기를 꾸준히 소화했고 수비수지만 반년간 3득점을 기록했다. 후반기에 합류했지만 리그 13경기 3득점, 전체 15경기 3득점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2014-15 시즌에도 오시예크에서의 임대 생활을 이어갔다. 5라운드 NK 자그레브전에는 멀티골을 기록했고, 경고누적으로 빠진 1경기를 제외하면 전부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오시예크 시절 요니치는 수비수임에도 리그, 컵을 통틀어 총 35경기 8득점을 기록하는 등 어지간한 공격수와 비교할만한 실적을 남겼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FC 1기
영광의 인천 유나이티드 FC 시절 |
오시예크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요니치는 2015년 1월, 갑작스레 아시아의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됐다. 영입 당시 인천 팬들조차도 어리둥절했는데, 당시 인천은 재정난에 시달리느라 선수 영입이 어렵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는 요니치 합류 시점에서 이보 하나만 남아있었고, 그 이보는 2월에 케빈 오리스가 합류하자 대신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 인천은 감독 선임에서 난항을 겪다가 1월 중순이 돼서야 간신히 감독을 찾았다. 이적시장에도 뒤늦게 뛰어들었는데,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도 직접 볼 여건이 되지 않아 인천 구단은 비디오 분석만을 통해 영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김도훈 감독도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분석에 의존해 영입했다고 밝혔다.
사실 요니치 본인도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었고, 특히 아시아 국가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단 한 곳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싸빅과 마토 네레틀랴크가 요니치의 크로아티아 리그 활약상을 보고 한국 진출을 추천했고, 그 영향을 받아 인천행을 결심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인천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였기에 주목을 받았고, 경력도 나쁘지 않아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편으로는 아시아 경험이 전무하여 적응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2.3.1. 2015 시즌
시즌 시작을 앞두고 임중용을 상징하는 번호인 20번을 부여받았다. 인천 유나이티드 역사 상 첫 외국인 20번을 달았던 선수였는데, 팀에서 상징성이 큰 번호라 팬들 사이에서는 처음에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후 요니치는 실력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1라운드 광주 FC와의 개막전 경기부터 바로 선발로 출전했다. 동료 수비수들과의 호흡이나 빌드업 면에서는 미숙한 점이 있었지만, 제공권과 대인 방어 능력은 확실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신임을 얻었고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더욱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여 타 팀 팬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으로 꼽혔다.
시즌 초의 인천은 김대중, 김진환이 잘 하다가도 잔실수를 범해서 수비진이 종종 흔들렸지만, 요니치와 골키퍼 유현이 이를 상쇄할 정도의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덕분에 약체 내지는 강등 1순위로 꼽히던 인천은 은근히 실점하지 않는 끈질긴 팀으로 변모했고, 케빈 오리스와 김인성을 중심으로 한 공격진이 적응을 마치면서 서서히 성적도 끌어올렸다.
시즌 중반 시점에서 이미 요니치는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수로 꼽혔고, 인천 팬들은 그간 인천의 에이스들이 그래왔듯이 요니치도 이적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시즌 중반부터는 이윤표가 폼을 끌어올려 선발로 복귀하면서 권완규-요니치-이윤표-박대한 수비진이 결성됐는데, 이 수비진은 리그 내 어떤 공격진도 뚫기 어려운 철벽 방어를 보여줬다.
기어이 인천은 FA컵에서 4강까지 전부 무실점으로 승리해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중심에 서있던 선수가 바로 요니치였다. 비록 인천은 FA컵 결승전에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게다가 인천은 리그 최소실점까지 기록했는데, 이 역시 요니치의 공이 상당했다.
끝내 리그 37경기, FA컵 5경기에 출전하며 시즌 내내 42경기에 출전했다. 경고누적으로 빠진 1경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부상도 하나 없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고, 구단이 붙여준 별명인 '크로아티아 철옹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퍼포먼스였다. 최종적으로 하위 스플릿 내 유일하게 2015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면서 화려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인천 소속으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것은 세 번째 사례.[5]
시즌 막바지에는 인천과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다음 시즌에도 활약을 이어가는 것이 확정됐다. #
2.3.2. 2016 시즌
재계약을 체결한 후 변함없이 인천과 프리시즌을 함께 했고, 20번 배번도 유지했다.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6 시즌 초반에는 영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헛발질, 호흡 미스 등 실책이 크게 늘어나면서 불안하다는 평을 받았고 팀도 시즌 초부터 3연패를 찍고 말았다. 거기에 4라운드 성남 FC전에는 실책을 범해 티아고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요니치의 갑작스러운 부진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김원식이 이탈한 영향도 컸다. 김원식은 넓은 활동반경과 파이터 기질을 바탕으로 요니치의 부담을 덜어줬고, 빌드업 국면에서도 롱패스를 도맡아 하면서 팀 전술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김원식이 임대가 만료되어 FC 서울로 복귀하고, 대신 기용된 김경민이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요니치가 해야 할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과부하를 해결하는 것이 시즌 초 인천의 핵심 과제인 셈.
그래도 베테랑 수비수 조병국이 명단에 들어온 후로 수비 실책은 많이 줄어들었다. 조병국은 베테랑답게 경기 운영, 수비 리드에서 고루 좋은 기량을 보여줬고, 요니치도 그와 함께 뛰기 시작하면서 안정감을 찾았다. 여기에 이윤표까지 포함된 백쓰리 전술이 가동되면서 구단의 경기력도 제법 안정되기 시작했다. 측면에서는 김용환이 왕성한 활동량과 움직임을 가져가고, 중원은 김태수가 풀어주면서 역할 분배가 잘 이뤄진 덕분이었다.
특히 삭발을 감행한 후 폼이 매섭게 올라와서 우스갯소리로 머리카락이 짧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후반기 들어서는 2015년의 포스가 다시 나온다는 평. 물론 요니치도 사람인지라 종종 실책을 범했지만, 인천의 상승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팀이 만족할만큼 반등하지 못해 김도훈 감독이 경질되고 이기형 감독대행 체제로 변경됐는데, 부상으로 이탈한 김동석 대신 남은 시즌을 이끌 주장으로 변경되었다. 라이벌 구단 서울의 오스마르처럼 보기 드문 외국인 캡틴이 된 셈이었다.[6]
사실 원래 주장 순번은 김동석 다음이 조병국, 김태수였다. 공식 부주장은 김도혁이었으나 나이가 어려서인지 실제로 완장을 차는 일은 없었고, 김동석이 자리를 비운 후 한동안 조병국이 주장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이기형 대행이 주장 순번을 바꾸면서 생긴 변화. 다만 공식적으로 주장을 변경했다는 발표는 하지 않아 김동석과의 주장 순번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팬덤에서는 보통 공식 주장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이기형이 팀을 맡은 후에는 전술이 백쓰리에서 백포로 다시 돌아왔는데, 요니치는 한 자리를 고정으로 가져가고 조병국, 이윤표가 돌아가면서 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큰 문제로 평가받던 수비형 미드필더 문제는 배승진이 전역 후 준수한 기량을 보여주면서 해결됐고 김경민 역시 시즌 막판에 폼이 크게 올라오며 제 몫을 다했다.
끝내 인천은 이기형 밑에서 마지막 10경기를 6승 3무 1패로 장식하며 극적인 잔류를 성공했다. 잔류를 확정짓자마자 홈 팬들은 구장 안으로 몰려들어 기적에 환호했고
두고두고 기억될 최고의 사진이 나왔다.
2016 시즌 기록은 리그 34경기, FA컵 3경기까지 총 37경기 출전. 이번 시즌에도 대부분의 경기를 꾸준히 소화하면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비록 부침은 있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이를 털어내면서 여전히 리그에서 인정받는 수비수로 꼽혔다. 이 활약에 힘입어 2016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 이은 2년 연속의 수상으로, 명실공히 K리그 최고의 중앙 수비수라 부르기에 아깝지 않다. 여담으로 2년 연속으로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한 케이스는 인천 내에서 처음이었고, 2024년 시점까지도 요니치가 유일하게 가진 기록이다.
2.4. 세레소 오사카 1기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인천은 매년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는 구단인지라 결국 매번 주축 선수들 팔아서 수입을 얻을 수 밖에 없었고 수비의 중심이었던 요니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결국 2016년 12월 6일, J1리그로 승격한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인천을 떠났다. # 해당 소식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니치가 팬들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남겼다.
구단 측에선 항상 주요 선수가 국내의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 가슴 아파하던 팬들을 고려해 해외 구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한다.[7] 한편 당시 요니치의 연봉은 이어지는 활약으로 인해 크게 올랐고, 구단이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인천은 요니치를 잡고 있기보다는 그를 보내고 여러 포지션에 재투자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하였다.[8] 인천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2년 동안 인천에서 맹활약을 해준 요니치의 앞날을 축복하는 분위기이며 가서도 잘하고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대단히 호의적이고 애정이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세레소 오사카에 합류한 후에도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2017 시즌에는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고, 리그에서만 6득점을 기록하면서 유럽 시절 보여줬던 골 넣는 수비수의 면모를 다시 보여줬다. # 첫 시즌에는 리그 34경기 6득점, 전 대회 통산 42경기 7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팀 동료 김진현과 함께 재계약을 맺었다. #
2018 시즌에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벤치에 앉은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리그 경기를 전부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한편 이 시즌에 세레소가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서 요니치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데뷔했는데, 같은 조에 제주 유나이티드가 걸리자 몇몇 인천 팬들이 요니치를 응원하기 위해 세레소 측 원정석에 자리잡고 경기를 보기도 했다. 리그 33경기 2득점, 전체 42경기 2득점을 기록했고 또 한번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
2019 시즌에는 2017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리그 전경기 출전을 기록했고, 심지어 교체로 빠진 적도 없어서 전경기 풀타임 출전까지 기록했다. 리그 34경기 1득점, 전체 38경기 2득점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2020 시즌에도 또 한번 리그 전경기 풀타임 출전의 위업을 달성했다. 리그 34경기 2득점, 전체 38경기 2득점을 기록했는데 공교롭게도 2019년과 거의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세레소에서 네 시즌을 보냈고, 리그 한정으로는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소화하는 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뛰어난 활약상에 더불어 건강하게 꾸준한 출전까지 기록하면서 일본 무대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선수가 됐다.
2.5. 상하이 선화
세레소 오사카에서 오래도록 활약해왔지만, 2021년 1월 21일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상하이 선화로 이적한다는 세레소 오사카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2월 26일 카메룬 대표팀 출신 공격수 크리스티안 바소고그와 함께 상하이 선화 입단 공식 발표가 나오면서 이적이 확정됐다. 이로써 요니치는 한중일 최상위 디비전을 모두 경험하는 흔치 않은 경력을 가진 선수가 됐다. 게다가 세레소 오사카에선 윤정환 감독을, 상하이 선화에선 최강희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인 지도자들과의 인연 또한 계속됐다.자가 격리가 끝난 이후 3월 16일, 구단은 새롭게 영입한 선수들과 함께 요니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4월부터 공식 리그 일정이 시작되면서 요니치는 곧바로 주전으로 경기를 치렀다. 12라운드 창춘 야타이와의 경기에서 중국 리그 데뷔골도 넣는 등 성공적으로 팀에 안착하였으나, 시즌 최후반부 일정에는 동행하지 않으면서 리그 18경기 1득점, 전체 23경기 1득점으로 마무리했다.
2.6. 세레소 오사카 2기
상하이로 이적해서 한 시즌을 소화했으나, 팀 상황도 어수선했고 코로나 이후 중국 리그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 점들이 작용해서인지 1년만에 친정팀 세레소 오사카로 다시 이적했다.#복귀 후 시즌 초 일정은 소화하지 못했지만 4월부터 다시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다. 리그 26경기 1득점, 전체 35경기 3득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일본 무대에 복귀했지만, 한편으로는 컵대회에서 일본 진출 후 첫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2023 시즌에는 시즌 시작부터 주전 멤버로 출전하면서 입지를 다지는 듯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부터 부상이 겹치면서 출전 횟수가 줄었고, 코키구 아키오 감독과도 트러블이 생기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한동안 벤치에서 시간을 보낸 요니치는 시즌 최후반부에야 다시 주전 멤버로 복귀해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2023 시즌에는 리그 22경기, 전체 26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서 세레소를 다시 떠나게 됐다.
세레소를 떠난 후 거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는데, 2024년 1월 17일 친정 구단 K리그1의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다.
2.7. 인천 유나이티드 FC 2기
2024년 1월 24일 인천은 요니치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FA로 풀렸을 당시 인천과 빠르게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다른 팀에 있을 때도 인천으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에르난데스가 전북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조성환 감독은 공격진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오기를 기대했지만, 전력강화실에서는 요니치의 영입을 선호했고 해리슨 델브리지의 부상이 길어지면서 감독 역시 요니치 영입을 승낙하게 됐다. 협상 과정에서 요니치는 계약 기간, 연봉 등 수많은 조건을 양보하면서까지 인천행을 원했고 기어이 계약까지 성사되었다. 8년 만에 돌아온 요니치에게 인천 팬들은 대환영 중이다.
2.7.1. 2024 시즌
인천 내 모든 선수 중 가장 늦게 합류한 선수였기에 초반부터 출전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올라오면서 복귀전이 일찍 성사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1라운드 수원 FC와의 홈경기 때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경기 흐름 상 공격 자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투입되지 않았다.2라운드 FC 서울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며 드디어 인천 복귀전이 성사되었다. 선발로 나선 후 압도적인 수비력과 빌드업 능력을 바탕으로 일류첸코를 비롯한 상대 공격진을 지워버렸고, 0:0으로 경기가 종료된 후 MOM에 선정됐다. 이 경기 한번으로 그의 재영입에 의구심을 품던 팬들, 요니치의 과거 모습을 모르던 뉴비 팬들까지도 바로 요니치의 가치를 인정하게 됐다.
3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경기에도 선발로 나서면서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 날도 클래스를 보여줬지만, 요니치의 전진 수비가 상대의 역습으로 이어지는 약점도 동시에 노출되었다. 이전 경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최종적으로 팀은 3:3 무승부를 거뒀다.
4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 홈경기에서도 출전, 홈 복귀전이 성사됐다. 수비의 중심에 서서 압도적인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대전의 페니엘 음라파를 통제했고, 그 외에도 뛰어난 수비 장면을 수차례 보여줬다. 여기에 빌드업까지 주도적으로 수행하며 팀의 시즌 첫 승리를 견인했다. 선제골을 터뜨린 제르소와 함께 4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12라운드 경인 더비에 선발 출전했다. 별다른 활약없이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68분 윌리안의 슈팅을 막으려다 자책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후 판독에 따라 윌리안의 골로 인정되었다.
2024년 팀 K리그 대 토트넘 홋스퍼의 리그 올스타전 대비 팀 K리그 멤버를 선발하는 "팬 일레븐"의 후보에 올랐다. 팬 투표에서는 선발되지 못했으나 팀 K리그를 이끄는 박태하 감독과 김은중 코치가 직접 선발하는 "픽텐" 10인 명단에 올라 인천 소속 중 유일하게 참가가 확정되었다.
23라운드 광주 FC 원정경기에서 후반전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팀의 2:0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7월 31일의 팀 K리그 대 토트넘 홋스퍼의 리그 올스타전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투입되어 출전했다.
3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경기에서 후반전 막판 핸드볼 파울로 PK를 내줬고 키커로 나선 조르지 루이스가 성공시키며 1:0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33라운드 강원 FC 홈경기에서 후반전 52분 코바세비치를 향한 양발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받아 3:1 패배의 원흉이 되었고 인천팬들 사이에서 비판여론이 높아졌다.
[1] 출생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였다.[2] 해당 경기에서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2:0으로 이겼지만 1차전에서 3:0으로 패배한 여파로 유로파리그 본선 진출은 실패했다.[3] 2015년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이력이 있는 센터백으로, 중국 충칭 리판에서 뛰기도 했다.[4]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 국대 출신으로, 그 전에는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요니치와 한솥밥을 먹었다.[5] 앞서 임중용, 정인환이 수상했고 모두 센터백이었다. 이후 2018년 엘리아스 아길라르가 수상하면서 처음으로 센터백이 아닌 인천 소속 베스트 일레븐 선수가 배출됐다.[6] 묘하게도 오스마르와도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유럽 출신의 센터백으로 수비의 핵심을 맡고 있으며 각자 팀의 주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는 둘 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기도 했다.[7] 이후 요니치 본인도 인터뷰에서 J리그 이적을 꿈꿔왔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J리그 이적은 구단과 요니치 양쪽의 합의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8] 그러나 인천은 이후 오랫동안 강등권을 전전했고, 심지어 2018년에는 짠물수비라는 타이틀이 붕괴되어 엄청난 실점을 기록하면서 요니치의 대안을 제대로 찾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천이 수비적으로 안정된 시기는 먼 훗날 오반석이 영입되고 조성환 감독이 부임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