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
1953년 | → | 1954년 | → | 1956년 |
1. 개요
1954년 FIFA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과, 1954년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1] 은메달을 기록한 해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라이벌 일본을 이기고 역사상 첫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 성과를 이룬 해이다.일본과의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는 홈 앤드 어웨이가 아니라 일본에서만 두 경기 모두 치렀다. 이유는 해방 후 9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인지라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일본 팀이 한국 땅을 밟는 것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
또한 대표팀이 일본으로 갈 때 한국의 경제 사정이 워낙 쪼들리던 시기였는지라 교통비나 숙박비, 식비 등 제반비용을 마련하는 것 조차 어려웠지만, 재일교포 거물이던 정건영이 역도산, 신격호 등 유력 인사들의 지원을 받아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로 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간신히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2. 경기 결과
날짜 | 상대 | 결과 | 점수 | 도시 | 경기장 | 대회 | 득점 선수 |
03.07 | 일본 | 승 | 5:1 | 일본 도쿄 | 메이지 진구 가이엔 스타디움 |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 | 성낙운, 정남식, 최정민 |
03.14 | 일본 | 무 | 2:2 | 일본 도쿄 | 메이지 진구 가이엔 스타디움 |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 | 정남식, 최정민 |
05.02 | 영국령 홍콩 | 무 | 3:3 | 필리핀 마닐라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 1954년 하계 아시안 게임 | 박일갑, 성낙운, 정국진 |
05.04 | 아프가니스탄 | 승 | 8:2 | 필리핀 마닐라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 1954년 하계 아시안 게임 | 성낙운, 정국진, 정남식, 최광석, 최정민 |
05.07 | 버마 | 무 | 2:2 | 필리핀 마닐라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 1954년 하계 아시안 게임 | 강창기, 최정민 |
05.08 | 중화민국 | 패 | 2:5 | 필리핀 마닐라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 1954년 하계 아시안 게임 | 박일갑, 최정민 |
06.17 | 헝가리 | 패 | 0:9 | 스위스 취리히 | 하르트투름 스타디움 | 1954년 FIFA 월드컵 | |
06.20 | 튀르키예 | 패 | 0:7 | 스위스 제네바 | 샤르밀 스타디움 | 1954년 FIFA 월드컵 |
3.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지역예선 1954.03.07.(일) 14:00 | ||
메이지 진구 가이엔 스타디움 (일본, 도쿄) | ||
주심: 하란 (홍콩) | ||
관중 수 불명 | ||
5 : 1 | ||
대한민국 | 일본 | |
22', 83' 정남식 34' 최광석 68', 87' 최정민 | 16' 나가누마 겐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지역예선 1954.03.14.(일) 14:00 | ||
메이지 진구 가이엔 스타디움 (일본, 도쿄) | ||
주심: 하란 (홍콩) | ||
관중 수 불명 | ||
2 : 2 | ||
대한민국 | 일본 | |
24' 정남식 43' 최정민 | 16', 60' 이와타니 토시오 |
4. 1954년 하계 아시안 게임
4.1. 선수단 명단
위치 | 배번 | 이름 | 생년월일 | 체격 | 소속 | 공식 A매치 기록 |
GK | 2 | 함흥철 | 1930.11.17 | 175cm 69kg | 헌병사령부 | 0경기 0실점 |
1 | 홍덕영 | 1921.05.05 | 176cm 70kg | 조선방직공장 | 11경기 28실점 | |
<colbgcolor=#cd313a>DF | 15 | 민병대 | 1918.02.20 | 170cm 72kg | 특무대 | 11경기 1골 |
3 | 박규정 | 1915.04.21 | 169cm 66kg | 육군 병참단 | 8경기 0골 | |
4 | 이종갑 | 1920.03.18 | ? / ? | 특무대 | 4경기 0골 | |
MF | 7 | 강창기 | 1927.08.28 | 167cm 67kg | 조선방직공장 | 1경기 0골 |
6 | 김지성 | 1924.11.07 | ? / ? | 특무대 | 3경기 0골 | |
5 | 이상의 | 1923.09.08 | ? / ? | 조선방직공장 | 9경기 0골 | |
9 | 주영광 | 1920.12.01 | ? / ? | 해군 | 6경기 0골 | |
8 | 한창화 | 1922.01.03 | 163cm 69kg | 특무대 | 0경기 0골 | |
FW | 10 | 박일갑 | 1926.03.21 | 167cm 65kg | 특무대 | 7경기 2골 |
13 | 성낙운 | 1923.02.02 | 166cm 63kg | 육군 병참단 | 2경기 0골 | |
16 | 정국진 | 1917.01.02 | 162cm 60kg | 해군 | 7경기 5골 | |
14 | 정남식 | 1917.02.16 | 162cm 68kg | 육군 첩보대 | 12경기 13골 | |
12 | 최광석 | 1932.03.27 | ? / ? | 조선방직공장 | 2경기 1골 | |
11 | 최정민 | 1927.07.07 | 178cm 70kg | 특무대 | 7경기 6골 | |
감독 : 이유형 |
4.2. 경기 결과
1954 마닐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 1954.05.02.(일) ??:?? |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필리핀, 마닐라) | ||
주심 불명 | ||
관중 수 불명 | ||
3 : 3 | ||
영국령 홍콩 | 대한민국 | |
2' 주영화 63'(PK), 72' Lee Yuk-tak | 26' 박일갑 69' 정국진 76' 성낙운 |
1954 마닐라 아시안게임 D조 2차전 1954.05.04.(화) ??:?? |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필리핀, 마닐라) | ||
주심 불명 | ||
관중 수 불명 | ||
8 : 2 | ||
대한민국 | 아프가니스탄 왕국 | |
7' 최정민 22' 최광석 23', 45', 55', 80' 성낙운 42' 정남식 49' 불명(OG) | 불명 |
1954 마닐라 아시안게임 4강 1954.05.07.(금) ??:?? |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필리핀, 마닐라) | ||
주심 불명 | ||
관중 수 불명 | ||
2 : 2 | ||
대한민국 | 버마 | |
18' 강창기 71' 최정민 | 불명 |
1954 마닐라 아시안게임 결승 1954.05.08.(토) ??:?? | ||
리살 메모리얼 트랙 풋볼 스타디움 (필리핀, 마닐라) | ||
주심 불명 | ||
관중 수 불명 | ||
2 : 5 |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
30' 최정민 71' 박일갑 | 6' 요탁연 17'(PK), 68' 주용창 50' Szeto Man 80' 하응분 |
5. 1954년 FIFA 월드컵
5.1. 선수단 명단
위치 | 배번 | 이름 | 생년월일 | 체격 | 소속 | 공식 A매치 기록 |
GK | 12 | 함흥철 | 1930.11.17 | 175cm 69kg | 육군 헌병감실 | 0경기 0실점 |
1 | 홍덕영 | 1926.05.05 | 176cm 70kg | 조선방직 | 15경기 40실점 | |
<colbgcolor=#cd313a>DF | 6 | 민병대 | 1918.02.20 | 170cm 72kg | 육군 특무부대 | 15경기 1골 |
2 | 박규정 | 1915.04.21 | 169cm 66kg | 육군 병참단 | 11경기 0골 | |
3 | 박재승 | 1923.04.01 | 165cm 65kg | 육군 특무부대 | 2경기 0골 | |
13 | 이종갑 | 1920.03.18 | ? / ? | 육군 특무부대 | 8경기 0골 | |
MF | 4 | 강창기 | 1927.08.28 | 167cm 67kg | 조선방직 | 5경기 1골 |
15 | 김지성 | 1924.11.07 | ? / ? | 육군 특무부대 | 5경기 0골 | |
5 | 이상의 | 1923.09.08 | ? / ? | 조선방직 | 11경기 0골 | |
16 | 주영광 | 1920.12.01 | ? / ? | 해군 | 9경기 0골 | |
14 | 한창화 | 1922.01.03 | 163cm 69kg | 육군 특무부대 | 0경기 0골 | |
FW | 17 | 박일갑 | 1926.03.21 | 167cm 65kg | 육군 특무대 | 10경기 4골 |
10 | 성낙운 | 1923.02.02 | 166cm 63kg | 육군 병참단 | 6경기 5골 | |
9 | 우상권 | 1928.02.02 | 165cm 68kg | 육군 헌병감실 | 0경기 0골 | |
20 | 정국진 | 1917.01.02 | 162cm 60kg | 해군 | 11경기 6골 | |
11 | 정남식 | 1917.02.16 | 162cm 68kg | 육군 특무부대 | 16경기 14골 | |
18 | 최영근 | 1923.02.08 | ? / ? | 해군 | 7경기 2골 | |
11 | 최정민 | 1927.07.07 | 178cm 70kg | 특무대 | 11경기 9골 | |
감독 : 김용식 |
5.2. 경기 결과
16강 조별리그 진출 체제로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한국이 16개국 본선에 진출했다. 1978월드컵까지는 전세계 지역예선에서 본선 월드컵에 들어 갈 자리가 단 16자리였다.(16강 조별리그)[2]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2조 1차전 1954. 06. 17. (목) 18:00 (CET) | ||
하르트투름 스타디움 (스위스, 취리히) | ||
주심: 레몽 빈첸티 (프랑스) | ||
9 : 0 | ||
헝가리 인민공화국[3] | 대한민국 | |
12', 89' 페렌츠 푸스카스 18' 미하이 런토시 24', 36', 50' 산도르 코츠시스 59' 졸탄 치보르 75', 83' 페테르 펄로타시 | - | |
관중: 13,000명 |
당시 양팀이 입었던 유니폼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헝가리는 매직 마자르라는 애칭으로 1952 헬싱키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헝가리는 1950년 6월 4일부터 1956년 2월 19일까지 50전 42승 7무 1패를 기록하였으며, 유일한 1패는 베른의 기적으로 불린 195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기록한 패배였다. 즉, 대한민국과 맞대결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는 1950년 이후로 패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강팀이란 이야기다.
표면적인 경기 결과로 보면 0:9 대패하였기 때문에 처참한 경기 내용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매우 선전한 편이었다. 이 내용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문서에 해당 항목을 분리하고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2조 2차전 1954.06.20.(일) 17:00 (CET) | ||
샤르밀 스타디움 (스위스, 제네바) | ||
주심: 에스테반 마리노 (우루과이) | ||
관중: 4,000명 | ||
7 : 0 | ||
터키 | 대한민국 | |
10', 30' 수아트 마마트 18' 레프테르 퀴취칸도냐디스 37', 64', 70' 부르한 사르군 76' 에롤 케스킨 | - |
[1]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득4 실12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2] 당시 피파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인도네시아(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무혈입성 참패 탈락과 더불어 아시아 축구 수준을 고려하지 못하고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경쟁없이 아시아끼리만 지역 예선을 치르게 하였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중화민국도 기권해버리면서 라이벌 일본과의 1차전·2차전 1승 1무로 일본만 이기고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고,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별다른 경쟁없이 16개국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마저 16강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 참패 탈락하자 그제서야 피파는 아시아가 16개국 본선에 진출 할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지역 예선부터 아시아가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경쟁을 치러야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었고, 대한민국도 이후 대회부터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하였다. 이후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부터 24개국 본선 진출로 확대, 대한민국은 24개국 본선에 16강이 2라운드로 바뀌게 되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 본선에 복귀 진출할 수 있었다.[3] 헝가리가 공산화된 1949년부터 공산 정권이 붕괴되어 제3공화국이 수립된 1989년까지 존속했던 국가이다. 이 당시의 기록은 현재 헝가리가 계승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같은 국가로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편의상 당시 국호를 사용하였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득4 실12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2] 당시 피파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인도네시아(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무혈입성 참패 탈락과 더불어 아시아 축구 수준을 고려하지 못하고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경쟁없이 아시아끼리만 지역 예선을 치르게 하였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중화민국도 기권해버리면서 라이벌 일본과의 1차전·2차전 1승 1무로 일본만 이기고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고,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별다른 경쟁없이 16개국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마저 16강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 참패 탈락하자 그제서야 피파는 아시아가 16개국 본선에 진출 할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지역 예선부터 아시아가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와 경쟁을 치러야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었고, 대한민국도 이후 대회부터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하였다. 이후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부터 24개국 본선 진출로 확대, 대한민국은 24개국 본선에 16강이 2라운드로 바뀌게 되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 본선에 복귀 진출할 수 있었다.[3] 헝가리가 공산화된 1949년부터 공산 정권이 붕괴되어 제3공화국이 수립된 1989년까지 존속했던 국가이다. 이 당시의 기록은 현재 헝가리가 계승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같은 국가로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편의상 당시 국호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