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0:41:37

우상권

파일:우상권.jpg
이름 우상권
(禹相權 | Woo Sang-kwon)
출생[1] 1926년 2월 2일
사망 1975년 12월 13일 (향년 49세)
포지션 포워드
신체조건 미상
소속팀 육군 헌병감실 축구단[2] (?-1964)
국가대표 49경기 17골 (1954-1964)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수상
3.1. 선수
3.1.1. 클럽3.1.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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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3]

2.1. 선수 생활

우상권의 정확한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스포티비뉴스의 신명철 기자가 2018년에 실향민 출신 전 축구 선수 박경호[4]와 했던 인터뷰에 의하면 우상권도 실향민이었다고 한다. 박경호의 회고에 따르면 우상권은 발재간이 좋았다고 한다.

우상권은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육군 헌병감실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우상권의 A매치 데뷔전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경기였던 헝가리전이었고 우상권은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선발 출전했다. 경기 초반에 우상권은 성낙운과 득점 기회를 만들어봤지만 득점까지 연결되지는 못했고 대한민국은 헝가리에 0:9로 대패했다.

우상권은 강창기, 박규정과 함께 2차전 튀르키예전에도 출전한 세 명의 필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고 튀르키예전에서는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출전했다. 그러나 지쳐 있던 대한민국 선수단은 튀르키예에 별다른 저항이 불가능했고 튀르키예에도 0:7로 대패했다.

우상권은 대신 아시아 무대에서 월드컵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 우상권은 대한민국이 아시안컵에서 2회(1956, 1960) 우승을 거둘 때 5골을 넣은 당시 대표팀의 최다 득점자였다. 또한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은메달을 딸 때도 3골을 넣어 공헌했다.

우상권의 선수 생활 마지막 국제 대회는 1964년 올림픽 축구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3경기 20실점이라는 부진에 빠졌고 조 꼴지로 탈락했다. 우상권은 1964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이후

우상권은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 모교 한양공고 축구부의 감독을 역임했다. 우상권은 말년에 한양공고의 학생이던 최강희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상권은 췌장암으로 1975년 12월, 향년 4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3. 수상

3.1. 선수

3.1.1. 클럽

3.1.2. 국가대표



[1] 대한축구협회의 기록에는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2] 1954년 월드컵 당시 소속팀이었다.[3] 출처: 위키피디아, kfa[4] 1930년생으로 해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