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1:04:23

레프테르 퀴취칸도냐디스

튀르키예의 축구인
파일:Lefter Küçükandonyadis.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레프테르 퀴취칸도냐디스
Lefter Küçükandonyadis
출생 1925년 12월 2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뷔위카다
사망 2012년 1월 13일 (향년 86세)
튀르키예 이스탄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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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신체조건 170cm | 72kg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탁심 SK (1941~1943)
페네르바흐체 SK (1947~1951)
ACF 피오렌티나 (1951~1952)
OGC 니스 (1952~1953)
페네르바흐체 SK (1953~1964)
AEK 아테네 (1964~1965)
감독 에갈레오 FC (1963~1964)
페리쾨이 GK (1966~1967)
메르신 탈림 유르두 (1967)
볼루스포르 (1967~1968)
안탈랴스포르 (1968~1969)
삼순스포르 (1970)
시바스스포르 (1970~1971)
갈라타 SK (1971~1972)
삼순스포르 (1972)
오르두스포르 (1972~1973)
콘야스포르 (1973~1974)
국가대표 46경기 21골 (튀르키예 / 1948~1963)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감독
3. 사생활4. 뒷이야기5. 플레이 스타일 & 평가6. 수상
6.1. 선수
6.1.1. 클럽6.1.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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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어린 시절

퀴취칸도냐디스의 부모는 모두 그리스인으로 그는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퀴취칸도냐디스는 자신의 고향 뷔위카다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이스탄불탁심 SK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에 들어갔다.

퀴취칸도냐디스는 1947년에 자신의 선수 경력을 대표할 팀 페네르바흐체 SK에 입단했다. 퀴취칸도냐디스는 1950년 페네르바흐체에서 밀리 퀴메 우승을 경험하고 1951년에 ACF 피오렌티나에 진출했다. 이는 튀르키예 선수들의 최초 해외 이적 사례 중 하나이다. 퀴취칸도냐디스는 피오렌티나에서 1시즌을 보내며 29경기 4골, OGC 니스에서 1시즌을 보내며 12경기 2골의 기록을 남겼고 1953년, 2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다시 페네르바흐체로 돌아왔다.

페네르바흐체에 돌아온 퀴취칸도냐디스는 페네르바흐체에서 11시즌을 더 뛰었고 이스탄불 축구 리그 우승 2회, 쉬페르리그 우승 3회를 기록했다.

1964년, 퀴취칸도냐디스는 튀르키예를 떠나서 AEK 아테네에 갔고 한 시즌을 더 뛰었다. 39세였던 퀴취칸도냐디스는 아폴론 스미르니스 FC와의 경기에서 AEK 아테네가 7:1로 아폴론을 대파할 때 2골을 넣어 1997년까지 알파 에스니키 최고령 득점자로 남아있었다. 그는 이라클리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고 그 시즌에 5경기만 뛴 채 은퇴했다.

2.2.2. 국가대표

퀴취칸도냐디스는 튀르키예 대표팀에서 1948년 올림픽1954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퀴취칸도냐디스는 튀르키예 대표팀에서 46경기 출전, 21골의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하칸 쉬퀴르 이전의 튀르키예 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퀴취칸도냐디스는 1954년 월드컵에서 2골을 넣었는데 한 골은 서독, 한 골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넣은 골이었다. 당시 튀르키예는 2진이 출전했던 대한민국에 7:0으로 대승을 거뒀다.

2.3. 감독

퀴취칸도냐디스는 튀르키예에서 주로 감독 생활을 했다.

3. 사생활

퀴취칸도냐디스는 그리스 여성 스타브리아니 베키아리(Stavrani Bekiari)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4. 뒷이야기

  • 원래 퀴취칸도냐디스의 성은 안도냐디스였다. 그런데 그의 키가 다소 작아서 튀르키예인들은 그에게 작다는 뜻의 퀴취크(Küçük)를 별명으로 지어줬는데 그는 아예 성에 붙여서 퀴취칸도냐디스로 성을 바꿨다.

5.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정확하면서도 화려한 슈팅으로 유명한 퀴취칸도냐디스는 발리슛에 매우 능숙했다. 퀴취칸도냐디스는 뛰어난 시야와 골 본능을 가지고 있었고 좋은 드리블 능력과 함께 페널티 킥도 잘 찼다. 퀴취칸도냐디스는 경력의 일부를 하프백이나 미드필더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득점 기록을 남겼다.

6. 수상

6.1. 선수

6.1.1. 클럽

6.1.2. 개인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