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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마스코트 포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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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여경(大韓民國女警)은 대한민국 경찰 또는 해양경찰에 속하는 여성 경찰공무원(→여경)을 가리킨다.2. 역사
대한민국의 여경은 해방 직후인 1946년 7월 1일, 미군정 당시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면서 탄생했으며, 고봉경 총경을 비롯하여 간부 15명과 1기생 64명으로 출발했다. 이 시기 여경이 주로 담당한 것은 성매매 등 풍속 및 청소년 업무(여성청소년과)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경찰지휘권이 인수인계됨에 따라 재편되었으며, 동년 7월 「정부조직법」, 11월 「내무부직제」로 치안업무가 내무부로 이관되면서 내무부 산하 치안국에 배속되었다. 이후 여경의 업무는 대공업무로 확대되었으며, 1950년 6.25 전쟁 당시에는 피난민 구호 및 전쟁고아, 상이부상자 업무도 담당하였다. #일반 경찰의 경우 70년대까지만 해도 민원실이나 행정 등 내근 부서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90년대 이후부터 지구대/파출소는 물론 교통, 형사, 정보, 보안 등 각 경찰 부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후 형사·경비 등 여경의 업무영역이 확대되면서 1989년부터는 경찰대학에 여학생 입학이 가능해졌다.[1] 이어 1999년에는 여경기동대가 창설되어 집회/시위 현장에 폴리스라인 잡는 간단한 업무 정도에 투입되었다가[2] 여성 집회/시위 참가자 연행 과정에서 성추행 문제 등으로 2000년에는 경찰특공대에도 여경을 배치, 거의 모든 집회/시위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여성 시위자 연행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진압현장에서는 시위대가 여경을 성추행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진짜 진압부대가 나선다. 아무래도 체격 및 체력이 남자에 비해 부족해서 실제 붙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남성 경찰특공대에 비해 시위 현장에 적극적으로 투입되지는 않는다. 현재는 진압훈련도 경찰관기동대와 같이 받고 현장에서는 기동복과 진압복을 입는다. 2000년부터는 경찰특공대와 경찰간부후보생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현장 업무의 경우, '남성' 경찰이 손을 댈 수 없는 경우 여경이 필요하다. 여성 피의자의 몸수색, 여성 피의자 호송[3], 강간 등 강력 성범죄 피해자를 조사하고 안정시키는 경우가 있다. 경찰청에서는 2024년까지 부서별 여성 비율을 높이라고 목표치를 설정했다.#
현재까지 여경으로서 최고위 진급자는 이금형 前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대한민국의 경찰 창설 이래 3번째 여성 총경, 2번째 여성 경무관, 첫 번째 여성 치안감에 이어 경찰 내 2인자인 치안정감에까지 올랐다. 2014년 12월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사법고시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권은희 전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2013년 퇴직 후 현재 국민의당 국회의원이다.
2021년 6월, 경찰청 측에서 여경 무용론 여론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3000만원을 들여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번 연구 용역을 통해 여성 경찰 비난에 대한 경찰 공식적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 내부의 젠더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
2021년에는 여경보다 남경의 비율이 훨씬 높지만, 특진 비율은 여경이 훨씬 높다. 이러한 특진의 배경은 남경은 '강도살인 등 중요 형사범 검거' '감금 및 성매매 강요 등 일당 검거' '흉기 난동 등 중요 범인 검거 유공' 등 중요 범인 검거 관련 공적이 많았으나, 여경은 '성평등 및 성희롱 예방 교육 강화' '전자출입자 명부 구축 예산 절감 등 적극 행정' '중요 행사 관리 유공 장비 지원 등 만족도 향상 기여' 등 내근·행정 분야가 많았다.# 이로 인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2.1. 해양경찰 여경
해양경찰의 경우 우리나라 법제상으로 경찰공무원으로 인정되는 경찰신분이고, 실제로 고위급들은 일반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을 서로 오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나 역할이 사실상 완전히 다른 조직이라 여경들의 업무나 특성도 상당히 다른 편이다. 특히 지상에서 일반인들 눈에 잘 띄는 육경과 달리, 해경은 바다에 관련된 직종이 아니면 볼일이 거의 없어 알려진 것도 많지 않다.일단 해경의 여성 비율은 2017년 기준으로 11%가량이다. 특히 해경의 업무 특성상 인명구조, 응급조치 등이 비중이 높고 해수욕장의 안전사고 예방 같은 업무들도 있는데, 사회에서도 관련 자격증이 비교적 여성들에게도 열린 편이고 병원이나 간호사 근무자들이 대부분 여성인데 경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이부분에서 비중이 매우 높아 대부분이 여성이다. 헬기로 인명구조 임무를 나갈 때 응급조치를 위해 탑승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그렇다고 무거운 전문장비를 싣고 내리거나 잠수를 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라서...
이쯤에서 대충 눈치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육상직이다. 특히 함선 근무의 경우 거의 없는데, 여경이 있으려면 여경 숙소나 여자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안 된다. 안 그래도 좁아터져서 2~4층 침대를 다닥다닥 집어넣는 중소형 함정에는 거의 불가능하다.[4] 때문에 함정 근무자의 경우 무조건 한강급 (1,000톤) 이상으로 근무지 제한이 걸려 있다. 그나마 이 얼마 없는 여성 함정 근무자중에 사고로 순직한 여경도 있다.[5] 그밖에 아주 특이 사례로 여성 비행기 조종사가 있었던 적도 있다.
3. 고위급 여경 인사 목록
되도록 총경 이상만 기재한다. 한국 여경의 총경 이상의 승진은 2004년이 최초로 알려졌었으나 그건 공채기준이고 1948년부터 이미 총경과 경감 및 경무관이 나오고 있었다. 공채 기준의 고위 경찰로 오르는 여경들은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입직했는데 순경부터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경정부터 여경 비율이 낮아진다.3.1. 경찰청
- 황현숙 (여경 특채): 한국 여경 최초 경무관에 올랐던 여성으로 유관순 여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독립운동가이다. 1946년 7월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조직되면서 치안국 '여자경찰과' 과장에 1대 과장이 되었다.
- 안맥결(여자경찰간부 1기): 황현숙 경무관과 더불어서 여성독립운동가이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이다. 1952년에 총경에 올랐으며 한국 최초로 서울여자경찰서장을 지냈다.
- 노마리아(입문)[6]: 유관순 열사의 올케이며 마찬가지로 여성독립운동가였다.1947년 경찰간부(경위)로 경찰에 입문했다. 1949년에는 한국 여경 최초로 경감으로 승진해 대구여자경찰서장을 맡아 1953년까지 경찰로 재직하였다.
- 전창신(여자경찰간부 1기): 함흥에서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여성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1946년 6월 미군정시기 제1기 여자경찰간부에 합격하여 1950년에 경감으로 승진과 동시에 인천여자경찰서장으로 재직하였다.
- 이양전(여자경찰간부 1기): 3.1만세운동을 일본에서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7] 1946년 7월 1일 수도관구경찰청 경위로 임용되어 1950년 12월 부산철도경찰대 근무, 1953년 6월 11일 제3대 부산여자경찰서장을 역임한 후 1956년 2월 25일 의원면직하였다.
- 양한나(여자경찰간부 1기): 3.1운동 활동과 국내와 임정에 자금전달 및 1923년 임시정부 제11회 의정원 회의에 경상도 의원으로 참석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8] 1946년 6월 여성경찰과에 임용되어 1947년 3월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을 역임하였으며 동년 5월경 의원면직하였다.
- 고봉경(여자경찰간부 1기): 1946년 미군정 산하 초대 여성경찰국장 총경이다. 사실상 한국 여경 최초 총경이다. 영어가 능숙하고 미국 유학을 경험한 전례가 있으나 동생 고황경과 더불어서 친일행위의 전적이 있다. 친일전적에도 불구하고 여성 경찰관들에게는 신망이 두터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납북되었다.
- 김정호(여자경찰간부 1기): 1950년 4월에 치안국 여성경찰계 초대 계장을 지냈고 4대 부산여자경찰서장으로 총경이었으나 5.16으로 면직처분되었다.(대한민국 여성경우회 초대 회장도 역임함.)
- 김인옥(여경 공채 1기): 2004년에 공채 기준 여경 경무관이다. 한때는 해방이후 최초 여성경찰중에 경무관 직위에 올랐다고 알려졌으나 자료가 발굴되면서 아님이 들어나서 그 타이틀은 사실상 사라졌다. 제주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다만 2008년에 면허증 부정 발급으로 불명예 퇴임했다.
- 설용숙(순경 공채 28기): 1977년 입직, 2012년에 공채 기준 여경 3번째 경무관이 되었다. 대구지방경찰청 1계장, 경북 성주서장, 대구 수성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 김해경(순경 공채 31기): 1980년 입직, 2014년 1월에 공채 기준 여경 4번째 경무관이 되었다. 90년대 말에 첫 여경 기동대장을 지냈다. 서울 송파서장(경무관 보임 경찰서), 서울지방경찰정 경무부장을 지냈다. 남편은 현재섭(경찰대 1기) 경무관이다.
- 송정애(순경 공채 32기): 1981년 입직. 2018년 12월에 경무관으로 승진, 2020년 8월에 치안감으로 승진하였고 2022년 6월에는 여경 중 세번째로 치안정감 (경찰대학장) 으로 승진하였다.
- 이은정(경사 특채): 1988년 입직, 2015년 말에 공채 기준 여경 5번째 경무관·2018년 두 번째 치안감, 2019년에 두번째 치안정감이 되었다.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중앙경찰학교장, 경찰대학장을 지냈다.
- 김강자(순경공채): 1971년 입직. 여성 최초의 총경
3.2. 해경청
해경은 아직 장성에 상당하는 경무관 이상의 여경을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총경은 2017년 8월 처음 나왔다. 기사4. 논란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여경/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1] 여학생 정원은 12%로 묶여 있었으나, 21학번부터 성비 고정이 해제되었다.[2] 실제로 이 때만 해도 이것이 여경 기동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3] 간혹 남경이 호송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 피의자는 여경이 맡아서 호송한다.[4] 이 정도 사이즈 함선이면 함장이나 되어야지 자기 책상과 전용 침대 있는 자그만한 방을 얻는 수준이다.[5] 함정근무 중에 여경이 복통으로 헬기 후송조치되다가 헬기추락사고로 제주항공대 소속 해경들과 함께 순직했다.[6] 특채 추정[7] 2021년 7월까지 확인된바로는 심사중[8] 심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