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4 13:03:20

니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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瓊瓊杵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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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BD0029><colcolor=#DCA600,#DCA600> 이름 니니기(ニニギ, ニニギノミコト)
부친 아메노오시호미미

1. 개요2. 전승3. 기타4. 창작물

1. 개요

니니기일본 신화에 나오는 이다. 황조신 아마테라스의 손자이자 아메노오시호미미의 아들로, 지신오대의 제3대이다.

전체 이름은 아메노 니기시쿠니 니기시아마츠 히코 히코호노 니니기(あめのにぎしくににぎしあまつひこひこほのににぎ)이다.[1] 이 중 존칭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진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니니기'이기 때문에 보통은 줄여서 니니기라고 하며, 한자로는 일반적으로 '瓊瓊杵尊' 및 '瓊々杵尊', '邇邇芸命'으로 표기한다. 일본 고대 사료에서는 존칭인 尊 또는 命을 붙여 니니기노 미코토라고 읽는다.

2. 전승

파일:external/www.food-farm.net/1261612174.jpg

고사기》에 따르면 니니기는 계보상 아마테라스 여신의 직계 손자로, 조모인 아마테라스의 명령에 따라 볍씨와 3종의 신기(거울, 곡옥, 검), 5부신과 함께 보자기에 싸여 천상인 타카마가하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왔다.[2] 내려간 곳은 ‘구시후루노타케'의 ‘소호리’라는 봉우리였다.#

그리고 강림한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은 카라쿠니(韓國, 한국)을 향해 있고, 카사사(笠沙) 곶까지 진정한 길이 통해서 아침 해가 잘 비치는 나라, 석양이 잘 비치는 나라이다. 고로 이곳은 매우 좋은 곳이다."[원문]

이를 두고 천손강림(天孫降臨)이라고 한다. 천황가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니니기와 여신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호오리노미코토의 손자가 바로 일본의 초대 천황 진무이고, 현 천황가는 이들의 직계임을 자처한다.

이 신화를 두고 오카 마사오 교수, 우에다 마사아키 등은 단군신화를 본뜬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과 '쿠시후루노타케'의 지명 관련성 및 니니기가 강림했을 때 한국(카라쿠니)에 대해서 언급한 《고사기》의 내용을 들어, 일본 학자 사와다 요타로(澤田洋太郎)와 타니 유지(谷有二) 교수 등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규슈 북쪽에 이주하는 내용이 니니기 신화라고 주장했다.[4]

오오야마츠미는 니니기에게 두 딸인 이와나가히메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를 시집보냈으나, 니니기는 추녀인 이와나가히메를 내치고, 미녀인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하고만 결혼했다. 오오야마츠미는 바위와 영원을 상징하는 이와나가히메와 단풍잎과 번영을 상징하는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양쪽 모두를 거두길 원했으나, 니니기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만을 선택한 탓에 현재의 천황가는 인간의 수명밖에 지니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는 몇백 년 이상 살 수 있는 불로의 존재일 수도 있었는데, 사쿠야를 선택했기에 지상에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들처럼 8~90년 살고 생을 마친다는 얘기이다. 천황을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현인신인 천황이 여타의 범속한 인간들처럼 겨우 몇십 년밖에 못 살고 죽게 되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신화적 시도였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3. 기타

게이코 조를 보면 마키무쿠(纏向)에 도읍한 인물, 히무카(日向)에 근거하여 규슈에서 맹위를 떨친 인물, 간사이 동부와 주부 서부에서 활동한 인물로 행적이 나뉘는데 진무 덴노가 긴키로 이주하기로 결심했을 때 니니기가 히무카로 이주한 뒤 3대에 걸쳐 서쪽 변방(규슈)을 평정하고 다스렸다 말하고, 진무의 동정 과정에서도 규슈에서 주고쿠를 거칠 때까지 별다른 제재가 걸린 적이 없다. 결정적으로 게이코 17년 3월조에 히무카(日向)라는 이름이 생긴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니니기가 히무카로 내려갈 때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그냥 히무카에 있는 지역이라 서술된다. 기기신화에서는 히무카 3대의 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데, 게이코 덴노 12~18년조에 나오는 히무카(日向)에서 근거하여 규슈에서 맹위를 떨치는 기사가 실제로는 니니기~우가야후키아에즈의 일대기일 수도 있다.

게이코 12년조를 보면 츠쿠시(筑紫)에 머물다 스하(周芳)의 사바(娑麽)로 가 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뒤, 후쿠오카현 동부의 유쿠하시시~미야코군 일대에 이르러 경(京)이라 불렀다. 그 뒤 오이타현 오이타시벳푸시 일대로 갔고, 미야자키현 일대인 히무카로 이주해 남규슈의 선주민인 구마소와 싸워 이겼다. 이후 13년조에 현지의 여성을 아내로 삼아 히무카노 쿠니노 미야츠코(日向國造)가 되었고, 17년 히무카(日向)이라는 지명을 지었으며 고향을 그리워해 사방가(思邦歌)를 지었다. 이후 18년조는 규슈 서부를 중심으로 세력이 확장되는 과정이 자세히 나타나는데,[5] 이를 감안하면 게이코 12년조에 나오는 후쿠오카현 동부에서 미야자키현 일대로 남하한 인물이 니니기일 수도 있다.

오진 덴노의 부인 중에는 히무카노 이즈미노 나가히메(日向泉長媛)라는 인물이 있으며, 히무카노 카미나가히메(日向髮長媛)를 부인으로 삼으려 했지만 닌토쿠 덴노와 혼인하였다. 또 게이코 18년 3월조에 모로가타노 키미(諸縣君)라는 가문이 언급되는데, 오진 덴노 11~13년조에 히무카 출신인데 야마토 조정에서 일하다 늙어서 고향에 돌아간 모로가타노 키미 우시 모로위(諸縣君牛諸井)라는 사람이 언급된다. 오진은 247(367)년 한반도 기사에 본명으로 등장하며, 4세기 중반~후반에 활동한 인물로 추정됨을 고려하면 진무는 4세기 초반에 미야자키현에서 나라현으로 이주했다 가정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증조부인 니니기는 3세기 중반 인물이 된다.

초기 야마토 왕권은 여러 왕이 존재하고 그 대표가 대왕위인 집단지도체제였으며, 4세기 후반 닌토쿠 덴노 대까지 대왕위는 여러 가문이 돌아가면서 맡았다.[6] 진무 덴노의 동정 신화는 초기 야마토 왕권의 성립 과정에서 긴키로 이주하여 도시국가를 세운 가문들 중 하나의 일대기라 볼 수도 있다. 247~248년,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가 죽고 남자 왕이 즉위했지만 내전 끝에 히미코 가문의 13살 소녀 토요가 승리하였는데, 히미코가 죽은 해 북규슈에서 일몰에 일식이 일어났고 토요가 즉위한 해 일출에 일식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아마테라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이 숨었다가 다시 나온' 일화의 유래라는 추측이 있는데, 패배한 남자 왕이 어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히미코가 조위조예에게서 조공으로 받아온 유물이 긴키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남자 왕과 토요의 내전이 야마타이국 내에 속한 여러 집단들이 흩어지는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는데, 그와 별개로 남자 왕의 일족 중 일부가 미야자키현으로 도망쳤고 규슈의 서쪽 방면을 통해 세력을 넓힌 뒤 긴키로 이주했을 수도 있다.[7]

4. 창작물


[1]고사기》의 한자 표기로는 '天邇岐志国邇岐志天津日高日子番能邇邇芸命', 《일본서기》의 한자 표기로는 '天饒石国饒石天津彦火瓊瓊杵尊'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표기가 존재한다.[2] 본래는 아마테라스 여신의 아들인 아메노오시호미미가 내려가기로 했지만 지상의 신들이 저항하여 평정을 하던 중 니니기가 태어나 완전히 평정한 그때, 청년으로 자라나서 아메노오시호미미가 그의 아들 니니기를 대신 보내기로 하자고 제안했다.[원문] 此地者 向韓國 有真之道通笠紗之御前 又此地者 朝日之直刺國 夕日之日照國也 故 此地甚吉地也[4] 그러나 고대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히무카(日向)는 미야자키현가고시마현 등의 남규슈 지대를 부르던 명칭이고, 진무의 동정 신화에서도 북규슈 일대는 츠쿠시(筑紫)로 명백히 구별하기 때문에 니니기가 내려간 곳은 남규슈 일대가 더 유력하다. 니니기의 아들인 호오리의 일화에서도 남규슈 지역의 이민족인 하야토가 언급된다.[5] 게이코 18년조에는 규슈 북부와 동부 일대에는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6] 동시기 마한의 수장 건마국->목지국->백제, 진한신라, 변한의 외교 대표였던 금관국->반파국->안라국 등과 같은 포지션이었다.[7] 원래 아마테라스아메노오시호미미를 보내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니니기를 대신 보냈다는 일화를 고려하면 토요와 싸운 남자 왕이 아메노오시호미미였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