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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놋다리밟기는 경상북도 안동·의성 등지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공주로 뽑힌 어린 소녀가 노래에 맞춰 밟고 지나가는 민속놀이다.2. 유래와 의미
이 놀이는 고려 말, 31대 왕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할 때, 마을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만들어 왕후와 노국대장공주가 발을 적시지 않고 개천을 건너가게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졌다.[1]‘놋다리밟기’는 ‘기와밟기’, ‘지애밟기’, ‘논따리밟기’ 등으로도 불리며, ‘놋다리’는 ‘놋쇠처럼 굳은 다리’ 또는 ‘동교(銅橋)’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3. 놀이 방법
- 1. 열을 지어 엎드리기: 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이 일렬로 서서 허리를 굽히고 팔을 사용해 앞사람의 허리를 안아 고개를 돌린다.
- 2. 다리 놓기: 이렇게 만든 엎드린 행렬은 튼튼한 '놋다리'가 된다.
- 3. 공주가 밟고 지나가기: 7~8세 정도의 어리고 예쁜 소녀를 '공주'로 뽑아 곱게 입혀 등 위에 올려놓고, 공주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옆에서 부축하며 천천히 밟고 지나가게 한다.
- 4. 부축하는 사람들 곁과 뒤에서는 '놋다리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
[1] 홍건적이 1360년 11월 19일 침략을 시작하고 수도 개경을 향해 진격을 시작하자, 공민왕은 동년 11월 19일 왕궁을 떠나서 몽진 길에 올랐다. 파주, 양주, 광주, 이천, 충주, 용궁 등을 거쳐서 동년 12월 15일에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인 당시의 복주에 도착한 뒤에, 지역민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머물다가 개경을 수복한 뒤인 이듬해 2월 신축일에 환도했다. 환도 이후 공민왕은 안동 주민들의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서 백옥대와 옥관자, 상아홀 등의 진귀한 물품을 하사하는 한편, 복주목을 안동대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 조세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놋다리밟기의 유래에 관한 전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형성,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