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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나미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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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2.2. 20세기2.3. 21세기
3. 갈등4. 관련 문서

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나미비아의 관계. 양국은 역사, 외교적으로는 앙숙이지만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지금의 남아공과 나미비아 지역은 코이산 제어를 쓰는 민족들이 많이 거주했다. 고대에 반투족들이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을 몰아내고 남아공 지역과 나미비아 지역에 정착했다. 반투족들은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을 정복하고 지배했다.[1] 그러면서도 반투족들은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과 통혼이 자주 이뤄졌고 외모에서도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과 혼혈이 생겼다.[2] 남아공 지역에 널리 거주하던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은 나미브 사막으로 밀려나면서 세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항해시대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남아프리카로 많이 진출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남아공 지역에 정착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접촉 및 혼혈이 많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륙 지역은 19세기가 되어서야 개척에 나설 수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미비아 지역은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독일의 지배하에서 헤레로족나마족들은 독일의 지배와 탄압을 받았고 결국 이들은 독일로부터 항전을 하기했지만, 당시 독일 제국은 헤레로족들과 나마족들을 학살했다. 남아공 지역은 19세기에 영국이 차지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2.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남아공 지역과 나미비아 지역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배하에서 남아공 지역과 나미비아 지역은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 남아공은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세계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당시 나미비아도 남아공의 지배하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하에 남아공 정부의 탄압을 많이 받았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고 90년대초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 정부가 출범했다. 남아공도 나미비아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켰고 나미비아도 90년대초에 남아공에서 독립했다. 양국은 90년대에 영연방에 가입했다.

2.3. 21세기

양국은 경제, 문화에서 교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3] 그리고 나미비아와 남아공은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의 지배와 영향으로 보어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아프리칸스어는 남아공의 공용어이자 나미비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이다. 양국은 하술할 오렌지 강과 관련된 분쟁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우호적이다.[4] 양국은 상호 관광, 인력으로도 교류했지만, 과거에 의존하던 남아프리카 항공의 파산으로 앞으로 교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영연방의 회원국이다.

2000년 2월 29일, 남아공과 모잠비크,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에서 일어난 홍수로 371명이 사망하고 수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3. 갈등

남아공과 나미비아는 두 나라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오렌지 강의 수자원 밑 국경 문제로 갈등도 빚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남아공내의 반투족들은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2] 남아공내 반투족들은 코이산 제어의 영향으로 흡착음이 존재한다.[3] 남아공 랜드가 나미비아에서도 쓰이는 경우가 있다.[4] 나미비아로서는 남아공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꽤 높아 사이가 안 좋아도 대놓고 남부 아프리카의 맹주인 남아공을 적대관계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남아공과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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